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34
34화. 생방송 (2)
“뭐……?”
받을 사람이 없을 거란 정우의 말에 경호원들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현장에서 약 6미터 정도 떨어져 있던 선웅은 순간적으로 정우의 오른팔이 파랗게 빛나는 걸 봤다.
그러더니 그의 오른손에서부터 시퍼런 검신이 솟구쳐 올랐다.
물체화와 신체 강화를 동시에 시도한 것이다.
다음엔 선웅의 동체 시력으론 좇을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출수가 이어졌다.
파아아앗!
번개 같은 횡 베기.
선웅의 동공이 확장됐을 때쯤엔 이미 두 동강 난 사내들의 몸뚱어리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뒤였다.
여덟 정의 권총 중 그 어떤 것도 격발되지 못했다.
“아…….”
선웅은 뒷덜미가 찌릿할 정도의 전율을 느끼며, 안내 데스크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서 사태를 관망하던 두 여자는, 눈앞의 일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이 들었는지, 왼쪽에 있던 여자가 데스크 밑의 무언가를 얼른 조작했다.
비상 버튼이었을 것이다.
만에 하나 저 버튼으로 인해 전투조가 더 내려온다면 그거야말로 박정우가 원하는 일일 터.
‘이건 뭐…… 정우 씨 말대로 일방적인 사냥이네. 대성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구나.’
대기업에겐 분명히 힘이 있다.
권력, 재력, 인력…….
그러나 변질된 이 세계에서 무조건적으로 통용되는 힘은 아니다.
특히 이 모든 걸 해결할 열쇠를 쥔 자들에겐 기득권자가 지닌 것들이 더는 ‘힘’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지금 정우가 똑똑히 보여 주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커진다고 해도 어쩌면…….’
선웅은 바닥의 핏물을 피해 가며 정수 덩어리를 골라 밟고 있는 정우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대성이 정말 순위권 구원자를 영입하고 싶어 한다면, 그가 주력 계열사 사옥을 통째로 날려 버렸다는 것 정도는 묵인할지도 모른다.
아니, 묵인해야 할 수밖에 없을 거다.
현 시점에 정수 1만 개짜리 구원자를 구속하거나 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이봐요, 이 위에 사람이 얼마나 있습니까?”
그새 정수 흡수를 마친 정우가 데스크를 향해 물었다.
그러자 아까 버튼을 눌렀던 여자가 로비 끄트머리의 엘리베이터를 흘깃 보더니 냉랭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주 많아요. 하지만 전부 일반인이고, 당신들을 해칠 생각도 없어요.”
겁을 먹기는커녕 도리어 정우를 쏘아본다.
턱 선에 걸치는 단발머리에 아주 옅은 색조 화장.
데스크 담당이 대개 그렇듯이 미모가 출중했다.
정우는 여태 볼륨을 유지하고 있는 여자의 머리카락 끝을 잠시 보다가 그 옆으로 시선을 옮겼다.
“흐윽, 흑…….”
그곳엔 겁에 질려서 온몸을 달달 떠는 여자가 있었다.
단발머리의 데스크 파트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료하다는 표정으로 휴대폰을 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이른 아침부터 열심히 손질했을 긴 생머리가 발발 떨리는 어깨 근처에서 지저분하게 흩어진다.
이에 ‘단발’이 자신의 동료를 감싸 안듯이 하며 정우의 시선을 가로막았다.
“그쪽은 여자고 뭐고 다 죽이나요?”
실제로 일이 벌어지기 전에 먼저 엄포를 놓으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
정우는 고개를 살짝 갸웃하면서 되물었다.
“그럼 여자를 죽이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따로 있나요? 전 가급적 공평하게 처리하려고 해요. 도움이 안 되면 누구든지 없앱니다.”
물론 거짓말이다.
정우는 자신이 단발에게 성적으로 매우 끌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런 상황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배짱도 마음에 들었고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죽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죽이지 않는다고 해서 이 여자와 하루아침에 연인이나 친구 사이라도 될까?
정우는 애초에 그런 걸 바라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강간을 하거나 옆에 붙이고 다니며 스톡홀름 증후군 같은 걸 기대할 생각도 없었다.
