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71
71화. 1세대(4)
“미친 새끼!”
대성에서 내로라하는 ‘미친놈’ 중 하나인 형철의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물론 아직 상대의 얼굴조차 못 봤다.
순전히 놈이 던져대는 정수 창의 위력에 놀라서 한 말이었다.
스아아앗!
또다.
“이 씹…….”
형철은 이를 꽉 물며 몸을 최대한 낮췄다.
대번에 또 한 줄기의 정수 창이 시야 측면을 스쳐 갔다.
그러더니 뒤편에 세워져 있던 침투용 헬기의 꼬리를 관통했다.
푸카카칵!
철제가 소멸하는 특유의 소리.
본체와 분리된 꼬리 로터가 바닥에 머리를 처박자 근처에 몸을 숨기고 있던 3번과 6번 요원이 허겁지겁 흩어졌다.
“등신 같은 새끼들!”
이를 본 형철이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 대고 채널 통신을 날렸다.
“이대로 있으면 어차피 다 뒈져. 돌격 지원자, 알아서 호명해라. 내가 같이 간다.”
이에 찰나의 정적이 찾아왔다.
그러나 팀장이 혼자 들어가 죽어 버리면 그다음은 자기 차례란 것 정도는 다들 알았다.
“2번.”
“5번입니다.”
“9번.”
“7번.”
빠르게 네 명이 지원해 왔다. 형철을 포함하면 총 다섯.
“좌측부터 번호순으로 정렬. 바로 진입한다.”
지체 없이 지시가 떨어졌고, 각자 엄페를 하고 있던 요원들이 일제히 달려 나갔다.
형철의 부름에 응하지 않은 건 3번, 6번 그리고 카메라를 달고 있는 4번.
4번이야 작전 촬영을 위해서였다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나머지 둘은 아니었다.
만에 하나 돌격 작전이 성공한다면 숙청 대상이 될 거다.
파팟!
형철은 이미 습격자가 몸을 숨긴 터널을 향해 전력 질주 중이었고, 곧 나머지 넷도 뒤를 따랐다.
요원들이 대기 중이던 지점에서부터 터널까지의 거리는 약 30미터.
직접 달려 보니 체감이 확 된다. 정수를 쏴서 누군가를 죽이기엔 너무 먼 거리였다.
‘대체…….’
그런데 상대는 너무나도 간단히 해냈다. 이건 정말 많은 걸 의미했다.
스아아앗!
저격이 또 시작된다.
순간적으로 정수의 발현 지점이 파랗게 빛났고, 터널로 돌격하던 5인조의 시선도 그리로 몰렸다.
하지만 이미 터널 진입부다. 상대와의 거리는 대략 12미터. 저 빠른 투사체를 보고 피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돌격이란 전술 자체가 사실상 러시안룰렛이기도 했고.
사망 확률은 각자 20퍼센트.
저마다 몸에 정수 보호막을 두른 채 힘차게 땅을 박찼다.
솨앗!
이윽고 시퍼런 정수 창이 선두에 있던 형철을 사선으로 비껴갔다.
공격 대상이 일단 그는 아니었던 것이다.
‘흐억!’
긴장한 탓에 소리를 내는 것조차 부담스럽다.
형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전방을 향해 정수를 뿜었다.
측면에서도 나머지 요원들이 공격을 시작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성공이다.’
정확히는 공격 시도가 성공.
파앗!
사방에서 정수가 발산되자 터널 내부가 시퍼런 빛에 감싸였고, 드디어 상대의 모습이 드러났다.
신장은 170 중반, 표준 체형, 흰 셔츠에 정장 바지의 흔한 복장.
단, 요원들이 처음 보는 얼굴은 아니었다.
“너……!”
형철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서초동의 대성 전자 사옥 CCTV에 찍혔던 그놈.
영입을 위해 고급 헬기를 싸 들고 찾아갔더니 담당자와 헬기 ‘먹튀’를 했다던 그 새끼였다.
스아아악!
그사이 현장을 뒤덮은 정수 파동이 터널 벽면을 말끔히 지워 버렸다.
그러나 정작 지워졌어야 할 대상은 제자리에 멀쩡히 서 있었다.
심지어.
