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ldest son is eager for soccer RAW novel - Chapter (2)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2화
사실, 부모님을 살리고 난 뒤에는 굳이 축구를 해야 할까 싶었다.
내가 성공할 수 있는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생각에 악착같이 축구 선수로서 길을 걷기는 했지만, 워낙 험난했기 때문에 솔직히 다시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물론, 다시 시작한다면 과거의 실패들을 교과서 삼아 성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사람 심리라는 게 이미 한 번 했던 걸 또 하고 싶은 생각보다, 새로운 걸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더라고.
분명 지난 삶에서 지능 테스트를 했을 때 굉장히 높은 수치가 나왔던 거로 기억하는데…….
나는 지능과 별개로 다른 쪽에서 문제가 있었다.
공부는 한자리에 진득하니 앉아 있지 못하는 성격 탓에 일찍이 포기. 다른 걸 찾아보니 손재주는 더럽게 없는 똥손인지라 그림도 못 그리고 뭘 만드는 것도 젬병이다.
그나마 요리는 좀 했지만, 그건 오랜 생활 혼자 살다보니 어쩔 수 없이 익힌 거지 재능이라 보기 어려웠다.
사업?
공부도 안 하는데 무슨 사업?
애초에 사업을 할 머리도 아니다.
그래, 역시 믿을 건 내 운동신경뿐이지.
운동신경은 타고났잖아?
축구 말고 다른 걸 해보자.
그런데 웃긴 건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발로 하는 건 뭐든 잘하는데 손으로 하는 건 뭘 해도 못하더라고.
발로 하는 거라고 해봤자 축구 말고 뭐가 있을까?
족구? 세팍타크로?
발로 하는 구기 종목에게는 미안하지만, 축구를 제외하면 사실 돈이 안 된다.
선수 생활 이후 생계가 걱정될 정도인 스포츠를 굳이 하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축구밖에 없었다.
가족의 풍족한 삶을 바라게 된 지금에 와서는 간절하기까지 하다.
물론, 축구로 100% 성공한다 자신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이미 한 번 미래를 살다 오지 않은 재능 없는 일반인이라면 말이다.
나는 자신 있었다.
나는 그럴 만한 재능이 있다.
이건 내 주관적인 평가가 아니라 과거의 나를 본 사람들의 객관적인 평가까지 더해진 결과다.
넌 정말 천재야!
너 같은 재능은 처음 봤다!
축구를 조금 일찍 시작했더라면.
다치지 않았더라면.
사기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너는 어쩌면 발롱도르를 탔을지도 몰라.
역사에 길이 남았겠지.
축구의 대명사가 될 수 있었을 거야.
지난 삶에 나를 지도했거나 동료로 있던 선수들이 나에게 한 말이다.
물론, 다 결과론적이고 과장된 칭찬일 수도 있지만, 담백하게 과장 빼고 말하면 고성능 소프트웨어를 고장 난 하드웨어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실제로도 그랬다.
머릿속으로는 축구를 지배한다.
골을 넣고 어시스트를 하고 공간을 만들고 상대 선수를 돌파하고 탈압박하는, 축구의 모든 게 그려진다.
문제는 몸이 따라가지 않았다.
몸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지난 삶, 고아원 형들한테 뒤지게 맞아 무릎이 망가진 상태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을 뿐 아니라, 기회를 놓치면 내 인생이 끝난다는 부담에 지나칠 정도로 나를 몰아붙여 내 몸을 갈아버렸다.
지나친 훈련으로 부상을 달고 살았고, 경기에 뛰지 못하는 걸 두려워해 부상을 숨기다 만성적인 부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운동도 체계적이지 못해 쓸데없는 벌크업과 잘못된 방법으로 인해 코어 근육이 죽었다.
그렇게 망가진 피지컬을 오로지 축구 재능, 축구 센스 하나만으로 나는 한국 축구에 손꼽히는 선수가 되고 유럽에서 경쟁력 있는 선수가 된 거다.
그랬던 내가 다시 시작한 지금.
과거의 실수를 교과서 삼아 제대로 갈고닦는다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나도 궁금하다.
물론, 13살이라면 약간 늦은 감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시합을 뛰지 않았을 뿐이지 혹시 몰라 내 몸을 꾸준히 관리해 왔다.
유소년이 할 수 있는 코어 운동과 근력 운동을 체계적으로 해왔다.
