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Style Savior Archetype RAW novel - Chapter 76
76화. 전에 없던(3)
신수동으로 가는 동안 헬기 안에선 투표가 계속됐다.
일명 ‘차세대 할당제’를 도입하자 이와 연관된 안건들이 계속 나오게 됐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방주 탑승에 있어서 부부, 커플, 아이 중 어느 쪽에 우선권을 줄 것인가.
또한 부부라고 해도 한쪽이 불임일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아, 그럼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임산부가 포함된 부부만 들이자.
어? 그럼 커플도 차세대 할당제 대상에서 제외돼야 옳지 않은가?
의문에 의문이 줄을 이었고, 어떤 안건을 올리더라도 완벽한 결론을 도출할 순 없었다.
결국 차세대 할당제는 거듭된 투표와 논의를 거쳐 아래와 같이 수정됐다.
1. 방주의 전체 좌석 중 30%를 ‘차세대 할당 좌석’으로 지정한다.
2. 차세대 할당 좌석에는 아래에 해당하는 인원만이 탑승할 수 있다.
가) 임산부 또는 임산부와 그의 배우자.
나) 10세 이하의 아동.
다) 출산 및 육아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판단되는 인원.
원안은 20퍼센트 할당이었지만 논의를 거치다 보니 30퍼센트가 적절하다고 판단되어 만장일치로 수정했다.
태아의 생존율이 기대보다 낮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 태아의 성비를 임의로 조정할 방법이 없다는 점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이쯤에서 멈추죠. 계속 보완하다간 밤을 새워야겠습니다.”
드디어 중성이 회의 마감을 선언했고, 서기를 자처한 명일의 손이 바빠졌다.
중성의 방금 대사까지 적어 넣기 위해서였다.
명일이 회의록과 가결된 ‘규칙’을 각각 적어 넣고 있는 두 권의 노트는 이젠 사라진 이전 정부의 벙커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42일 동안 문명의 이기가 얼마나 사라질지는 모르겠으나 종이가 많이 남게 되진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적절하군요. 마침 다 와 갑니다.”
조종석의 용헌이 왼손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신수동 역시 여태 지나온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어두컴컴했다. 그래도 강변북로와 서강대교가 인접한 곳이라 유동인구는 엄청났을 것이다.
“진입로는 없는 것 같네요.”
정우가 건조한 음성으로 말하자 용헌이 뒤를 살짝 돌아보며 보고했다.
“제가 알기론 저 건물입니다. 옥상에 착륙한 다음 통화 시도를 해 보겠습니다.”
“예, 아직 이곳에 있길 바라 보죠.”
정우가 승낙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인다.
두두두두…….
빠르게 낮아지는 고도가 용헌의 심경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뒤늦게 사정을 듣게 된 중성과 태휘는 알게 모르게 응원하는 마음으로 창밖을 내다봤다. 용헌을 제외하면 두 사람만이 기혼자였으니까.
다만 중성은 약 4년 전에 아내와 사별했고 자식이 없었다.
반면 태휘는 이 사태로 처자식을 잃은 처지.
직급이 조금만 더 높았다면 정부가 내 가족을 빨리 구조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차에 정우의 무차별 살인을 보게 된 거다.
그러니 태휘로선 그에게 좋은 감정이 생길 수가 없었다.
“어, 뭔가 이상한데요.”
창문에 이마를 붙이다시피 하고 있던 선웅이 불길한 대사를 내뱉었다.
“무슨 일입니까.”
정우가 되묻자 선웅이 검지 끝으로 창문의 우측 모서리를 콕 찍었다.
“뭔가 움직입니다.”
이에 나머지 사람들이 일제히 그리로 몰려들었다.
고도를 많이 낮췄다곤 하지만 애초에 이 헬기의 착륙 예정지는 14층 높이의 아파트 옥상이었다.
그런데 이 높이에서 ‘움직임’이 보인다……?
“어어.”
문제의 움직임을 포착한 태휘의 입에서 심려 가득한 소리가 나왔다.
정말로 도시 전반에 걸쳐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정확히는 수십 개의 골목과 도로 위에서 말이다.
“뭐, 뭐죠. 엄청나게 많아 보이는데.”
명일이 긴장한 얼굴로 묻는다.
지상과의 거리가 꽤 돼서 육안으론 대상의 윤곽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확인 가능한 건 움직이는 속도 하나뿐. 그럼에도 모종의 분위기가 확실히 느껴졌다.
