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246
250화. 수문장(3)
* * *
오후 6시 11분.
누렇던 하늘이 푸르스름하게 젖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우가 탄 마차는 그 하늘 아래를 아주 빠른 속도로 내달리고 있었다.
두두두두……!
지축을 뒤흔드는 듯한 발굽 소리.
이 소리 사이로 정우의 날선 음성이 뻗어 나왔다.
“만약 그곳에 우리가 찾는 물건이 없다면, 네 목숨으로 대가를 치러야 할 거다.”
위협적인 대사와 달리 그의 모습은 전혀 무섭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안쓰럽기까지 했다.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하고 있는 건 물론 온몸에 식은땀이 나서 셔츠가 흠뻑 젖어 있기까지 했으니까.
극도의 고통을 견디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물론입니다.”
위양거가 마지못해 대답을 한다.
그가 목적지로 설정한 곳은 안칭 시.
‘탑’이 있던 곳에서부터 북향으로 약 160킬로를 이동해야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마차가 워낙 빨라서 그새 안칭 시 근처에 다다른 상태였고 말이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거대한 호수가 그 증거였다.
“만에 하나 약을 구하지 못해도…… 식수는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겁니다. 호수들 사이에 위치한 도시거든요.”
위양거가 애써 부연을 했지만 정우는 이에 화답하지 않았다.
화답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으윽…….”
또다시 입에서 푸른 연기를 뿜으며 몸을 구부리고 있었으니까.
화앗.
이질적인 색감을 지닌 연기가 마차 안을 맴돈다.
“…….”
위양거는 그 연기를 보면서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막상 안칭 근처에 이르자 정말 약물로 저 증세를 잡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생긴 것이다.
물론 압수된 마약이 안칭의 공안국 창고에 들어 있으리란 확신은 있었다.
안칭 공안이 일대 마약 사범들을 소탕한 게 불과 2주 전이다.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압수물은 여전히 안칭에 보관되어 있을 게 분명했다.
두두두두……!
다시 말발굽 소리만이 현장을 채운다.
그러다 마부석에 앉아 있던 아므라가 상체를 마차 바깥쪽으로 길게 뺐다.
“저게 안칭입니까?”
이에 위양거가 그를 따라 마차 앞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자 간단한 구성의 검문소와 그 뒤편으로 수수한 느낌의 도시…… 아니, 마을 같은 게 눈에 들어 왔다.
“……그런 것 같습니다.”
위양거의 본래 활동지는 상하이와 창저우 일대.
따라서 그는 안칭에 와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일단 너무 멀었고, 여긴 상하이보다 한참 작은 도시라 마약 업자 입장에선 공안의 눈을 피해 영업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중국의 공안들은 마약 사범과 개인적으로라도 타협하지 않는다.
일찍이 아편 전쟁으로 큰 고난을 겪은 나라이기에 이 나라의 질서를 바로 세운다는 공안 역시 마약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공안에게 마약과 관련한 죄목으로 검거당했다간 십중팔구 사형이었다.
즉, 중국에서 마약 장사를 한다는 건 목숨을 거는 행위라는 거다.
그런 점에서.
‘믿기지 않는군.’
위양거에게 이 상황은 정말이지 비현실적이었다.
안칭 시가 보관 중인 마약의 본래 주인들은 전부 저세상 사람이 됐을 거다.
다시 말해, 지금 위양거는 망자가 된 동종 업자들의 유산을 챙기러 공안국에 방문하는 중인 셈.
“검문소가 비었는데…….”
아므라가 의미심장하게 말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관리’가 되는 도시의 검문소엔 항상 사람이 있어 왔기에 하는 말이었다.
“안칭 공안은 다른 도시에 비해 그 규모가 크지 않습니다. 그래서 큰 작전이 있을 땐 안후이 공안 본부에서 인력을 지원받죠. 그러니 일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목숨을 걸고 장사하던 양반이 아니랄까 봐 위양거가 공안 사정을 빠삭하게 설명했다.
“그럼 유령 도시란 말이군요.”
“그건 또 모르지요. 여긴 사람이 살기에 아주 좋은 곳이니까.”
정착할 곳이 필요한 누군가가 여길 눈여겨보지 않았을 리 없다는 이야기였다.
크릉.
세 필의 말 사이에 끼어 마차를 끌던 냄새가 검문소를 지나치며 낮게 울었다.
녀석도 아무런 제지 없이 도시 진입부를 지나는 게 처음이라 그런 것이다.
그리고 이 묘한 분위기를 정우도 감지하고 있었다.
“…….”
그러나 다른 일행처럼 불안감을 느끼진 않았다.
