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68
68화. 1세대(1)
사격 개시?
당황한 태휘가 입술을 움직여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혀가 빳빳하게 굳어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사이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경호원들이 방아쇠를 당겼고, 거의 같은 순간에 정우의 몸이 짧게 경련했다.
태휘에게 멱을 잡힌 상태로 정수를 활성화한 거다.
파앗.
그리고 대번에 엄청난 굉음이 공기를 찢으며 날아들었다.
투타타타타타!
청와대 경호원들이 사용하는 MP5는 분당 800발의 탄을 쏟아 낸다.
유효 거리가 길지 않다고 하지만 그건 야전이나 도심지에서 대치할 때의 이야기다.
근거리 사격 비중이 높은 실내에선 이보다 더 무서운 무기가 없었다.
콰자자작!
수백 발의 총탄이 빗발치자 회의실의 모든 기물이 과자 바스러지듯 분해됐다.
“으아! 으아아악!”
너무나도 소름 끼치는 파열음에 중성은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비명을 마구 질렀다.
그러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됐다.
“어……?”
소리를 너무 오래 지르고 있지 않은가.
소파 밑에 고개를 처박고 있던 명일도 같은 걸 깨닫고서 눈을 떴다.
진상을 일찍부터 알고 있던 건 생물 최초로 정우에게 주먹을 꽂은 태휘뿐이었다.
그는 똑똑히 봤다.
총알이 날아들던 순간, 저 앞에서 푸른 장벽이 솟아오르던 것을 말이다.
타타타탓!
여전히 요란한 총성이 귓속을 두드리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명일의 시야에 ‘장벽’이 들어왔다.
‘저게 뭐야? 정수로 만든 건가?’
이질적인 빛깔, 특유의 질감. 분명히 정수 보호막의 일종이었다. 그러나 여태 본 적이 없는 형태였다.
평소처럼 정우를 중심으로 전개된 게 아니라 소파에서 약 4미터 떨어진 지점에 홀로 생성되어 있었으니까. 심지어 와이드 모니터처럼 살짝 휘어진 직사각형이었다.
“아.”
비로소 명일의 시선이 장벽 바로 뒤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중성에게 닿았다.
‘저 사람을 살리려고 일부러……?’
그가 의외라는 눈빛으로 정우를 쳐다봤지만 실제 사정은 조금 달랐다.
물론 중성을 살리기 위해 보호막을 앞쪽에 설치한 건 맞았다. 그러나 그것을 장벽 형태로 빚은 건 순전히 효율성 때문이었다.
행운동에서의 경험에 비춰 보면 총알 하나를 막는 데 수백 개의 정수가 소모된다.
따라서 아무리 4만 개짜리 구원자라고 해도 근거리에서 쏘아진 수백 발의 탄을 간단히 막아 낼 순 없었다.
더군다나 상대는 청와대 경호팀.
정우가 일제 사격을 버텨 내자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시커먼 깡통 같은 걸 휙 던졌다. 그러면서 잽싸게 탄창 교체를 시도했다.
철커덕, 철컥!
‘뭣……?’
정우의 미간이 찌그러진다.
일시적으로 사격이 멎었지만 대신 다른 게 날아오고 있는 상황.
뭐지? 폭탄일까?
시야엔 이미 대통령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출입구 뒤쪽으로 빠진 거다.
‘제길.’
총알 세례를 막아 내느라 정수가 바닥나서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었다.
남은 정수로 폭탄을 막거나, 아군 보호를 포기하고 경호원 먼저 정리하거나.
고민할 시간이 많진 않다.
결국 정우는 본인에게만 최소한의 보호막을 두른 채 전방으로 정수를 뿜었다.
폭탄을 막아 낸다 해도 정수 재생 전에 2차 사격이 시작되면 전부 죽을 터였으니까.
스아아앗!
시퍼런 파동이 막 장전을 마친 경호원들을 덮쳤다.
허공을 가로지르던 ‘깡통’에서 어마어마한 소리가 난 것도 이때였다.
쿠아아앙!
현기증이 날 정도의 폭발음과 함께 섬광이 발생했고, 순간적으로 정우의 눈이 멀었다.
“흐억!”
극심한 멀미. 당혹감이 정수리를 짓누른다.
마침 바닥났던 정수가 도로 차오르기 시작했지만 방향 감각조차 없는 상태라 자신이 지금 보호막을 둘렀는지 아닌지도 알기 어려웠다.
시야가 수십 장으로 늘어졌다가 겹치길 반복한다.
경호원은? 놈들은 다 죽은 건가?
“흐읍.”
갈지자를 그리며 휘청거리다가 무언가를 붙잡았다.
탁.
