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37
37화. 생방송 (5)
헌터물.
다른 말로 레이드물이라고도 부르는 소설의 장르다.
어느 날 세계 각지에 ‘게이트’가 열리더니, 그 안에서부터 괴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라는 이야기를 전제로 한다.
현재 정우와 선웅이 맞닥뜨린 상황과 거의 동일한 셈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게이트’에 대한 대처법.
이곳, ‘현실’에선 아직 대처법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이제야 사태 발발 2일 차를 맞이하고 있을 뿐이니까.
심지어 대부분의 인간이 진입로의 폐쇄 조건조차 알지 못한다.
반면, 소설 속에선 게이트라는 문제를 아주 간단하게 해결해 버린다.
괴물들이 게이트 주변을 떠나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다.
각성자들을 불러 모아서 궤멸하는 게 가장 일반적이고, 게이트 근처에 장벽을 지어서 막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게이트가 아무 곳에나 갑자기 나타나는 방식의 세계관도 있는데, 이런 경우엔 범국가적인 가이드라인이 갖춰졌다는 설정까지 들어간다.
불시에 게이트가 나타나면 근방 시민들이 잽싸게 대피하고, 괴물을 처리하기 위해 헌터들이 출격하는 형태다.
에반게리온에 등장하는 제3 신동경시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건 소설이나 만화에서의 이야기이고, 여긴…….’
정우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방송을 지켜봤다.
현실 세계에 나타난 게이트, ‘진입로’의 정체성은 분명하다.
지구라는 행성을 폐쇄하기 위해 우주가 파견한 일종의 철거 용역.
지구가 이에 맞선 방법은 인류에게 기대는 게 아니었다.
인간을 포함한 여러 종에게 정수를 뿌려 주고, 강한 존재가 스스로 올라오길 기다렸다.
이 말인즉슨.
‘인간의 힘으로는 진입로를 어쩌지 못해. 애초에 그게 가능했다면 지구가 구원자를 뽑을 필요도 없었겠지.’
불길한 예감이 점점 강하게 든다.
-아, 무슨 소리가 들리는군요?
화면 속, 김영태 앵커가 차창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총성 같은 것이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예, 곧 놀라운 걸 보게 되실 겁니다.
이건 박 대령의 대사.
이들이 몸을 실은 레토나는 계속해서 산길을 따라 달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총성이 점점 커졌고, 이따금씩 수풀 사이에 설치된 접근 금지 팻말이 화면을 스쳐 지나갔다.
-이제 저 앞을 비춰 주시겠습니까.
이윽고 박 대령이 조수석 정면을 가리키며 카메라맨을 쳐다봤다.
이에 방송 화면이 전방으로 홱 돌아갔고.
“허…….”
침실 바닥에 앉은 채로 텔레비전을 보던 선웅이 낮게 신음을 흘렸다.
행운동에서 봤던 그것. 진입로가 저 멀리, 허공에 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번에 본 것처럼 세로로 세워진 게 아니고, 가로로 누워 있었다.
그런데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눈대중으로도 직경 30미터 이상이었다.
때는 오전 7시 21분.
한창 날이 밝을 때라 새까만 타원형의 진입로는 외계 함선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저 안에서 무엇이 어떤 기세로 쏟아져 나오는지 잘 아는 선웅으로선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텔레비전을 통해 보고 있음에도 말이다.
“너무 큰데요……?”
선웅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하자 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의 소득이네요. 진입로가 한 가지 형태로만 발생하는 게 아니란 걸 알게 됐으니…….”
더군다나 크기 역시 천차만별.
저건 행운동에 나타났던 것에 비해 두 배는 컸다.
지면과의 거리 또한 상당했다. 적어도 7미터 이상 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저곳에선 괴물이 어떤 식으로 등장할 것인가.
‘비처럼 쏟아지나?’
정우는 청소부가 머리 위로 떼 지어 쏟아지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때, 화면 속에서부터 사이렌이 크게 울렸다.
위이이이잉!
-음, 조금 일찍 시작됐습니다.
박 대령이 짤막하게 대사를 쳤고, 이에 맞춰 카메라가 진입로 쪽을 비추더니 줌을 확 당겼다.
