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39
39화. 선두 특혜 (2)
오늘 특혜 선택자.
즉, 방금 전 특혜 선택에 참여한 국가별 1위 구원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곧 저 중 하나가 희생자로 선정되어 죽는다.
대번에 최초의 채널이 들끓기 시작했다.
[41] 목동: 저게 무슨 소리예요? 설마 1위 중 하나가 죽는다는 뜻인가요? [30] 매: 그런 것 같네요. 저기까지 올라가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15] 악몽: 저번처럼 순위가 하나씩 상승하면 우리 쪽 1위가 죽었다는 의미입니다. [38] 기사도: 1위끼리도 뭔가 또 있나 보네요. 투표 결과 어쩌고 하는 걸 보면…….대부분의 구원자, 특히 최초의 채널에 들어와 있는 구원자들의 목표는 상위권 진입이다.
폐쇄 권능을 확보할 수 있는 5위 이내 말이다.
그런데 국가별 1위끼리 투표를 해서 희생자를 정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니 적잖이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7] 폭우: 이봐요,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1위가 누구였는지 닉네임이나 봅시다.폐쇄 권능 획득에 가까워진 몇몇은 이렇게 정우를 도발해 오기도 했다.
폭우. 그렇지 않아도 예전부터 주목하고 있던 녀석이다.
‘그새 7위……. 엄청난 성장 속도다.’
놈은 순위가 빠르게 오르고 있으면서도 채널에 모습을 드러내길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
언젠가 폐쇄 권능을 얻고 난 뒤에 무슨 일을 벌일지 가장 궁금해지는 인물이었다.
「살해 개시.」
이윽고 구원자들이 다수결로 정한 ‘공통 특혜 5번’의 효력이 발동됐다.
우주에게 죽임을 당하는 건 어떤 느낌일까?
정우는 본능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듣게 됐다.
어제 아침, 회사 주차장에서부터 자신을 담당해 온 평가관 다467의 음성이었다.
-타 지역의 최상위 구원자가 소멸됐습니다.
어느 지역의 구원자였는지는 말해 주지 않았다.
그저 ‘넌 살았다’라는 것을 알려 줄 뿐이다.
‘아…… 이런 식인가.’
분명히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한 나라의 정점에 서 있던 구원자가 죽었으니까.
4만 명 중 최고였을 수도 있지만, 14억 명 중 최고였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게 정말로 일어난 일인지 믿기지가 않았다.
정우가 자신의 몸을 찬찬히 훑고 있자 선웅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끝났나 보군요.”
이에 2일 차의 살해 추첨을 무사히 넘긴 구원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상대의 눈빛을 본 선웅은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인간을 무참히 살해해야만 올라설 수 있는 자리.
그 자리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해야 한다니……. 선웅이 보기에 이보다 더 끔찍한 건 없었다.
한편, 자신이 살아남았음을 확인한 정우는 시야 상단에 눈동자 모양의 아이콘이 박혀 있는 걸 봤다.
아이콘 우측 하단엔 자그마하게 ‘x2’라고 적혀 있었다.
그가 선택한 개별 특혜인 ‘전시안’이 적용된 것이다.
‘무조건 바로 사용해야 하는 게 아니었구나. 적립식이라면 엄청난 혜택인데.’
이를테면 공간 이동 기능인 강림과 전시안을 연달아 사용할 수도 있을 터.
이러면 국내의 누구든지 찾아가서 죽일 수 있는 셈이다.
1위를 유지해야 할 결정적인 이유가 생겨 버렸다.
‘반대로 내가 이틀 이상 1위를 빼앗기면 예측 불가한 저격을 당할 수 있는 거네.’
그럼 이제부터 무얼 해야 하는가.
현 상황부터 정리해 보자.
폐쇄 절차가 2일 차에 접어들며 진입로에서 무언가 다른 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덕분에 어제보다 인구가 더 빠르게 줄어들 것이다.
새로운 침입자 때문에? 아니다, 다른 인간 때문이다.
더는 정부에게 기댈 수 없다고 판단한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정수를 챙기기 시작할 테니까.
무수히 흩어져 있던 정수들이 수집하기 좋게 모여 있을 거란 소리다.
‘순정품’은 대부분 죽고, 각성자들이 판치게 될 거다.
그러니 거둬야 할 인재가 있다면 누군가의 양분이 돼 버리기 전에 찾아내야 한다.
‘지금 가진 건 전시안뿐이니까, 먼 곳에 있는 사람은 만나 볼 수도 없어.’
