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5
5화. 선택과 집중 (3)
끼익.
조 팀장이 문을 당기자 경첩이 비틀리면서 날카로운 쇳소리를 냈다.
안쪽에 누군가 있다면, 고개를 돌려 볼 수밖에 없을 높은 소음이었다.
그러나 세 사람은 지금 문에서 큰 소리가 나고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다.
문 사이로 드러난 광경올 이해하려 애쓰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저게 뭐예요……?”
가장 뒤에 있던 재형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20센티미터 정도 벌어진 문틈으로 나타난 건, 이들이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물체였다.
성인 남성 머리 크기의 반투명한 푸른 구체.
이런 게 주차장 바닥에 수도 없이 흘어져 있었다.
게다가 구체마다 크기와 색의 농도가 조금씩 달랐다.
‘알인가……?’
정우가 미간을 좁혔다.
지구상에서 저것과 가장 흡사한 존재를 찾아본다면, 그건 아마도 물고기의 알일 것이다.
그리고 저게 실제로 어떤 물고기나 또 다른 생물의 알이라고 해도 놀랍지 않을 것 같았다.
출근하자마자 지구의 성명문을 보게 된 마당에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아냐, 어쩌면 저건……’
아까 사무실에 있을 때, 지구가 해 준 경고가 떠올라서였다.
「만약 죽음에 이를 경우 그 자리에 본인의 정수가 떨어집니다. 이는 동료가 주워서 바로 사용할 수 있으므로 최후의 순간까지 명민함을 잃지 마십시오.」
이제 정우는 확신했다.
‘저건……정수다.’
사람이 죽을 때, 그 자리에 떨어진다는 정수.
그 말인즉슨, 불과 십여 미터 거리의 저 주차장 한복판에서 수십 명이 죽었다는 뜻이다.
핏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말이다.
‘저게 정말 정수라면 어떻게 주변이 말끔할 수 있지?’
아니. 그것보다 저들을 죽인 존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정우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문을 더 잡아당기자 문고리를 쥐고 있던 조 팀장이 눈을 크게 떴다.
“정우 씨? 지금 무슨……”
끄드득.
이미 문은 안쪽으로 활짝 젖혀지고 있었다.
정우가 무단횡단 직전의 사람처럼 좌우를 유심히 살핀다.
그걸 본 조 팀장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설마 저리로 들어가려는 건가?’
이어 뒤통수가 찌릿한 느낌을 받았다.
그도 뒤늦게 저것들이 정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지구가 강조했다시피 정수는 무기이자 방어구다.
‘그리고 모일수록 세진다고……’
따라서 세 사람은 무기고를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진 조 팀장이 무언가를 말하려는 순간.
탓!
정우가 문 너머로 뛰어 나갔다.
“박대리!”
당황한 조 팀장의 목소리가 주차장 내부를 따라 메아리쳤다.
그러나 정우는 이미 승용차들을 가로질러 정수 더미에 닿기 직전이었다.
‘이렇게 많은 정수를 얻을 기회가 흔할 리 없어!’
이윽고 그의 오른발이 시퍼렇게 모여있던 정수 중 하나에 닿았다.
그러자 발목이 싸늘해지는가 싶더니, 곧 몸 안쪽으로 무언가 밀려드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감응력 시험 때 질릴 정도로 맛봤던 바로 그 기운이었다.
머릿속에 그려진 ‘5’라는 숫자가 ‘6’으로 바뀌면서 정수의 증가를 알려 왔고, 그의 시야에 또 다른 게 들어왔다.
“……!”
그건 다름 아닌 차량이었다.
정우가 선 위치에서 오른편으로 나란히 후면 주차된 승용차 대열.
이 차들의 보닛이 하나같이 흉측하게 찌그러져 있었다.
마치 커다란 짐승이 밟고 지나갔던 것처럼 말이다.
비상구 쪽에선 확인할 수 없던 사각지대였다.
‘……맙소사.’
장내를 충분히 살폈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명백한 이쪽의 실책이다.
만에 하나 저 혼적을 남긴 녀석이 아직 여길 떠나지 않았다면…….
정우가 장내를 다시 살피기 위해 고개를 돌렸을 때.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가 났다.
“……?”
일반적인 냄새는 분명히 아니었다.
주차장 특유의 매캐한 공기와 고무 냄새 사이로 또 다른 냄새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뭐라고 특정하기가 어렵다.
나무 송진이 풍기는 향과 비슷한 느낌도 나고…….
정우가 얼굴을 찌푸린 채 주변을 돌아보고 있자 조 팀장과 재형이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괜찮습니까?”
상대를 걱정하는 듯한 대사와 달리. 정작 조 팀장의 시선은 정우의 발치에 널린 정수 더미에 닿아 있었다.
이걸 눈치챈 정우가 정수들 사이로 움직였고, 커다란 알처럼 보이던 그것들이 분말 형태로 으깨졌다.
틱, 티틱.
스아아…….
분말 형태로 변한 정수가 공중에 흩어지더니 정우의 몸을 감쌌다.
7,11,16,19…….
