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250
254화. 달리는 성역(3)
“저게 무슨 소리야?”
“5호 차로 이동하라고……?”
“싸울 생각이 없으면 그냥 여기 남아도 된다는 거죠?”
싸우러 온 자들은 5호 차로 이동하라는 안내에 탑승 희망자들이 불안한 기색을 띠었다.
안내를 들은 각 탑승자 그룹의 ‘보디가드’들이 눈을 번뜩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민간인을 데리고 수백 킬로미터나 되는 긴 거리를 이동해 온 자들이 아닌가?
그런 만큼 다들 본인의 전투력이 상당한 수준이라 자부했고, 따라서 ‘최강자에게 기차를 통째로 주겠다.’ 라는 도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모든 보디가드가 기차의 도발에 반응을 한 건 아니었다.
보디가드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첫째는 자신이 데리고 있는 민간인 내지는 기술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경우.
이를테면 혈연이라든지, 친구나 부부 사이라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둘째는 지극히 비즈니스적인 관계.
보디가드 자신이 탑승 희망자라서 ‘탑승권’으로 인력을 준비한 경우가 여기에 속했다.
그리고 곧장 5호 차로 이동하기 시작한 건 대개 ‘둘째’에 속하는 자들이었다.
이들은 자생 능력이 없는 일행을 승강장에 버려둔 채 자신의 야망을 좇아 움직였다.
일부 ‘첫째’들도 기차를 두고 벌어질 대결에 흥미를 보였지만 이내 구성원들의 제지를 받았다.
“무슨 생각하는 거야? 아니지?”
“뭔가 이상해. 차라리 그냥 얌전히 올라타는 게 낫겠어.”
“당신이 자리를 비우면 그사이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부모 또는 자식, 배우자 내지는 오랜 친구.
이들이 가진 ‘직함’은 수억 개의 정수보다도 더한 강제력이 있었고, 이에 대다수의 보디가드가 5호 차에서 눈을 떼어 냈다.
어찌 보면 가족들 덕분에 최악의 상황을 면한 셈이다.
하필 같은 승강장에 38억 9천만 개짜리 구원자가 있었으니까 말이다.
박정우, 대한민국 출신의 유력한 행성 구원자.
정우의 시선 역시 5호 차에 닿아 있었다. 그러나 일행 중 누구도 감히 그의 행보에 간섭하려 들지 않았다.
“뭔가…… 굉장하군요.”
아므라만이 현 사태에 대한 감상을 짤막하게 밝혀 왔을 뿐이다.
그는 이미 5호 차를 향해 걷고 있는 예닐곱의 각성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차 없이 일행을 버린 보디가드와 애초에 강도질을 하러 온 자들이었다.
“5호 차로 가 보실 겁니까?”
아므라가 이렇게 묻자, 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 봐야지. 이 녀석들의 말과 실제가 일치하지 않거든. 그 이유가 뭔지 알아봐야겠다.”
“일치하지 않다니요……?”
“…….”
그러나 정우는 아므라의 물음에 답을 주는 대신, 막 기차에서 내린 한 사내를 바라봤다.
나이는 40대 초반으로 추정, 온화해 보이는 인상.
보유한 정수는 3천만 개로, 기차의 전력에 비하면 수준 이하였다.
‘뭐지?’
계속되는 의외의 상황이 정우를 얌전히 기다리게 만든다.
현재 이곳, 그러니까 3호 차 부근엔 가족들을 데리고 있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보디가드와 민간인이 대부분이었다.
‘강도’들은 5호 차로 떠났고, 호전적인 성향의 보디가드들도 일찍이 자리를 떴다.
즉, 이곳을 관리하는 데엔 그리 많은 정수가 필요하지 않을 거라는 거다.
기차 측도 이를 예상하고서 3천만 개짜리 각성자를 실무자로 내보낸 것일 터.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3천만 개는 너무 적어. 당장 이 자리만 해도 저놈보다 강한 녀석이 넷이나 된다.’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사내를 노려보고 있는 보디가드들의 정수 보유량은 평균 6천만 개 수준이었다.
즉, 서로 정수량을 알지 못하기에 이 상황이 유지되고 있는 것일 뿐인 상황.
