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247
251화. 수문장(4)
오후 6시 15분.
안칭의 공안국 건물은 도시의 끄트머리에 붙어 있었다.
마차가 워낙 빨라 벌써 저 멀리 건물이 보이긴 했지만 사내의 안내가 아니었다면 시간을 얼마나 더 허비했을지 모르는 일이다.
사내의 이름은 정동령. 28세 남성.
안칭 태생이지만 실제 거주지는 이곳에서 남으로 약 300킬로 더 내려가야 닿을 수 있는 잉탄이라고 했다.
그곳에서 지낸 지 벌써 6년째.
철도 보수 작업에 참여할 사람을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내려갔다가 아예 자리를 잡아 버린 거다.
그러다 사태 발발 이후 남들과 마찬가지로 도시를 떠나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가 출생지로 돌아온 것.
“그럼 당신도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됐겠군.”
아므라가 이렇게 묻자 정동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갈 데도 없고……. 그래도 내 딴엔 고향이라고 생각해서 온 거요.”
휑한 도시를 둘러 보는 동령의 눈빛이 애처롭다.
아므라는 상대의 처지가 얼추 이해되는 탓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아까부터 묻고 싶던 한 가지를 이야기했다.
“그나저나 억양이 좀 독특한데. 한족은 아닌 것 같고, 어디 쪽이지?”
이제 민족 감정 따위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그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또 다른 소수 민족을 만나니 반갑고 신기한 마음이 든 거다.
그러자 동령이 고개를 갸웃하며 도리어 물었다.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쪽은 티가 너무 많이 나는데.”
“굳이 숨기려 들지 않고 있으니까.”
불과 수 분 전까지만 해도 정수 칼날을 주고받던 사이지만 잠시나마 긴장이 풀리자 소수 민족이라는 공통점이 둘을 아주 가깝게 만들었다.
아므라는 몽골족, 그리고 동령이 밝힌 그의 본질은 위구르족이었다.
“위구르가 어떻게 여기까지 내려와서 살고 있지?”
동령의 정체에 아므라가 크게 놀란다.
위구르 자치구는 이곳에서 수천 킬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 조부 시절의 일이라 잘 모르오. 난 그냥 날 때부터 이곳에 있었지.”
“……그렇군.”
아므라는 동령의 가문이 이곳 안칭에서 결코 평탄하게 살지 못했으리란 걸 직감했다.
무려 두 개 세대를 거친 뒤임에도 정동령의 피부가 검지 않은가.
저건 본래 피부가 저런 게 아니라 햇볕에 그을린 결과물이었다.
중국에서의 현장 기술직, 특히 이런 변두리 도시에서의 인부라는 건 상당히 낮은 계급에 속했다.
“그럼 여긴 부모를 찾아온 건가.”
“그건 아니오.”
“……?”
아므라가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짓자 동령이 시큰둥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어머니는 이상한 암에 걸려 죽었고, 아버지는 평생 한 번도 본 적이 없소. 아까도 말했지만 딱히 갈 데가 없어서 온 거요.”
이상한 암…….
아버지가 없었다면 동령 자신이 어머니의 유일한 보호자였을 텐데,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했을 정도의 병을 ‘이상한 암’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는 건 여러 가지를 의미했다.
일단 제대로 된 병원의 멀쩡한 의사에게 어머니를 보인 적이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돈이 없어서일 수도, 아니면 너무 무식해서 당시엔 병원에 데려갈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암’일까. 다른 병일 수도 있지 않은가.
‘……아마도 동네 사람들이 암일 거라고 이야기했겠지.’
내몽고 자치구의 소도시에서 평생 살아온 아므라는 동령의 어머니가 병환을 앓던 당시를 마치 자신의 기억인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 볼 수 있었다.
그 역시 지난 일상에서 비슷한 경우를 종종 봐 왔기 때문이다.
이건 같은 소수 민족, 그것도 소도시에서 가난하게 살아온 자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씁쓸하군.’
아므라는 오랜만에 슬픈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종래엔 정우에게 썰려 나갈 정동령이 안쓰러워서는 결코 아니었다.
그보다는 일면식 없는 그의 어머니, ‘이상한 암’에 시달리며 천천히 죽어 갔을 어느 여자의 이야기가 아므라를 슬프게 했다.
“저긴가? 공안국 건물이라는 게.”
한동안 둘의 대화를 잠자코 듣던 정우가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이에 정동령이 본능적으로 움찔하더니 그의 손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5층으로 이루어진 흰 건물이 시야에 들어 왔다.