“적어도 사람은 아닌 것 같군요.”
동훈이 짤막하게 진단했다.
그럼 뭘까. 청소부 떼라고 하기엔 인접한 진입로가 없고.
“뭐가 됐든 프로펠러 소리에 반응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용헌의 말과 함께 기체가 흔들렸다.
퉁!
아파트 옥상에 착륙한 거다.
드르륵!
가장 먼저 정우가 헬기 바깥으로 뛰어내렸다.
“전화를 서두르는 게 좋겠습니다.”
“옙.”
용헌이 휴대폰과 함께 권총을 집어 든다. 어깨엔 이미 K-2 소총을 걸친 채였다.
나머지 일행도 한 명씩 헬기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곤 보게 됐다.
옥상 난간 너머, 도심지를 가로질러오는 수천 마리의 성난 개들을.
* * *
“아…….”
비쩍 마른 중성의 뺨 안쪽에서부터 탄식이 흘러나왔다.
많은 것이 연상돼서다.
첫째, 광경 자체가 놀라웠다. 그는 살면서 저렇게 많은 개가 모여 있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둘째, 지금 개들이 도심지를 활보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 이전에 이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셋째.
“…….”
중성은 말없이 헬기 조종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용헌은 이미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두드리고 있었다.
과연 통화가 될까.
찰나의 정적.
곧 휴대폰에서부터 연결음이 나기 시작했다.
뚜르르르.
일단 통화 시도는 성공한 것이다.
뚜르르르…….
두 번째 연결음.
혹여 상대와 연락이 닿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들 마른침을 삼키는 사이 세 번째 연결음이 울려 퍼졌다.
뚜르르르…….
“음.”
장내의 누군가가 침음을 흘린다.
그리고 여지없이 이어진 네 번째.
뚜르르.
탓.
“……!”
마침내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상대의 목소리가 바로 들려오진 않았다.
대신.
-월, 월!
-컹! 컹, 컹!
개들의 거친 울음소리만이 아주 작게 흘러나왔다. 마치 배경음처럼.
이건 필시 저 멀리서부터 몰려들고 있는 놈들의 소리일 것이다.
그 말인즉슨…….
“다, 당신…… 당신이야? 아직 거기 있는 거지?”
용헌이 애타는 목소리로 묻는다.
여긴 14층 꼭대기라 고요했지만, 지상과 가까운 아래층에선 개들이 짖는 소릴 듣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용헌이 기억하는 전처의 자택 호수는 602호.
분명했다.
아내가 아직 이 아파트에 머물고 있는 거다.
“여보!”
그가 대답을 재촉하듯 외치자 휴대폰 저편에서부터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흐웁.
용헌의 표정이 어두워진 것도 이때부터였다.
자신이 알던 그 여자의 숨소리가 아니었으니까.
휴대폰을 대고 있던 귓바퀴에 소름이 돋는 듯하다.
“누, 누구……?”
대체 넌 누구기에 내 전 부인의 전화기를 가지고 있는가. 그것도 이 시국에.
자그마한 기계를 귓가에 댄 남자의 표정이 기괴하게 뒤틀린다.
이를 함께 듣고 있던 나머지 사람들은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
-월…… 월!
여전히 저편에선 짐승의 울음이 아득하게 들려왔다.
“후.”
정체불명의 수신자가 날숨을 짧게 뱉는다.
그러더니 천천히 목소리를 냈다.
-선희 씨는 안전하게 잘 있습니다.
‘성량’이라는 단어가 연상될 정도로 아주 굵고 안정된 목소리였다.
반면 용헌은 얼빠진 목소리로 응답했다.
“뭐……?”
선희, 조선희. 아내의 이름이다.
그런데 그 이름을 아주 잘난 것 같은 목소리가 애정과 경계심을 동시에 담아 발음해 왔다.
애정은 선희에게, 경계심은 다짜고짜 전화를 건 이쪽에 던진 것이다.
일종의 영역 표시.
수컷의 더듬이가 아주 빳빳해졌지만 용헌은 곧 풀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자신은 전 남편에 불과했으니까.
더 나아가 휴대폰 너머의 저 사내 덕분에 선희가 여태 살아 있는 걸지도 모른다.
-……용헌 씨?
이윽고 익숙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전처가 전화를 넘겨받은 거다.
