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316
320화. 분기점(7)
* * *
새로운 최강자의 등장.
정우에 대한 순위 평가가 끝나자마자 미국의 구원자 채널에 대격변이 일어났다.
채널 외부에서부터 무려 1위가 새로 편입하면서 모든 구원자의 순위가 하나씩 밀린 것이다.
[31] 군도: 뭐야? [17] 메이데이: 어? [44] 야곱: 대체 어느 선부터 밀린 거지……. [11] 카티아: ……?10위권부터 40위권까지 거의 모든 구간의 구원자가 일제히 동요를 하자 이 파장은 더욱 커졌다.
그러다 끝내는 기존 1위였던 ‘정의’, 맥 테일러까지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번 사태의 윤곽이 명백해졌다.
[2] 정의: 시애틀 학살자의 순위 평가가 끝났다.확인 사살.
이를 본 미국 측 구원자들의 심정은 참담함 그 자체였다.
시애틀 학살을 통해 감당 불가능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막상 1위가 한순간에 뒤바뀌어 버리는 걸 보게 되니 충격이 더 커진 것이다.
[31] 군도: 맙소사. [44] 야곱: 그럼 지금 1위가…….모두가 새 1위의 등장을 기대할 무렵, 마침내 문제의 닉네임이 채널에 나타났다.
[1] 인간: 지금 서부 지역에 생존 중인 자가 얼마나 되지? [17] 메이데이: 인간……? [31] 군도: 헉. [11] 카티아: 기가 막히는데.구원자들의 반응이 갈린다.
드디어 신흥 강자를 채널에서 보게 됐다는 사실에 흥미를 보이는 자가 있는 반면 ‘인간’이라는 닉네임 자체에 놀라는 자도 적지 않았다.
채널에서의 닉네임 선정은 전 세계 단위의 선착순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인간’이라는 단어를 닉네임으로 쓰고 있다는 의미는…….
[44] 야곱: 보통 미친놈이 아니었군. [29] 쿼크: ……어떻게 닉네임이 인간이야? [33] 안개: 첫날부터 상위권이었다는 뜻이지.물론 ‘정의’라는 단어를 선점했던 기존 1위 맥 테일러도 같은 케이스였지만 지구 점유율이 가장 높았던 종의 이름인 ‘인간’이 주는 느낌은 특히나 유난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건, 이 존재가 미 연합에 우호적이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거대한 적에 가깝다는 사실.
어떻게 보면 자주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미 연합엔 침입자보다 박정우가 더 두렵고 위협적인 존재였다.
[1] 인간: 서부에 생존 중인 자가 있냐고 물었다.정우가 재차 묻자 이번엔 미 연합의 실세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자들이 튀어나왔다.
[6] 종이: 우리가 네 질문에 답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하는데.무려 6위가 대화에 끼어든 것이다.
이어선 현시점 각 주의 최강자일 게 분명한 한 자릿수 구원자들이 앞다퉈 모습을 드러냈다.
[9] 협로: 오만한 새끼.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본데. [5] 무덤: 정의가 네 밑을 닦아 주고 있다고 해서 이 나라까지 네 것이 됐다고 착각하면 곤란해. [8] 과산화수소: 우리더러 뭘 어쩌라는 거야? 설마 벌벌 떨기라도 하라는 건가?두 자릿수들과는 확연한 온도 차.
그리고 이것이 미 연합의 공식 입장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말 그대로 연합체군.’
정우는 채널의 반응을 통해 미 대륙의 성격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기성 세계의 미국이 그랬듯, 행성 폐쇄 이후의 미국 역시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치구들이 모인 연합체일 뿐인 거다.
두드드듯…….
그사이 일행이 탄 헬기가 근처에 착륙을 마쳤고, 곧 그 안에서부터 맥 테일러가 쏜살처럼 달려 나왔다.
“난 이미 연합의 지지를 잃었어.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것만으론 다른 요원들을 움직이게 할 수 없을 거야.”
채널의 대화를 쭉 지켜본 맥이 조금 멋쩍다는 듯이 말을 건네 온다.
이에 정우는 그에게 눈조차 돌리지 않은 채 무심히 말했다.
