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ldest son is eager for soccer RAW novel - Chapter (17)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17화
지난 삶에서 난 굳이 몸싸움을 피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비록 부상으로 얼룩지고 터무니없는 벌크업으로 몸을 망가뜨리긴 했지만, 타고난 코어는 중원에서 몸싸움에 밀리지 않게끔 해주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쓸데없이 몸싸움을 하는 사람은 또 아니었다.
내 장점은 넓은 시야와 축구 두뇌, 그리고 패스였으니까.
굳이 불필요한 싸움을 할 필요가 없지.
지금도 그렇다.
상대인 중국은 나와 굳이 불필요한 몸싸움을 하려고 한다.
아니, 하고 싶어한다.
몸싸움을 하는 순간 어디 하나 다치고도 남을 거다.
그런 상황이니만큼 나는 굳이 몸싸움을 하지 않고 유유히 빈 공간을 찾아다녔다.
공간을 찾아 전진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공을 보면, 아니, 공을 가진 사람을 보면 냅다 달려가 어떻게든 부수려고 했으니까.
그러다 보니 주변이 텅텅 비었다.
나는 물론이고 우리 팀 모두가 수월하게 공을 패스하고 공간을 찾아 전진할 수 있었다.
당연히 무수히도 많은 공격 찬스가 찾아왔다.
내가 골을 넣은 이후 나에게 끌린 어그로 때문에 텅 빈 공간으로 파고든 이성호가 팀의 두 번째 골을 넣었고, 이어서 류준서도 골을 넣었다.
심지어 중원의 파퀘트가 놀라운 중거리 슛을 성공시키며 4대0으로 전반을 마무리했다.
이어지는 후반.
이제 중국은 축구가 아닌, 축구와 비슷한 무언가, 축구 2, 아니, 축구 3, 4를 하기 시작했다.
살인태클과 팔꿈치에 어디 하나 부러지거나 찢어지고 박살 날 상황이다.
재수 없으면 선수 생활이 끝날 수도 있다.
정말이지 중국은 변한 게 없구나.
그렇다면 이렇게 해야겠네.
최지우의 패스가 나에게 온다.
저질의 패스이지만, 나이를 감안하면 훌륭한 패스라고 볼 수 있다.
그 공을 잡지 않고 그대로 흘려보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중국 선수가 우르르 나에게 몰리기 시작한다.
내 앞에서 어쭙잖게 발을 뻗는 상대로 드래그백, 공을 발밑으로 끌어 당겨 헛발질하게 만들고 옆으로 스쳐 지나간다.
아니나 다를까, 균형을 잃은 와중에도 나에게 팔을 뻗어 잡으려 하는 걸 팔로 쳐내고 달렸다.
이어서 달려드는 선수는 라 크로케타로, 그리고 한 번 더 라 크로케타.
그렇게 세 명을 제치니 골대가 보인다.
슈팅할까 싶은 순간 내 앞을 중국 선수가 가로막는다.
그대로 오른쪽으로 파고들려는 모션을 취하다 공을 끌어 왼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골대가 보인다.
망설이지 않고 왼발을 휘둘렀다.
감아찬 공이 우아한 포물선을 그리며 골대 구석에 꽂혔다.
“5대0인가.”
중국은 여전히 성난 멧돼지처럼 씩씩거리고 있었다.
“아직이네.”
재개된 경기.
이번에는 전방으로 올라가지 않고 후방에서부터 동료들을 데리고 빌드업해 나갔다.
우르르 몰리는 중국 선수들을 상대로 빠르게 패스가 오고 간다.
그 중심에는 내가 있었다.
중앙에서 왼쪽으로 계속해서 공을 몰아줬다.
중국 선수들이 대부분 왼쪽으로 몰리기 시작한 순간, 나는 거의 비어버린 우측으로 달려 나갔다.
나를 본 이성호가 공을 찔러 넣었다.
나한테, 아니, 우리 팀에게 몇 번이고 당한 중국의 센터백이 이를 악 물고 달려온다.
떨어지는 공을 발끝으로 툭 하고 차올리고 코앞으로 달려온 중국인의 차징을 피한 뒤 떨어지는 공을 앞으로 밀어내 함께 달렸다.
이번에는 풀백인가.
얘는 아는 애다.
한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소림축구 마스터, 대종사로 불렸던 반칙의 제왕이었다.
중국인 중에 제일 악질로 올림픽, 월드컵, 동아시아 컵 등 모든 경기에서 선수를 한 명씩 담가 버리는 걸로 유명해질 아이다.
참 이때부터 싹수가 노랗구나.
술래잡기 하듯 놈을 뒤로하고 달렸다.
놈도 전력을 다해 달렸지만, 나를 따라잡지 못했다.
