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274
278화. 태풍의 눈(6)
오전 11시 46분.
무리의 선두에서 달리던 주천태가 급제동을 했다.
촤아앗!
이에 그를 따라 함께 달리고 있던 나머지 세 구원자도 급히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곤 반사적으로 각자 주변을 경계했다.
불과 수 시간 전에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합이 잘 맞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그저 여기가 전에 없이 위험한 전장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2번 채널 소속의 구원자.
정확히는 광위안에서의 회합에 참가하기 위해 근처 도시에 모였다가 함께 이동 중인 자들이었다.
저마다 사선을 숱하게 헤쳐 온 자들이기도 하고, 현재 자신들의 위치가 채널에 노출되어 있음을 잘 알기에 상당히 예민해져 있는 것이다.
채널의 여론은 대의를 위해 잠시 경쟁을 미뤄두자는 것이었지만 모든 구성원이 여기에 동의하는 게 아니라는 건 다들 잘 알았으니까.
언제 어디서 기습을 받게 될지 모르고, 심지어 지금 같이 있는 네 사람 중 하나가 변절을 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다.
이 때문에 이들은 주변을 둘러보는 건 물론 은연중 서로의 동태까지도 살피고 있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이 그룹에서 서열 2위에 해당하는 사내, 왕서휘가 주천태를 흘겨보며 다소 날카로운 투로 물었다.
그러자 주천태가 손가락으로 전방을 가리켰다.
“안 보이나?”
“……뭐가?”
왕서휘는 이렇게 되물으면서도 주천태가 가리킨 곳보단 그의 몸 동작을 주시하고 있었다.
괜히 뭔가를 발견한 척하면서 기습을 해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거다.
그러나 이 묘한 대치 상황은 얼마 가지 않았다.
두두두두……!
심상치 않은 소리와 함께 정말로 뭔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어, 저게 뭐야?”
비로소 상대의 손가락이 가리켰던 곳을 똑바로 보게 된 주천태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을 쳤다.
시퍼런 말들이 끄는 마차…… 아니, 엄밀히 말하면 버스라고 봐야 할 어떤 것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겉보기엔 무척 우스꽝스러웠지만 장내의 그 누구도 감히 웃지 못했다.
움직이는 속도만 봐도 저 마차에 붙들린 말들이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게 느껴졌으니까.
그렇다면 대체 저런 마차를 끌고 다니는 자는 누구일 것인가?
아무리 봐도 2번 채널 구원자의 스케일은 아니다.
“자, 잠깐.”
누군가 무력하게 말을 더듬으며 나머지 구원자를 번갈아 봤다.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는 거다.
그러나 곧이어 마차의 최선두에 있는 말이 정수를 3천만 개나 가지고 있다는 게 확인된 순간 모두의 사고회로가 정지됐다.
콰아앗!
이들이 입장을 정하기도 전에 마차가 현장에 난입했고, 동시에 어마어마한 양의 기운이 모두를 휘감았다.
“……!”
뭔가 온몸을 샅샅이 훑는 듯한 느낌. 박정우의 ‘레이더’였다.
“이게 뭐야……?”
“윽.”
생전 처음 느껴보는 이질적인 기운에 다들 얼굴을 찡그리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양팔로 몸을 감싸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문제의 기운이 급속도로 강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신을 진공포장 중인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숨이 턱 막히더니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위화감이 등에서부터 목을 타고 올라와 귓불 안쪽을 맴돌았다.
“그, 그만……!”
이젠 바닥에 엎드리다시피 한 어느 구원자가 가까스로 목소리를 냈다.
엄밀히 말하면 대사를 발음할 수 있던 게 한 사람뿐이었다.
나머지는 흙 속에 머리를 처박은 채 속을 게워내고 있었으니까.
“우워어억!”
“커허억……!”
그리고 마침내.
탁.
한 사내, 박정우가 땅에 발을 디뎠다.
“너희들이군.”
그가 바닥에 들러붙은 4인의 구원자를 내려다보며 나지막하게 말하자, 마차 안쪽에서 또 다른 기척이 났다.
정우와 먼저 조우했던 2번 채널 구원자들이 바깥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쪽 역시 인간 넷에 짐승 하나.
동쪽에서 온 녀석들과 합하면 무려 아홉 개체다.
“으읍.”
정우가 상대의 머릿수를 세는 사이 바닥의 한 구원자가 몸을 일으키려 했고. 이에 정우가 그쪽으로 시선을 주며 조용히 말했다.
“기다려.”
그러면서 레이더의 농도를 두 배 가까이 늘렸다.
파아앗!
“커헙!”
아니나 다를까, 정우의 ‘조치’가 시작되자마자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던 4인조가 다시 몸을 뒤틀었다.
이번엔 그저 속을 게워내는 수준이 아니라 격렬한 발작까지 동반했다.
“크흡, 흡!”
“이이익……!”
몸을 워낙 기형적으로 뒤틀어대다 보니 사람이란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
이 때문에 오히려 정우의 뒤에 도열한 구원자들이 더 겁을 먹었다.