이때만큼은 정우도 자리에서 일어나 텔레비전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다음에 벌어진 일은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두드드드…….
먼저 말발굽 소리 같은 것이 방송 내 음향을 덮어 버렸다.
그러고는 하늘을 가로지른 진입로의 양 끝에서부터 그것들이 내려왔다.
마치 핀볼 테이블 안으로 쏟아지는 구슬들 같았다.
청소부 말이다.
-어어…….
사전에 설명을 들었을 김영태 앵커조차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압도적인 비주얼이다.
신장이 3미터가 넘는 인간형 괴수.
놈들은 기다란 팔다리를 거미처럼 구부린 채 줄지어 하강했다.
이전에도 낙하를 많이 해 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족히 오십 마리가 넘었고, 계속 밀려 나왔다.
-정말 괘, 괜찮은 겁니까?
레토나가 진입로 방향으로 계속 달려가자 앵커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걱정 마십시오. 이미 대응에 수십 차례 성공한 상황입니다.
박 대령의 목소리가 더없이 침착하다.
화면은 여전히 진입로를 클로즈업하고 있었다.
지금까진 허공에 뜬 진입로의 모습만 화면에 잡혔는데, 이제 거리가 꽤 가까워졌는지 그 아래의 풍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오……!
말없이 촬영 중이던 카메라맨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진입로 밑엔 2개 연대 규모의 보병 부대와 이십여 대의 전차가 대기 중이었다.
정확히는 진입로에서 약 50미터 떨어진 지점에 아치형으로 진을 친 상태였다.
그사이 선두로 진입한 청소부 하나가 땅에 발을 디뎠다.
알다시피 청소부가 전력 질주를 시작하면 50미터 정도는 수 초 안에 돌파해 버린다.
정우는 지구에 막 도착한 칠흑색 괴물이 보병 부대 쪽으로 머리를 돌리는 걸 봤다.
그러고는.
타탕!
목덜미가 뜨끔할 정도의 큰 총성과 함께 놈의 육중한 머리통에서부터 희멀건 체액이 터져 나왔다.
몸을 부르르 떨더니 천천히 옆으로 쓰러지는 청소부.
“어…… 총알을 못 막아?”
선웅이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며 큰 소리로 외쳤고, 정우는 잠자코 화면을 주시했다.
‘각성자가 총알을 막으려고 해도 방어막에만 천 개 이상의 정수를 쏟아부어야 해. 청소부가 총알을 막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적어도 그가 아는 한 청소부들에겐 제대로 된 방어 능력이 없었다.
회사 주차장에서 고작 정수 25개짜리 방출 공격을 맞고 사망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청소부는 지구에 대한 폐쇄 절차가 시작된 첫날에 등장했다.
게임으로 치면, 1레벨에 앞마당에서 만나는 ‘잡몹’.
‘만약 정말로 다음 단계가 있다면…….’
정우는 조용히 자신의 휴대폰을 켰다.
현재 시각, 오전 7시 26분.
지구의 성명문이 나타난 시점이 어제 오전 8시니까, 아직 34분 남았다.
행성 폐쇄 개시로부터 24시간이 경과하려면 말이다.
타타탕!
타탕!
지면에 발을 붙인 청소부가 늘어나자 이에 맞춰서 보병 부대의 격발 횟수도 증가했다.
삽시간에 총알 세례를 받게 된 녀석들은 몇 발자국 걷지도 못하고 제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꽤 묵직한 존재감을 보이던 전차들은 단 한 발의 포격도 하지 않았다.
보병만으로도 제압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지금 보고 계신 것이 진입로의 최대 출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약 12초 동안 300마리가량의 괴물이 진입합니다. 이것을 막아 내면 40분 정도 휴면기가 이어지는데, 이 동안은 진입하는 괴물이 거의 없습니다. 분당 한 마리가 안 되는 수준입니다.
박 대령이 필요 이상으로 상세한 브리핑을 해 왔다.
진입로 작동 방식에 대한 파악이 끝났음을 과시하려는 의도다.