공을 안 만진 게 조금 걱정이긴 하다만 어린 몸은 습득이 빠르니까 조금만 적응하면 어렵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다.
이제 남은 건 하나.
부모님 허락.
타이밍을 재다가 아버지와 독대하는 자리에서 나는 대뜸 아버지께 말했다.
“축구를 하고 싶습니다.”
“축구? 갑자기?”
놀라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나는 결연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축구를 하고 싶단 말에 잠시 생각하던 아버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생각해 보면 우리 아들이 축구는 하루도 빠짐없이 봤구나.”
그러고 보니 그렇네.
“네, 뭐…….”
“그래서 축구가 해보고 싶었냐?”
“그렇죠?”
“축구가 생각보다 쉬운 게 아닌데. 우리 아들 운동신경 없지 않나?”
이 아버지가 무슨 소리를…….
“제가 운동신경이 왜 없어요?”
“엄마 닮아서.”
우리 엄마가 운동신경이 없긴 하지.
그리고 나는 아버지보다 엄마의 외모를 더 많이 닮았다.
까만 피부에 체격이 좋은 아버지와 다르게 나는 엄마를 닮아서 희고 여린 체격이었다.
이러니 아버지가 운동신경도 엄마를 닮았을 거라 예상할 만하다.
하지만 내 운동신경은 아버지에게 물려받다 못해 진화했다.
“그건 해봐야 알죠.”
“그건 그래.”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아빠가 조기축구 하는 거 알지?”
“네.”
“아빠랑 거기 가서 축구가 어떤 건지 눈앞에서 직접 보는 거야. 그러고 신중하게 생각해 보는 게 어때? 축구라는 게 생각보다 쉬운 운동이 아니거든.”
아버지의 말에 나는 웃었다.
“봐서 되겠어요? 직접 해봐야지.”
“아들아, 조기축구라고 우습게 보는 거 같은데 그 양반들 구력이 장난 아니다? 거칠기도 거칠고. 직접 보면 아, 축구 위험한데? 이럴걸?”
“그 위험한 걸 아버지는 왜 하세요?”
“…지 엄마 닮아서 말은 절대 안 지는구나?”
“아무튼, 저는 축구를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아버지.”
아버지는 나를 가만히 노려보시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럼 이렇게 하자.”
“네?”
“축구를 잘하냐 못하냐 결정하는 건 역시 개발이지. 네가 개발인지 아닌지 보자. 엄마를 닮았으면 개발은커녕 똥발일 테니까.”
그으래요오?
“개발 아니면 축구 시켜주는 거예요?”
“아니, 일단… 음, 그래, 일종의 서류전형 합격이라 볼 수 있지?”
“그럼 당장 해봐요.”
“그래, 알았다. 옷 입어!”
아버지가 그리 말하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아버지가 아니라 엄마가 방에서 나왔다.
“아들? 갑자기 축구라니 무슨 말이야?”
“동생들 자요?”
“그럼, 다 자지. 근데 축구라니 왜?”
“음… 재밌을 거 같아서요.”
엄마는 내 말에 씨익 웃더니 말했다.
“그래, 재밌을 거 같으면 해봐야지. 아빠가 단단히 벼르고 있던데 가서 콧대를 콱 눌러 버려.”
우리 엄마는 내가 하고 싶다는 건 말리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깜짝 놀라서 눈알 빠지게 해주고 올게요.”
“그렇다고 진짜 빠지게 하진 말고.”
“응.”
“둘이서 무슨 얘기 해? 준비 다 했어? 나가자.”
아버지의 말에 집 앞 공원으로 나왔다.
아버지가 비장한 표정으로 공을 발등으로 차올려 가뿐하게 트래핑을 선보였다.
“아빠 어떠냐?”
아빠가 이 정도야, 라고 아들 앞에서 자랑하는 모습.
딸이라면 우와, 아빠 체고야! 이런 말이라도 해줬을지 모르지만, 난 아들이다.
애교 따위는 단 하나도 없는 상아들.
무심하게 손을 내밀었다.
“저도 해볼게요.”
시큰둥한 내 모습에 실망한 아버지가 콧바람을 흥, 하고 불며 나에게 공을 건넸다.
“그래, 한번 해봐.”
아버지가 패스한 공이 흙바닥 위를 데구르르 구르다 돌에 닿아 튀어오른다.
나는 다리를 들어 그 공을 향해 발을 내밀었다.
“야! 그렇게 하면 안 된……!”