“……맞소.”
위축된 음성. 이 자리에서 동령이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게 바로 정우였다.
“그럼 내리지. 너희 셋도 날 따라와라.”
정우가 검지와 중지, 약지를 펼쳐 세 사람을 동시에 지목했다.
다름 아닌 ‘브로커’ 위양거와 의사 2인.
“예…….”
의사들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 일어났고, 위양거는 이미 마차 바깥으로 발을 내미는 중이었다.
“그럼 저는……?”
냄새마저 정우를 따라나서는 걸 본 아므라가 조금 당황해하며 이렇게 물었다.
“넌 마차를 지켜. 바깥엔 아직 아무도 없으니까.”
정우가 굳게 잠긴 눈으로 아므라를 바라본다.
그러곤 예고도 없이 정동령을 향해 손을 뻗었다.
푸악!
짧게 뻗어 나간 정수 파동.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아므라는 잠시 동안 자기가 뭘 보고 있는 건지 인지하지 못했다.
일찌감치 부모를 여의고 잉탄에서 철도 보수 작업을 하던 28세 사내, 정동령의 머리가 사라져 있었다.
핏, 피싯!
가는 핏줄기가 목의 절단면에서부터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마치 물풍선에 자그마한 구멍을 낸 것만 같다.
“어…….”
아직 상대의 사연을 듣고 감정 정리가 되지 않은 아므라였기에 가슴이 쿵 내려앉는 듯했다.
마음이 아프다기보다는 억울함에 가까운 기분.
정말 녀석이 죽은 건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곧 튀어 오른 푸른 구체가 대신해 줬다.
파팟.
그리고 이를 본 정우가 나지막한 음성으로 이야기했다.
“저건 네가 써라. 필요할 것 같더군.”
“…….”
정수를 이용해 레이더를 전개하는 정우가 아므라의 표정이 어떤지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정수 구체를 바닥에 놔둔 채 공안국 건물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안칭 공안국 1층에 들어선 정우는 한 가지 중대한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어이가 없을 정도군.’
정수 레이더로 감지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 거다.
그건 바로 글자였다.
정확히는 종이 따위에 인쇄된 뒤 코팅이 된 모든 것.
음각 또는 양각됐거나 하다못해 손글씨라서 펜이 눌린 자리라도 존재한다면 어느 정도 읽어 낼 수 있었지만 그게 아닌 경우엔 인쇄물과 백지를 구별하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다.
즉, 마감이 잘된 인쇄물을 읽으려면 직접 눈을 떠서 살펴야 한다는 거다.
덕분에 지금 그는 정말이지 맹인이나 다름없었다.
공안국 로비의 안내물 대부분이 말끔히 코팅된 상태였으니까.
“압수품 창고 위치를 찾아.”
정우가 여느 때처럼 눈을 감은 채 이렇게 지시하자 그의 곁에 서 있던 위양거가 고개를 갸웃했다.
“지하 1층에 있다고 합니다.”
굳이 찾아볼 것도 없이 오륙 미터 앞의 아크릴판에 안내문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지하 1층]|기록실
|압수품 보관 창고
“…….”
방금 지시는 확실히 이상했다.
의사 2인방도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소리 없이 속닥거렸다.
일행의 가장 뒤편에서 따라오던 냄새도 수염을 실룩거렸고 말이다.
“내려가지.”
정우는 묘한 분위기를 감지했으면서도 별말 없이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
탁, 타악.
지하로 향하는 계단은 원통형 통로를 빙빙 돌아 내려가는 구조였고, 따라서 발소리가 메아리칠 수밖에 없었다.
정우가 운동화를 신고 있는 덕분에 소리가 아주 요란스럽진 않았지만 만에 하나 밑쪽에 누군가 있다면 분명 듣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실제로.
파아아앗!
정우 일행이 계단을 반 정도 내려갔을 때쯤 정수 파동이 덮쳐 왔다.
누군가 밑에서 대기 중이었던 거다.
물론 레이더를 상시 작동 중이던 정우는 지상에 있을 때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츠츠츠츳!
일행을 감싸며 전개된 정우의 보호막과 습격자의 정수 파동이 마찰하면서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제법 강력한 공격이어서 계단을 포함한 하향 통로가 송두리째 소멸했고, 정우와 냄새, 위양거와 의사 2인방 모두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했다.
“어억!”
생존 능력이 없는 의사들이 무력한 비명을 지른다.