‘레이더’를 통해서 충분한 정보를 습득 중이었으니까.
“계속 들어가. 아직 별다른 건 없다.”
마차 안쪽의 정우가 눈을 감은 채 이렇게 말하자 아므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두두두두…….
계속되는 이동.
안칭은 지금까지의 도시와 달리 구조가 매우 독특했다.
검문소 근방의 마을을 지나자 난데없이 야트막한 산지가 나타났고, 제대로 된 건물 한 채도 볼 수 없게 됐다.
그러다 다시 포장도로가 등장.
이를 따라 쭉 들어가자 농가와 숨이 다 죽은 밭 따위가 나타나더니 수 킬로를 더 들어가서야 도시라고 할 법한 풍경이 펼쳐졌다.
지리상 도시가 산과 호수에 고루 둘러싸여 있어 주민의 거주 지역 역시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있었던 거다.
그리고 이때에 이르러 정우의 레이더에 뭔가가 감지됐다.
“전방에, 인간.”
정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차를 끌던 냄새와 말들이 속도를 늦췄다.
이히힝……!
뭔가를 목격한 말들이 일제히 길쭉한 울음을 빼냈고, 아므라가 몸을 파랗게 빛내며 정우에게 보고했다.
“제가 먼저 나가서 붙들어 두겠습니다.”
그러곤 승낙이 떨어지기도 전에 마차 바깥으로 쏜살같이 몸을 날렸다.
타아앗!
이에 정우가 위양거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짤막하게 지시했다.
“냄새를 풀어 줘. 당장.”
“예……?”
정우의 눈꺼풀은 굳게 닫혀 있었고, 따라서 위양거는 그의 눈빛을 볼 수가 없었다.
어떤 느낌의 지시였는지 얼른 알아차리기 어려웠다는 거다.
위양거가 일순 멍한 표정을 짓자 이 모든 걸 가만히 지켜보던 마차 관리자 전태천이 붕대에 감긴 팔을 꿈틀대며 말했다.
“먼저 가슴 앞쪽에 있는 버클을 풀고, 그다음엔 허리 좌우측의 고정핀을 해체해야 합니다. 서두르는 게 좋겠습니다.”
허페이에서 의사들에게 난도질을 당해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그다. 그래서 육성으로나마 설명을 해 주는 거였다.
“아, 알겠습니다.”
위양거가 경황없는 얼굴로 마차에서 내려 냄새에게 다가가는 사이, 정우도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러곤 마치 앞이 훤히 보이는 것처럼 의사 2인방과 전태천을 피해 마차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다음엔.
착.
운동화의 고무 밑창으로 땅을 밟았다.
“마차를 지켜. 저쪽은 내가 해결할 테니까.”
정우가 냄새 옆을 지나가며 말한다.
녀석은 여전히 마구에 매여 있었고, 이를 위양거가 서투른 동작으로 해체하는 중이었다.
* 그래!
냄새가 제자리에 서서 정우를 향해 입을 벌렸다.
스윽.
여느 때처럼 냄새의 이마를 쓰다듬는 정우.
그러나 부드러운 몸짓과 달리 그의 손은 갈고리처럼 굽어 있었고, 손등과 팔뚝에도 핏줄이 불거진 상태였다. 충신으로 인한 통증 탓이다.
“…….”
정우는 힘겹게 냄새를 어루만진 뒤 아므라가 뛰어나갔던 방향으로 걸었다.
그는 이제 매순간 정수 파동을 뿜어내 레이더를 유지 중이었고, 따라서 전방 약 100미터에서 정수 간의 마찰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투웅. 퉁. 투웅.
출처가 다른 두 정수가 서로 맞부딪힐 때마다 고유의 진동이 정우의 의식에 전달됐다.
이를 악문 채 정수 칼날을 휘두르는 아므라의 모습이 보인다.
상대를 붙들어 두겠다며 기세 좋게 출전하지 않았던가? 그래서인지 아므라의 표정은 더없이 처참했다.
상대가 자신보다 더 강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거다.
아므라. 내몽고 자치구의 소도시 츠펑 출신의 몽골족.
보유한 정수는 5천만 개.
6일 차 오후 6시가 지나가는 지금, 정수 5천만 개짜리 각성자는 강자도 약자도 아닌 그런 모호한 존재였다.
취아앗! 츠츠츳!
드디어 정수 마찰하는 소리가 제대로 들려오기 시작한다.
정우는 이 소리를 들으면서 조만간 두 존재 간의 균형이 깨질 것임을 예감했다.
합이 거듭될수록 아므라의 반응이 늦어지는 게 여실히 느껴졌으니까.