서초구 근방에 머물고 있는 의사 중 의술이 가장 뛰어난 자.
정우는 자신이 당장 찾아야 하는 인재를 저 정도로 축약했다.
‘원하는 조건에 맞는 존재를 찾아낸다고 했으니까, 직업이나 체류 중인 지역 정도는 가려낼 수 있겠지.’
생각이 정리되자마자 바로 전시안을 사용했다.
슷.
눈동자 아이콘이 반짝이더니 사용 횟수가 하나 줄어든다.
다음엔 눈앞에 자그마한 문구가 나타났다.
|찾고자 하는 대상의 이름을 알고 있습니까?
스무고개처럼 문답 형식으로 대상을 특정해 가는 걸까.
정우는 아니요,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문구가 바뀌었다.
|당신의 위치를 기준으로, 어느 거리까지 탐색하겠습니까?
‘반경 10킬로미터.’
|원하는 조건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떠올리십시오.
‘…….’
차라리 문답을 계속 진행하는 게 낫지 않을까.
막상 자신이 원하는 의사를 떠올리려 하니 쉽지 않았다.
‘일단 기본적인 내과 진료가 가능해야 하고, 전문의여야 해. 환자를 진찰해 본 경험이 많을수록 좋겠고. 제길, 그런데 쉬지 않고 사람 죽이는 살인마를 담당할 의사가 존재하긴 하나?’
정우는 내적 기준을 좀 더 추가하기로 했다.
‘삶에 미련이 많아야 해. 무슨 짓을 해서든 살아남겠다는 사람이 필요하다. 배짱도 좋아야 하고.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정도로.’
지병이 있으면 안 된다, 팔이나 다리가 하나 없거나 해서도 안 된다, 라는 조건도 덧붙였다.
나이는…… 50세 이하여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구원자를 위한 담당의일 뿐이지만, 언젠간 인류가 보유한 의학 그 자체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닌 지식을 누군가에게 전수하기 전에 늙어서 죽어 버리면 곤란하다.
본격적으로 인류와 문명을 재건하겠다고 결정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고르고 싶지도 않았다.
‘이쯤이면 됐나? 반경 5킬로미터 이내에서 찾는 거야. 조건이 너무 까다로우면 적합한 대상이 없을 수도 있다.’
몇 가지 조건을 더 붙이고 싶었으나 그랬다간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조건 접수가 완료됐습니다. 대상을 검색합니다.
정우가 따로 이야기한 것도 아닌데, 검색 절차가 바로 진행됐다.
고오오…….
커다란 환풍구 돌아가는 듯한 소리가 머릿속에 가득 찬다.
정우는 소음에 미간을 찌푸린 채 배낭을 뒤졌다. 아침 식사를 위해서였다.
결과가 나오는 대로 움직여야 할 테니까.
“어…… 바로 식사하십니까?”
그가 배낭에서 육포를 꺼내 든 걸 본 선웅이 대단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늘도 바쁠 겁니다. 앞으로 함께 지내게 될 의사를 찾기 시작했어요. 조만간 결과가 나와요.”
“……?”
전시안의 존재를 모르는 선웅으로선 정우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 턱이 없었다.
정우는 이에 대해 장황히 설명하는 대신, 육포를 내밀었다.
“먹어요. 곧 출발할 겁니다.”
* * *
오전 8시 46분.
전시안이 정우에게 적합한 의사를 찾아냈다.
그것도 불과 700미터 거리에 머물고 있었다.
강남역 근처 어딘가에서 지내는 중이란 뜻이다.
인공지능도 아니고, 물경 우주가 찾아 준 상대.
어떤 인물일까.
‘선보러 가는 기분이네. 그런데 이렇게 가까운 걸 보니…… 성형외과 쪽인가.’
전시안을 사용할 때, 일부러 전공을 특정 짓지 않았다.
큰 수술을 해 줄 사람이 필요한 건 아니었으니까.
애초에 이쪽은 전투 시 정수로 만든 보호막을 두른다.
외상을 입을 정도가 되려면 이 보호막이 깨져야 하는데, 이 경우엔 살아남을 확률이 거의 없다.
즉, 전투에서 지면 십중팔구 즉사라는 뜻이다.
오히려 감기나 폐렴, 각종 염증 같은 게 더 무섭다.
‘내과 진료가 가능해야 한다는 조건을 넣어서 검색했으니까, 전공이 뭐든 기본적인 실력은 있겠지.’
지구를 폐쇄하려 드는 우주지만, 적어도 이때만큼은 우주의 초월적인 힘을 믿기로 했다.