“선희야.”
용헌은 반사적으로 상대의 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깨달았다.
방금 저쪽은 자신을 ‘용헌 씨’라고 불렀다는 거.
‘노골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구나.’
이미 1년 전에 모든 절차가 끝난 사이. 따라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건만 용헌은 서운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이때 옥상 구석에서부터 날카로운 마찰음이 났다.
끼릭.
정우였다. 필요한 만큼은 다 들었다고 판단해서 옥상 출입문을 연 거다.
“약속대로 30분 드립니다. 찾아가서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시고, 헬기 앞으로 돌아오세요. 전 그사이에 좀 내려갔다 와야겠습니다.”
그러자 용헌의 귓가에 불안한 기색의 음성이 맴돌았다.
-누가 같이 있어요?
하지만 정우는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뒤였고, 눈에 보이는 건 아까보다 한층 더 가까워진 네발짐승 군단뿐이었다.
“그…… 이야기가 좀 길어. 일단 만나자. 급한 일이야.”
* * *
오후 7시 2분.
신수동의 데라파크 B동 602호.
용헌을 따라 이 집의 마루까지 발을 들인 중성은 조선희라는 여자를 보자마자 일이 심상치 않게 됐음을 직감했다.
‘맙소사.’
그녀의 배가 불러 있었기 때문이다.
노산…… 은 부차적인 문제다.
‘으음.’
1년 전에 이혼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저게 용헌의 아이일 리는 없다.
슥.
중성은 슬그머니 용헌의 안색을 살폈다.
역시 사색.
“며, 몇 개월째야? 아무튼…… 축하해.”
보기보다 더 혼란스러운 상태인지 용헌의 입에선 ‘아무 말’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고마워요.”
혼란스러운 건 축하를 받게 된 선희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뒤로 묶어 넘긴 긴 머리칼을 괜히 쓰다듬다가, 잊고 있었다는 듯이 옆자리의 사내에게 시선을 줬다.
“아, 여기는…….”
말문이 막히는지 이내 선희의 동공이 천장을 향한다.
이에 용헌이 사내를 쳐다봤다.
보디가드처럼 딱딱한 자세로 서 있는 40대 초반의 건장한 사내.
족히 180은 될 것 같은 신장부터 눈에 확 박혔다.
보기 좋게 태닝된 팔엔 힘줄이 불끈 솟아 있었고, 잘 발달된 근육의 실루엣 역시 어디서 빚어낸 것처럼 멋스러웠다. 아마 전문 운동인이 아닐까.
그 역시 무어라 운을 떼지 못하고 눈동자만 부지런히 굴리고 있자 상대가 먼저 앞으로 나서며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강성호라고 합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아까 통화로 들었던 그 목소리.
“예, 처음 뵙겠습니다. 김용헌입니다.”
용헌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사내의 손을 맞잡았다.
왕년엔 영업의 신으로까지 불리던 그였지만 지금만큼은 자신의 특기를 발휘할 엄두가 안 났다.
그 어떤 사내가 전처의 새 애인 앞에서 태연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상대는 이쪽보다 서너 살은 더 젊고 ‘퍼포먼스’로 말하자면 비교조차 되지 않을 수준인데.
그리고 상대도 그걸 잘 아는 것 같았다. 용헌은 성호의 눈에서 은근한 우월감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도 이쪽은 총까지 들고 있는데 전혀 겁이 나지 않는 걸까. 용헌은 상대의 태연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음……. 일단 다들 좀 앉는 게 어때요?”
분위기가 묘하다는 걸 감지했는지 선희가 세 남자에게 소파를 권하며 운을 뗐다.
“예, 그게 좋겠군요. 감사합니다.”
중성이 옅은 미소로 화답했고, 용헌은 여전히 경황없는 얼굴로 소파에 엉덩이를 묻었다.
“차라도 좀 내올게. 마저 인사 나누고 있어.”
이 와중에 선희가 다과상을 차리려 한다.
그러자 성호가 근육질의 팔로 그녀를 붙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리하지 마. 내가 내올게.”
좌불안석.
중성은 이 시점에 용헌의 눈치를 다시 봤다.
다 함께 내려오자니 괜히 위압감을 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자신만 따라온 건데, 이런 자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선…… 선희 씨가 임산부니까 아까 정한 규칙상 차세대 할당제 대상에 포함돼. 두 사람 모두.’
