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244
248화. 수문장(1)
“아아악……!”
정우가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휘젓자 머리의 동선을 따라 시퍼런 궤적이 그려졌다.
그리고 이 사실을 정우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
이전엔 없던 일이다. 정수가 들어오고 나가는 그 흐름이 낱낱이 느껴졌다.
물론 그렇다고 ‘충신’으로 인한 고통이 줄어드는 건 아니었다.
“크으읍!”
으득, 하면서 정우의 이가 맞물렸고, 이 여파로 아주 엷은 정수 파동이 전방위로 뿜어져 나갔다.
화아아앗!
이번 파동은 살의를 담았다기보다는 고통에 의한 반사작용에 가까웠다.
이 때문에 파동에 휩쓸린 그 어떤 것도 소멸하지 않았다. 대지에 핀 들풀조차 말이다.
그리고 이 점이 정우에게 어마어마한 충격을 안겨 줬다.
‘……잠깐.’
찰나였지만 방금 정수를 뿜어낸 순간 자신을 둘러싼 모든 사물의 윤곽과 위치가 머릿속에 그려졌던 것이다.
마치 레이더처럼.
「고통이 네 정수를 기민하게 만들 것이다.」
정우의 머릿속에 ‘둘째’의 작별 인사가 스쳐 지나간다.
그러곤 이내 어마어마한 고통이 그의 의식을 덮쳤다.
“카학……!”
화아아앗!
또 한 번 방사되는 정수 파동.
그러자 주목해야 하는 두 가지가 의식 속에서 튀어 올랐다.
크릉.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감지한 냄새가 즉시 몸을 파랗게 태우며 전장을 이탈했고, 이를 바라보던 6일 차 침입자 중 하나가 냄새를 향해 팔을 휘두른 것이다.
“……!”
이에 정우가 급히 ‘레이더’를 길게 뿜어냈다.
고통에 짓눌려 눈을 뜨기 어려운 탓이었다.
그러자 놀라운 장면이 의식 속에 그려졌다.
홱.
허공을 가른 침입자의 손끝에서 정수 창과 매우 유사한 투사체가 쏘아져 나간 거다.
‘각자 가진 자원을 운용하는 놈들이구나.’
정우는 여전히 눈을 감은 상태에서 팔을 뻗어 정수 장벽을 빚어 올렸다.
벌써 저만치 날아가고 있는 ‘창’의 동선 중앙에, 정확히.
촤아아아앗!
육중한 장벽이 순식간에 솟구치며 창을 막아 냈고, 거의 같은 순간에 허물어졌다.
정우가 제 역할을 다한 장벽을 즉시 회수한 탓이었다.
그리고 정우는 이 시점에 또 한 번 놀랐다.
정수의 운용 속도가 말도 안 되게 빨라져 있었으니까.
심지어 눈으로 보는 것보다 ‘레이더’를 통해 파악한 전황이 훨씬 정확했다.
슈아아아아…….
이제 정우의 몸에선 정수 파동이 쉬지 않고 뿜어져 나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다섯 침입자의 모습과 위치, 놈들이 뿜어내는 에너지의 형태까지 전부 보고 있었고, 심지어 ‘간파’를 통해 의도까지 꿰뚫었다.
|2번 대상이 반격을 준비합니다.
|4번 대상이 아직 의도를 정하지 못했습니다.
|1번 대상이 더욱 위축됐습니다.
|5번 대상은 4번 대상과 함께 공격할 것입니다.
|3번 대상이 퇴각을 고민합니다.
6일 차 침입자들은 반투명한 신체를 지닌 인간 형체였다.
신장은 약 2미터. 인간과 비슷한 비율의 팔다리를 지녔고, 머리만이 이질적이었다.
관찰자 중 하나였던 ‘다홉’처럼 빛 덩어리를 머리로 달고 있었으니까.
몸엔 아까 ‘창’을 빚었던 에너지를 옷 대신 둘렀는데, 이게 쉬지 않고 넘실대서 마치 신선들이 입는 옷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수도자’입니다.
간만에 기척을 드러낸 평가관이 뒤늦게 6일 차 침입자들의 이름을 일러줬다.
‘……수도자.’
아무래도 평가관이 붙여 주는 침입자들의 이름은 실제 명칭이 아니라 행성 주민 관점에서 이해하기 쉽게 의역을 한 결과인 것 같았다.
-수도자들은 강력한 에너지를 사용하며 현재 이 자리의 에너지 총합은…….
새 침입자들에 대한 부연을 하던 평가관이 입을 다문다.
쏴아아아앗!
정우가 이미 번개 같은 속도로 ‘4번’에게 달려들고 있어서였다.
일시적으로 신체에 10억 개의 정수를 쏟은 그는 대담하게 수도자 셋을 지나쳤다.
4번은 정우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간파에 따르면 이 와중에 아직 의도를 정하지 못한 유일한 존재였다. 다섯 중에 가장 유약하다는 거다.
그리고 그 옆의 5번은 4번이 공격할 때 같이 합을 맞출 계획.
