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357
361화. 굴절(2)
팟……!
마침내 정우와 민구가 금빛 경계선을 지났다.
수십의 관중을 뒤로 한 채였다.
여전히 정수 보호막을 전개 중인 마이어드 켄들과 총구를 전방으로 내민 주민들 말이다.
스아아앗.
성역을 벗어나면서 모습이 급격하게 변화한 건 단연 정우였다.
시퍼런 사지가 새로 돋아난 건 물론 감히 ‘거인’이라고 표현해도 될 만한 크기의 무구가 생성됐으니까.
“세, 세상에.”
“헉…….”
성역의 주민들은 이를 보고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외형만 보면 박정우와 침입자의 차이를 쉽게 짚어 낼 수 없어서였다.
반면 켄들은 안도했다.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않은 것 같군.’
어차피 구원자들은 전부 괴물이다.
상대가 미래에서 왔음을 인정한 마당에 파란색 거인이 하나 더 붙었다고 해서 놀랄 것까진 없었다.
다만 아무것도 디디지 않고 허공에 떠 있는 것만큼은 신기해 보였다.
“……이제 다 된 건가?”
켄들이 이렇게 묻자 정우가 손가락을 들어 성역의 어딘가를 가리켰다.
“북쪽 경계부를 비워 놔. 10일 차가 도래하기 전에 돌아오겠다.”
“좋다, 약속하지.”
켄들의 확답을 들은 정우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허공에 떠 있는 민구를 바라봤다.
겉보기엔 민구도 자력으로 부양 중인 것 같았으나 실제론 정우가 그의 발을 떠받치고 있는 거였다.
“이제 가죠. 남은 시간 동안 최대한 진입로를 닫을 겁니다.”
“어떻게 간다는 거냐……? 나는…….”
민구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발밑을 바라보자 정우가 먼저 이공간 저편으로 몸을 날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달리세요. 길은 깔아 뒀으니까.”
* * *
현재 시각, 오전 4시 49분.
하지만 정우는 굳이 시계를 보지 않아도 시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쿠아앗……!
갑자기 이공간 아래쪽에서부터 시커먼 가시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진입로 폐쇄를 막기 위해 몰려든 녹스였다.
“저, 정우야!”
생각보다 많은 숫자에 민구가 눈을 시퍼렇게 밝히며 아들을 불렀고, 이에 정우는 뒤를 따라오고 있는 무구에게 지시했다.
“진입로부터다.”
그러자 무구가 갑자기 제동을 하며 뒤편으로 빠졌다.
쏴앗!
“어……?”
민구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고개를 돌렸다가 무구가 십여 마리의 녹스와 엉겨 붙는 걸 보고서 입을 쩍 벌렸다.
아무리 괴물이라지만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 않던가.
민구로선 무구에게 감정 이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저대로 괜찮은 거냐?”
후두두둑!
이 와중에 울려 퍼지는 묵직한 타격음. 무구가 사정없이 두들겨 맞고 있었다.
그러나 정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민구에게 말했다.
“무구는 파괴되지 않아요. 알아서 잘 끌고 올 겁니다.”
“…….”
아마도 맞는 말일 거다.
무구가 녹스들 사이에서 허우적대는 사이 정우는 계속해서 달려 나갔고, 민구도 그를 따라 부리나케 달음질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은 편치 않았다.
단순히 무구 때문만은 아니었다.
모든 걸 뒤로하며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아들의 모습 때문만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저 왜인지 모를 께름칙한 느낌이 목 언저리를 맴돌았다.
“정우야.”
“예.”
여느 때처럼 뒤를 돌아보지 않는 정우.
민구는 그런 정우의 뒷모습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내게 목숨 대신 달라고 하겠다던 거, 그게 뭔지 기억나느냐? 생각해 보니 답을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러자 정우가 잠시 생각한 뒤에 대답했다.
“뭐가 됐든 주겠다고 하셨는데요.”
“……그렇긴 하지만 뭘 줘야 하는지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냐.”
“때가 되면 알게 되실 겁니다.”
정우가 이 말을 할 때쯤 드디어 부자의 패스파인더가 동시에 움직였다.
