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50
50화. 저는 구원자입니다 (1)
“혹시…… 종교 같은 게 있으십니까?”
용헌이 조종간을 꽉 붙든 채로 마이크를 통해 물었다.
곧 미군 기지에 착륙할 상황이었기에 무척 생뚱맞은 질문이었다.
그래서 다들 그가 심히 긴장해서 그러는 줄로 알았다.
“아뇨, 없습니다.”
정우가 먼저 대답했고, 이어서 선웅이 이야기했다.
“어릴 때 성당을 다닌 적이 있긴 한데, 중학교 즈음부터 안 가기 시작해서……. 저도 무교라고 봐야 할 것 같네요.”
이제 남은 건 비뇨기과 전문의인 동훈 하나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리자 이 땅딸막한 사내가 입술을 실룩이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한때 교회를 열심히 다닌 적이 있지요. 성가대 활동도 하고. 지금은 안 믿습니다.”
그러더니 뭐가 그리 우스운지 킬킬댄다.
그러나 용헌의 표정은 여전히 진지했다.
“그러시군요……. 전 기독교 신자입니다. 이렇게 된 마당에 신앙이 있다고 하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겠지만…… 아무튼 그렇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는 걸까.
다들 용헌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어…… 별건 아니고요. 그냥 문득 든 생각입니다. 천사 아십니까?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 천사 말입니다.”
“예, 알죠.”
정우가 용헌의 말을 받아 줬고, 자연스럽게 다음 대사가 이어졌다.
“성경에선 천사가 인간에게 결코 달가운 느낌으로 묘사되지 않아요. 외형도 몇 개씩 되는 날개로 몸을 가리고 있어서, 오히려 괴물에 가까운 인상입니다. 그래서 성경 속 인물들은 대개 천사를 보고 두려운 마음을 갖죠.”
이쯤 되자 정우는 이 남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 모든 일 또한 그와 같다는 의미입니까? 신의 의지를 대변하는 놈들인데 인간이 두려워하는 것뿐이다?”
정우가 이렇게 묻자 용헌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작정한 듯이 말했다.
“음, 저 괴물들을 신이 보냈다는 생각까진 차마 할 수가 없더군요.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 헬기를 타고 있는 우리 모두 남들에겐 그 천사나 괴물처럼 보이지 않겠습니까? 심지어 정우 씨의 역할명은 구원자고…….”
이 말에 비로소 선웅이 창밖을 파랗게 물들인 보호막을 쳐다봤고, 동훈은 얼굴에 묘한 웃음을 걸었다.
오로지 정우만이 용헌의 말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일찍이 지구가 마련해 둔 구원자 전형 시스템, 어딘가에서 왔다던 평가관 등을 통해 많은 걸 보고 있던 그였으니까.
구원자들은 이미 ‘인간’ 차원에서 논할 수 없는 존재가 돼 가고 있었다.
인간이길 포기? 초월?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구원자가 소임을 다하려면 여느 인간과 같아선 안 된다는 점이다.
“괴물이 맞죠. 모든 걸 다 깨부수고 있는데. 그것도 생명을 해치는 게 전부라면 다행일 겁니다.”
정우의 마지막 대사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를 깨달은 나머지 세 사람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사이 헬기는 충실하게 목적지를 향해 갔다.
부대 입구는 언뜻 봐도 아비규환이라 접근할 수가 없었고, 이 때문에 입구에서 대략 150미터 떨어진 연병장 외곽에 착륙을 시도했다.
고도가 벌써 100미터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해서, 부대 안의 사람들도 새 방문자의 존재를 알아챘을 터였다.
그러나 정우 일행 쪽으로는 단 한 발의 총알도 날아들지 않았다.
앞서 용헌이 이 헬기 역시 남들에겐 두려움의 대상일 거라고 말했지만, 그건 평시 기준이다.
지금 이곳의 군인들은 소름 돋을 정도의 기세로 뛰어 들어오는 농부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헬기가 이상한 보호막을 감고 있든 말든, 낯익은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했을지도 모른다.
“전 바로 진입로 쪽으로 갈 겁니다. 제가 돌아올 때까진 아마 저 사람들이 지켜 줄 거예요. 그러니 튀는 행동은 하지 마시고, 여기서 대기만 하고 계세요.”
정우가 멀찍이서 교전 중인 미군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즉, 이번엔 미군을 방패막이 삼아 헬기와 일행을 보존하겠다는 거다.
“혼자 가신다고요?”
이 말을 하는 선웅의 어조가 묘하다.
진입로를 또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 안심을 하면서도 정우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덜컥 겁이 난 탓이었다.
“저 사람들이 여러분을 쏘진 않을 겁니다. 저도 진입로에 들렀다가 다시 돌아오기 전까진 사람들을 해치지 않을 거고요. 누가 물어보거든, 정부 소속의 구원자를 데리고 왔다고 하세요.”
“…….”
정부 소속의 구원자……? 대번에 들통 날 게 뻔한 거짓말이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장내 모두를 눈 깜짝할 사이에 도륙할 수 있는 사내의 말이니까, 다들 두말없이 수긍했다.
