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325
329화. 큰손(1)
* * *
우주가 보증하는 거래.
드디어 올 것이 왔다.
“…….”
정우가 경직된 얼굴로 서두를 모두 읽어 내자, 곧장 새로운 문구가 길게 펼쳐졌다.
우주적 관점에서 거래 가치가 있는 박정우의 구성물들이었다.
|보유한 모든 성역 – 50,000
|시간 개념 – 31,860
|팔 하나 – 36,500
|다리 하나 – 34,680
|모든 눈 – 21,000
|용맹함[A] – 16,400
|잔혹성[B] – 8,500
|박애[A] – 30,020
|목적의식[S] – 112,000
|판단력[A] – 40,150
|정수 감응력[A] – 31,000
|즉시 사망 – 500,000
‘……아.’
이것이 바로 우주가 평가한 박정우의 가치.
정우는 자신이 고평가 받았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사9005의 최강자였던 시퀴오와 비교하더라도 대다수 상품의 가격이 높게 책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코 긍정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비싼 것들은 하나같이 치명적이군. 애초에 값이 비싼 건 큰 의미가 없어. 어차피 팔아선 안 되는 것들이니까.’
이를테면 A급 판정을 받은 ‘판단력’과 S급 판정을 받은 ‘목적의식’.
이 두 가지 특성의 작용으로 인해 그는 자신의 상품 목록을 보자마자 비싼 것 중 하나를 정리하자는 생각보다는 눈과 팔을 떼어 내게 될 것이란 예감부터 했다.
그것이 중장기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선택임을 간파한 탓이다.
그런데 만약 이 자리에서 두 가지를 팔아 버린다면?
‘앞으로 이런 선택지가 또 주어졌을 때 현명할 수 없을 거야. 행성 폐쇄를 즉시 멈춰 준다는 조건이 아닌 이상 팔아선 안 돼. 오늘은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 몰라도 내일을 기약할 수 없을 거다.’
오히려 확인을 받은 걸지도 모른다.
녹스가 이쪽의 목적의식을 11만 포인트나 주고 사려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만큼 압도적 가치를 지녔다는 의미다.
‘시퀴오의 목적의식은 A급이었는데도 1만 9천 포인트밖에 안 됐어. 즉, S급 상품은 행성 단위로 쳐도 흔치 않다는 의미다.’
정우는 우선 자신이 절대 팔 생각이 없는 상품부터 제외했다.
즉시 사망, 목적의식, 판단력 그리고 보유한 모든 성역.
현시점 행성 최강자일 게 분명한 이쪽이 성역을 팔아 버리면 폐쇄 절차가 끝나더라도 행성에 산 것이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면 너무 형편없어지는데.’
|시간 개념 – 31,860
|팔 하나 – 36,500
|다리 하나 – 34,680
|모든 눈 – 21,000
|용맹함[A] – 16,400
|잔혹성[B] – 8,500
|박애[A] – 30,020
|정수 감응력[A] – 31,000
중요도가 압도적인 것들을 제외하자 8개 상품이 남았다.
이제부터 정해야 할 것은 ‘신체를 얼마나 포기할 것인가’.
인간의 육신 자체에 큰 미련은 없었지만, 이것이 앞으로의 전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그것은 큰 문제가 된다.
‘내가 만약 눈과 팔다리를 전부 판다면…….’
그럴 경우 획득할 수 있는 재화는 163,360.
이것으로 충분한가?
확실히 시퀴오가 온갖 것을 내다 팔며 확보했던 포인트보단 많았다.
그러나 행성 사9005와 지구의 상황은 다르지 않은가.
애초에 사9005는 9일 차까지 달려오며 잃어버린 정수가 많지 않았고, 공유 의식까지 가지고 있었다.
‘네가 판매할 상품은 뭐가 있지? 가격을 알고 싶다.’
정우가 녹스에게 이렇게 주문하자, 곧 그의 상품 목록 오른편에 또 다른 문구들이 펼쳐졌다.
|융합 – 32,500
종의 경계가 없는 존재로 거듭납니다.
조건에 부합하는 대상과 융합할 수 있게 됩니다.
|녹스의 위력 50% 감소 – 21,045
현 시점 거래 상대로 지정된 녹스의 위력을 감소시킵니다.
|현재 예정된 미래 열람 – 40,740
2번 법칙에 의해 예정된 최우선 미래를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구매자 교체 – 80,000
판매자가 마주한 구매자를 다른 존재로 교체합니다.