‘예쁘다는 이유 하나로, 이 여자의 가치가 높다고 착각 중인 거다.’
정우는 자신의 상태를 스스로 진단했다.
관점과 상황에 따라선 미모도 ‘가치’의 하나지만, 지금은 아니다.
더군다나 이 여자는 대성 측 직원.
만에 하나까지 고려해서, 언젠가 방주에 태울 여자가 필요해진다고 해도 이자는 아니었다.
즉, 이 여자를 살린다면 그 이유는 온전히 정우 자신의 욕구 때문인 것이다.
‘정리하고 가자.’
마음을 굳힌 정우가 만년필에 서서히 힘을 주려고 할 즈음.
“다, 당신도 같은 생각이에요? 두 사람 다 그, 그런 부류냐구요!”
단발이 이번엔 선웅을 쳐다보면서 호소하듯이 외쳤다.
외관상으론 ‘포식자’라는 문구 때문에 정우보다 더 무서워 보이는 인물이다.
신장 또한 한참 크지 않던가.
“아, 전…….”
얼떨결에 운을 떼 버린 선웅이, 단발의 시선을 피해 데스크 뒤편의 통유리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러다가 유리에 비친 것들을 보게 됐다.
이 앞쪽에선 볼 수 없던 광경.
데스크 밑에서 바들바들 떨리고 있는 ‘단발’의 두 손이나 하이힐 덕에 팽팽해진 종아리 등이었다.
더불어 이 여자의 시선도 일부분 공유하게 됐다.
통유리 안쪽으로 정우와 선웅 자신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으니까.
“아…….”
선웅은 그제야 여자가 자신에게 호소해 온 이유를 알게 됐다.
넥타이를 벗어 던지고 셔츠 소매를 제멋대로 걷어 올린 정우와 달리, 이쪽은 아직도 넥타이를 단단히 매고 있던 것이다.
‘내가 좀 더 상식적일 거라고 기대한 건가.’
씁쓸한 마음이 든다.
자신이야말로 정말 볼썽사나운 인간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박정우야 제대로 된 힘이 있고, 구원자라는 사명이 있다지만, 이쪽에겐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굳이 정우의 뒤를 쫓아다니며 살육 현장에 불쾌해하고 있는 것이다.
왜?
결국 살고 싶어서다.
남을 죽일 능력은 고사하고 그럴 의지도 없지만, 그래도 이런 세상에서 계속 살아가고는 싶어서.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선웅은 비로소 여자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게 됐다.
“당신이 저 사람들과 뭐가 다른데요? 살려 주면 달리 해 줄 거라도 있습니까.”
선웅이 가리킨 건 벌건 고깃덩어리로 변한 경호원들이었다.
이에 단발이 막막해졌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됐어요. 올라갈 준비하죠.”
정우가 두 사람의 대화를 끊듯이 난입하더니, 서둘러 만년필을 들어 올렸다.
시간을 더 끌다간 단발도 사당역의 그 여자처럼 ‘뭐든지 하겠다’ 같은 헛소리를 지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였다.
어차피 살려 주지 않을 거라 상대방의 존엄성을 더 훼손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때.
띵!
그 누구도 주목하고 있지 않던 1층 로비의 엘리베이터에서 청명한 소리가 났다.
“……?”
돌발 상황에 정우가 살짝 놀라자 선웅이 얼른 말했다.
“아마 지원군일 겁니다.”
아까 단발이 버튼을 누르던 걸 보고서 예상한 바다.
엘리베이터는 이미 뭔가를 태운 상태로 1층에 도착한 상태였다.
이제 곧 문이 열릴 텐데, 정우는 그리로 정수 파동을 쏠 수가 없었다.
현재 정수, 11,190개.
정수가 너무 큰 폭으로 늘어난 탓에 엘리베이터를 손상시키지 않는 선에서 파동을 뿜어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엔 또다시 ‘물체화’ 효과에 기댔다.
파아앗!
그의 오른팔에서부터 시퍼런 칼날이 솟구치자 단발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정우는 이미 신체를 강화한 상태로 엘리베이터를 향해 달려가는 중이었다.
“…….”