순식간에 불어나기 시작한 정수 보유량.
근처엔 아직도 터지지 않은 정수가 한참 남아 있었다.
먼저 접촉해서 깨뜨린 사람에게 흡수되는 것 같았다.
“빨리 정리하고 여길 떠나죠…….”
조 팀장이 우스꽝스러울 정도의 이유를 대며 ‘정수 밭’으로 들어섰다.
그 역시 정수 욕심이 난 것이다.
티틱,틱!
그러자 여태 눈치만 보고 있던 재형까지 합류했다.
“그. 그럼 저도……”
슥.
신입 사원의 구두가 밭 외곽의 정수를 밟으려는 찰나.
‘뭔가 이상해.’
정우가 엄청난 위화감에 동작을 멈췄다.
처음엔 착각인 줄 알았는데, 곧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코를 자극하던 냄새가 한층 짙어져 있었을 뿐더러, 머리 위쪽에서부터 어떤 공간감이 느껴졌다.
마치 거대한 환풍구가 나타난 것 같은…….
“피해요!”
아무리 둘러봐도 찾을 수 없던 ‘적’.
그럼에도 어디선가 계속 풍겨져 나오는 묘한 냄새.
보란 듯이 바닥에 뿌려져 있던 정수.
정우는 비로소 깨달았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자신의 가설을 확인할 여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팍!
그는 곧장 땅을 박차며 전방으로 몸을 날렸다.
조 팀장도 반대 방향으로 달려 나가는 중이었다.
직감적으로 정우의 판단을 믿기로 한 거다.
그러나.
“어.어어……?”
뒤늦게 발을 들였던 재형은 아직도 정수들 사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두 선배가 다급히 흩어지는 걸 보면서 몸을 돌리긴 했지만, 본인도 아는 것 같았다.
많이 늦었다는 걸.
“재형 씨!”
정우의 부름에 재형이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정우는 울산 출신의 이 신입이 입술을 달싹거리는 걸 봤다.
볼품없는 체력을 가진 녀석이었지만, 조금 전은 숨이 차서 그런 게 아니었다. 무언가 발음하려고 했다.
그러나 어떤 소리가 나기도 전에 천장에서부터 내려온 ‘그것’이 정수 밭을 통째로 덮어버렸다.
쿵!
이 장면을 쭉 보고 있던 정우조차 잠시 멍해질 정도로 빠른 속도.
재형은 빠져나오지 못했다.
밭과 신입을 삼킨 ‘그것’은 거대한 깔때기였다.
정확히는 어떤 생물의 머리에 해당하는 부위였다.
“……”
정우는 반쯤 뒤돌아 있던 자세 그대로 숨을 죽인 채 눈만 굴렸다.
시야를 가득 채워 버린 깔때기 위쪽에 그놈이 있었다.
나체의 거인.
사지가 비정상적 으로 길긴 했지만 전반적인 신체 구조가 사람과 거의 같았다.
다른 점이 라면 피부가 무광 흑색이고, 머리가 깔때기 형태로 펼쳐진다는 것이다.
‘여태 저기 붙어서 계속 기다렸던 건가……?’
놈은 기괴할 정도로 길게 뻗은 팔과 다리를 이용해 천장에 바짝 붙은 채였다. 깡마른 몸통에 가슴뼈와 골반의 형태가 언뜻 보이는 게 더욱 소름 끼쳤다.
정수 더미와 신입을 덮어 버린 깔때기는 아직도 크게 팽창한 그대로였다.
보아하니 저게 머리이면서 입이기도 한 듯, 깔때기의 좁은 끝 부분이 인간의 목을 대신 하고 있었다.
이제 곧 내려오나?
움직이는 속도는 얼마나 빠를까 ?
‘저, 정신 차리자……’
콧등에 식은땀이 솟아 오른다.
꿈에서도 본 적이 없는 끔찍한 존재.
그런 괴물이, 진짜로 눈앞에 와 있다.
드드득……
마침내 놈의 주둥이가 들썩거리며 철골이 구부러지는 듯한 소리를 냈다.
정우는 이 소리를 들으면서, 저 아가리가 도로 닫힐 때 얼마나 강한 힘을 낼지 상상했다.
사람의 뼈 따위는 나무 젓가락 부러뜨리듯이 할 거다.
아니나 다를까 놈이 주둥이를 통째로 살짝 들면서 무언가를 떨어뜨렸다.
툭.
‘헉!’
짧은 순간이었지만, 정우는 보고 말았다.
그건 재형의 팔의 일부였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그다음이었다.
핏물과 함께 바닥에 떨어졌던 팔 조각이, 순식간에 깔때기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팔이 있던 자리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심지어 핏자국조차도.
정우는 이제야 이 자리에서 죽은 사람들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알 수 있었다.
더 섬뜩한 건, 이놈이 여기에 덫을 놓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앞서 잡아먹은 사람들의 정수를 미끼로 해서.
‘그냥 무지막지하기만 한 괴물이 아니야. 사람을 사냥할 수 있을 정도로 영악해.’
꾸드득.