진입로가 가까이 다가온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방의 허공에 거대한 구멍이 나타났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첫 번째 진입로였다.
“허.”
민구는 진입로를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은백색 수염을 실룩였다.
비로소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 깨달은 탓이었다.
지구의 대지는 한 점도 없고 온통 이공간뿐인 이곳.
지독하리만치 고독한 느낌이다.
민구는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스쳐서, 정우에게 다시 물었다.
“내게 목숨 대신 다른 걸 달라고 하겠다는 건, 내가 죽지 않을 거라는 뜻이 아니냐? 내가 정확히 뭘 하게 되는 거지?”
“…….”
그러나 정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묵묵히 팔을 들어 정수 창을 빚은 뒤 진입로를 향해 내던질 뿐이었다.
쐐애애애애액!
민구의 음성을 덮어 버릴 기세로 파공음을 내는 창.
콰작!
눈 깜짝할 사이에 중앙부를 관통당한 진입로는 이내 폐쇄 전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우는 그걸 확인한 뒤 곧바로 다음 진입로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아무래도 민구의 질문에 답을 주진 않을 듯.
이에 민구는 제자리에 우뚝 서 버렸다.
“박정우.”
이것이 행성 폐쇄만을 보고 달리는 중인 정우에게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줄지 알고도 택한 행동이었다.
만약 녀석이 이쪽을 살린 이유가 단순히 여분의 정수나 동료가 필요해서라면 대번에 목을 치려 들 것이다.
꼭 필요하지도 않은 존재의 생떼를 받아 주는 것보단 시간을 단축하는 게 더 이익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난 답을 들어야겠다.’
민구는 네발로 시커먼 허공을 꽉 쥐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우는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볼 뿐 민구에게 그 어떤 공격도 하지 않았다.
‘이번 미래’를 위해 준비한 박정우의 계획에 민구가 필수불가결한 존재라는 의미일 것이다.
“……아버지.”
잇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게 여실히 느껴질 정도로 정우의 발음이 뭉개진다.
그러고는 그사이 저 뒤편에서 실루엣을 보이기 시작한 무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놈이 녹스 떼를 몰고 오는 중인 거다.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반면 민구는 오로지 정우에게만 시선을 고정했다.
“내가 계획을 미리 듣는다고 한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것 같으냐? 뭐가 됐든 다 받아들이겠다. 다만 우리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는 거라면 너무 늦기 전에 알아야 한다는 거다. 난 너와 다르니까.”
민구의 이 말은 아들을 떠나보낼 시간을 달라는 거였다.
물론 민구에겐 시간 개념이 없었고, 그렇기에 더욱 불안함을 느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아들의 죽음, 또는 그것보다 더한 것.
이미 많은 걸 내려 둔 정우에겐 아무런 상관이 없을지 몰라도, 여전히 정우를 아들로 기억하고 있는 민구에겐 차원이 다른 문제였던 것이다.
“자비를 베풀어다오.”
민구가 아들에게 자비를 구걸한다.
실제로도 민구에게 주어질 수 있는 시간은 최대 3시간이었다.
3시간 뒤면 무슨 짓을 해도 10일 차가 시작되는 걸 막을 수 없을 테니까.
“…….”
이에 정우는 한층 더 가까워진 무구와 녹스 무리를 향해 정수 창을 쏘아 보낸 뒤 딱딱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아버지의 예상대롭니다. 10일 차가 시작되고 나면 절 죽이셔야 해요.”
“뭐……? 어째서 10일 차가 시작되고 나서지? 그때면 놈들이 널 통해서 이곳으로 온다고 하지 않았나?”
“지금 절 죽이려고 하면 놈들이 당장 현신할 테니까요.”
놈들.
지금도 정우의 의식 속에 들어 있을 첫째와 둘째를 이르는 거였다.
“그럼 진입로를 최대한 닫고 나서 죽겠다는 거냐?”
“예.”
아까와 달리 상당히 잽싼 답변.
민구는 석연찮은 기분이 들었으나, 이렇다 할 반박 거리를 찾지 못했다.