“구…… 십삼…… 십칠? 이십일.”
반격은커녕 요원들을 둘러보며 이상한 대사를 혼자 읊었다.
처음엔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싶었으나.
‘억?’
잘 들어 보니 셈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형철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설마.’
그 설마가 맞았다. 놈이 계산하던 건 이쪽의 정수 총합이었다.
팀장인 자신이 9,003개.
그리고 나머지 요원들의 정수 평균량이 대략 4,000개.
“아.”
추론을 마친 형철이 침음함과 동시에 상대의 셈도 끝났다.
박정우, 정수 49,453개짜리 구원자가 입을 천천히 연다.
“정말 가진 정수가 이게 전부인가요? 서울을 수복하신다면서.”
“……?”
대사와 달리 말투에선 비꼬려는 의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어디 가게에 가서 물건값을 묻는 것처럼 너무 태연한 어조였으니까.
진심으로, 자기가 챙겨갈 정수가 더 없는지 물어 오고 있는 것이다.
소름이 쫙 돋는다.
자신들도 눈 깜짝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괴물이었지만 이런 유형의 각성자는 처음이었다.
“브, 브…….”
정우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던 9번 요원이 말을 더듬거리며 무언가를 말한다.
형철도 알았다. 녀석이 뭘 말하고 싶은 건지.
특수전단에서 상대의 얼굴을 알고 있는 건 이자가 대성 측의 ‘블루 리스트’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조우하게 되면 가급적 생포하거나 회유를 시도해야 하는 대상 말이다.
하지만 이놈을 생포하는 건 불가능하다. 방금 깨달았다.
이쪽의 정수량을 세면서도 저렇게 여유롭다는 건 본인의 정수 총량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의미일 테니까.
‘씨발, 하필 이런 새끼를.’
형철은 마른침을 삼켰다.
어쨌든 이미 벌어진 일이다. 사나운 일진을 원망만 하기엔 주어진 시간이 촉박했다. 살고 싶으면 머리를 굴려야 한다.
“저희는 일단 대화만…… 하러 온 겁니다.”
형철은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지 설득력이 좋은 사람까진 아니었다.
그가 본전도 못 찾을 말을 하는 사이 정우가 갑자기 터널 저편으로 정수 창을 쏘아 보냈다.
홰액!
오른손을 힘차게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사정거리 30미터 이상의 육중한 투사체가 발생한다.
“……!”
정우를 포위하고 있던 나머지 요원들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푸아아악!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부터 살점이 파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로 빠져 있던 놈들이 도망가려는 걸 잡아낸 거다.
‘미친.’
형철은 이제야 이 사내가 블루 리스트에 올라가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런 놈이 구원자의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면 진짜 세계를 구할 만한 인재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봐도 회유 같은 게 될 타입은 아니었다.
차라리 대성은 이놈을 어떻게든 죽일 방법을 찾는 게 현명할지도…….
“사, 사, 살려 주십시오!”
결국 투지가 완전히 꺾이고 만 일부 요원이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서 빌었다.
이에 정우가 요원들을 훑어보며 정말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다시 질문할게요. 이게 대성 쪽 전력입니까? 다른 팀이나 더 강한 사람은 없어요?”
“어…….”
질문을 받은 요원들이 서로의 눈치를 봤다.
그러자 정우가 더는 인내심을 보이지 않았다.
휙.
왼쪽으로 팔을 뻗는가 싶더니.
푸아아악!
정수를 뿜어서 요원 둘을 단번에 지워 버렸다.
“이 씨발!”
깜짝 놀란 형철이 몸을 부르르 떤다.
뒤를 흘깃 보자 9번 요원만 남아 있었다.
“티, 팀장님.”
9번이 애원하는 듯한 어조로 형철을 불렀다. 저 괴물이 원하는 대답을 해 주는 게 어떻겠냐는 거다.
하지만 9번도 알았다. 이런 질문에 답을 해 줘 봐야 여기서 살아나갈 수 없을 거란 걸.
자신들도 정수를 쌓기 위해 출동했던 작전 현장에서 비슷한 짓을 해 왔기 때문이다.
희생자들을 한데 모아 놓고서 다른 피난처 위치를 묻는 건 거의 필수 코스.