선웅은 인간이 맞나 싶을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는 정우를 보면서, 문득 사자를 떠올렸다.
대법원에서 학생들을 도륙하던 그 짐승.
지금 상황에선 정우가 사자나 다름없었다.
어차피 이종(異種)과의 대화도 가능해진 마당에 종족 분류는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드르륵.
이윽고 엘리베이터 문이 좌우로 갈라지면서 24인용 실내가 드러났다.
그 안에서는 살기등등한 표정의 사내 열한 명이 권총과 진압봉 등을 들고 대기 중이었다.
대부분 로비를 지키던 경호원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이 중에 두 사람은 정수가 200개가량 되는 각성자였다.
그러니 말없이 엘리베이터 앞을 지키고 있던 정우의 모습을 보고서 놀란 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가 뽑아낸 검신의 밀도, 뚜렷한 형태.
정수에 대한 이해가 좀 있던 이들은 머릿속이 하얘졌다.
“남은 경비 인력이 저게 다인 거죠?”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약 10미터 떨어진 안내 데스크 앞.
선웅은 정우가 사내들 사이로 들어서는 걸 보면서, ‘단발’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정신적으로 너무 피곤한 하루다.
그도 이제 그만 쉬고 싶었다.
“…….”
당연하게도 대성 측 직원인 단발이 선웅의 질문에 대답을 해 줄 리 없었다.
대신 그녀는 문이 닫히다 도로 열리길 반복 중인 엘리베이터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스르륵, 퉁.
문이 닫히려고 할 때마다 문간에 떨어진 시체 조각이 짜다 남은 자몽 조각처럼 찌부러졌다.
정우는 엘리베이터 중앙에 서서, 앞뒤 가릴 것 없이 마구잡이로 칼날을 쑤셔 대는 중이었다.
압도적인 힘을 앞세운 싸움임에도 전혀 세련되지 않고 억척스러웠다.
그라고 해서 이 일을 즐기는 건 아니었으니까.
세련되게 사람을 죽이는 법이 존재는 하는가?
어쨌든 정우는 검술에 정통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팔을 밀고, 당기고. 단순 동작이 계속됐다.
“저 사람이 당신들이 찾던 구원자입니다. 정확히는 1위 구원자죠. 현재 진입로를 닫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고요.”
선웅이 음울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동안 살육의 현장을 보는 단발의 초점이 점점 흐려졌다.
불쾌하고 불편한 분위기가 장내를 휘감는다.
선웅도 기분이 더러웠다.
항문 바로 밑에서 배변 과정을 들여다보는 느낌이었으니까.
“후.”
마침내 정수를 흡입하기 위한 저작 운동이 끝났다.
정우는 엘리베이터 밖으로 빠져나오며 여태 참고 있던 숨을 세게 내뱉었다.
짙은 피비린내 때문이다.
여태 흰색을 잘 유지하고 있던 그의 셔츠는 결국 붉은색이 돼 버렸다.
이제 남은 일은 엘리베이터 안의 시체를 밖으로 밀어내고, 데스크의 여자들을 지워 버리는 것.
슥.
정우의 고개가 선웅과 두 여자에게로 돌아가자 여태 꼿꼿이 땅을 짚고 있던 단발의 하체가 주춤했다.
이를 본 선웅의 미간이 푹 파였고, 정우는 그저 단발이 아무 말도 하지 않길 바랐다.
“선웅 씨, 잠시.”
정우가 자신의 동료를 향해 시선을 주자 선웅이 슬그머니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정수 파동이 뿜어져 나올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
단발이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고, 드디어 그녀가 데스크 밖으로 걸어 나왔다.
또각, 또각.
하이힐의 뾰족한 굽이 바닥을 찍는데, 박자가 엉망이다.
데스크 아래 감춰져 있던 그녀의 나머지 부위는 아주 타이트한 미니스커트와 하얀 맨다리였다.
골반 양쪽 끝과 복부가 시작되는 지점 사이가 팽팽히 당겨지며 삼각 면이 만들어진 게 보인다.
정우는 자신도 모르게 스커트 위의 삼각 면에 눈길을 줬다.
그러자 이에 맞춰 단발이 성대를 진동시켰다.
“살려 주세요,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