답을 마친 정우가 벌써 네 번째 정수 창을 던지는 중이기도 했고 말이다.
쐐애애애액!
귓가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간 정수 창에 민구는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바로 뒤편에서 자신과 꼭 닮은 모습을 한 무구가 녹스들을 덕지덕지 붙인 채 달려오고 있는 게 보였다.
더는 폐를 끼쳐선 안 되는 것이다.
“제길.”
결국 민구는 정우를 앞질러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 * *
오전 7시 3분.
진입로 표식 방향으로 달려가던 정우가 갑자기 반대편으로 몸을 돌렸다.
“…….”
이를 본 민구는 전에 없던 두려움에 휩싸였다.
드디어 그때가 왔다는 의미였으니까.
“도…… 돌아가는 거냐? 아직 진입로가 남았는데.”
민구는 발치의 패스파인더를 바라봤다.
현시점 남은 진입로는 두 개.
정우가 보고 온 미래와 똑같은 개수였다.
그 이상 빠르게 움직일 순 없었던 거다.
민구에게도 허공을 밟는 능력이 있었거나 우비를 보유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으나…….
“예,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젠 돌아가야 해요. 더 늦으면 성역에 들기도 전에 10일 차를 맞이하게 될 겁니다.”
정우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고, 민구로선 아들의 말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파아앗!
이윽고 정우가 성역 방향으로 질주를 시작하자 그의 그림자처럼 움직이던 무구도 방향을 틀었다.
민구 역시 정우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지 않으면 이공간 위에 서 있을 수 없었기에 서둘러야만 했다.
‘이제 정말 끝나 가는구나.’
민구는 네발을 교차해 허공을 박차면서, 벌써 저만치 나아가고 있는 정우를 바라봤다.
녀석의 모습은 마치 밤하늘을 가르는 불화살 같았다.
이공간으로 범벅이 된 일대는 지평선을 찾아낼 수 없을 정도로 까맣기만 했고, 이 안에서 빛을 내는 건 정수뿐이었기 때문이다.
“…….”
감히 불가사의라고 표현해도 될 광경.
민구는 이 광경을 머릿속에 담아 두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그러다 저 멀리 또 다른 빛 덩어리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을 보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아아아…….
금빛 보호막을 두른 성역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던 거다.
그사이 시간이 그렇게나 지났는가?
민구는 일그러진 얼굴로 성역과 정우를 번갈아 봤다.
심지어 녀석은 성역이 가까워지자 속도를 더욱 끌어 올리고 있었다.
파아앗!
민구와 정우의 간격이 더욱 벌어진다.
약속대로 성역의 북부는 말끔히 비워졌고, 마이어드 켄들 한 사람만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시간을 딱 맞춰 왔는지 켄들이 시계를 확인하는 게 보였다.
사앗.
드디어 성역으로 재진입한 정우.
그의 사지는 금빛 경계선을 지나자마자 푸른 연기를 뿌려 대며 빠르게 증발했다.
육중한 기척을 내며 함께 달리던 무구도 마찬가지.
투둑, 툭!
삽시간에 다리가 사라진 정우는 그대로 성역 바닥에 곤두박질하더니 두어 바퀴를 굴렀고, 이에 켄들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다가가려다 이내 걸음을 멈췄다.
뒤이어 민구가 맹렬한 기세로 성역에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사앗!
성역 안에서 정수가 비활성화되는 건 민구도 마찬가지.
다만 정우와 달리 신체를 잃거나 하진 않았기에 그는 성역에 오자마자 정우를 몸으로 감쌌다.
“괜찮은 거냐?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민구는 강박적으로 물었다.
그로선 예정된 재앙이 언제쯤 오는지 가늠할 수 없었으니까.
그러자 바닥에 무력한 모습으로 누운 아들, 박정우가 무어라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오므렸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삑, 삑, 삑.
정우의 셔츠 주머니 안에서부터 짤막한 기계음이 쏘아져 나왔다.
시계의 알람음이었다.
“……아.”
뭔가를 직감한 민구가 외마디를 흘린다.
그다음엔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한 줄의 문구가 허공에 나타났다.
「주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열 번째 날이 찾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