“애초에 그런 건 기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저 녀석들도 나와 각개 전투를 해서는 승산이 없다는 걸 잘 알아. 내가 주문하지 않아도 스스로 모여 줄 거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미 연합의 요원들이 힘을 모아 이쪽을 공격하기 전에 9일 차 진입로가 열릴 거라는 점 말이다.
또한 대량의 정수를 머금고 있을 게 분명한 용의 존재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변수.
[1] 인간: 피라미들에겐 관심 없다. 내겐 ‘용’의 위치가 훨씬 중요해. 서부 상황을 전해 줄 녀석은 없나?그러자 처음으로 제법 묵직한 느낌의 닉네임 하나가 채널에 떠올랐다.
[4] 겨울: 용을 쫓고 있나? 놈이 얼마나 강한 거지?4위, 겨울.
저렇게 운을 떼는 걸로 봤을 때 분명 서부 도시 중 하나의 수호자일 것이다.
[1] 인간: 모르지. 하지만 나보다 강하진 않을 거다. [4] 겨울: ……왜지? [1] 인간: 산술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하니까.짤막한 대화였지만 비단 두 존재만의 대화라고 보기엔 어려웠다.
방금 대사를 통해 정우의 전투력이 모두에게 간접적으로 공개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상대가 누구든 간에 자신보다 더 강할 수 없을 거라는 말이 무슨 의미겠는가.
[4] 겨울: 그럼 지금 서부에 와 있는 건가? 용을 잡으러? [1] 인간: 그렇다. 캔자스 외곽이라고 하더군. 시카고에서부터 곧장 이리로 내려왔으니 날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거다. [4] 겨울: …….무려 미국의 상위 50개체가 공유하는 채널에 위치를 밝히는 대담함.
나머지 구원자들의 감상도 겨울과 크게 다르지 않을 터였다.
이 괴물의 자신감은 진짜인 것이다. 이 대륙의 누구도 새 1위를 꺾을 수 없다.
[1] 인간: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서부 어딘가에 있을 용을 잡아내고 9일 차 진입로를 닫는 거다.이건 어느 누가 들어도 미 연합에 이익이 되는 일이었다.
아직도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파견자인 용과 진입로 모두 미국에 큰 해가 되는 요소였으니까.
[1] 인간: 하지만 물리적 한계가 있어. 내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하루 사이에 이 땅 전부를 돌아볼 순 없잖나. 대륙 동부는 너희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이 말엔 서부의 수호자인 겨울이 아니라 다른 자가 대답을 해야만 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누군가 앞으로 나섰다.
[5] 무덤: 그래서 네 제안은 뭐지?5위, 무덤.
조금 전까지 정우에게 날 선 대사를 쐈던 녀석이다.
재등장 타이밍으로 봤을 때 동부 어딘가에 머물고 있을 게 분명한 존재.
[1] 인간: 제안 따위가 아니야. 경고다. 진입로를 닫으려거든 지금 닫아. 내일부턴 너희들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을 테니까. [5] 무덤: 그러는 너는 되고? [1] 인간: 나조차도 감당이 안 된다면 이 행성엔 미래가 없는 셈이겠지. 그래도 9일 차까지 항거한 기록 정도는 남길 수 있겠군. [5] 무덤: …….무덤 역시 정우와 대사를 얼마 주고받지 못한 채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러자 감히 강자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고 있던 중위권 구원자 하나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져 왔다.
[33] 안개: 그럼 네가 생각하는 우리의 최선은 뭐지?여기에서 ‘우리’란 미 연합을 뜻한다.
이에 마치 준비라도 해 놓은 듯한 정우의 답변이 곧장 쏘아져 나갔다.
[1] 인간: 아까도 말했듯이 오늘이 너희 힘으로 진입로를 닫을 수 있는 마지막 날이야. 정수를 최대한 한쪽으로 몰고, 그 녀석이 직접 움직여야 한다.어설프게 작전을 펼치다가 궤멸자에게 정수를 상납하지 말란 뜻이었다.
[1] 인간: 내일 오는 침입자를 너희가 힘으로 막아 낼 순 없을 거다. 가능하면 놈들과의 거래에서 전력 감소를 사라. [4] 겨울: 잠깐, 내일 정확히 뭐가 오는 거지? 사학자도 9일 차 기록은 보여 주지 않던데. [1] 인간: ……?이건 정우조차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1] 인간: 아무도 기록을 보지 못했나?그가 확인차 물었으나 아무도 답을 해 오지 않았다.