-그리고 보셨다시피 상황이 종료됐습니다. 평균 소요 시간은 17초. 실질적으로 1개 연대 병력이면 진입로 하나를 완벽히 통제할 수 있습니다.
박 대령의 신호에 맞춰 운전병이 핸들을 우측으로 꺾었다.
카메라가 차량 진행 방향을 따라 움직이자 방송 화면에 감시 초소처럼 생긴 가건물이 나타났다.
박 대령이 말했던 중계실이 분명했다.
건물의 높이는 약 12미터.
진입로 일대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창이 크게 나 있었다.
-대, 대단하군요……. 하지만 저 또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 가지 우려가 생길 수밖에 없군요. 언제까지 이런 방식으로 버틸 수 있겠습니까? 말씀해 주신 바에 따르면, 대략 사오십 분마다 수백 발의 탄약이 소모되는 셈인데요.
이 말을 하는 김영태 앵커의 시선은 창밖, 진입로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 질문 또한 대본의 일부겠으나 그 역시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있다는 게 화면 바깥까지 전해졌다.
-하하.
박 대령이 걱정 없다는 듯, 짤막한 웃음으로 운을 뗀다.
-육군에서 매달 사격 훈련으로만 사용하는 실탄이 몇 발인 줄 아십니까? 좀 더 간단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현재 우리 육군 병력이 오십만 명 가까이 됩니다. 두당 한 발씩만 쏴도 오십만 발…… 전국의 모든 진입로를 통제하고도 남는 양입니다.
그러더니 품속에서 누런 빛깔의 소총 탄약을 꺼내 보였다.
―이게 방금 진입로 앞에서 사용된 5.56mm 탄입니다. 이런 소화기탄은 국내에서도 대량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유지력에 대해서는 걱정 안 하셔도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박 대령의 입에서 제대로 된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당장이야 전국의 진입로를 힘으로 억누를 만한 탄약이 있다지만, 이런 대규모 작전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진입로 한 곳에서 시간당 500발의 실탄을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하루 평균 1만 2천 발이 필요한 셈이다.
막아야 하는 진입로가 열 곳만 돼도 하루 12만 발.
50개 진입로를 막을 경우 매일 60만 발의 탄을 소비해야 한다.
‘한 달이면 1,800만 발. 그런데 진입로가 50개뿐일까.’
정우는 불그스름한 미래가 눈앞에 보이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정부 측에서 이러한 계산을 해 보지 않았을 리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대대적인 쇼를 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급하다는 뜻일 것이다.
정부가 빠르게 ‘액션’을 취하지 않으면 국민들의 불안 심리가 더욱 증폭될 테고, 이 심리는 결국 전국 단위의 무법화를 불러일으킬 테니까.
사실 무법화 자체는 진입로에서 쏟아져 나오는 괴물에 비하면 큰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무법화가 낳게 될 괴물인 각성자.
아까 봤다시피 괴물이야 총을 쏴서 죽이면 그만이다.
그러나 정수를 대량으로 빨아들인 각성자들은 총알을 막아 버린다.
정부 입장에선 가장 두려운 대상인 것이다.
-아, 오셨군요.
마침내 중계실에 도착한 김영태 앵커를 또 다른 군인이 반갑게 맞이했다.
희끗한 머리카락을 덮고 있는 군모엔 별이 네 개나 달려 있었다.
‘노장’이라는 단어가 절로 연상될 정도로 강직한 인상이 화면을 꽉 옥죈다.
-반갑습니다, 제1 야전군사령관, 대장 김석훈입니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8인의 대장 중 하나.
제1 야전군의 관할 지역은 동부전선의 GOP를 포함한 강원도 전체다.
즉, 이 사내는 강원도의 수호신인 셈.
사내의 직함을 들은 김영태가 얼른 악수를 청했고, 이에 김석훈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맞잡았다.
그러더니 곧 예의 날카로운 눈빛을 세웠다.
-국민 여러분, 그리고 김영태 앵커님, 이곳까지 오시느라 고생이 많았을 줄로 압니다.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김석훈이 고개를 살짝 까닥이며 신호하자 그의 뒤편에서 대기 중이던 부관이 한쪽 벽면에 드리워져 있던 장막을 걷었다.
