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361
365화. 굴절(6)
* * *
찌르릅!
괴상한 소리가 난다.
놈이 빠르게 찔러오고 있는 길쭉한 무언가는 이미 민구의 목덜미에 닿기 직전이었다.
이에 정우는 곧장 그리로 정수 칼날을 뻗었다.
쐐앳!
반사적인 행동이었음에도 수많은 반격 방법 중에 정수 칼날을 선택한 건 그가 ‘박정우’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 짧은 순간에도 자신의 화력이 밀릴 가능성까지 고려한 거다.
만에 하나 상대의 힘이 이쪽을 압도한다 해도, 절대 부러지지 않는 ‘충신’의 효과를 이용해서 지금의 공격만큼은 막아낼 수 있을 테니까.
이윽고 정우의 정수 칼날과 10일 차 침입자의 ‘무언가’가 충돌했고, 곧 충돌 지점에서부터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퀴이잇!
여태 희미하게만 보이던 상대의 모습이 레이더에 또렷하게 드러난 것도 바로 이때였다.
‘뭣…….’
정우는 침입자의 형상을 확인하고서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꼈다.
조금 전 민구를 찌르려 들었던 ‘무언가’의 정체가 끝이 뾰족한 촉수라는 걸 깨달았고, 그와 똑같은 것이 상대에게 무수히 달렸다는 것도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스르릅, 쉬리릭.
10일 차 침입자의 모습은 문자 그대로 촉수 덩어리였다.
체고가 무려 십여 미터에 이르렀고 몸의 너비는 그보다도 훨씬 길었지만 여전히 몸의 형태를 특정할 수가 없었다.
수백, 아니 어쩌면 수천 개 이상일지 모르는 촉수가 제멋대로 얽힌 채 꿈틀대고 있어서였다.
이 촉수들은 ‘덩어리’의 중앙부를 향해 일제히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가 도로 쏟아져 나오기도 하고, 갑자기 거대한 소용돌이를 이루면서 제자리에서 회전하기도 했다.
각 촉수는 그 어떤 무늬나 돌기도 없이 매끈한 백색 외피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들이 한데 뭉쳐서 쉬지 않고 뒤섞이자 커다란 밀가루 반죽처럼 보이기도 했다.
‘…….’
그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돌아버릴 것만 같은 혼란한 움직임.
정우는 이 움직임이 아버지의 털에 생겼던 변화와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그러자 마침내 그의 의식 속에서 평가관이 기척을 드러냈다.
스윽.
-지금 ‘바늘’의 앞에 계십니다.
여느 때처럼 새 침입자의 이름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거의 같은 순간에 ‘바늘’이 또 한 번 공격을 개시했다.
쫴애애액!
이번엔 수십 개의 촉수가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재규어, 용과 융합한 정우조차 위협을 느낄 정도의 빠른 공격이었다.
‘……미친.’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순간 정우가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 아니라 분노였다.
정황상, 10일 차 침입자의 전투는 ‘먼지’가 상대의 항상성을 전부 깎아 놓을 때까지 진입로 뒤에 숨어 기다리다가 때가 되면 직접 내려오는 방식이다.
즉, 아무리 강한 구원자라고 해도 ‘우주’에 대한 내성이 상당하지 않으면 무가치하게 죽는 구간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침입자와 직접 싸우는 데 필요한 정수 요구치 만큼은 어느 정도 선형적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 바늘이란 녀석의 전투 능력은 녹스보다도 월등했다.
다시 말해서 어떤 행성이든 간에 10일 차를 버텨내려면 그간의 과정을 통해 뽑아 올린 최우수 자원이 정수량과 전투 능력뿐만 아니라 불가해한 것들에 대한 내성치까지도 뛰어나야 한다는 거다.
‘사실상 극복이 불가능한 시련이었군. 행성 폐쇄를 버텨낸다는 건.’
우주를 상대로 불합리 따위를 따지는 게 무의미하다는 건 일찍부터 알았지만, 그래도 정우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박정우를 만들기 위해 지구의 수많은 것이 희생됐듯, ‘지구의 10일 차’를 위해서도 무수한 행성과 그들의 유력한 구원자가 희생됐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우 자신만 해도 폐쇄 절차를 이때까지 끌어오기 위해 행성 기록의 도움을 수차례 받지 않았던가.
우주의 시공간 차원에서 보면, 행성들 역시 그들만의 전형(銓衡)을 거치고 있는 셈일지도 모른다.
