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298
302화 절대자 강림(6)
끼익.
마침내 매장 문이 열리며 문제의 세 인물이 나타났다.
누가 봐도 중앙에 선 자가 삼인조 중 최강자다.
금발의 30대 남성. 체격은 정우와 엇비슷한 수준으로, 서양인치곤 체구가 작은 편이었지만 눈가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안광이 그의 무위(武威)를 짐작케 했다.
이 더운 날에도 항공 점퍼를 걸치고 있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
머리칼도 상당히 긴 편이었는데, 근래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는지 마구잡이로 자란 잡초처럼 보였다.
탁.
금발 사내가 먼저 실내 쪽으로 발을 딛자, 그의 양편에 서 있던 나머지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츠즉.
정장 바지에 와인색 남방을 걸친 사내와 검은 블라우스에 청바지를 입은 여자.
두 사람 모두 발목을 다 덮는 캔버스화를 신고 있는 게 눈에 띈다.
아마도 발소리를 줄이기 위해 신발을 갈아 신은 걸 거다.
이에 반해 안광을 뿜는 사내의 발을 감싼 건 새까만 군화였다.
따닥.
그가 한 걸음을 더 내딛자 존재감만큼이나 큰 발소리가 났고, 때맞춰 버거킹 매장의 경관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마중을 나왔다.
“엄……. 어떻게 오셨습니까?”
이에 금발 사내가 상대를 향해 뭔가를 내밀었다.
슥.
다름 아닌 요원증이었다.
미네소타의 넘버 1. 맥 테일러라고 적힌.
“어……!”
요원증을 확인한 경관이 눈을 크게 뜨며 놀란다.
그러나 상대의 넘버가 1이라는 사실에 놀란 것이지 미 대륙의 최강자가 이 자리에 왔다는 건 꿈에도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민간 치안 정도나 관리하는 하급 각성자다 보니 순위권자들을 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넘버 1씩이나 되는 분이 대체 여길 왜 온 겁니까? 그것도 헬기까지 타고서…….”
경관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미네소타 최강자 맥 테일러와 매장 출입문 저편으로 보이는 헬기를 번갈아 봤다.
그러자 맥이 아무렇게나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담담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날 죽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지금 내 옆에 있는 남자는 일대의 3개 주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마취전문의니까.”
“……?”
이 말에 경관은 자신의 몸을 훑어보다가 이내 상대방의 시선이 다른 곳에 닿아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무슨…….”
스윽.
맥의 시선을 따라 움직이는 경관의 고개.
그리고 그가 고개를 멈춰 세운 방향엔 여전히 이쪽으로 등을 보인 채 햄버거가 나오길 기다리는 중인 동양인이 있었다.
“주,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이윽고 주방 직원이 햄버거와 감자튀김, 음료 따위가 실린 쟁반을 가지고 나왔다.
“이쪽으로 주게.”
정우가 움직이기 전에 제레미가 잽싸게 쟁반을 받았고, 다음엔 맥을 향해 고개를 까닥이며 신호를 줬다.
일단 매장 구석으로 가서 앉자는 거다.
“…….”
이에 맥은 정우를 잠시 응시하다가 먼저 걸음을 뗐다.
상대는 파견자 사냥에 참여했던 요원 37인을 혼자서 도륙한 전례 없는 괴물이다.
당연히 놈의 심기를 건드리려고 온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줄 생각으로 온 것 역시 아니었고 말이다.
스슥.
매장 가장 안쪽의 6인용 사각 테이블에 맥과 그의 일행이 나란히 앉았고, 맞은편으로 오리건 주의 서열 2위 제레미 킹, 그리고 눈을 감고도 용케 자리를 찾아온 파견자 박정우가 앉게 됐다.
“…….”
모두가 착석하자마자 여지없이 시작된 정적.
“흠.”
맥은 양팔을 테이블에 올린 채 손으로 깍지를 끼고서 자세를 가다듬었다.
곧 오가게 될 대화가 미합중국의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박정우는 한동안 굳게 닫힌 눈으로 허공의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가…….
슥.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팔을 뻗었다.
“……!”
예고 없는 동작에 맥을 따라온 두 민간인이 몸을 움찔했고, 맥 역시 깍지를 낀 두 손을 자신도 모르게 파랗게 빛내고 말았다.
