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271
275화. 태풍의 눈(3)
오전 11시 17분.
도시 한중을 완전히 떠난 민구는 어느덧 광위안 진입로에 들어서게 됐다.
광위안.
인구 240만, 공업도시.
대도시로 향하는 도로와 철도가 모두 뚫려 있어 한때는 유동인구가 상당했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산 것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도로 곳곳에 남은 차량 잔해가 이곳을 먼저 지나간 이들이 있었노라고 일러줄 뿐.
“기다려.”
민구가 자신이 타고 있는 말의 목을 쓰다듬으며 말하자, 녀석이 제자리에 멈춰 섰다.
닉네임, ‘모래’. 포유강 기제목 말과의 생물로, 2번 채널에 속한 구원자이기도 하다.
보유한 정수는 4600만 개.
현재 정수 보유량이 8억 4천만 개에 달하는 민구로선 모래를 해치는 것보단 이동수단으로 활용하는 쪽이 현명했다.
문제가 있다면 이 녀석들이 너무 눈에 띈다는 점.
모래를 포함해 민구와 함께 움직이고 있는 말의 숫자는 아홉이나 됐다.
게다가 각자 신체강화를 사용 중이라 항상 푸른빛을 냈고, 이 덕분에 누군가 근처에 있다면 이쪽에 뭔가 있다는 걸 모를 수 없을 터였다.
즉, 기습을 당하기 딱 좋다는 거다.
게다가.
“…….”
마침 발치의 패스파인더도 광위안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간이 제법 지났어. 도시 안에 이미 누가 와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그리고 이 시점에 도시 안에서 대기 중인 자는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삼검불’을 잡기 위해 1번 채널에서 온 순위권자 또는 연합체 결성을 위해 방문한 2번 채널 소속의 구원자.
물론 민구의 생각엔 전자일 확률이 높았다.
패스파인더의 정수 표식은 반경 10킬로미터 이내에서 가장 큰 정수 덩어리를 가리킨다.
다만, 여러 개체가 한 곳에 모여 있다면 그것 역시 하나의 덩어리라고 판단한다.
즉, 패스파인더가 보기엔 지금 민구와 함께 있는 아홉 마리의 말 역시 하나의 덩어리란 소리다.
그리고 이들의 정수 총합은 대략 2억 7천만 개.
그런데도 지금 패스파인더는 이들 대신 광위안 안쪽을 가리키고 있다.
‘최소 3억 개짜리 정수가 저 안에 들어 있다는 뜻이겠지.’
만에 하나 저 안에 있는 게 2번 채널의 구원자들이라면 그 수가 열 명가량 돼야 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명줄이 점점 짧아지는군.’
아주 높은 확률로 1번 채널의 순위권자가 저 안에 들었으리라.
* 문제. 강해.
모래도 패스파인더의 정수 표식이 도시로 향하고 있는 걸 깨달았는지, 고개를 위로 치켜들면서 경고를 해왔다.
이에 민구의 표정이 더욱 굳었다.
그가 가진 정수 표식의 기준점은 모래를 포함한 아홉 마리의 말이 지닌 정수 총량이다.
반면 모래의 정수 표식은 민구를 외부인으로 인지하고 있을 것이기에, 그보다 더 큰 정수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방향이 돌아가지 않는다.
“문제? 저 도시가 문제라는 거냐?”
민구가 저 멀리 보이는 광위안을 가리키며 묻자, 모래가 머리를 크게 움직이며 그렇다는 제스처를 해왔다.
그렇다는 건, 저 안에 8억 개 이상의 정수가 모여 있다는 소리다.
“…….”
민구는 고민에 빠졌다.
상대도 구원자일 확률이 높은 이상, 이미 이쪽의 존재를 인지했다고 봐야 할 거다.
어쩌면 일찍이 움직이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예상 가능한 상대의 순위는 최소 15위에서 높게는 2위.
‘내가 이 녀석들을 전부 죽인다고 해도 정수가 모자랄 가능성이 높아.’
민구는 자신을 둘러싼 말들을 훑어보며 잠시 계산했다.
정수가 10억 초반까지 올라가면 순위가 한두 단계 정돈 상승할지도 모르겠으나,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상대가 10위 안쪽의 실력자일 확률이 무려 50%가 넘어가니까.
“내 생각엔 일단 여길 벗어나는 게 좋겠다. 네가 전속력으로 달려도 친구 놈들이 따라올 수 있나?”
민구가 모래에게 묻자, 녀석이 몸을 틀어 나머지 동료들을 쳐다봤다.
그러더니 고개를 까닥이며 광위안 좌우측을 살폈다.
