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245
249화. 수문장(2)
“오…….”
차창 밖을 내다보던 아므라가 놀란 표정을 짓자 모두가 그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곧 터질 듯한 기세로 수축과 팽창을 반복 중인 진입로가 보였다.
“저게…… 무슨 일입니까?”
이건 ‘브로커’ 위양거의 질문.
이에 아므라가 그를 바라보며 대답을 하려다 입을 도로 다물었다.
자신이 위양거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점을 깨달은 탓이다.
사실상 이번이 둘의 첫 대화였다.
“…….”
아므라가 상대의 모습을 천천히 훑는다.
위양거, 42세 남성. 억양으로 봐선 한족이 틀림없었으나 지금의 아므라에겐 그리 중요하지 않은 사실이었다.
물론 그가 마약 브로커였다는 점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정영륜이 그랬던 것처럼 ‘약쟁이 새끼’라며 천시하고 싶은 생각까지는 없었고 말이다.
위양거는 이전 세계에서 약을 팔았지만, 이쪽은 지금 세계에서 살인을 밥 먹듯 해 오지 않았는가.
“진입로가 닫히고 있습니다. 싸움이 끝났다는 뜻일 겁니다.”
결국 아므라는 최대한 정중한 말투로 답을 했다.
“……그렇군요.”
위양거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불안한 낯빛을 감추지 못한다.
그를 윽박지르던 정영륜은 죽고 없다. 그럼에도 이토록 불안해하는 이유는 뭘까?
‘사실 이 시점에 가장 불필요한 인물이긴 하지.’
아므라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약재 창고’에서 한참 반대편으로 달려온 지금, 이 그룹에서 위양거의 자리는 없었다.
만약 정우가 돌아와서 또 한 번의 인원 감축을 시도한다면 가장 먼저 사라질 존재는 위양거가 될 거란 이야기다.
마치 짐짝 다루듯 바깥으로 끌어내려지던 왕려성처럼.
* 멈춰.
둘의 대화를 듣던 냄새가 마차를 함께 끌던 말들에게 정지 신호를 보냈고, 빠르게 스쳐 가던 바깥 풍경이 서서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그러곤 마침내 완전히 멈춰 섰다.
하악, 학.
입가에서 거친 숨을 내쉬며 뒤를 돌아보는 냄새.
이를 본 아므라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제 돌아가도 되지 않을…… 까요?”
박정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 그룹의 특성상 좌중에서 서열이 가장 높은 건 냄새였다. 따라서 아므라는 마구(馬具)를 몸에 감은 호랑이에게 존칭을 사용했다.
그러나 냄새는 상대의 말을 듣고도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흰빛을 내며 쪼개지고 있는 진입로를 멀거니 바라볼 뿐.
마지막으로 봤던 정우의 상태를 떠올리고서 머뭇거리는 중인 거였다.
복귀 타이밍을 잘못 잡았다간 이성을 잃은 정우에게 모조리 도륙당할지도 몰랐으니까.
그러나 냄새의 이런 고민은 오래가지 못했다.
「크아아아악!」
고밀도의 정수가 실린 박정우의 비명이 수 킬로를 뚫고 날아들었다.
* * *
비명.
그것도 자신의 비명이 머릿속에 메아리친다.
정우는 산산이 조각 난 ‘수도자’들의 시체 위에 서서 쉼 없이 소리를 질렀다.
전투가 끝나자 모든 신경이 도로 고통으로 집중됐고, 덕분에 지금 정우는 제자리에 서 있는 것조차 어려울 지경이었다.
콱!
끝내 그의 두 무릎이 땅바닥과 맞닿았다.
그러자 단단하게 뭉친 흙덩이 특유의 질감이 느껴졌다.
이 고통의 대가로 얼마간 더 보존할 수 있게 된 지구의 대지.
아직은 그 대지가 박정우를 받치고 있는 것이다.
‘제길.’
이에 정우는 자신의 일과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상기했다.
그리고 때맞춰.
두두두두……!
멀리서부터 말발굽 소리와 마차 바퀴의 마찰음이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냄새를 비롯한 나머지 일행이 이쪽으로 오고 있는 거다.
“흐읍.”
정우는 그리로 고개를 돌리려다 이내 그만두고 눈을 꽉 감았다.
