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307
311화. 저울(3)
* * *
시카고와 남양주의 인재 경쟁.
굳이 따지자면 시카고가 공격, 남양주가 방어 입장인 셈이었다.
시카고로선 어떻게 해서든 성역에 합당한 인재를 많이 배출해서 남양주의 좌석을 뺏어 와야 했기 때문이다.
“주, 중성 씨……?”
“어떻게 좀 해 보십시오!”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할 겁니까?”
남양주의 주민들, 정확히는 자기 자신을 ‘인재’라고까진 생각하지 않는 자들이 분개한 목소리를 냈다.
시카고에서 ‘초과 인원’이 발생할 경우 그들을 위한 자리를 자신들이 만들어 줘야 한다는 걸 깨달은 탓이었다.
임산부의 남편 자격으로 성역에 들어왔거나 시설 관리, 토목 기사처럼 당장은 그 중요도가 아주 높지 않은 자들이 여기에 포함됐고, 같은 특기를 지닌 사람이 많은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반면에 이런 혼란 속에서도 비교적 침착한 모습으로 상황을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방주의 좌석 개수는 340개. 정확히 반으로 나눌 경우 170석이다. 현재 이곳의 주민 총원은 237이고…… 두 성역의 인원을 비슷하게 맞춘다고 가정하면 67명 정도는 덜어 내야 하는 셈이군.’
저명한 심장 내과의이자 남양주의 의료진 수장이기도 한 윤재희.
의회 구성원인 건 물론 의사로서도 감히 견줄 상대가 없는 그는 성역의 주민을 두 자릿수까지 줄인다고 해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었다.
물론 그에게도 이번 사태는 큰 문제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남의 일’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윤재희의 입에서 현 사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떨어졌다.
“저희가 맞게 될 최악의 상황은 뭡니까?”
최악의 상황.
단어도 단어지만 발언자부터가 윤재희였기에 소란스럽던 장내가 일시에 조용해졌다.
“정우 씨에게 여쭙는 겁니까?”
스크린을 바라보던 중성이 뒤편을 돌아보며 물었고, 이에 윤재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 분 모두에게 묻는 것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답은 정우 씨만 할 수 있겠죠.”
그러자 스크린 너머의 박정우가 나지막한 음성으로 답을 줬다.
-당신이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은 뭐지?
“이쪽 주민의 수가 170명 밑으로 떨어지는 겁니다.”
-170명……?
“현재 확보된 방주 좌석의 반입니다.”
-시카고에 자원이 아무리 많아도 반 이상은 양보할 수 없다는 소리군.
“다른 의도는 없습니다. 이쪽이나 그쪽이나 똑같은 사람 목숨인 건 마찬가지니까요. 하지만 실질적으로 따져 보면 저희 쪽의 가치가 훨씬 높습니다.”
-이유는?
“여긴 그간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비로소 안정기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근처에 진입로가 없죠. 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남양주는 이미 대수술을 성공리에 마친 환자고, 시카고는 방금 막 긴급으로 실려 온 환자인 겁니다.”
윤재희의 주장은 계속 이어졌다.
“두 성역의 차이는 간단합니다. 지구가 존속에 성공할 경우 남양주는 반드시 살아남게 되겠지만 시카고는 불투명합니다. 선별한 인원들이 내분으로 자멸할 수도 있고 근처에 진입로가 생겨나서 불가피한 피해를 입을 수도 있겠죠. 그러니 여기에 좌석의 반 이상을 투자하는 건 미친 짓입니다.”
-…….
재희의 말을 들은 정우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시카고 측 ‘캠’의 시야 바깥에 있는 톰슨을 슬쩍 바라봤다.
지금 남양주는 뼈를 내주는 대신 살점까지만 순순히 내놓겠다는 전략을 펴고 있었다.
심지어 그 근거도 제법 설득력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이걸 뒤집어 보면 시카고 입장에선 확보할 수 있는 최대 좌석의 수가 제한되어 버리는 셈.
-이에 대해 할 말은 없나?
정우가 이렇게 묻자 캠이 눈을 돌려 톰슨을 비췄다.
-…….
톰슨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스크린 너머의 남양주를 바라보고 있었고, 한동안 이 상태가 계속되자 시카고의 주민 수천 명이 일제히 소리를 냈다.
-이, 이봐……?
-그렇게 가만히 있을 거요? 무슨 말이라도 해 봐요!