* 어디로?
달려갈 방향을 정해달란 소리다.
그리고 이때 민구가 보고 있던 패스파인더의 정수 표식이 짧게 흔들렸다.
“……!”
광위안에 머물고 있는 누군가가 접근 중인 것이다.
“달려!”
민구가 황급히 남쪽을 가리키자 모래가 거친 날숨을 뱉어내며 질주를 시작했다.
녀석을 따르는 8마리의 말도 마찬가지.
저마다 신체강화를 극한으로 발동한 탓에,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의 세기가 훨씬 강해졌다.
파아아앗!
“……윽.”
민구가 미간을 찌푸린다.
푸른빛이 사위를 뒤덮어서 사실상 위치가 완전히 노출된 상태였다.
그래도 종의 특성상 인간이 말보다 빠르게 달리긴 어려울 것이다.
매우 위험한 상황인건 맞지만 그래도 거리를 벌릴 순 있을 거라고, 민구는 생각했다.
그러나.
캬오오……!
얼마 지나지 않아 뒤편에서부터 날카로운 울음이 들려왔다.
‘씨팔.’
이 소리 하나만으로 많은 걸 직감한 민구는 일그러진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엄청난 속도로 이쪽을 쫓아오고 있는 누런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다름 아닌 표범이었다.
실제로 광위안의 서부 산지와 북부 일대의 닝샤 후이족 자치구엔 야생 동물이 살고 있다.
개중엔 표범도 포함되어 있으며, 정황상 민구가 조우한 것은 표범 아종 중 하나인 북중국표범.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종들에 비해서 덩치가 한참 작지만, 그만큼 날쌔다.
물론 민구는 표범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저것이 야생종인지 동물원에 갇혀 있던 녀석인지조차 몰랐으나, 놈이 곧 이쪽을 덮쳐올 거란 사실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죽인다!」
매섭게 추격해오는 표범이 정수 실린 울음을 쏘아 보냈다.
1번 채널의 순위권에 짐승 구원자가 있었던 거다.
‘상당히 화가 나 있군.’
생명의 위협으로 인해 몸속의 정수가 팔팔 끓는 와중에, 민구는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아무리 모든 생물의 언어가 통합됐다고 한들, 일개 표범이 어떻게 광위안까지 찾아왔을까?
민구 자신이 1번 채널에서 정우와 나눈 대화는 아주 간단했다.
남하 중이다, 청두에서 보자.
따라서 저 표범이 마침 청두 근방에 서식 중이었다면 청두로 오는 것까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채널에서 본 ‘청두’란 문자가 근방의 표지판에도 적혀 있었을 테니까. 어느 정도의 사고력만 있다면 이 근처의 인간 군락이 청두란 장소임을 추론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광위안은 다르다.
이 지명은 채널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았기에, 이곳을 찾아오기 위해선 현지인 수준의 정보가 필요하다.
기껏해야 자신이 직접 본 문자와 표지판에 적힌 것을 비교해보는 게 최선일 짐승이 찾아오기는 매우 어렵다는 거다.
‘우연히 들렀다고 보기엔 위치와 타이밍이 너무 공교롭고.’
민구의 생각은 여기에서 끊어지고 말았다.
마침내 맹렬히 뒤를 쫓아오던 표범이 공격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쐐애애액!
무시무시한 기세의 파공음과 함께 날카로운 바람이 일었다.
“……!”
이에 민구는 반사적으로 머리를 숙였고, 거의 같은 순간에 시퍼런 궤적이 그 자리를 지나쳤다.
콰츠츠츳!
이건 분명히 정수가 서로 마찰하는 소리.
황급히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시커먼 무늬가 어지럽게 박힌 누런 털이 시야를 스쳐 지나갔다.
그 표범 녀석이 민구의 머리를 후려치려 했던 것이다.
그가 전개했던 보호막은 일격에 박살 나 있었고, 그사이 허공을 가로질러 맞은편에 착지한 표범이 다시 몸을 웅크리는 게 보였다.
놈의 머리맡에 적힌 숫자는 ‘1,374,610,422’.
13억 개.
다행히 한 자리 순위권자는 아닌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맞서 싸우는 게 가능한 존재도 아니었다.
정수 차이가 현격한 게 아닌 이상, 일반적으로 힘 싸움에선 짐승이 우세하다.
이 경우엔 아마 두 합 이내에 민구의 몸이 찢겨나갈 것이다.
두두두두……!
모래가 여전히 질주 중이라 표범과의 거리가 빠르게 벌어지긴 했지만, 큰 의미는 없다는 걸 민구도 잘 알았다.