그러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3호 차 일대의 사람들을 하나씩 훑어보던 사내가 정우를 보더니 뒤로 넘어진 거다.
콰앙!
문자 그대로 정말 넘어졌다. 녀석의 등허리와 뒤통수가 차례대로 기차 하단부에 들이 박혔으니까.
“뭣…….”
정우는 사내가 몸의 중심을 잃으면서도 이쪽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걸 봤다.
마차를 보고서 놀란 걸까? 아니다. 분명 놈은…….
‘날 봤어. 그리고 마차로 시선을 옮길 새도 없이 넘어졌다.’
정우는 숨을 깊게 들이켰다.
‘……구원자군.’
빠르게 결론이 났고 아니나 다를까, 사내가 허리춤에서 뭔가를 뽑아 들었다.
홱.
무전기였다.
3호 차 앞에 정수 수십억 개짜리 괴물이 와 있노라고 보고하려는 거다.
이에 정우는 짧은 대사와 함께 눈을 감았다.
“그만.”
쫴애애애액!
정우의 보호막에서부터 가느다란 가시가 쏘아져 나갔고, 눈 깜짝할 사이에 사내의 손에 쥐어져 있던 무전기를 박살 냈다.
콰작!
“헉!”
사내는 자신의 손가락 사이로 시퍼런 정수 가시가 들어와 있는 걸 보고서 기겁을 했다.
그리고 정우는 그사이 ‘레이더’를 통해 사내가 보고를 하려던 대상이 누구였는지 알아내고 있었다.
간파에 따르면 담당자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가 ‘담당자’를 찾아 도주할 것입니다.
‘3호 차 전담 해결사가 따로 있나 보군.’
레이더를 전개하던 정우는 어렵지 않게 담당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3호 차는 2개의 화물칸과 4개의 객실칸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이중 화물칸 하나에 수준급 각성자가 들어가 있었다.
다름 아닌 기차를 3분할해서 보호하던 돔형 보호막 중 하나의 주인.
지금도 보호막 유지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무전이 오기 전까진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으리라.
‘2억 개 정도인가.’
상대와의 거리가 제법 되고 기차를 감싼 보호막 때문에 감지 방해가 돼서 정수량을 정확히 읽어 들일 순 없었다.
어쨌든 이쪽에 큰 위협이 될 정도의 존재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정우는 놈이 무전을 받고 이리로 달려오길 원치 않았다.
“왜 그런 짓을 하지? 담당자가 자리를 비우면 3호 차 전체가 무방비 상태에 놓이잖나. 설마 놈이 와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정우가 가시를 회수하며 이렇게 말하자, 그제야 정신이 든 사내가 제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상대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은 거다.
“마, 맙소사 어떻게…….”
사내가 다시 놀란다. 아무리 봐도 믿기지 않는 정수량이었으니까.
38억 9천만 개. 3호 차 담당은 물론이고, 이 기차의 모두가 덤벼도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는 존재가 눈앞에 있었다.
“……뭘 원하십니까?”
상대가 아직 자신을 해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많은 가능성을 엿본 사내가 손을 펼친다.
그러자 무전기 잔해가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5호 차로 가면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지? 너희 전력으론 아까 그놈들을 전부 감당할 수 없을 텐데.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궁금하군.”
정우가 이야기했던 ‘말과 실제가 일치하지 않는다.’ 라는 게 바로 이거였다.
레이더로 파악한 기차의 전력은 대략 정수 10억 개.
분명 대단한 힘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여러 각성자에게 나뉜 힘의 합일 뿐. 심지어 10억 개 중 대부분이 기차의 보호막 유지를 위해 사용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조금 전 5호 차로 떠난 자들이 작정하고 싸우기로 한다면 기차로선 이를 통제할 수 없을 거라는 거다.
전력을 다하면 제압을 할 수는 있겠으나, 그 대가로 입게 될 손실이 상당할 터.
이에 사내가 잠시 망설이더니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일반적으론…… 일단 5호 차로 가게 되면 싸울 수 없게 됩니다.”
“뭐?”
“그곳에 아까 보신 것보다 더 많은 ‘도전자’가 타고 있으니까요.”
“…….”
사내의 말에 정우가 레이더의 밀도를 수십 배 가까이 끌어 올렸다.
그러자 그의 모든 감각이 예민해졌다.