현재 위치는 대성전자 사옥 27층의 엘리베이터 앞.
아직 전시안이 상대를 추적 중인 상태라 정우의 시야엔 자그마한 V 형태의 마크가 계속 보였다.
추적 대상이 있는 방향을 상시 표기 중인 것이다.
띵.
이윽고 1층에서부터 올라온 엘리베이터가 도착…….
“어?”
문이 열리기 직전, 선웅이 화들짝 놀라며 정우를 쳐다봤다.
정우도 선웅의 표정을 보고 나서야 여태 뭘 잊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엘리베이터가 왜 1층에 있어? 우리가 마지막으로 타고 올라왔는데.’
물론, 어제 비상 경고음을 듣고도 회사를 떠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들이 새벽을 틈타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망갔다면 설명은 된다.
‘하지만 내 생각엔…….’
정우는 좌우로 갈라지기 시작한 엘리베이터 문을 보면서, 몸에 보호막을 둘렀다.
선웅은 미리 합을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측면으로 몸을 피했다.
다음엔.
“음……?”
막 오른팔로 검을 빚어내려던 정우가 동작을 멈췄다.
엘리베이터 안에 누군가 있긴 했는데, 혼자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정수 보유량 ‘3’.
‘순정품이잖아?’
상대는 중년의 사내였다.
사십 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얼굴, 평소 관리를 잘했는지 날렵한 핏이 나오는 몸매.
군청색의 정장 재킷에서는 대성 그룹 배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대성 그룹 사업전략본부의 김용헌 부장입니다.”
자신을 김용헌이라고 소개한 사내가 정우를 올려다본다.
용헌의 키가 유난히 작은 게 아니었다.
그저 무릎을 꿇고 있던 탓이다.
“힘으로 안 될 것 같으니까, 이번엔 동정심으로 영업하겠다는 겁니까.”
정우가 비웃듯이 말하자 용헌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가 다시 들었다.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어제 결례를 범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저희도 직원들을 지켜야 할 필요가 있는지라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해 뒀던 거지요…….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그가 말한 ‘이런 일’이란 정우가 대성 측의 구원자와 정수 3천개짜리 각성자를 살해한 건을 이른다.
대성 입장에선 엄청난 손실이었을 터.
그리고 그 손실을 메꾸겠다고 정우를 다시 찾아온 거다.
이 새로운 구원자를 영입할 수만 있다면, 여태 입은 손실은 더 이상 손실이 아니라 ‘투자’였던 셈이 될 테니까.
“대성에선 김용헌 씨가 죽어 없어지더라도 큰 손해가 아니라고 생각했나 보네요. 이렇게 막무가내로 보낸 걸 보면.”
정우의 말에 용헌이 쓴웃음을 지었다.
“부장급은 와야 성의 표시가 되지 않겠습니까. 결과가 어떻게 되든 말입니다.”
“기업의 존폐가 걸린 일일지도 모르는데, 임원 정돈 와야 맞지 않았을까요?”
“그러시군요.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 자리에서 죽는다 해도 임원 선에서 목을 내놓고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의외로 터놓고 말하는 타입인가. 아니면 자기 목숨이 걸린 일이라 다 내려 둔 상태인 걸까.
어쩌면 이런 멘트조차 구원자를 공략하기 위한 고도의 영업 전략일지도 모른다.
슥.
정우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서자 용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선웅은 이 사내를 어쩔 것이냐는 눈빛을 정우에게 보냈다.
그러자 정우가 손짓했다.
“들어와요. 일단 내려가죠.”
“음…… 알겠습니다.”
선웅까지 엘리베이터에 타자 용헌이 태연한 표정으로 닫힘 버튼을 눌렀다.
스르륵.
문이 도로 닫히고, 엘리베이터 특유의 공간감이 장내를 휘감았다.
뒤편의 통유리를 통해선 강남역 일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정우의 시선엔 한 가지가 더 보였고 말이다.
전시안의 대상 추적 표식.
강남역의 명소 중 하나인 CGV 건물 근처에 표식이 찍혀 있었다.
저기 어딘가에 우주가 만남을 권한 의사가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자, 그럼.”
정우가 운을 떼자 용헌과 선웅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됐다.
“김용헌 부장님의 영업 카드는 뭐죠? 아무리 그래도 자살하러 오신 건 아닐 텐데.”
이 말에 김용헌이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전 오늘 이곳에 헬기를 타고 왔습니다. 두 시간 전에 부산에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