그러곤 전방위로 정수 파동을 뿜어냈다.
마차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주변에 또 다른 적이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쏴아아앗.
아주 옅은 농도의 정수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근방의 모든 것을 인지했다.
대지의 굴곡면부터 땅에 박힌 돌멩이의 개수까지.
물론 인간인 정우가 이 모든 정보를 온전히 습득할 순 없었지만 적어도 근처에 위험요소가 있는지 여부 정도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벌레 하나 없군.’
문자 그대로다.
진입로 출현의 여파인지 일대에 존재하는 생명체라곤 정우 자신과 마차 안의 일행이 전부였다.
“정우 씨……!”
이윽고 멀리서부터 아므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정우는 눈을 감은 그대로 아므라의 얼굴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레이더’를 통해 아므라의 얼굴을 좀 더 면밀히 살폈다고 해야 할 거다.
그러자 아므라의 표정이 급격히 굳는 게 보였다.
“누, 눈이 어떻게 되신 겁니까?”
정우가 눈을 뜨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니 당연한 반응이긴 했다.
게다가 평소의 그답지 않게 얼굴이 잔뜩 구겨져 있지 않은가.
“…….”
정우는 아므라의 물음에 답을 하고 싶었지만 이내 찾아온 고통 때문에 몸을 더 수그릴 수밖에 없었다.
입안에서 또 피비린내가 난다. 잇몸과 치아 사이에서 출혈이 시작되고 있는 거다.
“정우 씨!”
아므라가 기겁을 하며 마차에서 뛰어내린다.
그러다 갑자기 몸을 빳빳하게 세웠다.
“헉, 이건.”
수준급 각성자답게 바로 감지한 것이다. 정우의 레이더를.
“이미 널 보고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 대신 이 대가로 몸이 부식되기 시작했다. 치료법이 없으니 하루라도 빨리 일을 마무리 짓는 게 유일한 방법이겠군.”
“부식…….”
정우의 말에 아므라는 함부로 말을 얹지 못하고 그를 멍하니 보기만 했다.
눈을 감은 정우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건 이미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몸이 부식되고 있다는 건…….
‘……설마 아까 그것이.’
정우가 움직이자 그의 피부가 일렁이며 허공에 스며들던 모습이 떠오른다.
“이, 이제 어쩌면 되겠습니까?”
두려움이 잔뜩 실린 아므라의 음성.
“…….”
정우는 의식 속에서 아므라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봤다.
또한 ‘간파’ 역시 상대가 진심으로 이쪽을 걱정하고 있음을 일러줬다.
|아므라가 당신의 지시를 기다립니다. 의도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냄새가 불안해합니다. 마차와 함께 현장을 이탈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냄새 역시 정우가 경고했던 내용을 여전히 잊지 않았고 말이다.
그러다 여러 보고 사이에서 기묘한 문구가 자꾸 나타났다.
|위양거가 당신의 상태를 면밀히 살핍니다.
|위양거가 당신이 죽기를 바랍니다.
|위양거가 당신을 살릴 방법을 강구합니다.
|위양거가 두려움을 느낍니다.
‘간파’의 보고는 실시간 작동이다.
즉, 지금 위양거의 내면이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바닥으로 하고 있던 정우가 고개를 갸웃하자 아므라가 낌새를 알아차리고 물어 왔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위양거.”
“예?”
“이리로 데려와라. 녀석의 상태가 이상해.”
“……?”
아므라는 정우가 드디어 돌아 버렸다고 생각하면서도 일단 그의 지시대로 위양거를 데려왔다.
그러자 정우가 대번에 위양거를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너, 뭘 하고 있는 거지?”
“헉…….”
그렇지 않아도 마차 안에서 정우를 훔쳐 보며 온갖 경우의 수를 계산하던 그였기에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그것이…….”
“이건 네 녀석이 고민해서 해결될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허튼짓할 생각 따윈 그만둬. 당장 널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예, 명심하겠습니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조아리는 위양거.
그런데 대화가 끝나고 난 뒤에도 한참이나 자리를 뜨지 않았다.
“……뭐지?”
정우의 음성이 아까와 달리 상당히 사납다.
그러나 위양거에게 화가 나서가 아니었다.
잠시 수그러든다 싶던 고통이 다시 커진 탓이 가장 컸고, 두 번째 이유는…….