스아아앗!
정우는 사방에서 날아든 촉수들을 쳐내고선 곧바로 ‘덩어리’의 중심부를 향해 정수 파동을 뿜어냈다.
파앗!
놈이 아무리 잽싸다 해도 근거리에서 날아온 파동을 피해낼 정도는 아니었고, 여지없이 신체의 3할 가량이 지워졌다.
푸아아아악!
놈이 당황했다는 걸 정우가 감지한 것도 이때였다.
놈의 몸뚱어리를 구성한 촉수들이 한층 더 요란하게 뒤섞이기 시작했고, 몸의 방향도 뒤편으로 기울어 있었기 때문이다.
녀석의 입장에선 빈사 상태가 된 줄 알았던 먹잇감이 갑자기 되살아나서 반격을 해오고 있는 걸 거다.
이에 정우는 파동을 한 차례 더 방출하며 민구를 들쳐 업었다.
푸아아악!
연달아 날아든 파동에 신체의 반 이상을 잃은 바늘은 진입로 방향으로 뒤뚱거리며 달아났다. 아까처럼 진입로를 방패막이로 삼을 생각인 것이다.
‘회복이 빠르진 않구나.’
정우는 사람을, 같은 행성 주민을 죽일 때처럼 대상체의 특징을 빠르게 짚어냈다.
그러곤 도주 중인 바늘을 쫓아 고속으로 쏘아져 나갔다.
쏴아앗!
상대와의 거리를 줄이는 데엔 채 일 초가 걸리지 않았고, 곧 정우의 오른팔에서부터 뻗어 나온 푸른 칼날이 놈의 백색 촉수들 사이를 쑤셨다.
콰악!
투명한 체액이 허공으로 치솟는다.
그리고 그 체액들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시퍼런 궤적이 바늘의 몸뚱어리를 4등분했다.
콰삿!
지평선이 보이지 않는 짙은 어둠.
정우는 이계의 영역 안에서 이계의 존재를 무참히 살해했다.
그것도 여전히 하늘을 가리고 있는 초월자가 보는 앞에서 말이다.
고오오오…….
‘천장’ 어딘가에서 깊디깊은 울림이 퍼져 나온다.
아마도 이 사태에 대한 첫째의 감상일 터였다.
그러나 정우는 그 따위 것에 관심이 없었기에, 레이더에 더는 바늘의 존재가 감지되지 않을 때까지 놈을 조각낸 뒤 곧바로 진입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다음엔 항상 그래왔듯 나선형의 무늬가 새겨진 정수 창을 빚어 진입로의 중앙부를 향해 던졌다.
쐐애애애액!
한 줄기의 푸른빛이 어둠을 사선으로 가로질렀다.
그러더니 허공에 홀로 떠 있는 진입로를 간단히 관통했다.
정수 218억 개.
10일 차의 진입로를 닫는 데엔 충분한 양이었던 것이다.
꾸드득!
드디어 지구에 남은 진입로 두 개 중 하나가 폐쇄되기 시작했다.
진입로가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며 폐쇄 절차에 들어가자 사방에 흩날리던 먼지가 점차 사라졌고, 항상성이 곤두박질하던 민구의 상태도 서서히 회복됐다.
하지만 여전히 상황이 좋지 않았다.
‘놈이 움직이고 있어.’
정우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살폈다.
아무런 소리도, 기척도 없었지만 분명 첫째가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반면에.
쉬아아악!
둘째가 다가오고 있다는 건 인간의 감각으로도 충분히 느껴졌다.
「아직도 발버둥을 치고 있나?」
놈은 특유의 날카로운 음성을 쏘아대며 무지막지한 속도로 거리를 좁혀오는 중이었다.
이에 정우는 바닥에 눕혀놨던 민구를 다시 들쳐 업으면서 패스파인더를 살폈다.
스릇.
마지막 진입로가 있는 방향은 남동쪽.
거리까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표식의 크기로 보건대 30분 이내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첫째와 둘째의 추격을 30분 동안 버텨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아버지.”
“…….”
민구는 아직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항상성이 거의 바닥을 드러냈었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타앗!
정우는 민구를 들쳐 업은 채 패스파인더의 안내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를 매섭게 쫓던 둘째가 비웃는 듯한 소리를 흘려보냈다.
「아아, 지구의 구원자……! 애비를 방패삼아 도망가는가?」
“물론이야. 더한 일도 할 수 있지.”