-340석의 반……? 그거론 터무니없이 모자라! 여기에 사람만 몇 명인데!
방금 오간 대화에 따르면 시카고가 확보할 수 있는 자리는 약 170석.
기존의 99석에 비해 71명이 더 살 수 있게 됐긴 했지만 후보의 수 자체가 많다 보니 생존율은 여전히 극악이었다.
더군다나 시카고는 남양주와 달리 본인이 기술자라고 해도 생존 여부를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상황.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치 열세에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의사 같은 세기말 고급 인력들도 격분한 음성을 냈다.
-톰슨 씨!
-그새 귀를 먹은 거야?
-남은 좌석을 다 가져와도 모자란 상태라고!
그러자 마침내 톰슨이 입을 열었다.
-시끄러워.
-엉……?
-뭣?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시카고 주민들의 입이 스륵 벌어졌고, 이내 톰슨이 그 안으로 날카로운 목소리를 쑤셔 박았다.
-단순한 자리 싸움이 아니잖아. 우리가 좌석 하나를 확보하면 저쪽에선 한 사람을 죽여야 한다고. 그런데 정말 그만한 가치를 지닌 사람이 여기에 수백 명이나 될까?
그러더니 덧붙였다.
-분명히 말해 두지만 난 단순히 너희를 위해서 이 자리에 서 있는 게 아니다. 가급적이면 이 땅에 최대한 많은 기회를 주고 싶은 것뿐이야.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최대한 많은 인간을 남겨 놔야만 하고.
-…….
-하지만 저쪽도 보통내기들이 아닌 것 같군. 난 여기에서 더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 최대 인원을 170명으로 정하는 것에 동의하도록 하지.
-좋다.
정우가 곧바로 말을 받았고, 시카고 주민들은 이 사이에 끼어들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이 자리에 모인 시카고 측 민간인의 총원은 대략 3,800명.
그러니까 최대 4.5퍼센트 정도의 인원만이 살아남게 되는 것이다.
“확실히 해 두죠. 170석을 시카고 쪽에 보장해 주는 게 아닙니다. 그쪽에서 좌석에 합당한 사람이 현재 빈 좌석보다 많이 나올 경우 최대 170석까지는 내주겠다는 겁니다.”
중성이 스크린을 통해 강조를 했고, 이를 들은 톰슨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그 합당한 사람을 어떻게 가려낼 겁니까?
상당히 어려운 문제였으나 중성은 별 고민도 하지 않고 방법을 제시했다.
“우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170명에 근접한 수준까지 줄여야겠죠. 그다음엔…….”
그가 제안한 선별법은 일종의 맞비교였다.
시카고는 꼭 살려 놔야 하는 고가치 존재를 추려서 줄을 세우고, 반대로 남양주는 시카고 측에서 추가 좌석을 요구할 경우 내보낼 사람들을 추린 다음 양쪽의 가치를 저울질해 보는 거다.
최초에 정우가 약속한 좌석은 99개였지만 실제론 정확히 100석이 남아 있었다.
정우가 시카고에 성역을 선포하는 사이 남양주에서 살인자를 처형했기 때문이다.
즉, 현재 시카고가 재량껏 살려 낼 수 있는 생존자의 수는 딱 100명인 셈.
그리고 몇 가지 조건이 갖추어진다면 추가로 70명을 더 살릴 수 있다.
“그쪽에서 정해진 좌석 이상으로 살리려는 생존자의 가치가 우리 측에서 내보내야 할 주민보다 더 높으면 됩니다. 다만 이때 양측의 특기가 완전히 달라야 합니다. 이를테면 같은 육체 노동자인데 시카고 쪽의 신체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해서 살려 달라고 하는 건 안 된다는 이야깁니다.”
“…….”
확실히 필요한 말이었지만 중성의 이 발언에 남양주 측 ‘육체 노동자’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가장 먼저 방출될 후보군으로 선정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좋습니다. 그럼 저희는 바로 1차 선별을 시작하겠습니다.
톰슨이 이 말과 함께 자신의 뒤편에 도열한 요원들에게 신호를 보내자 성역 안쪽에 촘촘히 모여 있던 수천의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성역인 남양주는 애초에 방주 탑승자들만을 데리고 세운 ‘계획 도시’였지만 시카고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곳에 모인 사람의 절대다수는 이전 세계에서도 시카고에 거주하던 원주민이었다.