화악!
장막 뒤에 숨겨져 있던 건 수십 개의 감시용 모니터였다.
처음엔 진입로 하나를 여러 각도에서 비추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었다.
화면 속 진입로 중 일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금 보고 계신 건, 이미 통제 조치가 끝난 진입로들입니다. 이곳에 생성된 ‘원반형-02’를 포함해 총 5개. 지난 8시간 동안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8시간.
그렇다는 건 적어도 어제저녁부터는 군대가 움직이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정우는 예상보다 빠른 군의 대처 속도에 놀라면서도 여전히 우려를 지울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강원도 전체를 통제하고 있진 못할 거야. 상대적으로 인적이 드문 산간 지역이나 부대의 근처 정도겠지.’
어쨌든 이렇게 대외적으로 작전 상황을 공개했으니, 다른 진입로를 완벽히 통제하고 있다는 말 역시 거짓은 아닐 것이다.
“원반형-02라니……. 벌써 진입로의 유형까지 분류하고 있나 보네요.”
선웅이 김석훈 대장의 멘트를 되짚으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사이 방송 화면엔 대한민국 전도(全圖)가 출력되고 있었다.
전국 단위의 진입로 봉쇄 작전에 대한 청사진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청소부들의 진입 시간까지 읊던 아까의 브리핑과 달리 상당히 추상적이고 모호한 내용만 이어졌다.
-그럼, 국내의 모든 진입로를 봉쇄한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요?
브리핑을 잠자코 듣던 김영태 앵커가 간만에 질문을 던질 때였다.
삐-
삐-
삐-
방송 화면 속 중계실 천장에서부터 짧은 알람이 세 번 울렸다.
이에 김석훈 대장이 손목시계를 보더니 엷게 웃음을 지었다.
-아, 별일 아닙니다. 시간이 바뀌었다는 신호입니다.
하지만 별일이 맞는 것 같았다.
-어, 어…….
김 대장의 맞은편에 서 있던 김영태의 표정이 심각하게 일그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겁이 많은 성격인지, 분위기가 조금만 이상해도 진입로 쪽을 얼른 쳐다보던 그다.
이번에도 알람이 울리자마자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 차였고…….
-지금 무슨?
정도 이상으로 흐트러진 앵커의 모습에 김 대장이 불쾌감을 살짝 드러냈다.
그러고는 상대의 시선을 따라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태 이 장면을 중계하고 있던 카메라가 진입로를 비추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스아아아…….
화면 밖, 정우와 선웅에게 가장 먼저 전해진 건 공기가 산산조각 나는 듯한 바람 소리였다.
아마도 김영태 앵커가 착용하고 있던 소형 마이크를 통해 들어온 소리일 것이다.
분명히 중계실은 진입로에서부터 백 미터 이상 떨어져 있다고 했는데……. 대체 그럼 현장에선 얼마나 큰 소리가 나고 있단 말인가?
“헉! 저, 정우 씨!”
방송을 보고 있던 선웅이 화들짝 놀라며 동료의 이름을 불렀고, 정우는 그를 쳐다보는 대신 자신의 순위를 확인했다.
|박정우 님의 소속 지역 내 순위는 ‘1’입니다.
|폐쇄 권능 보유자
본능적으로 두려운 마음이 든 탓에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한 행위였다.
다음엔 다시 텔레비전으로 눈을 돌렸다.
원반형-02. 직경 30미터 이상의 대형 진입로.
카메라맨이 얼마나 떠는지, 진입로를 비춘 화면이 쉴 새 없이 흔들렸다.
그것의 내부에서 시뻘건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큰 철판 두 개를 맞부딪친 것만 같은 굉음이 났다.
타앙!
그러나 텔레비전에서 난 것이 아니었다.
정우와 선웅, 두 사람의 머릿속에서 각각 난 소리였다.
그러더니 어제 아침에 봤던 것과 똑같은 형태의 문구가 눈앞에 나타났다.
「주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두 번째 날이 찾아왔습니다.」
지구가 다시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