정우가 원한다면 ‘저 짓’을 자신들에게도 할 수 있단 걸 잘 알았으니까.
그리고 아직 마차 안에 있는 아므라 역시 느끼는 바가 있었다.
‘이, 이건…….’
기시감이 드는 건 결코 착각이 아닐 것이다.
저건 아무리 봐도 그것과 똑같았다.
존재만으로도 일대의 생명체들을 굴복시키던 관찰자 말이다.
지금 박정우가, 당시 놈들과 아주 유사한 일을 벌이고 있지 않은가?
“그만 둬. 아주 병신으로 만들어서 내보낼 생각이냐?”
이윽고 마차 가장 안쪽에서부터 굵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에 모두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고, 곧 거친 인상의 사내가 그림자 안에서 걸어 나왔다.
박민구. 박정우의 친부이자 마차 내 서열 2위.
“팔을 자를 순 없으니 이런 식으로라도 설득해야죠.”
정우는 민구를 흘깃 보고선 4인조를 옥죄고 있던 힘을 풀었다.
파앗.
그러자 비로소 제대로 숨을 쉴 수 있게 된 구원자들이 허겁지겁 폐를 작동시켰다.
“헉, 헉!”
“하악, 학……!”
사경을 헤매다 와서 그런지 제멋대로 널브러진 몸을 추스를 생각조차 못한다.
정우 일행은 그런 그들을 보면서 자신들이 지금 어떤 존재와 여정을 하는 중이었는지 새삼 되새겼다.
“약속한대로 이 녀석들과 너희를 살려주마. 내 생각엔 동쪽을 맡는 게 적당하겠군.”
정우가 마차 쪽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하자, 그를 매번 대협이라고 부르던 사내가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대…… 대협! 감사합니다!”
이에 정우는 상대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이곤 갑자기 오른팔을 휘둘렀다.
홰액!
“억?”
난데없는 돌발행동에 모두가 화들짝 놀랐고, 거의 같은 순간에 바닥의 4인조 중 하나가 정수 창에 꿰뚫렸다.
사아앗!
섬뜩한 소리와 함께 이마에 큰 구멍이 난 사내 하나가 뒤로 넘어진다.
쿵.
녀석의 사망 선고는 곧이어 튀어 오른 정수 구체가 대신했다.
파팟, 팟!
우스운 일은 이 다음에 벌어졌다.
“……!”
구체가 솟은 걸 본 나머지 3인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각자 반대 방향으로 흩어진 것이다.
마치 저기에 닿으면 자신도 죽게 되는 것처럼.
“대협……?”
미처 포권을 풀지 못한 사내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정우를 바라봤고, 이에 그가 무사히 바닥에 안착한 구체들을 가리켰다.
“배신 예정자가 하나 섞여 있더군. 저건 네가 흡수해라. 그리고 이 그룹을 관리해. 오늘 임무를 마칠 때까지만 실권을 쥐고 있으면 된다.”
그사이 간파로 새 인물들의 의중을 파악했던 거다.
“오늘 임무를 마칠 때까지라고 하시면…… 내일은 어떻게 됩니까?”
“8일째에 맞춰서 진입로가 변하기 전에 현장을 떠나. 너희들 힘으론 어쩔 수 없을 거다. 그리고 알아서 살아남아라. 운이 좋다면 날 다시 마주치지 않을 수 있겠지.”
정우의 이 말은 만약 다음에 또 마주친다면 그땐 살려두지 않을 거란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 뜻을 알아듣지 못할 리 없는 2번 채널의 구원자들은 저마다 경직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박정우가 말한 ‘알아서 살아남아라.’라는 건 단순히 자길 피해 도망가란 이야기가 아니었으니까.
일을 모두 마친 뒤 서로 죽이든 연합하든 전혀 상관하지 않겠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
모두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자 정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누군가 기적적으로 순위권에 들게 된다면, 조만간 파견과 잔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거야. 그때가 오면 잔류를 선택해라. 이 자리엔 파견을 가서 살아남을 만한 녀석이 없으니까.”
이미 파견을 한 차례 겪어본 정우이기에 해줄 수 있는 말.
하지만 이건 조언이자 동시에 함정이기도 했다.
웬만한 파견자가 아니고선 새 지역에서 장기 생존이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잔류가 해답인 것은 아니다.
특히나 중국 같이 땅이 넓은 지역은 더욱 그렇다.
잔류의 목적은 지역에 남은 정수를 마저 끌어 모아서 24시간 뒤에 다시 찾아올 파견을 대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거대한 땅에서 하루 동안 정수를 쓸어 담아 봐야 얼마나 얻을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정우는 파견 시점까지 생존하게 되더라도 결코 잔류를 택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유력한 행성 구원자인 그의 시간은 다른 구원자의 것보다 가치가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앞의 구원자들에게 잔류를 선택하라고 조언한 거다.
그게 그나마 가치 있는 존재가 되는 방법일 테니까.
“……명심하겠습니다.”