거래 의사가 있는 구매자 중 가장 깊은 존재가 방문합니다.
|완전 봉쇄 – 170,000
9일 차 행성 폐쇄 절차를 무효화합니다.
10일 차가 개시되는 시점까지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정찰제군.’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지구에서의 판매가도 사9005 때와 똑같았다.
이에 정우는 판매 후보군에서 몇 가지를 더 제외했다.
시간 개념과 정수 감응력.
|팔 하나 – 36,500
|다리 하나 – 34,680
|모든 눈 – 21,000
|용맹함[A] – 16,400
|잔혹성[B] – 8,500
|박애[A] – 30,020
이제 6개 상품이 남았다
팔다리와 눈은 사실상 판매 확정이고, 유일하게 정우를 망설이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박애’였다.
왜냐하면 박애의 사전적 정의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사랑함.’이었으니까.
하지만 진짜 문제는 박애가 동일하게 A급 판정을 받은 용맹함보다 가격이 훨씬 높다는 점이었다. 무려 두 배 가까이 된다.
‘왜지?’
단순히 우주적 존재들이 더 탐을 내는 가치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이것이 어떤 식으로든 생존 난이도나 행성의 생태계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인가?
그저 강한 적만이 당혹감을 느끼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정우는 망설였다.
‘박애를 남겨 둔다면.’
그럴 경우 최종적으로 얻을 수 있는 건 188,260포인트.
완전 봉쇄를 구매하기에 충분한 양이다.
‘혹시 상품에 대한 부가 설명도 해 주나? 완전 봉쇄를 사면 어떤 일이 벌어지지? 너희들이야 당연히 물러가겠지만, 그사이에 진입로 폐쇄도 가능한지 알고 싶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존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완전 봉쇄가 발동되면 모든 진입로가 일시적으로 소멸합니다.
평가관 다467이 녹스를 대신해 부연을 한 것이다.
정우는 평가관이 녹스의 상품 효력까지 꿰고 있는 것에 잠시 놀랐으나, 이내 필요한 질문부터 서둘렀다.
‘그럼 9일 차 침입자야 막아 낼 수 있지만 10일 차가 오는 건 피할 수 없다는 거네. 일종의 스킵 기능인 거군.’
-그렇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시간을 벌고 싶은 행성이라면 저걸 샀겠네.’
그러나 녹스와 대적할 존재가 있는 지구엔 필요 없는 상품이었다.
‘기다려.’
평가관의 존재감이 다시 옅어지는 걸 느낀 정우가 상대를 붙잡는다.
‘곧 내 팔다리가 사라질 텐데, 이 자리에 무구를 채워 넣는 것도 가능한가?’
정우는 이 말을 하면서 자신의 손을 꽉 쥐었다가 폈다.
만에 하나 무구로 수족을 대체하는 게 가능하더라도 그게 어떤 느낌일지 감조차 오지 않아서였다.
그러자 그의 의식 속에서 육중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어쩌면 녀석이 정우의 몸을 훑어보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더니 곧 평가관의 존재감이 커지며 답이 흘러나왔다.
-가능합니다.
‘훌륭하군.’
정우는 평가관과 여기까지 대화한 뒤, 다시 거래 대기 중인 녹스에게 시선을 옮겼다.
“거래하겠다. 우선 5개 품목을 팔도록 하지.”
그가 선택한 상품 다섯 가지는 박애를 제외한 나머지였다.
|팔 하나 – 36,500
|다리 하나 – 34,680
|모든 눈 – 21,000
|용맹함[A] – 16,400
|잔혹성[B] – 8,500
총합 188,260포인트.
이에 녹스가 까만 구 형태의 몸뚱어리를 짧게 떨더니 신체 표면에 새 문구를 띄웠다.
「가승인되었다. 네가 구매할 상품을 선택해라.」
아마도 모든 거래가 확정되면 한꺼번에 맞교환을 하는 듯.
“일부러 포인트를 남겼다가 다음 녀석과의 거래에서 사용하는 게 가능한가?”
「가능하다.」
“좋아. 그럼 우선 융합을 사고…….”
정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녹스의 판매 목록에서 융합이 흐릿하게 변했다.
