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237
241화 강자(3)
“······.”
정우는 당장이라도 저 멀리 달려가고 있는 성소희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
23억 개의 정수라면 충분했다.
그럼에도.
“진심이라면 최선을 다해야 할 거다.”
딸이 말을 탈 때까지 보내 주지 않겠다는 성원룡의 선언에 이렇게 답했다.
어차피 죽음이 확정된 상대를 필요 이상으로 괴롭히는 악취미까진 없었을 뿐더러, 처음 보는 특질을 좀 더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보호막이 몸에서 완전히 떨어져 있는데······. 그럼 저 사이는 막아 주지 못하는 건가?’
정우는 성원룡이 몸에 두르고 있는 보호막을 유심히 살폈다.
허공에 떠 있는 수십 개의 다각형은 성원룡의 몸에서부터 약 20센티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그러다 필요에 의해 몸에 더 가까이 붙거나 바깥으로 멀어지면서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방금처럼 외곽 면과 맞닿은 대상을 튕겨 낸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문제는 겉보기에 ‘본체’는 전혀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었다.
일반적으로 보호막은 몸의 윤곽선을 따라 그대로 씌워지거나 돔 형태로 생성된다.
그런데 성원룡의 것은 엄밀히 말해 보호막이라기보다는 작은 방패들이 몸을 둘러싼 쪽에 가까웠다.
일반적인 보호막과 저 다각형까지 이중으로 전개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현재 성원룡의 몸체는 빈틈투성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알아보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지.’
정우는 생각을 정리하자마자 잔뜩 긴장한 모습의 성원룡을 향해 가시를 쐈다.
쫴애애애액!
“······!”
이에 성원룡이 눈을 휘둥그레 떴고, 곧 그의 위험천만한 방어 기재가 발동됐다.
드득!
그를 둘러싸고 있던 다각형 중 가시가 날아드는 방향에 있던 것들이 서로 맞붙으며 빈틈을 막아 버린 것이다.
츠팟!
결과적으로 정우가 쏘아 보낸 가시는 다각형에 막혀 부러졌지만, 이로써 상대의 치명적인 약점이 드러났다.
‘보호막이 이중까진 아니군. 만약 반응이 늦으면 그대로 맨몸이 노출되는 거야.’
아슬아슬한 방식의 수비법에 정우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엄밀히 말해 저건 제대로 된 보호막이 아니었다.
물론 각각의 다각형 자체는 내구도가 아주 뛰어날 것이다. 전신을 커버해야 할 정수로 몸의 2분의 1 정도만을 수비 중이니까.
즉, 한계치 이상의 능력을 내기 위해 어마어마한 리스크를 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걸 반대로 생각하면······.’
리스크를 지면 보유한 정수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낼 수 있다는 의미.
물론 이전에도 비슷한 방식의 정수 활용을 익히 봐 왔다.
상대의 공격을 막기 위해 정수를 방패 형태로 빚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또한 어떻게 보면 정수 칼날도 같은 원리였다. 보호막의 비중을 낮추고 근접 전투를 불사하는 대신, 상당 수준의 공격력과 전투 지속력을 얻게 되는 셈이었으니까.
‘나도 이대론 한계가 있어. 어쩌면 이자가 정수 활용면에선 나보다 진일보한 걸지도 모른다.’
정우는 이미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계속 나타날 초월적인 존재들을 결코 꺾을 수 없으리란 사실 말이다.
더는 성장 곡선이 선형적이어선 안 됐다. 급격한 성장,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강력한 힘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선 현재 한계를 뛰어넘는 방법부터 배워야 했고, 정우는 지금 그 방법 중 하나를 눈앞에 둔 기분이었다.
“보여 줄 수 있는 모든 걸 내놓고 죽어라.”
“······뭣?”
정우의 말에 성원룡이 미간을 찌푸렸고, 곧 정우에게서부터 수십 발의 가시가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쫴애애애애액!
단순히 성원룡만을 노린 게 아니었다. 현장을 둘러싼 공안부 요원 7인까지도 일시에 죽이려 드는 공격.
“미친!”
가시가 이렇게나 많이 생성될 수 있으리라곤 생각을 못 했는지, 성원룡이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의 ‘다각형’들을 조작했다.
몸을 둘러싼 수십 개의 다각형 중에 단 3개만 자신을 보호하는 데 쓰고, 나머지는 부하들에게 날려 보내 방패를 제공한 것이다.
촤라라라락!
물론 정우의 가시 속도가 무척 빨랐기에 성원룡이 지켜 줄 수 있는 건 근처의 네 사람뿐이었다.
관제실장 류량성과 딸을 건져 내기 위해 보냈던 요원 중 고작 3인.