정우는 눈을 사용하지 않기에 굳이 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었다.
레이더를 통해 감지한 바에 따르면 놈은 약 이십여 미터의 간격을 유지하며 따라오는 중이었다.
자칫했다간 계약을 위반하게 될 것이므로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는 거다.
정우가 정말로 아버지를 방패삼고 있다는 걸 아는 탓이었다.
탑에서 다섯 개나 되는 상품을 구매했고, 과거에서 온 자신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포기하던 존재 아니던가.
박정우가 행성 구원을 위해 아버지 정돈 얼마든지 희생시킬 거라는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초월자들이 잘 알았다.
심지어 박정우는 ‘스펙’까지 완벽했다.
정수 보유량 218억 개, 인간, 재규어 그리고 용과의 융합체.
초월자와 싸워서 이길 수는 없지만, 초월자의 움직임에 반응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둘째의 공격 동선에 박민구를 억지로 밀어 넣을 능력이 있다는 거다.
타아앗……!
정우는 그렇게 두 초월자를 지척에 둔 채 계속해서 나아갔다.
사위엔 지형의 굴곡조차 없는 까마득한 어둠만이 가득했으나 일찍이 시력을 잃은 정우에겐 평소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는 이미 어둠에 속해 있었고, 이젠 그것이 익숙할 정도로 많은 걸 비워낸 존재였다.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먼지’가 그의 항상성을 떨어뜨리지 못한 이유 말이다.
“학……!”
이윽고 민구가 마치 끔찍한 악몽에서 깨어난 것처럼 눈을 번쩍 뜨며 날숨을 뱉었다.
그러곤 사방이 시커먼 어둠에 잠겨 있는 걸 보고서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또 표정이 밝아졌다.
아들이 자신을 들쳐 업고 달리는 중이라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된 거냐?”
“아버지가 의식을 잃었고, 그사이에 진입로를 닫았습니다. 이제 마지막 진입로를 향해서 가는 중이에요.”
“뭐?”
“하지만 다음번엔 정신을 붙들고 계셔야 할 겁니다. 그때도 제가 살아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으니까요.”
“이미 하나를 닫았다면서?”
“놈들이 두 개까진 허락하지 않겠죠.”
아니나 다를까, 정우의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장에서부터 광대한 음성이 천둥처럼 뿜어져 나왔다.
「네 여정이 끝나가는군. 더 지불할 것이 없다면 이제 그만 우리의 몫을 가져가겠다.」
첫째였다.
이와 동시에 뒤편에서 느껴지던 둘째의 기척이 갑자기 사라졌다.
더없이 불길한 징조다.
“…….”
잠시 생각하던 정우는 달리기를 멈추고서 민구를 내려놨다.
처억.
“절 다시 등 위에 태우세요. 이제 마지막 진입로까지 쉬지 않고 달릴 겁니다.”
“……알았다.”
정우가 방금 한 말은 처음 세운 계획 그대로였지만, 민구는 왜인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져서 털을 빳빳하게 세웠다.
스윽.
이어선 민구의 등허리에 정우가 올라탔는데, 그의 몸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아.’
민구는 이를 느끼고서 바로 깨달았다.
녀석에게조차 다음 계획은 없는 것이다.
타앗.
민구는 아무 말 없이 전방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정우가 마치 유언 같은 말을 남겼다.
“지금 정수를 몇 개 가지고 계시죠?”
“154억 개다.”
“그럼 제 정수가 온전히 들어간다는 가정 하에 최소 370억 개를 보유하게 되실 겁니다.”
정우가 ‘최소’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의 정수 총량이 아직도 516억 개로 표기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연결이 끊겨 유실된 무구의 정수량이 함께 표기되고 있는 거다.
“…….”
“하지만 진입로 근처에 가자마자 아까처럼 항상성 하락이 시작되겠죠. 그러니 유일한 방법은…….”
정우는 말을 끝까지 잇지 않고 갑자기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민구는 아들의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지금 정우는 자신이 녹스를 통해 본 ‘미래의 정우’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불가항력을 확인하고 두려움에 젖어버린 얼굴 말이다.
트드드듭…….
이어선 머리 위의 ‘천장’에서 무언가 뒤틀리는 소리가 났다.
민구는 미래를 보고 오지 못한 탓에 그저 막연한 불안감을 느꼈을 뿐이지만, 정우는 저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았다.
첫째가 눈을 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