“그다음엔 구매자 교체를 한 뒤 포인트를 남기겠다.”
|구매자 교체 – 80,000
판매자가 마주한 구매자를 다른 존재로 교체합니다.
거래 의사가 있는 구매자 중 가장 깊은 존재가 방문합니다.
무려 8만 포인트나 투자해야 하는 상품이다.
그의 결정에 녹스가 곧바로 반응했다.
「확실한가? 구매자의 유형에 따라 내가 사라질 수 있다.」
“뭣……?”
이건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
대체 어느 수준의 구매자까지 나타날 수 있기에 9일 차 침입자인 녹스가 사라질 수 있단 말인가.
“사라진다는 게 정확히 어떤 의미지? 네가 죽는다는 건가?”
「그렇다.」
“네가 사라져도 거래 결과는 유효하고?”
「경우에 따라 그렇다. 그러나 우주가 보증하는 거래이므로 어떤 방식으로든 상품은 보전된다.」
경우에 따라.
정우는 왜인지 녹스가 순간 위축됐었단 느낌을 받았다.
녀석이 말한 ‘경우’ 중에 녹스가 감당할 수 없는 존재가 분명 속해 있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상품이 보전된다면 아무리 악랄한 놈이 와도 이 행성을 어떻게 하진 않을 거란 뜻도 되겠군.”
「거래 범주를 벗어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럼 구매자를 교체해.”
「거래 확정인가? 구매자를 교체하려면 거래를 확정해야 한다.」
“확정이다.”
정우가 대답을 하자 녹스의 표면에 초월적인 문자가 나타났다.
「거래가 승인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 ……!
뒤편에서 이 거래를 지켜보던 재규어와 용이 몸을 바르르 떨었다.
박정우가 몸에 걸치고 있던 셔츠의 소매 부분이 휑하게 비더니 이내 축 늘어졌기 때문이다.
동시에 바지 실루엣도 뭔가 이상해지면서 그의 몸뚱어리가 통째로 곤두박질했다.
빈 담뱃갑이 구겨지듯 정우의 정장 바지가 힘없이 무너진다.
바지 안에 더는 다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는 바지춤에 가슴이 감싸인 채 땅바닥과 맞닿아야만 했다.
퍼억!
잽싸게 보호막을 두른 덕분에 턱과 앞니가 깨지는 건 막을 수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더는 제자리에서 일어나는 간단한 동작조차 할 수가 없게 됐다.
“……이런.”
정우는 팔의 절단면을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고개를 비틀었다가 뒤늦게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두 눈도 팔아 버렸던 것이다.
분명 눈을 뜨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빨리 무구부터.’
신체적 제약이 생기는 건 생각보다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어쩌면 지금도 항상성이 떨어지고 있을까?
그가 서둘러 ‘대장간’을 활성화하려고 하자, 의식 속에서 평가관의 존재감이 쪼그라드는 게 느껴졌다.
그러더니 종래엔 완전히 사라졌다.
‘……?’
당황한 정우.
뭔가 잘못되어 간다고 생각해 황급히 정수를 흩뿌려 사위를 감지하려 했으나…….
‘어.’
조금 전까지만 해도 팔팔 끓던 정수가 온데간데없었다.
그 대신.
스아아아아…….
어디선가 소름이 돋아 오를 정도의 한기와 함께 수많은 의미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이건 결코 정우의 생각이 아니었다.
‘재, 재밌다고……?’
인지 한계 이상의 속도로 범람하는 의미들 속에서 정우가 가까스로 한 가지를 건져 낸다.
이때쯤 정우는 가슴과 턱에 아무것도 닿지 않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땅바닥이 사라진 것이다.
‘……아.’
사태를 깨달은 정우는 감히 정수를 다시 활성화할 마음조차 먹지 않았다.
그러자 비로소 공간감이 겨우 허락됐다.
무한, 이라는 표현을 갖다 붙여도 될 정도의 광대한 영역.
정우는 까마득한 어둠 속 어딘가에 떠 있었다.
후우우우욱…….
발밑으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무언가가 헤엄쳐 지나간다.
그리고 몹시 춥다.
정우는 자신과의 거래에 누가 입찰했는지 알 것 같았다.
탑에서 조우했던 ‘첫째’와 ‘둘째’가 지구에 직접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