다시 말해서 가족 단위로 모인 경우가 많다는 거다.
작게는 부부만으로 구성된 2인 그룹부터 아이나 사촌 등이 포함된 대가족까지.
그렇다 보니 특기별 분류는커녕 성별에 따라 그룹을 나누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 누구도 자신의 가족과 떨어지길 원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대번에 아수라장이 됐다.
-자, 잠깐! 무슨 짓이야? 우린 전부 한 가족이라고!
-적어도 아이들은 부모 곁에 있게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건 말도 안 되는 짓이야……!
제아무리 요원들이 힘을 되찾았다고 해도 고작 11명으론 큰 힘을 쓸 수 없었다.
이들이 해체시켜야 하는 가족 그룹이 수백 개나 됐기 때문이다.
자식 또는 배우자, 부모를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내지르는 악다구니가 수백 개씩 모이자 요원들도 기가 질리고 말았다.
-이, 이거 쉽지 않겠는데요.
-강제로 끌어낼 수는 있겠지만 이 모든 사람을 일일이 상대하는 건…….
결국 요원 일부가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톰슨을 바라봤고, 이에 남양주에서 현장을 들여다보던 중성이 짤막하게 조언을 했다.
“한 사람이 악역을 맡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뒷말은 아직까진 잠자코 있는 정우 쪽을 바라보는 걸로 대신했다.
무의미한 실랑이로 절대자의 시간을 더 빼앗았다간 약속받은 인원 선별조차 진행할 수 없게 될 거라는 이야기.
-제길.
결국 중성의 말을 이해한 톰슨이 결단을 내렸다.
여전히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꽉 붙어 있는 어느 5인 가족을 향해 팔을 뻗으며 이렇게 물은 거다.
슥.
-혹시 그 안에 의사나 다른 전문 기술직이 있습니까?
-뭐, 뭐라고요?
-지금 설마…….
노인 하나와 중년 부부, 그리고 그들의 두 자식으로 구성된 가족이었다.
-잠깐! 무슨 말인지 알겠…….
톰슨의 눈빛을 보고서 뭔가를 직감한 노인이 황급히 다른 가족들을 밀쳐 냈으나, 톰슨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수를 뿜어냈다.
푸아아아악!
다섯 개의 살덩어리가 시퍼런 정수 파동에 휩쓸려 사라졌고, 이를 본 나머지 시카고 주민들은 일제히 경악하며 뒤로 물러섰다.
-방금 뭐야?
-왜 대답을 듣지도 않고 죽여?
-서, 선별을 한다며…….
그리고 이어서 울려 퍼진 이질적인 음성.
「시카고 주민 여러분, 이건 불가항력입니다. 모두 죽거나 또는 백여 명이라도 살거나…….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두 가지 일 중 하나는 반드시 일어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자발적으로 협조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에겐 그 어떤 선택권조차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톰슨이 자신의 목소리에 정수를 실어 공지를 하고 있는 거였다.
왜인지 모르게 행성 폐쇄 첫날에 지구가 했던 공지와 비슷한 느낌.
다음엔 톰슨이 양팔을 각각 좌우로 비스듬히 뻗으며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인간 남성은 절 기준으로 좌측 100미터, 여성은 우측 100미터 지점으로 이동해 주십시오. 비인간의 경우 중앙으로 모여 주시면 요원들이 따로 안내를 할 것입니다. 각 그룹의 집합 완료까지 앞으로 2분을 드릴 것이며 제한 시간 내에 지정한 자리를 찾아가지 않은 인원은 즉시 제거하겠습니다.」
-……!
즉시 제거.
조금 전 톰슨이 벌인 일로 보건대 결코 농담이 아닐 것이다.
비로소 바짝 붙어 있던 사람들이 슬그머니 서로에게서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때쯤 톰슨이 의미심장한 대사를 읊었다.
「100미터 거리. 2분입니다. 거동이 불편한 분들이 계시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겁니다. 그럼 지금부터 120초를 재겠습니다. 많은 가족이 재회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이동 실시.」
톰슨은 이 말을 끝으로 정말 손목시계의 타이머를 작동시켰다.
틱.
그러자 톰슨 근처에 서 있다가 이 소리를 듣게 된 민간인들이 먼저 허겁지겁 달음질했다.
그리고 이걸 본 다른 가족들도 마침내.
타앗!
부모, 자식, 친척 등을 뒤로하고 달리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