그런 나를 보고 아버지가 가르치려는 듯 말을 하다 멈췄다.
오른발 인프론트로 공을 내 앞으로 공을 끌고 와 왼발, 오른발 트래핑을 하다 공을 높이 띄웠다가 발뒤꿈치로 플릭, 머리를 넘어 앞으로 떨어지는 공을 발바닥으로 밟아 살포시 내 발밑에 뒀다.
“어때요?”
“…….”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아버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날.
“감독 형님. 아무래도 우리 큰애가 천재인 거 같아요.”
아버지는 본인이 다니는 조기축구회 감독에게 나를 소개했다.
“자네 아들이?”
아버지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아저씨는 나와 아버지를 번갈아 보다가 물었다.
“엄마를 닮았나보구만?”
“그렇기는 한데, 형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아들이 천재 같다니까요?”
“원래 아버지들이 다 그렇지. 나도 우리 아들이 천재인 줄 알았어.”
“어, 음… 그런가?”
거기서 또 그런가는 뭡니까, 아버지.
“어, 근데 그건 아닌 거 같습니다, 형님.”
“흠… 자네가 자식 자랑이 심하긴 해도 구력은 무시하지 못하지. 자네가 그리 말하는 걸 보면 남다르긴 한가봐?”
“그렇다니까요, 형님. 볼 트래핑하는 게 저보다 낫다니까요?”
그 말에 그 정도야? 라는 시선으로 조기축구회 감독이 나를 바라봤다.
“애야, 그… 이름이 태양이지? 태양아, 이 아저씨한테도 공 다루는 거 보여줄 수 있어?”
“네!”
네가 힘차게 대답하자 감독이 공 좀 줘봐! 하며 회원들에게 외쳤다.
그사이 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저 감독 형님이 그래도 K리그 선출이야.”
“정말요?”
K리그 선출이 조기축구회 감독이라니 이건 좀 놀랍네.
나이를 생각해 보면 말년에 취미생활이라고 볼 수 있으려나.
“자, 공 받아라.”
감독이 나에게 공을 패스한다.
가볍게 찬 공이 아니라 제법 힘이 실린 공이었다.
이것도 못 받으면 가망성이 없다는 그런 뜻일까?
나는 발을 살짝 들어 공을 내 발바닥 밑에 뒀다가 그대로 굴려 발등으로 공을 띄웠다.
아버지에게 보여준 그대로 왼발, 오른발을 교차하며 가볍게 볼트래핑을 하기 시작하자 감독의 얼굴이 점차 심상치 않게 변했다.
“확실히 발은 좋은데?”
“그죠?”
그 뒤 이런저런 테스트를 해보던 감독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아버지에게 말했다.
“축구는 처음이라고?”
“네, 그렇지, 아들?”
“네. 축구는 이번에 처음이에요.”
“요즘은 학교에서 축구 안 시키나?”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애가 다니는 곳이 혁신학교인데 경쟁하는 운동은 절대 안 시키더라고요.”
“저번 주에 처음 해봤어요, 축구. 패스만 하고 끝나긴 했지만.”
일반 학교를 다니는 사람은 믿어지지 않겠지만, 실제로 그랬다.
경쟁하는 운동은 절대로 시키지 않는다.
체육시간에 하는 시늉이라도 하는데 얼마 전에 체육시간에 농구를 배우다 패스를 받던 애 팔이 부러져 축구는 하는 시늉만 하더라고.
게다가 내가 지금 겉으로 13살이지, 살아온 시간이 얼만데 애들이랑 축구를 하겠나.
사실 아예 놀지를 않는다.
그래서 엄마가 내 교우관계를 걱정하긴 하지만, 아무튼.
아버지의 말을 들은 감독은 허, 하고 탄식하더니 말했다.
“애들은 좀 험하게 놀면서 다치고 그래야 강해지고 의지력도 생기고 하는 건데 말이야.”
“제 말이요, 형님.”
“아무튼, 자네 아들이 천재인지는 내가 확답을 줄 수는 없고 확실히 소질은 보이네. 그래서 말인데…….”
나와 아버지의 시선이 감독을 향한다.
“서울 유나이티드 유소년팀에 인맥이 좀 있는데, 가서 테스트라도 받아볼 텐가?”
“헛……!”
아버지 표정이 좋지 않다.
“서울…이요? 저기 형님, 혹시 수원에는 아는 사람… 아, 없다고요. 알겠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푸른 피가 흐르는 수원 사람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