중성이 말한 ‘두 사람’은 선희와 성호를 뜻한다.
저 배 안에 든 아이의 친부가 성호라면 둘은 사실상 부부라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이 방주에서 정의한 ‘부부’라는 개념이 이전 세계에서 법으로 명시하던 ‘혼인 관계’만을 의미하진 않으니까.
그런데 만약 용헌이 성호의 방주 탑승을 원하지 않는다면?
이러면 선희만 태워서 가야 하나? 아니, 애초에 용헌에게 차세대 할당제 대상의 방주 탑승을 반려할 권리가 있나?
이런 특이사항이 발생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기에 관련 조항을 만들어 두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 만남은 정우가 용헌을 영입할 당시 발생시킨 일종의 특약이 개입되어 있기도 하다.
중성이 이런저런 요소들을 점검해 보는 사이, 선희가 바닥에 방석을 깔고서 눕듯이 앉았다.
“음……. 이런 타이밍에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 그런데 여긴 어떻게 오신 거예요?”
어떻게 왔냐, 라는 말은 다분히 중의적 표현이었다.
왜 왔느냐는 의미임과 동시에 여기까지 무슨 재주로 왔느냐는 의미도 됐으니까.
지금도 바깥에선 개들의 성난 울음이 끊이지 않고 들려오고 있었다.
아니, 아까보다 한층 더 거세졌다. 놈들이 지척까지 온 거다.
“나야말로 묻고 싶은데, 왜 여태 여기 있어? 딱히 이 상황을 두려워하는 것 같지도 않고……. 개들이 저렇게 깔려 있잖아.”
용헌의 이 말에 선희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도로가 마비돼서 도망갈 방법이 없었어요. 몸도 이렇고. 그리고 이 동네를 빠져나가려던 사람들은 대부분 죽었어요. 유기견들이…….”
“유기견?”
“네, 이 근처에 꽤 커다란 유기견 센터가 있었거든요.”
“아…….”
용헌은 비로소 이 동네가 ‘개판’이 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생지옥이었지만 지금은 좀 나아졌어요. 개들이 방화문을 뚫진 못하는 것 같더라고요.”
아파트 단지 내 일정 구간마다 방화문이 설치되어 있는데, 어제 경비원들이 이 문을 내려 줘서 일부 단지는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게 선희의 설명이었다.
“문제는 식량이었죠. 이제 5일 치 정도 남았을 거예요. 그래서 구조대만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번엔 네가 여기 온 이유와 방법을 말해 보라는 듯 그녀가 눈을 반짝인다.
이에 용헌이 마루 한 면을 꽉 채운 통유리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막 해가 저문 바깥은 어두컴컴했고, 더는 개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저 포악한 소리만이 그들의 존재감을 일깨웠다.
하지만 진짜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따로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존재의 곁에 바짝 붙어 있어야 살 수 있다.
“왜요?”
선희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순진한 표정으로 전 남편의 안색을 살폈다.
그러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용헌 씨?”
용헌의 동공은 쉴 새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1년 전, 이혼 서류 앞에서 망설이던 때처럼.
“선희야, 잘 들어.”
천천히 그의 입술이 움직인다.
“이대로 5일이 지났어도 구조대가 올 일은 없었을 거야.”
서울에 더는 정부랄 게 없으니까, 라는 말은 깊이 삼켰다.
“대신 내가 누굴 좀 데리고 왔어.”
“누구…….”
선희의 고개가 자연스레 중성 쪽으로 돌아갔고, 이에 그가 가볍게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때마침 바깥에서 소란이 났다.
개들이 무슨 발작이라도 하는 것처럼 미친 듯이 짖기 시작한 거다.
슥.
용헌이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선희도 그를 따랐다.
드르륵.
통유리창을 밀어내니 베란다에서부터 한기와 함께 엄청난 소음이 밀려들어 왔다.
갖가지 종류의 개들이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의 고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것도 단 한 존재를 향해서.
“저, 저게 뭐예요?”
창밖을 내다보던 선희가 뭔가를 발견하고서 ‘저것’이라는 표현을 썼다.
저게 사람일 것이라곤 상상을 못한 것이다.
수천 마리의 짐승 사이에서 홀로 시퍼런 빛을 내고 있었으니까.
“저게 여기에서 벗어날 방법이야.”
용헌이 다 갈라져 가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