스아아아……!
대량의 정수가 급시에 활성화되면서 주변의 공기를 싸늘하게 만들었고, 그가 걸친 항공 점퍼 안쪽에서도 푸르스름한 빛이 새어 나왔다.
그러나 정작 정우가 했던 동작은.
텁.
그저 햄버거 하나를 집은 것뿐이었다.
아사삭.
곧이어 버거 안에 든 양상추가 파견자의 치아에 부딪혀 쪼개졌고, 맥의 어깨 쪽에 바짝 붙어 있던 두 민간인이 멍한 표정을 짓기에 이르렀다.
우적, 우적.
그렇게 박정우는 미 대륙의 최강자와 그를 보필하는 두 민간인, 그리고 오리건 주의 서열 2위 사이에서 햄버거를 씹었다.
아삭, 아작.
우스꽝스러운 소리와 달리 턱을 열심히 움직여 대는 정우의 표정은 상당히 진지했다.
아마도 충신의 고통이 그를 옥죄고 있기 때문일 거다.
식사를 한다기보다는 무슨 임무를 수행해 내고 있는 듯한 느낌.
박정우는 순식간에 햄버거 하나를 해치우고선 그 옆에 놓인 감자튀김을 너덧 개씩 집어서 입안에 쑤셔 넣었다.
이때에도 그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고, 한동안 이를 가만히 보던 맥이 조심스레 운을 띄웠다.
“대화부터 하면 안 되겠나? 실은 남부 쪽으로 작전을 수행하러 가는 중이었다. 궤멸자가 나타났더군. 어쩌면 지금 이 시간에도 놈이 정수를 빨아들이고 있을지 몰라.”
그러자 박정우가 입안에 음식물을 넣고 계속 씹으면서 소리를 냈다.
“난 이미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중이다. 이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 건 네 쪽이지.”
그러더니 감자튀김을 집고 있지 않은 손으로 또 다른 햄버거를 집었다.
엄밀히 말해서 저건 제레미의 것이었지만 아무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우적, 우걱.
정우가 집어든 두 번째 햄버거가 빠르게 지워지기 시작했고, 결국 맥이 깍지를 풀고서 오른손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휙.
그러자 테이블 위에 보랏빛 사각형체가 나타났다.
파앗!
진입로가 폐쇄된 자리에 나타나는 ‘단말기’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물체.
분명 맥이 소환한 것이지만, 이 물체의 소유권이 그에게 있지 않다는 걸 좌중의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사각형체에서부터 어마어마한 위화감이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 속하지 않은 무언가라는 느낌.
“…….”
비로소 정우가 ‘씹기’를 멈췄다.
그러곤 정말 맹인이 주변을 감지하듯, 눈을 감은 그대로 머리를 천천히 까닥였다.
“저게 내가 널 지금 죽일 수 없는 이유인가?”
“…그렇다.”
1. 서면계약
-우주적 구속력이 있는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정우의 앞에 떠오른 사각형체가 바로 서면계약권자의 부름으로 나타난 ‘계약서’인 것이다.
“나와 이 두 사람은 이미 계약으로 연결되어 있다. 내가 죽으면, 이 둘도 죽어.”
“그 반대는?
“뭐?”
“저 둘을 죽이면 너도 죽나?”
이 말과 함께 정우가 맥의 앞에서 처음으로 두 눈을 떴다.
찌이잉……!
파견자의 개안과 동시에 장내 모두의 머릿속에 기괴한 신호음 같은 게 울렸고, 맥은 반사적으로 자신의 몸에 두른 보호막을 최대치로 강화했다.
스아아앗!
그러다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
눈앞의 파견자는 어느새 눈을 다시 감은 채였고, 좌우측의 민간인 역시 멀쩡히 살아 있었다.
“그렇진 않군. 일방적인 조건으로 계약을 맺을 수도 있는 건가.”
정우의 결론.
그리고 이건 실제와 다르지 않았다.
서면계약은 한쪽만이 리스크를 짊어지는 방식으로도 발동이 가능했다. 단, 계약이 성립되기 위해선 양측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했지만 말이다.
“……충신을 제어하기 위해서 주치의와 약물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나?”
