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ldest son is eager for soccer RAW novel - Chapter (37)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37화
“오바, 쓰페인은 어디야?”
막내 겨울이가 자기 몸통만 한 지구본을 바라보며 나한테 물었다.
“스페인은 여기.”
“가깝다! 그지?”
“응, 가깝지?”
“겨우리도 가면… 안 대?”
목적은 그거였냐?
초롱초롱하게 기대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겨울이가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겨울아, 이걸로 보면 가깝지만, 막상 가려면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해.”
“징짜? 얼마나 걸리는데?”
“음… 대충 한 세 시간 되려나? 여기서 공항 가는 시간도 생각해야 하고 수속 밟고 하면 더 오래 걸릴걸?”
겨울이한테는 아직 어려운 말들이 많았나? 이해 못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한다.
“이잉… 오빠, 축구. 보고 시퍼!”
“다음 주에는 볼 수 있으니까, 그때 보자.”
“지금은… 안 대?!”
“응응, 거기는 아무나 들어갈 수도 없어.”
“우린 대는데! 그지?”
어느새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우리’라고 표현하는 걸 보면 겨울이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툰이 되어버린 모양이다.
생각해 보면 앞으로 시간을 생각하면 겨울이는 한국에서 자란 시간보다 영국에서 살 시간이 더 많겠구나.
“엉아! 엉아, 어디써!”
그건 지금 학교에서 온 것 같은 여름이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8살, 서양 나이로 7살인 여름이는 이제 슬슬 아기 티를 벗어던지고 잼민이 티가 나기 시작했다.
“엉아, 스페인 안 가?”
“이제 가야지.”
“가면 언제 와? 내일 시합이니까 내일?”
“뭐야, 금방 오네?”
우리 여름이는 많이 컸다.
어릴 때는 누구보다도 형바라기여서 부모님이 분리불안이 아닐까 걱정할 정도였는데, 이제는 나보다 친구를 더 찾았다.
엄마 말로는 학교에서 엄청난 인싸라더라.
생일파티다, 무슨 파티다 하면서 여름이 때문에 초대가 많이 온다네.
조금 서운하긴 하지만, 좋은 일이지.
“그래, 형 내일 저녁에 올 테니까 겨울이랑 잘 놀고 있어.”
“응!”
여름이와 겨울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가?”
“응, 내일 올게?”
“응! 잘 다녀와, 엉아!”
“오빠 안녕!!”
둘이서 뭐 그리 할 말이 많은지 앉아서 수다를 떨기 시작하는 둘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짐을 챙겨들었다.
나는 이제 미래의 신이 될 선수와 많나러 가야 한다.
스페인이라… 오랜만이네.
* * *
디오스 알바레스 카르비야.
레알 마드리드의 유소년 시스템, 부활한 라 파브리카가 생산한 최고의 제품이자 향후 최고의 주력상품이 될 것이라는 뉴스기사를 시작으로 스페인에서, 그리고 유럽에서, 나아가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슈퍼 유망주였다.
그와 비견될 만한 선수라고 해봐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비토르 펠리시아노, PSG의 아비뉴 정도밖에 없었다.
“디오스! 오늘도 부탁한다.”
“디오스, 뉴캐슬 정도는 어렵지 않지?”
“어른들이 챔스에서 형편없는 경기를 보여줬지만, 나는 그럴 줄 알았어. 요즘 해이해졌거든. 디오스, 너는 그러지 않을 거지?”
그 덕분에 레알 마드리드에서 디오스에게 거는 기대는 상당했다.
팬들은 물론이고 구단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 라커룸으로 들어가는 순간에도 청소부부터 빨래를 담당하는 직원, 다른 연령팀 코치까지 모두 디오스에게 말을 걸며 기대가 가득한 말을 건넨다.
그런 그들의 기대에 디오스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네.”
그저 단답형.
시큰둥한 태도에 건방지단 말이 나올 법도 하지만, 사람들은 초지일관 한결같은 디오스의 태도에 기꺼워하는 편이었다.
어린 친구가 멘탈이 강하다 생각하는 거다.
맞는 말이긴 하다.
디오스는 경기에서 절대 떠는 법이 없었다.