심지어 약물로 가려 놨던 통증까지 말이다.
“크윽……!”
잠시 잊고 있던 ‘충신’의 고통이 온몸을 옥좼고, 동시에 아주 육중한 정수 덩어리가 그의 의식 속에서 드러났다.
‘맙소사.’
정말 사내의 말대로 기차 끄트머리에 삼십 명 가까이 되는 각성자가 모여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객실 하나에.
게다가 기차를 관리하는 자들의 정수 총량보다 마지막 칸에 모인 ‘도전자’들의 정수 총합이 더 컸다.
기차 측으로선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붙인 채 달리고 있는 셈.
“정신이 나갔군.”
정우가 헛웃음을 짓자 사내가 동의했다.
“확실히 그렇습니다만, 이렇게 하지 않고선 운행을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매번 잔챙이만 들러붙진 않았으니까요.”
“그럼 그 ‘도전’이라는 건 대체 언제 하는 거지? 저자들이 넋 놓고 계속 기다려 주진 않을 텐데.”
“앞으로 정차할 세 번째 도시에 기차의 주인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누가 됐든 그분을 꺾는 순간 기차를 가지게 됩니다. 저희를 포함한 운행에 필요한 인프라 전부를요.”
사내가 결의에 찬 표정을 지으며 말했으나, 정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남자가 거짓말을 합니다.
간파에 따르면 이건 거짓이었으니까.
그러나 방금 대사의 정확히 어느 부분이 거짓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적어도 기차의 주인이 따로 있고, 조만간 올라탈 거라는 건 사실일 거다. 그렇지 않고선 5호 차 문제를 해소할 수 없을 테니까.’
그렇다는 건.
“놈이 패배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만에 하나 녀석이 정말 지게 되면, 그때는 어쩔 거지?”
정우가 눈을 파랗게 태우며 묻자 사내가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남자가 당황합니다.
|남자가 새로운 거짓말을 준비합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해 보려는 속셈.
놈은 눈앞의 괴물조차 기차의 주인을 꺾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다.
그래서 일단 듣기 좋은 말을 꺼내기 위해 거짓을 만드는 중인 거고.
이에 정우는 상대가 무의미한 대사를 내뱉기 전에 선수를 쳤다.
“역시 이 기차를 가진 게 바로 그놈이군. 이 나라 1위 구원자 말이다.”
“……!”
마침내 사내의 안면 근육에서 힘이 완전 빠져나갔다.
“대, 대체 누구십니까?”
사내는 더 이상 거짓을 고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손끝을 바르르 떨면서 바닥에 무릎을 꿇었으니까.
“놈이 나에 대해 언질을 준 적이 없나 보군. 아니, 줄 수 없었겠지.”
정우는 사내의 반응을 보고서 기차의 주인, 1위 구원자 ‘종’이 적어도 하루 전에 기차를 떠났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러니까 정우가 구원자 채널에 편입하던 시점에 이미 기차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거다.
‘날 전시안으로 감시 중이었다면 자리를 비웠을 리가 없어.’
그리고 이 말인즉슨.
‘이젠 놈도 알고 있을 거다. 내가 기차와 접촉했다는 걸.’
그것뿐인가? 이제 곧 이쪽이 5호 차의 정수 덩어리를 흡수한 뒤 기차를 강탈할 거란 사실도 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녀석도 똑같이 했을 테니까.
슥.
정우의 시선이 하늘로 향한다.
오후 8시 54분.
까맣게 물든 하늘은 잠잠했다.
‘강림을 가지고 있지 않군.’
그렇다면 ‘종’을 만나게 되는 건 아무리 빨라야 다음 도시.
정우는 여기까지 생각한 뒤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장내엔 수십의 사람이 숨죽인 채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온건한 성향의 보디가드들과 그들의 일행.
하나같이 겁을 먹은 표정이다.
자신들의 목숨을 의탁하러 기차를 찾아왔는데, 그 기차마저 웬 남자 하나에게 쩔쩔매자 혼란스러워진 것이다.
정우는 이런 분위기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서 다시 3호 차 실무자에게 말을 건넸다
“일단 전부 태워.”
“예?”
“전부 태우라고. 가장 강한 자가 기차를 가질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적어도 지금은 내가 이곳에서 가장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