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249
253화. 달리는 성역(2)
정우 일행의 마차와 저편의 기차는 같은 방향으로 비스듬히 달리고 있었기에 굳이 방향을 틀지 않아도 서로 점점 가까워졌다.
쿠구구구구…….
마침내 기차 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릴 정도가 됐고, 정우는 기차를 감싼 보호막의 밀도를 좀 더 명확히 인지할 수 있었다.
‘머리 쪽의 보호막이 훨씬 두껍군.’
당연한 일일 거다.
습격자든 길을 틀어막은 장애물이든, 외부 요소와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게 바로 기차 머리일 테니까. 게다가 엔진이 있는 곳이기도 하지 않은가.
“…….”
정우는 눈을 감은 채 레이더가 전해 주는 정보들을 면밀히 검토했다.
자신이 사용하는 초월적 능력 중 하나인 ‘간파’의 특성을 잊지 않고 있었으니까.
[간파]행성 내에서 마주치는 모든 대상의 의도를 읽어 냅니다.
*가격: 이로 인해 높은 확률로 나쁜 결과를 초래합니다.
*비고: 그러나 대다수의 상황에서 최악의 선택을 피할 수 있게 됩니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 이 상황은 안칭에서 조우한 3인조를 간파한 결과물이다.
즉, 높은 확률로 나쁜 경우의 수일 거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도 아닐 테지.’
현재 정우의 정수 총량은 무려 38억 9천만 개.
어느덧 40억 개에 달하는 정수를 모았고, 충신의 페널티를 한시적 상쇄할 방법마저 찾은 그에게 최악…… 아니, 차악에 해당하는 상황은 무엇일까?
여전히 전력이 밝혀지지 않은 1위와의 조우? 아니면…….
‘이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건가.’
정우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로 뒤편을 살폈다.
‘레이더’를 통해 침울한 분위기의 마차 내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아므라, 전태천, 위양거, 의사 2인, 그리고 잠시 휴식 중인 냄새까지.
장내 그 누구도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구성원이 줄어들고 있는 데다가, 기존에도 광기의 극을 달리던 박정우가 이젠 마약까지 투여하게 되지 않았는가.
온갖 악취가 가득한 마차의 환경은 덤이다.
망자가 된 일행들이 쏟아붓고 간 온갖 체액과 마차 틈새 사이에 눌어붙은 살점이 썩기 시작하면서 지독한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이쯤이면 시체로 빚은 마차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두두두두……!
쿠구구구구……!
드디어 마차와 기차 소리가 엇비슷하게 겹쳐 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정우는 마음만 먹으면 기차를 공격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파악한 바에 따르면 그럴 능력도 충분히 됐다.
마차를 3분할해서 덮고 있는 보호막의 밀도가 아주 높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저쪽의 경비원들이 수준급 각성자인 건 분명하지만 중국의 1위가 섞여 있는 건 결코 아니라는 게 정우의 결론이었다.
‘일단 지금 놈이 기차를 보호하고 있진 않아. 안에서 쉬고 있거나 애초에 이 기차가 녀석의 소유가 아니거나, 둘 중 하나일 거다.’
간파의 툴팁에 따르면 낮은 확률로 썩 나쁘지 않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높은 확률로 나쁜 결과가 따를 뿐이지, 매번 악수만 두게 되는 건 아니라는 거다.
어쩌면 지금 이 상황이 정수 수억 개가 넝쿨째 굴러들어온 호재일지도 모른다는 거.
하지만 정우는 운 따위에 기대는 타입이 아니었다.
‘항상 최악을 상정해야 해. 섣불리 행동했다간 모든 걸 망칠 수도 있다.’
정우는 그새 한층 더 가까워진 기차를 노려봤다.
여기에서 조금만 더 가까이 가면 기차 쪽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반응해 올 터였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전투 개시일 테고.
“아므라.”
“……예!”
“방향을 왼편으로 조금 틀고 전속력으로 달려라. 일단 도시로 진입해서 기차를 기다려야겠다.”
“……?”
정우의 지시에 아므라가 기차 쪽을 흘깃 보더니 이내 명을 받들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나 굳이 고삐를 쥘 필요조차 없었다. 이 대화를 들은 세 필의 말이 알아서 머리를 돌렸으니까.
두두두두……!