“그만. 그쯤이면 됐다.”
현장과의 거리는 약 40미터.
그럼에도 둘은 싸우느라 바빠서 정우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래서.
「그만.」
정우가 음성에 정수를 실어 보냈고, 이와 함께 ‘레이더’의 정수 밀도를 수백 배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저 앞 두 사내의 살갗에 한기가 스며들 수 있도록 말이다.
“……!”
그러자 비로소 정우의 의식 속에서 메아리치던 전투음이 멎었다.
“……누구쇼?”
대번에 튀어나오는 퉁명스러운 음성.
정우는 음성의 주인을 살폈다.
나이는 대략 20대 후반으로 추정. 신장 180가량. 근육질의 신체, 상당히 호전적인 인상…….
‘동물적’으로 매우 우월한 존재였다.
지금도 아므라를 압도하고 있지만 서로 정수를 내려놓고 싸운다 해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정수는 7천만 개.’
정우는 사내의 머리맡에 떠오른 숫자마저 의식 속에서 읽어 냈다.
적어도 반경 300미터 내엔 다른 생명체가 없었고, 패스파인더의 정수 표식 역시 정확히 사내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쉽군.’
정우가 입맛을 다신다. 그러다 이내 찾아온 통증에 몸을 구부렸다.
“으윽……!”
이에 사내가 아므라와 정우를 번갈아 보더니 표정을 구겼다.
“대체 뭐야, 이 등신들은.”
그러더니 정우를 향해 팔을 뻗었다.
뭔진 몰라도 얼른 치워 버리는 게 안전하겠다고 판단한 거다.
그러곤.
파아아앗!
놈의 손에서 여지없이 정수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물론 정우가 상시로 감고 있는 보호막에 흠집조차 내지 못했지만 말이다.
파츠츠츳!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사내의 공격이 허공에서 흩어졌고, 정우는 여전히 곧 쓰러져 죽을 것 같은 모습으로 몸을 움찔대고 있었다.
“……?”
난생처음 겪는 일에 어안이 벙벙해진 사내.
그러자 아므라가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서며 사뭇 차분해진 말투로 이야기했다.
“저분이 손만 까딱하면 넌 그대로 소멸한다.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다면 우리가 묻는 말에 대답해.”
“저분? 저 자식이 뭔데?”
사내는 여전히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섣불리 손을 쓰지 못했다.
자신이 방금 본 게 정확히 뭔지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지금까지 만나 온 호적수들은 전부 아므라 같은 타입이었지, 당장 거품을 물며 쓰러질 것 같은 웬 환자와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게다가 이 세계에서 낯선 것은 대개 위험한 법이었다.
츠즉.
사내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뒤로 물러날 기미를 보이자 좌중의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팍!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있던 정우가 번개처럼 튀어 올라서 녀석의 목을 붙든 것이다.
콰드드득!
이 과정에서 사내가 두르고 있던 보호막이 종잇장처럼 찌그러졌고, 곧 녀석의 시야에 눈을 꽉 감고 있는 박정우의 얼굴이 들이닥쳤다.
“근처에 산 자가 하나라도 더 있었다면 네가 이렇게까지 오래 살아 있진 못했을 거다. 이 자리에서 찢어 죽이기 전에 공안국 위치를 말해.”
극한의 고통을 맛보는 중인 정우였기에 발음 하나하나에 어마어마한 악기가 지글거렸다.
“……미, 미친.”
결국 사내의 기세가 꺾이고 말았다.
굳게 닫힌 정우의 눈꺼풀 사이에서마저 시퍼런 연기가 흘러나오는 걸 본 탓이기도 했다.
“네놈들에게 공안국 위치가 무슨 소용이지? 거긴 이제 아무도 없다.”
사내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아마도 공안국 관청이 있는 방향일 터.
그러자 정우가 사내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성난 음성으로 말했다.
“창고란 것도 거기에 같이 있나? 안내해. 당장……!”
또 한 차례 푸른 연기를 뿜는 정우.
오랫동안 참아 온 자살, 파괴 본능이 한계점에 이르고 있었다.
그래서 당장 소량이라도 약을 투약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다.
그리고 마침 정우 일행의 마차가 냄새의 호위를 받으며 현장에 나타났다.
드드드득…….
바퀴의 거친 회전음을 내며 나타난 삼두마차.
이때에 이르러선 사내가 전의를 완전히 잃고 말았다.
“……이봐, 이곳에서 뭘 찾는 거야? 여긴 아무것도 없는 촌동네라고.”
이에 아므라가 도로 바닥에 엎어진 정우를 측은하게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마약을 가지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