사실 떨 이유가 없는 게 맞았다.
프리메라리가든 유로파컵이든 그를 긴장하게 만들 팀도, 선수도 없었으니까.
어깨를 견줄 만한 선수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설레어했던 적도 있지만, 막상 붙어보면 자기만 못했다.
심지어 디오스는 이제 겨우 14살이었다.
나이차도 많이 나고 성장기라 피지컬 차이도 나는 지금에서도 실력 차이가 이렇게 나는데 과연 커서도 달라질 게 있나 의문이었다.
“으하암.”
이제는 축구가 재미있어서 하기보다는 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기분이었다.
“디오스!”
라커룸 안으로 들어가니 동료들이 모두 같이 자신을 반겼다.
디오스는 대충 손을 흔들어 동료들의 환대를 받아주고 자기 자리에 앉았다.
그의 등 뒤에 등번호 7번이 마킹된 유니폼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언젠가는 성인팀에서 차지할 등번호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것도 요즘은 좀 시큰둥하다. 그냥 모든 게 귀찮고 흥미가 없었다.
“오늘 상대가 어디였지?”
그러고 보니 오늘 누구랑 붙는지도 확인 안 했다는 게 떠올랐다.
팀은 그에게 전술적으로 훈련을 시키거나 사전 훈련을 강요하지 않아 상대팀조차도 관심을 놓은 지 오래였다.
“뉴캐슬.”
“뉴캐슬? 그… 촌스러운 검은색, 흰색 줄무늬 유니폼팀? 돈 많은?”
가뜩이나 없던 의욕이 더욱더 짜게 식어 없어졌다.
기운 없는 그의 표정을 읽기라도 한 듯 동료가 말했다.
“오늘 선발 명단에 너 없더라.”
“그래?”
안 그래도 프리미어 리그 팀은 거칠어서 행여나 다칠까봐 싸우기 싫었는데 잘됐다 싶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경기를 준비하고 벤치에 앉았는데 감독의 목소리가 들린다.
“성인팀처럼 안일하게 플레이하지 마라!”
“네!”
감독의 말을 듣고 옆에 동료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러던데, 뭔 일 있었어?”
“뉴캐슬한테 1대0으로 졌거든.”
“뭐?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
“어이없게 졌어. 내내 몰아붙이다가 후반 막바지에 세트피스로 골 먹혔거든.”
“거, 참.”
디오스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라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아무리 약한 상대라고 하더라도 지면 자존심이 상하니 늘 최선을 다하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를 거야.”
“그렇지.”
동료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며 필드를 바라본다.
뉴캐슬의 선축으로 시작된 경기에서 뉴캐슬은 차분하게 패스를 주고받으며 서서히 라인을 올리고 있었다.
그들의 패스는 잘 맞물리는 톱니바퀴와도 같았다.
착착 맞아떨어지는 패스와 위치, 그에 따른 빌드업까지.
일견 보기는 좋은 팀이었지만, 거기까지였다.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전술을 철저하게 분석한 레알 마드리드는 뉴캐슬의 약점을 간파하고 있었다.
정교해 보이는 뉴캐슬의 전술에는 선수들의 개인 판단, 임기응변, 응용 같은 게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교묘하게 감독의 지시를 어기고 독단적으로 활약하는 선수들이 몇 있기는 하지만, 그들 몇으로는 완성된 팀이라고 스스로 자부하는 레알 마드리드를 감당할 수 없었다.
지정된 위치에 공을 전개하지 못한 뉴캐슬은 계속해서 공을 뒤로 돌리기 바빴고, 레알 마드리드는 그 틈을 노려 공을 가로채고 공수를 전환했다.
선수들이 밀집한 중앙에서 측면으로 전개된 공을 잡은 윙어가 측면 라인을 타고 깊숙하게 전진해 크로스를 올렸다.
그 공을 받은 건 레알 마드리드 후베닐 A에서 디오스 다음으로 주목받고 있는 공격수 라파엘이었다.
라파엘은 공중에서 떨어지는 공을 잡고 자신의 옆에 붙어있는 선수를 가볍게 제치고 슈팅해 레알 마드리드의 선제골을 만들어냈다.