이윽고 마차가 저 멀리 거뭇한 그림자처럼 보이는 난창 시를 향해 내달렸다.
말들이 마치 푸른 불꽃에 감싸인 것처럼 보일 정도라, 뭔가가 자신들을 추격 중이라는 걸 기차 측도 알게 됐을 거다.
“괜찮으시다면 굳이 도시로 진입하는 이유를 여쭤도 되겠습니까?”
한동안 말이 없던 전태천이 정우를 향해 질문을 던져왔다.
허페이에서 겪은 ‘항상성 사건’ 이전엔 결코 없던 일이었다.
전태천이 정우의 의도를 직접 물어보는 일 말이다.
아마도 사선을 거치면서 내적으로 변화가 생긴 것이리라.
정우는 그런 상대의 눈을 빤히 바라보면서 천천히 대답했다.
“지금 바로 접촉하면 보나 마나 즉각 교전하게 되겠지. 그래서 그전에 기차가 본래 어떤 기능을 해 왔는지 확인하고 싶은 거다.”
지금까지는 전단지의 내용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전개됐다.
예정된 시간에 맞춰 기차가 난창으로 접근 중이고, 탑승객들의 생존을 보장할 만한 능력도 갖춘 걸로 보인다.
그렇다면 기차가 도시에 정차한 뒤엔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정말로 인재나 물자를 받고 새 탑승객을 받아들이는가?
만에 하나 그런 거라면 그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직접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대체 어떻게 운영을 하기에 6일 차가 저물어 가는 지금까지 기차가 계속 달릴 수 있냐는 거다.
전례 없이 독특한 샘플.
그래서 정우는 자꾸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이드라인이 또 작동하지 않는군.’
지구가 조언을 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 역시 불길한 징조.
간파의 영향력이 미친 상황에 대해선 간섭을 할 수 없는 걸까?
지구의 서열이 간파를 팔았던 두 존재보다 밑일 테니 말이다.
‘……알 수 없는 일이지.’
모든 게 미지투성이.
정우는 자신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요소인 정수 보유량을 재차 점검하면서 그새 저만치 가까워진 도시, 난창을 바라봤다.
드문드문 불이 들어온 건물이 있었으나 사태가 처음 발생했을 당시부터 켜져 있던 불이었다.
정우가 레이더로 살핀 바에 따르면 건물 안에 사람의 흔적이라곤 전혀 없었으니까.
다시 말해서 지난 6일 내내 도시의 전원 공급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유를 곧 알 수 있었다.
대략 2킬로에 이르는 널찍한 공터.
도시 한복판에 진입로가 폐쇄된 흔적이 있었다.
누군가 일찌감치 이곳에서 ‘구원’을 시작했던 거다.
“…….”
이를 본 정우가 이젠 아련한 느낌의 행운동을 떠올리는 순간, 전방에 지극히 인위적인 불빛들이 나타났다.
“엇.”
마부석의 아므라도 이를 봤는지 정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 사람들입니다.”
“탑승 희망자들이겠군.”
인간 수십 명이 각자 손전등이나 램프 등을 들고서 도시를 가로지른 철로를 따라 걷고 있었다.
혹시나 기차가 그냥 지나가 버릴까 봐 불빛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알리고 있는 거다.
“일반인들도 제법 있는 것 같은데…… 정말 목숨을 걸었군요.”
전태천이 착잡한 표정으로 불빛들을 바라본다.
저렇게 위치를 훤히 드러내고 있다가 기습이라도 당한다면 여태 버텨 온 모든 게 물거품이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런 위험이라도 감수해야 할 만큼 이전의 생활이 만만치 않았으니 저러고 있는 걸 거다.
단순히 먹고 자는 게 문제가 아니라 매시간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세상이니까. 너무 지친 탓이다.
“역으로 바로 가겠습니다.”
아므라는 정우가 별다른 지시를 내리지 않는 걸 보고서 곧장 기차역으로 마차를 몰았다.
파랗게 불타는 마차가 철로를 옆에 끼고 달리자 탑승 희망자들이 뒤로 물러서며 길을 터 줬다.
그러면서도 반대 방향으로 도망가거나 공격을 해 오진 않았다.
마차를 보내고 나서 다시 기차역 쪽으로 발을 내디딜 뿐.
“제길……. 꿈을 꾸는 건 아니겠지.”