그리고 저런 작전들을 지휘해 온 게 바로 형철이었기에 그 역시 이 문답의 끝을 알 수밖에 없었다.
“팀이 몇 개 더 있긴 하지만…… 정수를 사용하는 건 저희뿐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이고요.”
형철이 거짓말을 한다.
혹시나 이놈이 정수를 찾아 대성이 보유한 건물을 이 잡듯이 뒤질까 걱정해서였다. 그 건물 중엔 가족이 입주한 숙소도 있을 테니까.
물론 가장으로서의 숭고한 희생 같은 건 아니다. 어차피 죽게 될 거, 가족이라도 살리자는 합리적인 판단하에 내린 결정이었다.
“…….”
뒤편의 9번도 비슷한 입장이었기에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런데 하필 상대가 박정우다.
수많은 사람의 진심 어린 눈빛을 보아 온 생사 결정권자 말이다.
“그런가요……. 어쨌든 알겠습니다. 당장 여기로 다른 팀이 오진 않는다고 이해하면 되겠지요.”
형철의 눈을 본 정우가 침착한 어조로 말했고,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9번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러고는 경악에 찬 외마디를 뱉었다.
“억!”
푸아아악!
눈앞에서 특수전단 2팀장 권형철의 머리가 지워지고 있었다.
* * *
같은 시각, 동작구 상도동 외곽.
박민구는 땅바닥에 처박힌 머리통 세 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호랑이를 잡아 보려던 그 3인조의 머리였다.
두 번, 정수 실을 두 번 휘둘렀을 뿐이다.
놈들은 민구의 공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것 같았고, 여지없이 목을 내줬다.
보호막을 쓸 줄 몰랐던 걸까? 아니다. 그 정도는 아니었을 거다.
그저 처음 보는 형태의 정수 방출에 당황한 것일 터.
어찌 됐든 한심한 놈들이라고, 민구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놈들에게 쩔쩔매고 있던 이 호랑이 역시…….
‘산신령은 무슨.’
민구가 날숨을 픽 내쉬자 호랑이가 갑자기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더니 앞발을 핥기 시작했다.
‘뭐하는 새끼지.’
민구의 시선이 자연스레 시체들 사이에 놓인 정수 구체에 닿았다.
거리상으론 이쪽보다 호랑이에게 더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슥.
그가 슬그머니 발을 떼자 놈이 혀를 날름거리다 말고 민구를 쳐다봤다.
* 가져가.
분명 정수 구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에 민구는 사양 않고 정수를 흡수했다.
티틱, 틱.
사실 엄밀히 따지면 이 정수의 소유권자는 당연히 민구였다.
그도 이걸 잘 알았지만 왜인지 녀석의 말이 거슬리지 않았다.
여태 만나 온 생물과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 존재여서 그럴지도 모른다.
무턱대고 도망가지도, 다짜고짜 공격해 오지도 않았으니까.
티틱.
“윽.”
구체를 마저 밟고 있자 갑자기 머릿속이 꽉 조여지는 느낌이 들었다.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정수에 비해 너무 많은 양을 흡수한 탓이다.
스아아.
녀석들이 가지고 있던 정수는 평균 1,200개.
5,320개였던 민구의 정수가 8,971개까지 불어났다.
이 정도 전력 상승은 처음 겪는다.
크릉.
호랑이도 그의 변화를 느꼈는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너 이 새끼, 아까부터 이상하던데.”
민구가 미간을 움켜쥔 채 호랑이를 가리킨다.
자신이 현장에 난입하는 걸 고민하고 있을 적에도 놈이 분명 그러지 않았는가. 넌 강하다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겁먹지 말라는 이야길 한 거였다. 너라면 충분히 해치울 수 있으니까.
다시 말해서 이놈은.
“정수를 읽는구만.”
민구가 거참 부럽네, 라고 덧붙이는 사이 머리의 통증이 가라앉았다.
* …….
호랑이도 다시 앞발을 핥기 시작했다.
볼일 다 봤다 이건가.
멍하니 네발짐승을 구경하던 민구가 이상함을 느낀 건 약 1분 뒤였다.
“엉?”