한때 함께 생활한 적이 있는 냄새만 떠올려 봐도 알 수 있는 사실.
고양잇과의 짐승은 단거리 이동에 아주 능하다.
그리고 실제로.
타앗!
다시 몸을 날린 표범이 삽시간에 거리를 좁혀 왔다.
정수 13억 개짜리 맹수에게 초식 동물인 말과 그 위에 올라탄 8억 개짜리 인간은 아주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일 뿐일 거다.
“이대론 안 돼. 싸우는 수밖에 없다.”
민구가 표범의 접근 속도를 보고서 피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으나, 모래는 이를 듣고도 멈춰 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겁먹었군.’
민구는 비로소 모래의 움직임이 아까보다 훨씬 거칠고 커졌다는 걸 깨달았다.
이미 패닉 상태인 거다.
‘제길.’
어차피 저 표범과 싸우려면 모래와 다른 말들을 다 죽여서 정수량을 늘려야만 한다.
문제는 이 녀석들이 이대로 계속 달린다면 제때 정수를 빼앗는 것조차 어려울 거라는 점.
“싸워야 한다고. 이제 곧…….”
민구가 모래에게 마지막 통보를 하려는 순간, 맞은편에서부터 그의 음성을 뒤덮을 정도로 커다란 소리가 났다.
쿠구구구구……!
“……?”
처음엔 무슨 바위 같은 게 굴러오나 싶었으나, 잠시 뒤 소리가 좀 더 가까이 다가오면서 그 정체를 알게 됐다.
말발굽과 쇳조각 같은 게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뒤섞인 거였다.
‘아니, 대체 이게 무슨 소리지?’
민구의 상식선에선 이 소리가 무엇으로부터 나고 있는 건지 상상할 수 없었고, 곧 발원지가 시야에 들어오고 나서야 알게 됐다.
두두두두두……!
그건 엄청난 속도로 북상 중인 마차였다.
세 필의 말과 호랑이 하나가 끌고 있는, 버스를 개조해서 만든 마차 말이다.
“뭣…….”
다소 초현실적인 광경에 민구가 얼빠진 표정을 지었고, 다음엔 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 민구!
마차 중앙부에 묶여 있던 호랑이가 큰 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른 것이다.
“……!”
민구가 뒤늦게 동공을 확장시킨다.
맞은편의 맹수는 다름 아닌 냄새였다.
그런데 왜인지 표정이 아주 험악했고, 갑자기 몸을 마구 비틀더니 마차와의 연결부를 부수고 뛰쳐나오기까지 했다.
콰작!
이에 경황이 없던 민구는 자신이 올라탄 모래의 등 위로 시커먼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자신이 무엇에게 쫓기는 중이었는지 말이다.
캬오오!
냄새만큼이나 날카로운 울음이 등 뒤에서 쏘아져 나왔고, 부리나케 달려오고 있는 냄새와의 거리는 아직 상당히 멀었다.
“이런.”
냄새보다 표범이 한참 먼저 이쪽을 덮칠 것이다.
그리고 냄새의 머리맡에 붙은 숫자로 보건대, 녀석이 제때 난입했더라도 저 표범과 싸워서 이길 가능성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최선은 무엇인가?
화앗!
민구는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몸을 움직였다.
전방으로 몸을 날린 것이다.
정수 4600만 개짜리 구원자인 모래는 잃겠지만, 표범에게 정수 8억 개를 바로 뺏기는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을 터.
물론 그 다음 일까지 계획할 여유는 없었다.
민구가 모래에게서 떨어져 나오자마자 극한으로 강화된 표범의 신체가 그 위를 덮쳤고, 2채널 소속 구원자 모래의 몸뚱어리가 종이처럼 찢겨 나갔다.
촤아아악!
녀석의 두꺼운 피부가 찢기는 소리에, 주변에서 함께 달리던 말들이 기겁을 하며 사방으로 머리를 돌렸다. 각자 살길을 찾아 도망가려는 것이다.
표범이 두려운 건 민구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 역시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냄새가 쏜살같이 달려와 그의 곁에 섰다.
* 민구!
녀석의 눈엔 여전히 살기가 서려 있었지만, 아까와 달리 긴장한 기색은 없었다.
반면 민구는 여전히 급박한 표정이었다.
“이 자리를 피해야 해. 보나마나 우리부터 노릴 거다.”
* 아니야!
“뭐……?”
민구가 되묻는 사이 냄새가 수염을 실룩이며 뒤로 물러섰고, 때맞춰 녀석의 뒤로 문제의 그 마차가 멈춰 섰다.
그러더니 그 안에서 누군가 목소리를 냈다.
“네가 박민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