아직 대종사가 되지 못해서 그런가?
아니다.
대종사가 될 자질이 충분하구나.
나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생각한 놈이 뒤에서 드롭킥을 시도했다가 그대로 바닥에 나뒹군다.
어이가 없어 멈칫할 뻔했다.
선수가 없을 때 서둘러야 한다.
홀로 남은 골키퍼가 나에게 달려온다.
1대1 상황.
나는 그대로 슈팅… 을 하는 척 하고 골키퍼가 멈칫한 사이 공을 옆으로 접어 오른발로 슈팅했다.
철썩.
공이 가차 없이 골망을 뒤흔든다.
해트트릭.
스코어는 6대0.
이쯤 되자 중국은 기가 꺾이기 시작했다.
중국은 항상 이랬다.
처음에는 호기롭고 거만했고, 한, 두 골 먹히면 반칙을 시작하고 이 정도로 벌어지면 현실을 부정하고 포기해 버린다.
적어도 내가 국가대표를 뛰었을 때 늘 그랬다.
그때 그 아이들이 어렸을 당시가 지금이니까 다를 게 없지.
“쓰읍, 이왕 하는 거 한 10대0 정도로 끝냈으면 좋겠는데.”
아쉽게도 10대0 스코어는 다음에 달성해야 할 것 같다.
IN 18
OUT 7
교체 지시가 떨어졌거든.
내 역할은 해트트릭과 1개의 도움으로 끝난 모양이다.
골을 넣었을 때와 달리 필드 밖으로 달려 나가자 오늘 경기를 구경 온 중국인들이 야유하기 시작한다.
야유를 받는 게 유쾌할 리가 없는데 이상하게 이 야유는 달았다.
듣기 좋은 대중가요를 듣는 기분이랄까.
이날 경기는 내가 교체된 이후에 두 골을 더 넣으며 8대0 대승을 거뒀다.
“좋아, 너네 축구 정말 잘하는 구나!”
이정후 감독은 순수하게 기뻐했다.
“나는 한 3대0 정도면 만족하려 했는데 그 이상을 해줬다.”
선수들은 처음으로 듣는 이정후 감독의 순수한 칭찬에 기뻐했다.
“잘했다고 해서 방심해선 안 된다. 방심하다가 홍콩이나 대만 같은 나라에 뒤통수라도 맞아봐라.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을걸?”
틀린 말은 아니다.
유소년 경기는 멘탈에 따라서 말도 안 되는 경기 결과가 나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홍콩이나 대만한테 질까?
그럴 일은 없었다.
다음 상대인 대만은 중국전에서 출전하지 못한 아이들이 대거 출전해 김효준이 해트트릭을 하면서 7대0 대승을 거뒀고, 그다음 경기인 홍콩과 경기에서는 나와 이성호의 해트트릭, 류준서의 두 골, 파퀘트 나이엘의 중거리 골로 9대0으로 승리를 거뒀다.
그다음 경기는 북한.
나는 지난 삶에서 국가대표로 뛰면서 단 한 번도 북한을 만난 적이 없어 신기했다.
북한 선수들은 모두가 만 15세 선수들로 구성됐는데, 만 13세인 우리보다 왜소하고 작았다.
그런 아이들이 우리와 똑같은 한국말을 하며 우리를 향해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북한은 성인팀도 도깨비 같은 팀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홍콩에게 1대1로 무승부를 당하더니 뜬금없이 중국을 상대로는 3대0으로 대승을 거뒀고, 일본을 상대로도 매섭게 몰아붙여 3대2로 패배하는 등, 사람들의 예측보다 놀라운 활약을 보여줬다.
어린애들인데 뒷심이 있다.
일본전에도 3대0으로 끌려가다가 막바지 10분에 몰아붙여 3대2까지 따라잡은 거다.
절대 방심할 수 없다.
1대0.
“야, 방심하지 마! 계속 몰아붙여!”
2대0.
“야! 아직 끝난 거 아니다?!”
3대0.
“이제 후반 막 시작했다! 언제 따라붙을지 몰라!”
4대0.
“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자.”
5대0.
“10분! 10분 남았다! 알지? 일본이 이때부터 따라잡힌 거? 끝까지 몰아붙여! 압박해! 질식시키란 말이야!”
6대0, 7대0.
너무 긴장하고 빡세게 한 모양이다. 북한은 일본에게 보여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무력하게 끌려 다니기만 했다.
사실, 4대0 정도 됐을 때 우리가 방심하지 말자고 외치니까 어이없이 쳐다보며 욕하긴 하더라고.
뭐라더라 종간나 머시기 막 그랬는데, 아무튼.