‘왜 가이드라인이 다음 목적지를 알려 주지 않지? 이제 해 줄 만큼 해 줬다는 건가?’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너무나도 가혹한 대가를 치르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가이드라인의 유효 기간은 아직 한참 남아 있었다.
지구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7일 차 아침까진 가이드라인이 보조를 해 줄 예정이었으니까.
“그게…….”
위양거는 아직도 정우의 앞에 서서 머뭇거리는 중이었고, 그러다 뭔가 중대한 결심을 했는지 눈빛을 바꿨다.
“말씀하신 대로 제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적어도 통증은 조금 완화할 방법이 있습니다.”
“뭐……?”
여전히 눈을 감은 정우였지만 그의 고개는 이제 위양거를 향해 완전히 돌아가 있었다.
“말씀드리기 송구스럽지만, 약을…… 컥!”
위양거의 입에서 ‘약’이란 단어가 나오자마자 정우가 눈을 뜨지도 않은 채로 상대의 멱살을 잽싸게 낚아챘다.
“정신이 나갔군. 나더러 환각 상태에서 싸우라고?”
“그, 그런 것이 아닙니다……!”
위양거는 정우에게 붙들려 두 발이 땅에서 떨어진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투약량을 조절하면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심각한 환각 증세까지는 없다는 점, 그리고 본래 모르핀의 용도가 진통제라는 점 등을 말이다.
“물론 부작용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도 계속 이렇게 통증에 시달리는 것보단 낫겠지요. 아직 눈도 못 뜨고 계시지 않습니까……?”
“……!”
이 말에 정우의 기세가 급격히 수그러들었다.
자신의 처지를 자각한 탓이다.
지금만 해도 분 단위로 자살 충동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여기에 더해 정수가 터질 듯이 들끓기 시작하면 주변인들을 해칠 생각마저 들고 말이다.
어떻게 보면 이미 심각한 환각 상태에 들어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슥.
이윽고 정우가 위양거를 붙들고 있던 손을 풀었다.
그러나 상대의 제안을 받아들여서는 결코 아니었다.
그저 또 한 차례 어마어마한 고통이 찾아온 탓이었을 뿐.
“크아아아악……!”
몸이 절로 구부러지며 입에서 푸른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마, 맙소사.”
위양거가 입을 쩍 벌리며 뒤로 물러났고, 이를 본 아므라가 그를 향해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저걸 보고도 약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소리가 나오나?”
그러자 의외로 위양거가 반론을 펼쳤다.
“의식이 잠기면 정수도 비활성화됩니다. 그러니 저 통증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시도해 볼 가치는 있지요.”
일찍이 1억 개짜리 각성자였던 성소희의 약물 투여를 관장해 오던 그다. 나름의 확신이 있는 상태인 거다.
“미친 새끼.”
끝내 아므라의 입에서 욕설이 나오고 말았다.
반면 그사이 정우의 입장은 조금 바뀌어 있었다.
“네 주장에도 일리가 있지만 그렇다면 싸울 땐 더더욱 사용할 수 없다. 의식이 몽롱한 상태로 침입자들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어.”
그러곤 뒷말을 덧붙였다.
“다만, 의식이 꼭 잠겨야 하는 때가 있다.”
그건 다름 아닌 수면 시간.
벌써 오후 5시가 지났다. 정우로선 당장 오늘 밤에 수면을 어떻게 취할지가 당면한 과제인 것이다.
“하지만 이미 너무 멀리 왔다. 네 녀석이 말한 그 창고는 완전히 반대 방향이잖나.”
지구의 가이드라인마저 작동을 멈춘 지금, 정우로선 동선을 낭비할 여유가 없었다.
어디가 됐든 아직 가 보지 않은 지역으로 나아가야 했다.
그러자 위양거가 손을 들어 남쪽을 가리켰다.
“마약만을 찾는다면 창고로 돌아갈 필요까진 없습니다. 공안들이 압수한 마약이 관청 보관소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 테니까요.”
“…….”
제법 일리 있는 말.
정우는 머리를 깨부수는 듯한 고통 속에서 간신히 눈을 떴다.
다음엔 위양거가 가리킨 남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 가이드라인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권장] 위양거의 안내에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십시오.‘……미친. 정말 날 약쟁이로 만들 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