“역시 라파엘이네. 결정력이 남달라.”
스탭들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 라파엘은 포효하는 세리머니를 선보이며 레알 마드리드의 기세를 올렸다.
“진짜 더럽게 못하네.”
그걸 보며 디오스는 뉴캐슬이 돈만 많은 그저 그런 구단으로 단정 지으며 흥미를 잃었다.
그렇게 디오스는 감독의 눈치를 보다가 이내 앉은 채로 잠들어 버렸다.
“Cono!!!”
“헛……!”
얼마나 잠들었을까 들려오는 감독의 목소리에 디오스는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흘러내리는 침을 닦아내고 감독을 보니 얼굴이 새빨갛게 익어있었다.
선수들에게 언제나 인자하고 화를 내는 일이 거의 없는 감독이 욕설을 내뱉으며 화내는 모습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디오스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뭐야, 왜 지고 있어?”
시간은 전반 36분.
잠깐 존 것 같은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흐른 것도 놀랄 일인데 스코어가 2대1로 뒤지고 있었다.
도대체 전반 내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의아한 가운데 모두의 시선을 쫓아 필드를 바라봤다.
“…아시안?”
그곳에는 검은 머리 소년이 있었다.
하프라인 즈음에 공을 잡은 소년이 레알 마드리드 진영을 향해 달려간다.
“미친 건가?”
자기 팀 진영에는 수비수들은 물론이고 그들을 보호하는 후방 미드필더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대단한 유망주였다.
레알 마드리드가 공들여 키우며 지난 시즌 이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린 센터백 듀오와 믿고 쓴다는 브라질산 수비형 미드필더, 최첨단 전술에 맞춰 길러진 풀백까지.
디오스 자신도 쟤들을 상대로 골을 넣는 게 쉽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런 애들이었다.
인종차별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아시안이 쟤들을 상대로 도저히 골을 넣을 것 같지 않다 생각하는 그 순간.
뒷돈이라도 받은 건가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손쉽게 수비형 미드필더가 뚫렸다.
그 뒤를 이어 풀백 한 명이 제쳐지고, 뒤이어 달려온 수비수는 상대의 스탭오버에 속아 균형을 잃어 한쪽 무릎을 꿇었으며, 동시에 짓쳐든 남은 풀백과 수비수가 양옆에서 샌드위치처럼 짓눌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선수에게서 공을 뺏기는커녕 시도한 반칙조차 어이없이 실패하며 길을 내줬다.
그렇게 단숨에 다섯 명의 선수를 제친 아시안 소년은 거리를 좁히며 달려오는 골키퍼마저 드러그백으로 벗겨내며 비어버린 골대로 골을 넣었다.
“참나…….”
디오스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옆에 앉은 동료를 바라봤다.
동료는 질린 듯 그 아시안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팀 애들이 갑자기 바보가 된 거야, 아니면 쟤가 잘하는 거야?”
디오스의 말에 흠칫하며 시선을 돌린 동료가 말했다.
“해트트릭이야.”
“뭐?”
“쟤가 저런 식으로 혼자 세 골을 넣었다고.”
“…진짜?”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디오스가 되묻자 동료는 자신의 팔을 디오스에게 바짝 들이대며 말했다.
“어, 이거 안 보여? 털이 다 쭈뼛 선 거? 다른 애들도 그럴걸? 저놈 미친놈이야. 더럽게 잘해.”
“…나보다?”
그 말에 동료는 멈칫했다.
평소라면 당연히 네가 더 잘하지! 라고 말했을 동료가 멈칫했다는 게 뭘 뜻하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디오스는 시선을 돌려 아시안 소년, 태양을 바라봤다.
해트트릭을 넣은 것 치고는 굉장히 시큰둥한 모습으로 터덜터덜 하프라인으로 걸어가는 놈을 바라보니 뭐랄까…….
가슴 한쪽에서 무언가 뜨거운 게 치솟아 오른다.
이건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바로 승부욕.
그리고 저 선수와 붙어서 이기고 싶다는 호승심.
그런 디오스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걸까?
감독이 디오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디오스 몸을 풀어두렴. 후반에는 출전해야겠구나.”
그 말에 디오스는 모처럼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