‘그러니 4번을 박살 내면 5번도 잠시 의도를 정하지 못하게 되겠지. 그사이 2번을 조심하면서 3번의 퇴각을 막으면…….’
정우는 이 수도자라는 존재들의 전투력 총합이 이쪽보다 우위에 있으리란 걸 직감했다.
평가관이 묻지도 않은 것에 대해 먼저 설명을 해 올 땐 대개 저런 경우였으니까.
그러나 개별적으로 싸울 때는 이야기가 다르지 않겠는가?
정우는 수도자가 혼자 있을 땐 그리 강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정말 강한 존재라면 동료의 눈치 따위를 볼 리가 없으니까.
게다가 간파는 전투 내비게이션이나 다름없었다. 누구부터 쳐야 할지, 누군 좀 더 놔둬도 되는지 전부 알려 줬다.
따라서 정우에게 필요한 건 간파가 제시한 계획을 실행할 능력뿐이었다.
「……!」
정우가 무려 동료 셋을 지나쳐 자신에게 달려들고 있음을 인지한 4번이 빛으로 이루어진 얼굴을 꿈틀댔다.
|4번 수도자가 아군에게 지원을 요청합니다.
‘어림없지.’
정우는 의식 속에서, 4번의 시선이 3번에게 향하는 걸 봤다.
놈들의 머리는 빛으로 이루어져 있고 전후방 구분이 없어서 육안으로 봤다면 결코 알 수 없었을 정보였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3번의 직전 의도는 ‘퇴각 고려.’
‘이게 정말 6일 차 침입자인가? 차라리 관찰자들이 낫겠군.’
정우는 망설임 없이 정수 칼날을 뽑아 4번의 턱에 비스듬히 쑤셔 넣었다.
빌어먹을 ‘충신’으로 인해 절대 부러지지 않는 칼날.
만에 하나 4번이 예상보다 강해서 칼날이 튕겨 나온다면, 즉시 회수해서 보호막으로 돌리겠다는 판단하에 내린 결정이었다.
쓰아아아악!
그러나 4번의 육신은 정우의 칼날에 두부처럼 잘려 나갔다.
보호막이라는 개념이 없는 건지, 아니면 말도 안 되는 대담한 공격에 방어 시도조차 하지 못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푸슙!
사선으로 꿰뚫린 4번의 머리 뒤편으로 공기 빠지는 소리가 나며 백색 가루가 흩뿌려졌고, 정우는 곧바로 칼날을 회수한 뒤 계획을 바꿨다.
본래는 퇴각을 고려하던 3번을 죽이려 했으나, 수도자 전원에게 가시를 뿜는 쪽으로 선회한 것이다.
만에 하나 나머지 넷이 가시를 막아 내지 못한다면 6일 차 침입자들에겐 보호막이란 개념이 없다는 의미.
쫴애애애액!
정확히 네 개의 가시가 수도자 각각을 향해 쏘아져 나갔고, 곧 놈들이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였다.
둘은 회피 기동을, 다른 둘은 에너지로 육각형 방패를 만들어 수비를 시도한 거다.
‘인간하고 완전히 똑같군.’
개체마다 전투력과 성격이 다르다.
파츠츠츳!
방패에 머리를 들이박은 정우의 가시는 흰 균열만을 남기며 사라지고 말았다.
회피 기동을 선택했던 두 녀석도 가시를 간단히 피해 내고서 정우를 노려봤고, 간파가 전해 주는 전황 역시 한층 매서워졌다.
|3번 수도자가 수비 태세를 갖춥니다.
|5번 수도자가 곧 공격을 시작합니다.
|1번 수도자가 곧 공격을 시작합니다.
|2번 수도자가 저격을 시도합니다.
한 합을 무사히 넘기자 기세를 되찾은 듯.
물론 다섯보단 넷을 상대하는 게 수월하겠지만 사실 정우로선 별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머릿수가 더 많더라도 기세가 위축된 상대가 싸우기 더 편했으니까.
여기에 더해, 조금 전 가시를 막아 낸 ‘방패’의 견고함으로 봐선 수도자 각각이 최소 10억 단위의 각성자와 맞먹는 수준…….
중국의 순위권자들과 1 대 4의 전투를 하는 거나 마찬가지란 이야기다.
‘…….’
이 와중에 뺨 안쪽의 고통이 의식을 마구 쑤셔 댔다.
‘제길.’
도저히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다.
정우는 눈을 꽉 감은 채 ‘레이더’를 더 강하게 뿌렸다.
그러자 녀석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아주 세밀하게 느껴졌다.
마침내 ‘2번’이 가슴 부근에서 양손을 포개는 것까지 말이다.
스윽.
간파의 정보에 의하면 저건 저격 동작.
피아아앗……!
포개진 놈의 양손 사이에서 강력한 에너지 응축이 시작되는 순간, 정우가 그쪽으로 정수 칼날을 길게 뻗었다.
절대 부러지지 않는 칼날의 특성을 이용해 놈의 저격을 비껴내려는 의도.
그러자.
퀴기기기깃!