중국에서 북한까지 어렵지 않게 싸운 우리에게 이제 남은 건 일본뿐이었다.
성인 대표팀이었다면, 모두의 이목이 집중될 만한 경기다.
동아시아, 각국의 자존심이 걸린 경기에서 한일 양팀 모두 전승을 거둔 상황에서 우승을 두고 싸우게 되는 마지막 경기, 그게 한일전이라니.
이만한 빅매치가 어디 있겠는가.
물론, 15세 대표팀 경기이기 때문에 그만큼 큰 관심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주목을 받는 건 사실이었다.
미래의 한일전 미리보기라든가, 꿈나무들이 보여주는 한일전의 미래라든가 하면서 말이지.
일본에서는 더 이상 한국은 우리의 라이벌이 아니다, 미리 보는 라이벌 종결식 이런 말을 한다.
왜 이러냐면, 지금 이놈들은 일제시대 때처럼 탈아시아를 부르짖고 있었다.
2020년 즈음부터 유럽파 100명 시대를 맞이하고 그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으니 더 이상 아시아와 수준을 나란히 할 수 없다 이거지.
한국 너튜브 채널이나 커뮤니티에서 원정까지 와서 이 사실을 자랑할 정도다.
웃긴 건 이런 그들의 자부심과 어그로는 한 마디면 정리된다.
“너희 손홍민 있음?”
“너네 득점왕 해봄?”
그래.
일본은 유럽파 100명 이상의 시대를 10년이 넘도록 유지하고 있지만 단 한 명의 손홍민도 배출하지 못했다.
사실 말이 100명이지 유럽파 중에서 빅리그에서 뛰는 프로 선수는 3명밖에 없고, 그나마 알아줄 만한 포르투갈, 네덜란드 같은 곳에 뛰는 선수들도 채 10명 정도밖에 안 됐다.
유럽 변방에 선수들 주구장창 보내놓고 큰소리친다 이거지.
그래서 지금 일본이 15세에서 18세 사이에 아이들을 플래티넘 세대니 뭐니 하면서 오구오구 해주고 빨아주는 거다.
뭔가 월클 급으로 터져줄 것 같은 아이들이 대거 있으니 말이다.
뭐, 그건 둘째 치고 확실히 유럽에서 배운 애들이 중심이 된 일본과, 유럽파라고는 배상현 한 명밖에 없는 우리 팀을 두고 봤을 때 우리가 밀리긴 하지.
그래도 한일전이지 않은가?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
아무리 시대가 지났어도 일본이 한 잘못이 사라지지 않듯이, 그 감정이 세대가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았거든.
“쪽바리 타도!”
“일본한테 져서야 되겠냐? 어?!”
“지면 동해 헤엄쳐서 가야함! 다들 알지?”
그래서 그런지 우리 팀 분위기는 뜨겁다.
후끈 달아올라 어떻게든 일본을 이긴다고 악에 받쳐 있었다.
나는 손주들 재롱잔치를 보듯이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큭큭, 일본… 내 안에 나를 꺼낼 때인가.”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겠다만, 최지우가 옆에 있었네.
“일본을 상대로 활약하는 내 모습… 궁금하지 않나, 태양?”
“안 궁금해.”
“큭큭… 내 양질의 패스를 만끽하고 나면 이야기가 달라질걸?”
근거 없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는 중2병과 어울리기 싫어 무시하고 핸드폰을 확인했다.
-아빠 : 아들, 일본 도착했다!
-아빠 : (사진/가족 단체 셀카)
-엄마 : (사진/공항 하늘)
-엄마 : 일본은 미세먼지가 없네?
-아빠 : 한반도가 막아줘서 그런가?
-나 : 할아버지 두 분도 다 오셨네요?
-아빠 : 손주 뛰는 거 보고 싶다고 하셔서 같이 왔지
-엄마 : 친할아버지가 네 이름 마킹된 유니폼까지 주문한 거 있지? ㅎㅎ
-나 : 아 진짜요? ㅋㅋㅋ
-엄마 : 국대 유니폼 입고 제일 앞에 있으니 잘 보일 거야!
-엄마 : (사진/유니폼 입은 동생들)
-엄마 : 귀엽지?
-나 : 네 ㅎㅎ 귀엽네요 ㅋㅋ
-아빠 : 자고로 한일전은 절대 지면 안 되는 거야. 꼭 이겨라. 아빠가 응원함 ㅇㅇ
-엄마 : 이기면 좋겠지만, 다치지 말고 최선을 다해! 그러면 된 거야. 알았지? ^^
-나 : 꼭 이길게요 ^^ 내일 봬요.
가족들 앞에서 일본 골문을 두들길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렌다.
진짜 14살 아이라도 된 것처럼 내일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