그럼에도 이를 본 정우의 동공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저 보호막이 단순히 시전자를 중심으로 펼쳐졌다가 모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원한다면 어떤 동선으로든 움직일 수 있음을 확인한 셈이었으니까.
“다들 목숨값을 해라! 놈을 동시에 친다!”
성원룡이 악에 찬 목소리로 자신이 살려 낸 부하들에게 지시한다.
그러자 류량성과 요원 3인이 눈을 파랗게 빛내며 지시에 응했다.
곧장 정우를 향해 정수 칼날을 뽑아내며 달려든 거다.
타아앗!
각 요원의 평균 정수량은 약 4천만.
목표물의 정수량이 압도적으로 높을 게 분명한 이 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판단이긴 했다.
면적 대비 피해량이 낮은 정수 파동으론 당연히 아무런 위협을 줄 수 없을 테고, 그나마 칼을 빚어 쑤셔야 보호막에 흠집이라도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누구도 살아 나갈 수 없을 거란 사실을 받아들였기에 가능한 합공이었다.
“······.”
그러나 정우의 정수량은 장내 모든 이의 상상을 한참 뛰어넘었다.
23억 개. 성원룡과 비교해도 4배가량 되는 수준이었으니까.
정우는 사면에서 달려드는 요원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로 가시를 뿜어냈다.
쫴애애애액!
그러면서 시선은 정면의 성원룡에게 붙여 놨다.
녀석이 부하들을 사지에 내던지면서 시도하려는 공격이 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흐읍······!”
성원룡이 비기를 꺼냈다.
홰액!
그가 정우를 향해 손을 휘두름과 동시에, 사방에 흩어져 있던 다각형들이 한꺼번에 쏘아져 나간 것이다.
목표물은 다름 아닌 박정우.
‘역시 공격용으로도 쓰는군. 탐나는 능력이다.’
이번만큼은 정우도 제법 위협을 느꼈다.
만에 하나 성원룡이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각성자였다면 십중팔구 고전을 면치 못했을 테니까.
콰콰콱!
수십 개의 다각형이 정우의 보호막 표면을 두드리며 하얀 균열을 일으켰고, 사방으로 뻗어 나갔던 정우의 가시도 성원룡의 수하들을 꿰뚫으며 허공에 피를 튀겼다.
트핫!
가시의 크기가 워낙 작았기에 허공에 뿌려진 핏방울 역시 아주 미세했다.
마치 분무기를 쏜 것처럼 말이다.
그러곤 여지없이 정우가 가시를 회수했다.
그가 공격 대상으로 삼지 않은 건 성원룡이 유일했다. 다음에 무슨 수를 꺼내는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로 기대한 것 이상의 새로운 수가 나타났다.
“아아······!”
성원룡이 분노에 가득 찬 소리를 내지르며 모든 다각형을 불러들인 거다.
취리리릿!
진짜 중요한 장면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오.’
한층 더 커지는 정우의 동공.
수십 개의 다각형이 제자리로 돌아가면서, 이마나 가슴에 구멍이 뚫린 요원들의 몸뚱어리를 낚아챘다.
정확히는 성원룡이 수하들의 육신을 끌어당기고 있는 거였다.
무협지에나 나오던 흡성대법을 보는 것만 같다.
1급 경감, 성원룡에게 빨려 들듯 모인 육체들에서 곧 푸른 정수 구체가 튀어 올랐고.
파팟, 팟!
그대로 성원룡의 몸에 스며들었다.
스아아아······.
경감의 몸을 타고 오르는 푸른 기운.
“······.”
정우는 성원룡의 정수량이 눈 깜짝할 사이에 8억 3천만 개까지 치솟는 걸 봤다.
“······놀랍군.”
정우는 이 말을 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일찌감치 망자가 되어 있던 요원 5인의 정수 구체가 아직도 바닥에 깔려 있어서였다.
도합 2억 개의 정수.
이걸 성원룡이 일부러 남겨 놨을 리는 없고······.
‘저 보호막으로도 정수를 직접 끌어오는 건 불가능한가 보군.’
정우는 이제 기차놀이를 하듯 일렬로 이어진 채 성원룡의 몸을 맴돌고 있는 다각형들을 바라봤다.
마치 사슬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아마 실제로도 저걸 휘두를 수 있을 거다.
다만 그러지 않고 있을 뿐.
정우는 성원룡의 최우선 목표가 딸의 피신임을 잊지 않고 있었다.
즉, 지금 놈은 일부러 싸움의 템포를 늦추고 있다는 것이다.
“더 보여 줄 게 없나? 그렇다면 이쯤 해야겠다.”
정우가 이 말과 함께 허페이 방향을 슬쩍 보자, 성원룡의 표정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아직이다.”
그러더니 팔을 휘둘러서 몸에 두르고 있던 ‘사슬검’이 정우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들도록 했다.