반면 위양거는 어떻게든 몸의 손상을 최소화하려고 이를 악물며 양다리를 접었다.
그러나 이내 정우가 정수 장벽을 빚어 올려 일행을 받쳤기에 그럴 필요까진 없었다.
‘세 놈이나 되는군.’
정우는 일행이 바닥에 무사히 착지한 걸 확인한 뒤 기습이 들어 왔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일부러 불을 꺼 놨는지 사위가 칠흑같이 어두웠지만 정우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젠 어차피 눈을 잘 쓰지 않을뿐더러 그가 사물을 인지하는 데엔 빛이 필요 없었으니까.
슥.
정우가 조용히 칼날을 뽑아 우측면으로 들어 올리자 거의 동시에 흰 불꽃이 튀었다.
츠츳!
습격자 중 하나가 기척을 극도로 제한한 채 정수 칼날을 휘둘러 오고 있었던 거다.
“억……?”
정우가 눈을 감은 상태에서 공격을 막아 내자 상대가 크게 당황했다.
“너희는 또 뭐지? 공안은 아닌데.”
정우는 불과 십여 센티 앞에서 호흡 중인 상대를 바라봤다.
그러곤 번개 같은 동작으로 놈의 오른쪽 어깨와 허벅지를 한 번씩 쑤신 뒤 바닥으로 밀어냈다.
콱, 콰앗!
그러자 이 기척을 느낀 나머지 둘이 어둠 속에서 두 번째 공격을 감행했다.
“뒈져……!”
정우를 향해 일제히 정수 창을 쏘아 낸 거다.
아까처럼 파동을 다시 뿜어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기본적인 전투 방법을 안다는 의미였으나, 애초에 화력이 너무 부족했다.
치칫!
놈들의 창은 정우의 보호막을 살짝 긁은 뒤 산산이 조각났고, 곧이어 시퍼런 가시들이 화답으로 쏘아져 나갔다.
쫴애애애액!
어둠을 가로지르는 수십 개의 가시.
정우는 이 녀석들이 한동안 진술을 할 수 있도록 팔과 다리 정도만 훼손했다.
왜냐면 건너편 방에 온갖 물품이 잘 포장된 채로 쌓여 있는 걸 레이더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 앞에 접이식 수레가 놓여 있는 걸로 봤을 때 이자들의 방문 목적은 물품 강탈.
“저렇게나 많은 물건을 챙겨서 어디로 갈 예정이었지? 당장 대답해라.”
세 습격자의 정수량은 각각 6천만 개 정도였다.
합이 1억 8천만이니, 조금 전 죽은 정동령과 조우했다고 해도 이 녀석들이 무조건 이겼을 거다.
다시 말해서 이 정도 힘을 지녔다면 물건이 쌓인 공안국 건물에 자리를 잡는 게 낫지 굳이 다른 곳으로 짐을 끌고 갈 필요가 없을 거라는 이야기다.
근처의 건물로 짐을 옮기려던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보기엔 물품의 포장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국제 화물 수준으로 아주 단단하게 포장되어 있었으니까. 장거리 이동 내지는 거친 운반을 대비하고 있던 게 분명했다.
“다른 도시에 공동체가 있나? 아무래도 입부터 줄여야 말을 할 것 같군.”
극한의 통증에 시달리는 정우에게 이전과 같은 인내심은 없었다.
푸아아악!
이내 세 사람 중 하나가 어둠 속에서 사라졌고, 남은 둘은 이 사실을 즉각 알 수 있었다.
파팟.
푸른 정수 구체는 주변이 어두울수록 더 잘 보였으니까.
“……기다려. 너, 너무 급하잖아. 생각할 시간을…….”
“며칠 뒤면 이 세상이 사라질지 모르는데 너무 태평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정우가 눈을 파랗게 태우며 칼날을 뽑아 들자 마침내 한 사내가 양손을 들며 소리쳤다.
“기차!”
“뭐?”
“오늘 밤, 난창에 기차가 도착한댔어. 그래서 푯값을 구하고 있던 거다. 우리도 누가 오니까 대응했을 뿐 애초에 싸우러 온 게 아니다.”
“무슨 개소리야, 기차라니.”
정우가 미간을 구기자 이를 조용히 듣고 있던 위양거가 조심스레 말을 보탰다.
“난창이면…… 실제로 철도가 지나가는 도시입니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300킬로 정도 떨어져 있죠. 저 말이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간파’ 역시 상대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님을 알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