앞발과 허공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던 녀석의 혀가 종종 붉어지는 게 아닌가.
“뭐야.”
츠즉.
그가 호랑이를 향해 발을 내딛자 놈이 전에 없이 성난 얼굴을 하며 이를 드러냈다.
크르릉!
“아니, 이 새끼가. 피 나는 거 아니야? 상태 좀 보자고.”
민구의 배낭이 괜히 무거운 게 아니다. 배낭 안엔 음식뿐만 아니라 간단한 조리 도구와 응급 처치 물품도 있었다.
여차하면 미니 버너로 칼 같은 걸 소독해서 상처를 지지거나 잘라 내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호랑이의 반응이 아까와 너무 달랐다. 온몸의 근육을 잔뜩 긴장시키며 사정없이 살기를 뿜어내기에 이르렀으니까.
캬오!
아가리를 수십 센티나 찢으며 시뻘건 입을 보여 주는데, 이때만큼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위압감.
“뭐야? 뭔데.”
머쓱해진 민구가 뒤로 물러나려다가 도로 멈췄다.
“……?”
놈의 바로 뒤쪽에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호랑이의 덩치가 워낙 커서 여태 잘 가려져 있었지만, 방금 놈이 몸을 움츠리는 순간 진회색 피복이 드러났다.
‘뭘 입고 있는 거야? 등산복?’
좀 더 생각해 보니 등산복보다 더 합당한 답이 있었다.
“설마 조련사야?”
사실 이것도 꽤 무리가 있는 답이긴 했다. 이 근처에서 맹수를 보유하고 있을 만한 동물원은 과천의 서울대공원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차를 타면 금방 가겠다만 도보로 이동한다면 상당한 거리.
심지어 지금 보이는 조련사의 상태는…….
‘이미 죽은 거 같은데. 곧 죽을 예정이거나. 자기 발로 여기까지 왔을 리는 없어. 저놈이 끌고 온 거야.’
민구가 조련사의 모습을 살피기 위해 고개를 움직이자 호랑이가 몸을 꿈틀대며 경계했다.
캬릉.
이걸로 확실해졌다. 놈은 나름대로 조련사를 보호하는 중이고, 이 때문에 여기 발이 묶인 것이다.
‘호랑이에게도 충성심 같은 게 있나?’
민구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제 보니 호랑이의 상태도 썩 좋지 않았다.
앞발에만 상처가 난 줄 알았더니 등허리와 옆구리, 뒷다리 쪽에도 흉측한 상처가 남아 있었다.
몇몇은 눈대중으로 봐도 다른 짐승에게서 얻은 상처가 분명했고 말이다.
동물원을 빠져나오며 저들끼리도 분쟁이 있었던 걸까. 그런데 그 와중에 조련사까지 끌고 나왔다니…… 민구로선 당시 상황을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내가 좀 보자. 저 사람, 이대로 두면 무조건 죽어.”
그는 호랑이가 알아듣기 쉽게 최대한 또박또박 발음했다.
그러자 정말로 이해를 했는지 녀석이 조련사를 보면서 천천히 옆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대번에 일그러지는 민구의 얼굴.
호랑이의 몸통에 가려져 있던 조련사의 나머지 신체는 상당 부분 훼손된 상태였다.
이 짐승이 여기까지 끌고 오느라 그랬다고 보기엔 물린 자국이 너무 많다.
아마도 동물원을 떠나올 때부터 이랬을 거다.
“출혈이 너무 심해. 이건…….”
가망이 없어, 라는 뒷말은 생략했다.
야생에서 온 호랑이였다면 결코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생물의 상태가 이 지경이 되면 회복하지 못한다는 걸 사냥을 통해 배웠을 테니까.
물론 인간은 과학이란 마법을 부릴 줄 알아서, 짐승들보단 회생 가능의 폭이 훨씬 넓었다. 하지만 그것도 119를 부르면 구급차가 올 때나 가능하던 이야기다.
“…….”
민구가 무력한 표정을 짓고 있자 호랑이도 분위기를 파악한 것 같았다.
그러나 상황을 완벽히 이해한 건 아닌 듯 민구를 움직이게 했던 그 마법의 단어를 또 꺼냈다.
* 도와줘. 너.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