익숙한 감촉. 가죽 소파였다.
이윽고 시야가 중심을 되찾기 시작했다.
“우억, 컥.”
근처에서 누군가 헛구역질을 해 대는 소리도 들렸다.
이명이 주기적으로 고막을 찔렀지만 탄을 맞은 직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우는 신체 기능이 회복되자마자 경호원들이 있던 방향을 쳐다봤다.
그리고 보게 됐다. 수십 개의 정수 구체가 산처럼 쌓여 있는 광경을.
“후욱.”
안도의 한숨.
그러나 손발은 여전히 벌벌 떨리고 있었다.
찰나였지만 죽을 뻔했다는 걸 알아서였다.
아직 멀었다. 정수 4만 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방주 탑승자를 끌고 다니며 모든 변수에 대처하려면 훨씬 많은 정수가 필요했다.
* * *
“씨발, 이 씨발……!”
방 안에 울려 퍼지는 격앙된 음성.
“…….”
‘가짜 1위’, 김동희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저 흉악한 목소리가 대통령의 것이라는 게.
텔레비전에서 보던 그 온화하고 기품 있는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진짜 이 개새끼를!”
분이 쉽게 풀리지 않는지 이번엔 문간의 화분을 발로 차서 깨뜨린다.
콰작!
그러더니 소스라치게 놀라며 문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 미치광이 구원자가 이 소릴 듣고 쫓아올까 봐 겁이 난 거다.
수초처럼 마구 헝클어진 머리, 휘둥그레진 눈.
볼품없는 대통령의 모습에 결국 동희가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풉.”
그러자 바로 옆에 서 있던 안보실장 임송재가 동희를 벽으로 밀치며 으르렁댔다.
“웃겨? 이 사기꾼 새끼가.”
당장이라도 주먹을 날릴 기세다.
올해로 72세. 산전수전 다 겪어 온 그가 내뿜는 기세는 어마어마했다.
이틀 전까지 평범한 대학생으로 살아온 동희가 움츠러든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죄송합니다.”
그러다 문득 보게 됐다.
상대방의 머리맡에 떠오른 숫자 말이다.
‘4…….’
반면 동희 자신이 가진 정수량은.
‘2,663.’
어라?
동희의 머릿속에서 어떤 결론이 내려졌다.
‘아니, 내가 왜 이 늙은이들한테까지 겁을 먹어야 해?’
이젠 쓸모도 없지 않은가.
동희가 1위를 자처하며 정부를 찾아온 이유는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였다.
이전까지 머물고 있던 지역인 안양은 자신이 혼자 삼키기에 너무 거친 곳이었다.
일찍이 무법지대가 돼서 천 단위 각성자 간의 힘 싸움이 한창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급한 대로 도망을 왔더니 4만 개짜리 구원자가 쳐들어와?
이건 상상도 못한 전개였다. 그놈이 다짜고짜 사람을 다 죽일 줄은 더더욱 몰랐고.
대체 뭐하는 놈이기에 정부조차 식사 거리로 삼는 걸까.
“아이, 씨발. 그럼 이게 웃긴 일이지 안 웃기냐. 대통령이고 뭐고 다 뒈지게 생겼는데.”
탓!
동희가 임송재의 팔을 내치며 이를 드러내자 맞은편에 있던 또 다른 사내가 권총을 꺼내 들었다.
“동작 그만.”
대통령 경호처장 염상수였다.
물론 이 사내도 60대 중반의 ‘늙은이’.
“하, 미친 새끼들.”
동희가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고, 뭔가를 직감한 대통령이 경호처장의 총을 얼른 밀어냈다.
“이게 다 무슨 짓입니까? 진짜 적은 저 바깥에 있는데!”
이런 걸 위기관리 능력이라고 하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정신이 완전 나가 있었으면서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엄숙한 표정으로 좌중을 둘러본다.
“…….”
어찌 됐든 일순 평화가 찾아왔다.
“대성에서 사람이 오기까지 얼마나 남았습니까?”
이건 대통령의 질문.
이에 안보실장이 손목시계를 슬쩍 보더니 고개를 조아렸다.
“18분 후면 도착합니다.”
이 말에 대통령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현재 시각 오후 4시 42분.
예정대로라면 오후 5시 정각에 대성 측 사람이 이곳에 올 거다.
그래도 약속 시간보다 10분 일찍 오는 게 매너 아니겠는가?
그들이 50분쯤에 온다고 생각하면 정말 머지않았다.
“그럼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대성이 이 중요한 일에 아무나 보내진 않았겠지요. 서울을 수복할 정도의 요원들을 데리고 있다고 했으니…….”
즉, 그들이 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자는 거다.