이 자리의 수십 구원자 중 그 누구도 9일 차 기록을 열어 보지 못한 거다.
‘왜지?’
정우가 의식 속에서 혼잣말을 한다.
그러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
스으읏…….
-간섭이 있는 기록을 열어 보려면 간섭이 예정된 영역의 공간이 충분해야만 합니다.
거대한 기척이 일더니 무려 담당 평가관 다467이 입을 연 것이다.
‘……뭐?’
물론 단번에 이해하기엔 너무나도 ‘평가관스러운’ 문장이었다.
정우는 잠시 생각한 뒤 다467에게 추가 질문을 던졌다.
‘9일 차 기록의 간섭 영역이 정확히 뭐지?’
-시간입니다.
‘아.’
정우는 이제야 알겠다는 소리를 냈다.
행성 사9005의 기록을 열어 보는 동안 그 안의 ‘녹스’가 이쪽을 인지하지 않았던가.
즉, 그 현상 자체가 평가관이 말한 간섭인 것이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시간 간섭이라고 해야 할까.
다만.
‘그럼 난 시간 영역의 공간이 충분했고, 저 녀석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건가? 그게 도대체 무슨…….’
여기까지 말하던 정우는 순간 눈을 부릅떴다.
추론이 끝나서였다.
‘9일 차 기록을 열어 볼 수 없다던 녀석들은 내일 다 죽는구나. 무조건.’
확정된 미래.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예정된 미래를 바꿀 능력이 없는 자들인 거다.
‘…….’
정우는 아주 간만에 소름이 돋아 오르는 걸 느꼈다.
그리고 비로소.
|현재 예정된 미래 열람- 40,740
2번 법칙에 의해 예정된 최우선 미래를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행성 사9005의 기록 속에서 봤던 녹스의 판매 상품 중 한 가지를 떠올렸다.
‘예정된…… 최우선 미래.’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예정된 다른 미래도 있다는 뜻이리라. 여러 변수의 작용을 통해 미래가 바뀔 여지가 존재한다는 의미.
‘내 미래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긴 하겠군.’
정우는 구원자 채널에서 눈을 떼어 낸 뒤 아직도 지척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 세 인간을 쳐다봤다.
자신에게서 달아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캔자스의 무법자들 말이다.
“…….”
정말로 우주의 절대적 법칙이 미래를 포함한 모든 걸 관장하고 있다면 지금 이 앞에 서 있는 세 존재의 미래도 이미 정해져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미래에 영향을 줄 절대적 변수는 뭘까?
현시점 세 사람의 생사 여탈권을 쥐고 있는 이쪽의 심리?
아니다. 아마 당장 이들을 살려 보내도 결국엔 어떻게든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다른 요원에게 죽든, 운 나쁘게 ‘용’을 조우해 집어 삼켜지든 간에 말이다.
‘어찌 됐든 결과는 똑같겠군.’
예정된 최우선 미래…….
정우는 이 기묘한 개념을 곱씹으며 오른손에 빚어냈던 정수 창을 강하게 그러쥐었다.
그드듭.
그러자 정우에게서 살기를 느낀 3인조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주춤거렸고, 그러다 한 사내가 용케 목소리를 냈다.
“어, 어차피 저희를 죽여 봐야 별 의미 없으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제발 자비를…….”
이에 정우는 아주 잠시 생각한 뒤 바로 답을 줬다.
“별 의미가 없는 존재기 때문에 죽일 수밖에 없다. 너희는 어쨌든 죽어. 어쩌면 이런 걸 보고 운명이라고 하는 걸지도 모르지.”
“……?”
납득할 수 없다는 얼굴의 3인조.
정우는 그런 인간들을 향해 무심히 창을 휘둘렀다.
홰애애액!
매서운 파공음과 함께 시퍼런 궤적이 그려졌고, 곧 푸르스름한 정수 구체가 연달아 허공에 솟구쳤다.
파팟, 팟, 팟!
세 존재의 얄팍한 죽음.
이건 아마도 일찍부터 예정된 미래일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