하지만 뻔하디뻔한 공격 아닌가.
콰츠츳!
대번에 정우가 검의 끄트머리를 팔로 쳐 냈고, 이제 정말 싸움을 끝내겠다는 듯 오른손에서 정수 칼날을 뽑아 올렸다.
그리고 이를 본 성원룡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대, 대체······?”
정우가 칼날을 새로 뽑았음에도 그를 감싼 보호막의 밀도가 전혀 낮아지지 않았다는 걸 감지한 거다.
대체 정수를 얼마나 남겨 두고 있던 것인가?
상대가 여태 전력을 다한 게 아니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촤라라라락!
성원룡이 멀리 튕겨 나간 사슬검을 다시 불러들여 정우를 노렸지만 소용없었다.
정우가 두른 보호막의 정수 밀도가 성원룡의 정수 총량보다 높을 정도로, 전력 차이가 심각했으니까.
콰앗!
끝내 정우가 휘두른 정수 칼날에 사슬검이 산산이 조각났고, 이윽고 성원룡의 몸 위로 기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전신을 파랗게 물들인 정우의 그림자였다.
“이제 마지막이다. 내게 도움이 될 정보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말해라.”
“······.”
사슬검을 잃은 성원룡의 몸은 그 어떤 보호도 받지 못했다.
스윽.
푸른빛을 띤 정우의 팔이 목 근처로 다가오는 데도 어쩔 도리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텁.
결국 정우의 손아귀에 성원룡의 목이 말려 들어갔다.
“허, 헉······.”
숱한 전투를 거쳐 온 성원룡이었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신체 강화를 한 대상과 살갗을 직접 맞대 보는 경험 말이다.
천천히 목을 죄어 오기 시작한 상대방의 손은 매우 차가웠다.
같은 인간인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아니, 생물이긴 한가 싶을 정도로.
“차, 차가워······.”
“뭐?”
“네 몸······ 말도 안 되게 차갑다고. 알고 있나? 마치 시체 같다.”
지금 성원룡이 결코 비아냥거리는 게 아님을 누구보다도 정우가 잘 알았다.
어떻게든 자신의 딸을 살리려는 자가 이쪽의 심기를 건드릴 리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정우는 왜인지 섬뜩한 기분마저 들었다.
“차다고? 죽기 전에 남길 말이 내 손이 차다는 이야기뿐인가?”
그러나 성원룡은 여전히 큰 충격에 빠진 얼굴이었다.
“괴물이구나.”
맥락을 알 수 없는 읊조림.
그러더니 정우에게 목을 붙들린 채로 고개를 돌리려 애썼다.
이에 정우가 손아귀에 힘을 살짝 풀자, 성원룡이 허페이 방향으로 머리를 돌렸다.
시간을 많이 끌지 못한 탓인지, 흙먼지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성소희가 탄 말이 달리며 일으키고 있는 흙먼지 말이다.
이제 막 말에 올라타 도시를 빠져나가고 있는 듯.
“······.”
성원룡은 그렇게 딸의 뒷모습에 시선을 붙여 둔 채 가만히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시간을 버는 방법’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
정우와 성원룡이 선 지점과 허페이 사이의 중앙쯤 되는 곳에 투명한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공간이 통째로 일렁이는 듯한 느낌.
‘진입로······?’
정우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내밀자, 넋이 나가 있던 것 같은 성원룡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안 돼.”
자신의 딸이 진입로의 영향권 안에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이대로라면 박정우가 아니더라도 죽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우의 의식 속에서 평가관이 기척을 드러냈다.
-선두 특혜 투표로 인해 진입로 생성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일부 진입로가 정수 밀집지 근처에 생성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새 진입로 중 하나가 정수 밀집지 자체인 박정우를 따라왔다는 소리다.
‘그럼 저게 6일 차 진입로인가?’
정우는 이렇게 되물으며 손아귀에 힘을 꽉 줬다.
뿌득.
그러자 성원룡의 목이 간단히 부러졌고, 곧 8억 개나 되는 정수가 담긴 구체들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티틱, 틱, 스아아······.
곧장 정우의 몸으로 곤두박질한 파란 구체들.
이어서 뒤편에 흩어져 있던 나머지 요원의 정수까지 모조리 흡수하자 정우의 머릿속 숫자가 또 한 번 크게 바뀌었다.
「3,363,082,492」
33억 개.
‘말도 안 되게 불어나는군.’
전신에 엄청난 양의 정수가 들이 닥친 탓에 정우 스스로도 놀랄 정도였다.
그러나 더 놀라운 일은 다음에 벌어졌다.
‘······설마.’
불어난 정수량을 점검한 뒤 시야의 좌측 하단, 구원자 채널로 시선을 옮겼으나.
‘······.’
아무런 문구도,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우는 여전히 중국 내 2위 구원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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