“착륙합니다. 조금 흔들릴 수 있습니다.”
용헌의 안내와 함께 육중한 기체가 바닥에 닿았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평소보다 착륙이 거칠었다.
연병장 사방에 탄약 상자와 소총 거치대가 널려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정말 위급하면 배낭에 있는 총을 쓰시고, 저것들은 건드리지 마세요. 나중에 챙겨 갈 겁니다.”
정우가 근처 거치대에 남아 있는 소총을 가리키며 당부한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연병장을 날쌔게 가로질렀다.
신체에 정수를 직접 불어넣어서 운동 능력을 극대화했기에 가능한 움직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를 보던 동훈이 눈을 번득이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저 정도면 작정하고 인간을 사냥할 만하군요.”
“…….”
이에 나머지 두 사람이 표정을 굳혔지만, 이들이 봐도 지금 정우의 움직임은 기가 막힐 정도였다. 정말 같은 인간이란 게 믿겨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최상위 구원자의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볼 시간은 얼마 주어지지 않았다.
곧 연병장 측면에서부터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뭡니까, 당신들?”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건장한 체격의 미군 셋과 이에 못지않은 덩치의 국군 하나가 접근 중이었다.
문제는 국군이고 미군이고 할 것 없이 총구를 전방으로 한 상태라는 거다. 저마다 정우가 달려 나간 방향을 곁눈질하는 것으로 봐선 구원자의 출격 모습을 목격해 버린 듯.
‘제길, 진짜 정부에서 파견한 거라고 해도 되는 건가?’
선웅은 남몰래 식은땀을 흘렸다.
푸른 궤적까지 남기며 달리는 정우를 본 이상, 이쪽이 지나가던 일반인이라거나 하는 소린 먹히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주한 미군에게 정부 소속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것도 미친 짓에 가까웠다.
게다가 이들은 충분히 긴장한 상태이지 않은가. 신분 확인이 안 된 상대에게 총구부터 들이댈 정도로. 군인으로서의 의무고 뭐고 여차하면 쏘고 보겠다는 심산일 터.
“너희, 누구냐고.”
불청객이 선뜻 답하지 못하자 군인들이 한층 거친 자세로 나왔다.
그리고 이때 비로소 목소리의 주인을 특정할 수 있었는데, 그건 다름 아닌 벽안(碧眼)의 군인이었다.
그러니까, 여태 외국어를 아무 위화감 없이 알아듣고 있었던 거다.
“……?”
이를 뒤늦게 깨달은 세 사람이 몸을 움찔하자 이번엔 카투사로 추정되는 한인이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질문해 왔다.
“긴장하지 마시고요. 어디서, 왜 오신 분들인지 그리고 아까 저리로 뛰어가신 분은 누군지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저리로 뛰어가신 분’은 당연히 정우를 이르는 것일 테고.
선웅은 혹시 말할 준비가 된 사람이 있나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자 바닥만 쳐다보고 있는 용헌이 먼저 보였고, 다음엔 ‘어쩌라고?’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동훈이 눈에 들어왔다.
‘후…….’
한숨조차 입 밖으로 내뱉기 부담스럽다.
선웅은 말을 더듬지 않기 위해서 잠시 숨을 고른 뒤 또렷한 발음으로 천천히 말했다.
“용산 기지를 보전하라는 명령을 받고 긴급 파견된 특수 대응 팀입니다.”
이에 신분 확인 요청을 해 온 그 카투사가 미간을 깊게 구겼다.
“특수 대응 팀이라고요? 어느 부대 소속이십니까?”
훅 들어오는 두 번째 질문.
선웅으로선 무척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서, 어제 구원자 수배 문자를 보냈던 재난 본부 소속이라고 답변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대가 ‘어느 부대’냐고 물어 오니, 순식간에 머리가 새하얗게 비어 버렸다.
설마 재난 본부는 수배령 전파만 담당한 것이고, 영입된 구원자들은 특정 군부대로 편입되는 것이었나?
속사정을 모르는 입장으로선 결코 알 수 없는 일이다.
여기에서 잘못 대답했다간 이 자리에서 총살당할지도 모르는 일.
‘군인들이 여러분을 쏘진 않을 겁니다’라고 속단해 버리던 정우가 미워진다.
“대답하십시오.”
군인들도 조바심이 났는지 불청객의 대답을 재촉했다.
“그, 그게…….”
결국 말을 더듬고 만 선웅. 그러나 어떤 것이든 대답을 내놔야만 했다.
* * *
한편, 부대 입구 쪽으로 달려간 정우는 이 와중에 시간을 확인하고 있었다.
가급적이면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종로까지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재 시각, 오전 11시 36분.
‘일단 시간은 충분하다.’
정우는 온몸에 두터운 보호막을 두른 채 지척까지 다가온 전장을 바라봤다.
200명가량의 군인이 부대 입구에서 약 80미터 이격된 위치에 진을 치고 있었다.