“맞다.”
“당신이 원하는 걸 다 가져왔어. 그럼 그쪽은 내게 뭘 줄 수 있지?”
맥이 굳은 얼굴로 이렇게 말하자, 정우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쐐애애액!
전방으로 오른팔을 휘두름과 동시에 정수 칼날을 뽑아냈다.
덕분에 햄버거가 올라가 있던 테이블이 말끔히 동강 났고, 이뿐만 아니라 맥과 두 민간인이 앉아 있던 의자까지 조각났다.
콰직!
그럼에도 인명 피해는 전혀 없었다.
애초에 정우가 사람을 노린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익……!”
맥에게 바짝 붙어 있던 셔츠 차림의 남자는 방금 자신의 팔뚝 바로 옆으로 시퍼런 칼날이 지나갔다는 걸 뒤늦게 인지하고서 몸을 움츠렸다.
반면에 맥은 상대가 무슨 말을 해 온 건지 바로 알아차렸다.
‘이런.’
조금 전 그 일격으로 자신이 몸에 두르고 있던 보호막이 완전히 박살 났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 만에 하나 상대가 이쪽을 무시하고 의사를 데려간다 해도 현재로선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파견자 박정우의 다음 대사가 이어졌다.
“내가 네게 줄 수 있는 건 차악이야. 적어도 지금은 죽지 않을 수 있고, 이 나라의 모든 것이 사라지는 상황만큼은 막을 수 있게 될 거다.”
“뭣……?”
맥이 이를 악물었으나 박정우의 제안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지금 당장 계약을 새로 만들어. 현 시간부로 너는 나를 공격할 수 없고, 마취의가 죽으면 너 역시 사망한다.”
“……?”
말도 안 되는 조건에 맥이 눈을 파랗게 밝혔고, 이를 본 정우는 다짜고짜 손을 뻗어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
콰악!
이어서 정수 회복 시간인 3초가 지난 탓에 맥의 전신이 보호막에 감싸이기 시작했으나 정우의 팔뚝만큼은 밀어내지 못했다.
츠츠츳, 츠츳!
정수의 마찰음 사이로 박정우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계약을 만들어. 그렇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네 팔과 다리를 부러뜨린 뒤 목숨만 붙여서 끌고 다닐 테니까.”
“대체 왜……?”
맥은 상대가 정말로 저 짓을 실행할 힘이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체 왜 저런 짓을 하는지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자 그의 의중을 간파한 정우가 친절하게 부연해 줬다.
“내가 잠에 들어 있는 동안 나와 의사를 지킬 녀석이 필요해. 그런데 잘 생각해 보니 네가 적격자 아닌가? 충심을 강제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으니까 말이야.”
“…….”
“지금 내 팔 하나 걷어 내지 못하는 너보단 내가 이 나라를 구원할 확률이 훨씬 높아. 날 위해 봉사해라.”
“와, 완전히 미쳤군.”
상상도 못한 발상.
맥은 상대의 ‘상식’이란 게 이 대륙의 최강자인 자신보다도 한참 멀리 나가 있음을 직감했다.
드드듭…….
맥이 바로 답을 않자 정우가 다른 손을 뻗어 그의 팔목을 붙잡으려 했고, 결국 미국 최강자 맥 테일러의 의지가 빠르게 꺾였다.
“만약 그런 계약이 성립하지 않으면? 동시에 두 존재에게 영향을 끼치는 계약이 가능할 리 없어.”
“계약에 포함된 모든 존재가 동의한다면 그게 어떤 내용이 됐든 성립할 거다. 우주는 원래 그런 식으로 움직여.”
정우는 맥의 마지막 발악을 무심하게 쳐내고선 여전히 허공에 떠 있는 ‘계약서’를 손으로 건드렸다.
툭.
그러자 모종의 인터페이스가 눈앞에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게 보였다.
아마도 계약서 작성을 위한 양식일 터.
“피차 바쁘니 바로 시작해. 네놈이 잡으러 가던 그 궤멸자는 내가 처리해 주지.”
“…….”
막다른 골목에 몰린 맥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공을 응시했다.
그리고 현시점 그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공간에 구조 요청을 보냈다.
[1] 정의 : 도와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