드디어 포권을 푼 사내가 바닥에 흩어진 정수 구체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티틱, 틱, 스아아…….
파란 구체들이 깨지며 사내에게 수천만 개의 정수를 더해줬고, 곧 민구가 그랬듯이 이 사내 역시 후유증의 고통에 휩싸였다.
“크아악……!”
다만 민구와 달리 고통을 겪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아마 이것도 선천적인 특질과 관련이 있는 듯.
정우는 새 그룹의 임시 리더가 탄생하는 장면을 묵묵히 바라본 뒤, 마차의 아므라를 향해 지시했다.
“우리도 슬슬 출발하지. 위쪽에 한 마리가 있는 것 같은데.”
* * *
오후 12시 4분.
2채널 소속 구원자들을 방출하면서 구성원이 대폭 줄었으나, 마차의 존재감은 여전히 엄청났다.
두두두두……!
이제 무려 6마리나 되는 말이 마차를 끌었기 때문이다.
실제 확보했던 말의 수는 총 11마리였지만, 광위안에서 만났던 2번 채널의 구원자들에게 5마리를 내주게 됐다.
아무래도 도시에서 차를 구해 기름을 계속 갈아 넣으며 달리는 것보단 정수를 이용해 달리는 말을 타는 게 훨씬 빠를 터였으니까.
게다가 어차피 마구와 공간이 부족해 마차에 말을 더 연결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말들이 다칠 경우 대체할 방법이 사라지긴 했으나…….
‘오늘 모든 역량을 쏟아야해. 그렇지 않으면 당장 내일 이 행성이 폐쇄될 수도 있다.’
정우로선 이게 최선이었다.
본대의 기동력을 좀 더 확고히 하겠다고 2번 그룹을 방치했다가 동부의 침입자들이 대거 살아남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2번 그룹의 정수 전량이 8일 차 침입자에게 흡수되는 건 물론, 놈들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처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 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중국은 파견자를 배출하는 지역이 아니라 행성 차원의 골칫거리가 되리라.
‘여전히 변수가 너무 많다.’
정우는 빠르게 스쳐가는 바깥 풍경을 보면서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시뮬레이션 했다.
일단 2위 ‘종’과의 대결에서 패배한다는 상황은 아예 가정하지 않고 있었다.
그 뒤의 일은 당연히 종이 알아서 할 테니까.
문제는 이쪽이 이겼을 경우다.
현재 정수 총량 67억 개.
지금 즉시 여신 거래를 개시한다고 쳐도 200억 개나 되는 빚이 생기는 셈이다.
종을 쓰러뜨려도 100억 개 이상의 정수를 24시간 안에 얻어야 하는 셈.
슥.
정우의 시선이 아버지, 민구에게 닿았다.
‘21억 개.’
그리고 첫 번째 저장고였던 송한령이 가진 정수가 6억 개.
‘합해봐야 30억 개도 안 되는군.’
정우는 소리 없이 침음했다.
한 가지 기대할 수 있는 건 ‘종’이다.
놈이 아직도 1위를 탈환하지 않을 걸로 봤을 때, 녀석도 저장고를 만들고 있는 게 분명했다.
대결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의 일을 더 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번 대결의 궁극적인 목적은 지구 폐쇄를 막을 유력한 구원자를 배출하는 것이니까.
과연 놈이 끌고 올 저장고의 용량은 얼마나 될까?
“…….”
조만간 서로의 목을 치기 위해 악을 품고 싸워야 할 상대.
아이러니하게도 정우로선 그 상대를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두두, 두두두…….
여태 일정한 리듬으로 들려오던 말발굽 소리가 일순 흐트러졌다.
이에 뭔가를 느낀 정우가 바깥을 내다봤고, 다음엔 발치로 시선을 옮겼다.
“그렇군.”
진입로 표식 중 하나가 측면으로 급격히 회전 중이었다.
첫 번째 목표로 삼고 달려가던 침식자가 근방에 있는 것이다.
이 마차를 끄는 말 중에도 구원자가 있어서 녀석이 먼저 이를 알아채고 움찔했던 듯.
“진입로 방향으로 돌아. 아마 일격에 해치울 수 있을 거다.”
정우는 겁에 질린 말들을 격려하며 북서쪽을 가리켰다.
그러곤 마차 안쪽을 빠르게 훑었다.
구성원의 정수량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정우의 정수 총량은 67억 개.
‘무한대’로 인해 정수의 20%가 항상 보존되므로 당장 정수 파동에 모든 힘을 부어도 13억 개의 정수를 따로 운용할 수 있다.
그래서 확인한 것이다.
자신이 침식자를 향해 필살의 일격을 날리는 사이 누가 정수 13억 개를 뚫고 칼을 쑤셔 넣을 수 있을지 말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결론은.
“아버지뿐입니다.”
“뭐?”
정우의 생뚱맞은 대사에 진입로 방향을 주시하던 민구가 그를 쳐다봤다.
“방금 뭐라고?”
“지금 절 죽일 수 있는 거, 당신뿐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