곧이어 놈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고농축 에너지가 칼날의 끄트머리와 부딪혀 측면으로 튕겨 나갔다.
|2번 수도자가 당황합니다. 곧 수비 태세에 들어갈 것입니다.
‘……정말 되는구나.’
정우가 충신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5번과 1번 수도자가 창을 날려 왔을 때, 정우는 이 공격을 겨우 정수 1억 개짜리 칼날로 쳐 냈다.
퀴깃! 퀴잇!
이에 따른 반동이 신체에 고스란히 전해지긴 했지만 나머지 정수 36억 개를 전부 신체 강화와 보호막 유지에 쓰고 있어서 무게 중심이 무너지진 않았다.
다시 말해, 이제 정우는 정수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도 웬만한 공격을 막아 낼 수 있게 된 거다.
「…….」
방금 ‘투창’에 상당한 힘을 실었는지 5번과 1번이 크게 당혹스러워 했다.
이건 굳이 간파를 통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놈들이 몸을 움찔하더니 방패부터 꺼내 들었으니까.
그런데 이 녀석들도 이쪽과 마찬가지로 각자에게 할당된 에너지를 활용하는 존재들 아니던가?
정우의 ‘레이더’가 5번과 1번의 방패 내구도가 아까보다 한참 낮음을 감지했고, 이에 그가 곧장 몸을 날렸다.
파아아앗!
정수 1억 개에 불과했던 칼날의 밀도가 20억 개까지 치솟으며 몸집도 함께 불었다.
그러곤.
쐐애애액!
무서운 기세로 5번과 1번을 동시에 덮쳤다.
검신 길이 15미터.
칼날의 면적이 커지면서 파괴력이 급감했으나, 이 칼은 몇 번을 휘둘러도 날이 상하지 않는다.
콰작!
첫 타에 두 수도자의 방패에 금이 갔고, 곧바로 이어진 두 번째 타격에서 방패가 쪼개져 버렸다.
「……!」
5번과 1번은 물론 이 장면을 목격한 2번과 3번의 기세가 크게 수그러든다.
그리고 여지없이 이어진 정우의 세 번째 타격.
콰득!
끝내 5번의 가슴이 칼날을 받고서 부러졌다.
고각도로 구부러진 놈의 등짝에서 흰 체액이 튀어 올랐고, 타격 순간 가까스로 몸을 비튼 1번은 왼쪽 어깨가 잘려 나간 채 바닥을 뒹굴었다.
“하악……!”
정우는 눈을 뜨지 못한 채 레이더를 통해 상황을 파악했다.
바닥에 흩뿌려진 체액과 여전히 빛을 머금은 살덩이들.
5번은 확실히 죽었고, 1번이 아직 살아 있었다.
그리고 간파가 잽싸게 보고를 해 왔다.
|2번 수도자가 크게 위축됐습니다.
|3번 수도자는 곧 항복 의사를 밝힐 것입니다.
|1번 수도자가 전의를 잃었습니다.
‘항복……? 싸우러 왔으면 끝장을 봐라.’
정우는 바닥을 기고 있는 1번을 쫓아가 놈의 뒤통수에 칼날을 박아 넣었다.
콰직!
빛 덩어리처럼 보이던 수도자의 머리는 의외로 고체였다.
이물질이 들어오자 빛이 꺼지며 산산이 깨졌는데, 마치 형광등을 바닥에 대고 내려친 것 같았다.
이제 남은 건 2번과 3번.
“오늘은 좀 쉽게 가는 날인가?”
간신히 뜬 눈으로 두 수도자의 모습을 확인한 정우가 낮게 웃는다.
그러나 쉬지 않고 몰아치는 고통 때문에 무척 사나운 웃음이었다.
이에 3번 수도자가 정우에게 말을 걸어왔다.
「거래자여, 우리의 결례를 용서해라. 허락한다면, 즉시 돌아가겠다.」
아까도 느꼈다시피 수도자들은 인간과 흡사한 점이 많았다.
각자 전투력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다.
말투도 마찬가지.
“……네놈이군.”
정우는 3번의 음성을 듣고서 이 녀석이 가장 먼저 말을 걸어왔던 그놈임을 깨달았다.
네가 그 거래자인가, 따위의 대사를 읊던.
“미안하지만…… 내가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가까스로 눈꺼풀을 붙잡고 있던 정우가 도로 눈을 감는다.
그러곤 전투가 시작됐을 때와 마찬가지로 시퍼런 빛에 휘감겼다.
“크아아아악!”
애써 무시하고 있던 고통을 더 이상 붙들고 있을 수 없게 된 거다.
「……!」
정우의 입에서 푸른 연기가 새어 나오는 걸 본 두 수도자가 뒷걸음을 친다.
그러곤 뒤늦게 진입로로 머리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파아아앗!
마침 진입로 안으로 푸른 빛줄기가 쏘아져 들어가는 게 보였다.
다름 아닌 정우가 던진 정수 창.
드드드득……!
창을 삼킨 진입로가 수축과 팽창을 반복한다.
진입로가, 수도자들의 퇴로가 닫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