놈의 아가리에서 또 괴상한 소리가 난다.
그러더니 지름 10미터 크기로 펼쳐졌던 깔때기가 눈 깜짝할 사이에 접혔다.
완전히 접혀 들어간 놈의 주둥이는 꽃봉오리 같은 형태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머리통이 커 보이긴 했다.
일반적인 성인 남성 머리의 세 배 정도.
몸집 또한 사람에 비해 훨씬 컸다.
천장에 고정된 파이프를 붙잡고 있던 팔과 다리는 각각 2미터 가량 됐다. 대체적으로 신장과 이동속도는 비례한다.
정우는 자신의 달리기 실력으로는 이놈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거란 걸 예감했다.
아니, 그 어떤 인간도 이놈보다 빠르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조 팀장님.’
괴물의 주둥이가 접히면서 다시 드러난 건너편에는 조선웅 팀장이 굳은 표정 으로 서 있었다.
그 역시 온몸이 뻣뻣하게 굳은 채였다.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고민 중인 것 같았다.
“……”
허공에서 두 인간의 시선이 맞닿는다.
정우는 조 팀장의 머리맡에 보이는 숫자를 확인했다.
현재 그의 정수는 총 17개.
기존에 비해 무려 7개나 되는 정수가 늘었다.
그럼에도 조 팀장의 기세는 여전히 쪼그라들어 있었다.
저 괴물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포식자라고 해서 정수 사용법올 따로 배우거나 한 건 아니구나.’
정우가 침음한다.
그렇다면 남은 해법은 자신뿐이다.
정수를 무려 25개나 가지고 있으니까.
지구의 말처럼 이게 정말 강력한 무기라면, 열 명가량의 인간이 화력을 몰아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
하지만 총알만 잔뜩 있으면 뭐 하는가. 방아쇠를 당길 줄 모르는데.
‘내가 구원자라면서? 대체 일반인과 다른 게 뭐야? 난 내 목적도 모른 채 죽는 건가?’
스륵.
끝내 아무런 대안도 찾지 못한 상태에서 ‘그놈’이 팔 하나를 바닥 쪽으로 늘어뜨렸다.
그러더니 파이프를 붙잡고 있던 나머지 팔다리를 풀었다.
처덕!
의외로 놈의 발이 바닥과 닿는 소리에선 점성 같은 게 느껴졌다.
어쩌면 손이나 발바닥에서 끈적거리는 물질이 분비되는 걸지도…….
‘……제길,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상관이냐.’
휙.
놈은 사람이 엎드린 듯한 자세로 머리만 들어 올려서 좌우를 훑었다.
꽉 물린 꽃봉오리 형태의 머리통.
저게 언제고 거대한 깔때기처럼 펼쳐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다시 소름이 돋았다.
눈이 없는 것 같던데, 냄새나 소리로 대상을 추적하는 걸까?
‘어차피 뒤로 돌아 달리면 바로 따라잡힐 거야. 차라리……’
정우는 아직도 오른손 안에 있는 만년필의 존재감을 느끼며.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할 수 있다면 놈이 덮쳐 올 때 목 근처를 찔러 볼 생각이었다.
적어도 볼썽사납게 도망가다 죽고 싶진 않았으니까.
‘지구야…… 대체 뭐 하는 거냐. 네가 임명한 구원자가 죽게 생겼는데. 뭐라도 해봐.’
끄륵.
박정우와 조선응. 두 사람 사이에 서 있던 괴물이 드디어 고개를 돌렸다.
놈이 바라본 곳은 정우 쪽이었다.
우연히 이쪽을 바라본 게 아니고, 명확한 목적을 가진 움직임이었다.
놈이 말을 걸어오거나 하진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도, 도망가요!”
자신의 최후를 예감한 정우가 아직도 반대편에 서 있는 조 팀장을 향해 외쳤다.
이왕이면 한 명이라도 살 기회를 붙잡는 게 좋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때.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정우의 눈앞에 반투명한 텍스트 박스가 나타난 것이다.
“…..!”
「인간 박정우 님의 ‘구원자’ 적성 점수가 평균치를 초과했습니다.」
I 설문 결과로 기본 점수 21점 획득.
| 판단력으로 7점 추가 획득.
| 포용력으로 4점 추가 획득.
| 정수 흡수로 20점 획득.
I 투지 가산점으로 1.5배율 계산.
「총점 ‘78’을 획득했으므로 평가관을 배정합니다. 감사합니다」
무슨 개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정우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타이밍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난잡한 점수표 뒤로 이미 ‘그놈’이 공격 자세를 취한 게 보였다.
길쭉한 뒷다리를 메뚜기처럼 접고 양팔로 바닥을 짚었다.
누가 봐도 전방으로 도약할 기세였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박정우 님에게 배정된 평가관 ‘다467’이라고 합니다.
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우의 머릿속으로 천연덕스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지구가 보낸 평가관이니, 분명 인간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대사를 옮는 억양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뭐. 이 상황에서 그게 중요하진 않다.
정우는 곧바로 평가관을 향해 이야기했다.
‘안녕하지 못하니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면 안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