현 위치는 대회의실과 같이 지하 4층에 꾸려진 관리 사무실.
여긴 이미 벙커의 최하층이라 위로 도망가야 했는데 회의실에서 빠져나올 당시 경황이 없어서 복도를 잘못 고른 게 패착이었다.
“우리 요원들이 놈을 쓰러뜨렸을 수도 있습니다.”
“…….”
경호처장이 뒤늦게 의견을 냈지만 묵살됐다.
“비상 경보가 발동됐으니 경비대가 이리로 내려오고 있을 겁니다. 시간은 조금 벌어 줄 수 있겠지요…….”
그나마 안보실장이 현실적인 이야기를 했다. 뒷맛이 쓰다.
“음.”
“으음.”
한동안 침음과 무거운 정적이 번갈아 이어졌다.
그러다 대통령이 동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만약 무사히 대성 측과 접선하게 된다면 그때부턴 동희 씨가 대한민국의 구원자가 되는 겁니다.”
“예?”
무슨 소리냐는 듯 동희가 눈을 크게 뜨자 대통령이 부연했다.
“저런 살인광이 1위 구원자였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대한민국 정부는 앞으로 동희 씨를 지지할 겁니다. 지난 일은 잊고 잘해 봅시다.”
슥.
대통령이 악수를 청해 온다.
“……?”
동희는 잠시 멍하니 상대를 바라봤다.
사람이 너무 궁지에 몰리니 미쳐 버린 게 아닌가 싶다.
이 와중에 대한민국 정부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가……. 동희가 알기로 이제 정부 인사라고 할 만한 자는 이 방 안의 셋이 전부였다.
대통령, 안보실장, 경호처장.
뭐, 다른 층에 허드렛일을 하는 직원이 몇 있을지도 모르겠다만 회의실 안에서의 학살로 주요 인사가 다 죽은 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살인광이니까 1위인 거야.’
직접 보고도 모른단 말인가.
정상인은 순위권 구원자가 될 수 없다.
아니, 정확히는 이 시점까지 살아 있을 수조차 없다.
자신만 해도 어제 아침, 안양역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에 보이는 사람을 다 죽였으니까.
아직은 혼자만 아는 비밀이다. 목격자를 남기지 않았으니.
“예에…….”
동희가 말꼬리를 흐리며 대통령과 손을 맞잡았다.
탁.
그래도 대통령이잖아. 정부가 있어야 나라가 돌아가잖아.
이게 동희가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정작 나라를 구할 힘이 있는 1위 구원자는 저런 상식에 동의하지 않는 것 같았다.
왜일까.
동희는 대통령의 체온을 느끼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다가.
쾅!
멀리서부터 들려온 굉음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헉.”
깜짝 놀란 동희가 악수를 그만두고 뒤로 물러선다.
트드드드득!
번개같이 날아든 연발 총성. 다만 기관단총 소리가 아니었다.
“어, 이거…….”
경호처장 염상수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슬슬 벽면으로 몸을 붙이기 시작했다.
문밖에서 나고 있는 저 소리는 북악산 경비대가 사용하는 K-2 소총의 연발음이었기 때문이다.
트드드득!
트드득!
총성의 지속 시간이 점점 짧아지더니 종래엔 뚝 멎어 버렸다.
“혹시……. 저놈과 맞서 싸울 수 있겠습니까?”
더는 방법이 없겠다고 생각했는지 경호처장이 동희를 향해 물었다.
“쉿.”
그러나 대통령이 조용히 하라며 검지를 들어 주의를 줬다.
그사이 바깥에선 새로운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는데, 이 소리의 정체를 알게 되자마자 장내 모두가 사색이 됐다.
다름 아닌 사람의 발소리였으니까.
저벅, 저벅.
심지어 밑창의 마찰음이 무척 가볍다. 군화나 구두를 신은 자는 아니라는 거다.
두근두근.
방망이로 심장을 두들겨 맞는 것만 같다.
동희는 저만치 출입문 아래로 거뭇한 그림자가 어른 거리는 걸 봤다.
누군가 이 앞의 복도로 접근 중이었다.
‘제발, 제발 그냥 지나가라.’
불가능한 소원까진 아닌 게, 이 근처엔 방이 무척 많았다.
식품 저장고가 이 근처고 경호팀의 숙소도 같은 복도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 씨팔.’
상대가 이 방을 들러 보지 않을 리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림자를 따라 고개를 천천히 움직이던 동희의 시야에 그것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슥.
굳은 표정으로 물러나 있던 안보실장도 저것 좀 보라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까 대통령이 발로 차서 부쉈던 화분.
그 안에서 터져 나온 흙이 문지방 너머까지 쭉쭉 뻗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