어둠이 넘실대는 부대 바깥쪽에서부터는 행운동에서 본 것과 똑같은 모습의 농부들이 씨앗을 품은 채 진입을 시도했다.
몇몇은 3미터가 넘는 담장을 가볍게 뛰어넘어 왔고, 또 일부는 이미 박살 난 정문을 통해 돌진했다.
그리고 정우는 이때 처음 봤다. 농부가 몸을 잔뜩 수그린 채 질주하는 모습을 말이다. 마치 럭비 선수 같았다.
아마도 총알에 노출되는 면적을 줄이기 위함일 터.
이 녀석들도 인간의 화기를 완전히 막아 낼 순 없다는 거다.
다시 말해, 방송으로 봤던 강원도의 군인들 역시 전멸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의미.
정우는 바로 전면에 나서려다가 이들이 대체 어떻게 싸우는지 보기 위해 멈춰 섰다.
현재 그의 위치는 미군들이 아치형으로 펼쳐 둔 진형의 뒤편이었다. 거리가 20미터도 채 안 될 것이다.
몇몇이 정우의 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봤지만, 총구마저 후방으로 돌릴 여력은 없어 보였다.
잠시 화력이 약해지자 대번에 예의 그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찌잉!
다음엔 장관이 펼쳐졌다.
투다닥! 타닥!
이건 이백 켤레의 전투화가 일시에 땅을 박차는 소리다.
군인들이 ‘구토 공격’에 대응해서 몸을 아예 뒤로 눕히고 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미친 듯이 총을 쏴 댔다.
투타타타탕!
이들의 머리가 닭이 걸을 때처럼 앞으로 까닥거리는 건 헛구역질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몸을 눕힌 덕분에 고개가 제멋대로 튕기더라도 항상 전방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이 최소 수 시간 동안 2일 차 진입로의 확장을 저지할 수 있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속이 다 게워 내질 때까지 구토 공격을 당하면서도 전방 사격이 가능한 자세를 찾은 것이다.
이건 정말이지 인간이었기에 찾아낼 수 있는 정신 나간 대응법이었다.
‘맙소사.’
정우는 순간적으로 전율을 느꼈다. 그것도 인간에게는 처음으로.
이제야 여태 보지 못하고 있던 것들이 하나둘 시야에 들어온다.
모든 군인의 바지와 발치에 깔린 모래가 까맣게 젖어 있었다.
각각의 몸속에서 나온 토사물과 똥오줌이 뒤엉킨 결과였다.
도처에 널린 전투 헬기 잔해, 바닥에 납작하게 눌어붙은 시체들도 많은 걸 시사했다.
남은 군인들이 이 대응법을 찾기까지 상당한 시행착오가 있었던 것이다.
“조준 사격! 탄을 아껴라!”
그새 구토가 멎었는지, 누군가 다 쉬어 가는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그리고 이에 맞춰 군인들이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두두두…….
다시 한 번 전투화들이 대지를 두들긴다.
몇몇은 기력이 다했는지 여전히 누운 채였지만, 그래도 반 이상이 제대로 된 사격 자세를 되찾고 있었다.
그렇다고 큰 고비를 넘긴 건 절대 아니었다.
구토를 유발하던 농부들은 일찍이 처리됐으나 어둠 너머에서는 벌써부터 다음 순번이 대기 중이었다.
정우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군인들의 눈에 공포와 체념이 뒤섞이는 걸 봤다.
매번 저런 눈을 하고서 아까와 같은 짓을 반복해 왔을 것이다.
‘대응법’을 거듭할수록 자리에서 단번에 일어나지 못하는 동료들이 늘어났을 테고.
점점 떨어지는 사기. 종래엔 그저 숨을 붙이고 있기 위한 본능적인 발악.
이게 지옥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리 애를 써도 진입로를 닫을 구원자가 없으면 놈들은 끝없이 밀려든다.
‘어차피 다 죽을 운명이었던 거야. 탄을 아끼자던 말이 안타까울 지경이네.’
정우의 시선이 초조한 표정으로 예비 탄창을 점검 중인 어느 군인에게 닿았다.
새삼 지구의 1일 차 조언이 또 떠오른다.
「만약 이 사태를 완전히 해결하고 싶다면, 구원자를 찾아 도우십시오.」
놈이 해 준 말은 대체로 옳다.
척.
이윽고 정우가 군인들 사이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여태 전방만 주시하고 있던 이들이 화들짝 놀라며 침입자를 피해 뒤로 물러섰다.
그렇다고 총구를 들이대거나 적대감을 내비치진 않았다.
머릿수만 해도 자신들이 압도적인 데다, 상대는 누가 봐도 평범한 회사원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는 이게 꿈인가 싶어서 눈을 꽉 감았다가 뜨기까지 했다.
그 정도로 이곳의 군인들은 경황도 희망도 없었다.
그래서 정우가 다음 대사를 내뱉었을 때, 모두가 해맑기까지 한 표정을 지을 수 있던 게 아닐까.
절박하고, 꿈에 그리던 상황이었으니까. 그래서 믿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정부에서 여러분을 구제하기 위해 절 보냈습니다. 저는 구원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