이 장면을 본 위양거는 거북한 표정을 지었다.
마차가 워낙 빨라서 방금 그자들은 그사이 자그마한 점이 되어 있었고, 대신 철로의 좌우측으로 지어진 기차역이 큼지막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곳에 이르러선 다시 ‘상식적’인 광경을 보게 됐다.
두껍게 둘러진 보호막, 당장이라도 공격할 듯 길게 뻗어 올라온 정수 칼날.
살기와 경계심 가득한 눈빛들.
누가 봐도 수준급 각성자인 자들이 기차역에 모여 있었던 것이다.
물론 대부분 혼자가 아니었다.
하나같이 민간인으로 추정되는 짐짝들을 달고 있었다.
기차에 오르기 위해 어디선가 구해 온 ‘인적 자원’일 수도 있고, 본래 해당 그룹의 보디가드였을 수도 있다.
어쨌든 중요한 건.
‘……기발하다.’
정우는 기차역을 둘러 보며 감탄했다.
저 기차의 주인이 누군지는 몰라도, 직접 발품을 팔지 않고도 모든 걸 얻어 내는 방법을 고안한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지금 이 자리에 모인 건 탑승 희망자들이 아니었다.
탑승 희망은 어디까지나 저들의 입장일 뿐이고, 기차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저 정차역에 대량의 정수와 기술자, 생필품이 쌓여 있는 것일 뿐인 거다.
‘이건 높은 확률로 함정이다. 적어도 각성자들은 살아나갈 수 없을 거야.’
이 와중에 몇몇은 정우 일행의 마차를 아주 날카로운 눈으로 살펴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공통점은 혼자라는 거.
굳이 간파의 보고를 볼 필요도 없었다.
정우는 놈들과 시선을 맞대자마자 직감했다.
‘강도군.’
기차의 전력을 확인하고서 정수 내지는 생필품을 빼앗기 위해 온 자들.
지금이야 정체를 숨기기 위해 얌전히 있지만 곧 도착할 기차가 허점을 보인다면 즉시 정수를 뿌려 댈 놈들이었다.
게다가 실제로 몇 놈은 수준급 각성자라서 정우가 이곳에 오지만 않았다면 충분히 여길 장악할 수 있었을 터.
그러나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여태 기차가 지나온 모든 역이 이런 상황이었을 텐데.’
심지어 그게 오늘뿐인가?
여러 도시에 전단지가 뿌려져 있었다는 걸로 미뤄 보아 기차가 달리기 시작한 건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었다.
최소 삼사일, 어쩌면 첫날부터 이 짓을 해 왔는지도.
쿠구구구구구…….
이윽고 멀리서부터 기차 소리가 들려 왔다.
역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서로를 경계하며 저마다 준비를 한다.
누구는 정수를 잔뜩 활성화했고, 또 누구는 바닥에 내려놨던 배낭 따위를 어깨에 멨다.
정우가 파악한 ‘강도’는 최소 세 명이었기에 조만간 누군가 유혈 사태를 불러일으킬 게 뻔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기차에서 내린 녀석들이 강도를 정리하나? 그럼 기술자들이 같이 썰려 나가는 걸 막기 어려울 텐데.’
정우는 현장에서 한 발 물러선 채 기차가 철로를 따라 미끄러지듯 들어오는 걸 지켜봤다.
차체는 여전히 견고한 보호막에 둘러싸여 있었으나 역에 모인 모든 각성자가 한꺼번에 덤벼든다면 보호막이 깨질 여지가 있었다.
다시 말해서 기차의 문제 해결 능력이 아주 압도적이진 않다는 거다.
적어도 힘 싸움에선 말이다.
취이이이잇!
마침내 기차가 긴 숨을 뱉으며 기차역 안으로 진입했다.
적어도 십여 초 후면 뭔가 일이 벌어질 것이다.
정우는 마차와 말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보호막을 전개했고, 이를 알아챈 아므라가 급히 표정을 굳히며 눈을 파랗게 밝혔다.
그리고 잠시 뒤 정수 실린 음성이 기차에서부터 뿜어져 나왔다.
「싸우러 오신 분들은 5호차로 이동하십시오! 가장 강한 분은 이 기차를 통째로 가질 수 있습니다. 다시 안내합니다. 일단 5호차로 이동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