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ldest son is eager for soccer RAW novel - Chapter (4)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4화
학교와 연계되는 K리그의 유소년 시스템으로 인해 서울 UTD는 오성 중학교에서 오성 고등학교로 이어지는 유스팀을 갖추고 있었다.
과거에는 서울을 연고로 두는 팀 치고는 큰 빛을 보지 못했지만, 독일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초대 유스 디렉터 취임 이후 체계적인 유스 훈련 시스템을 구축한 뒤부터 유스를 키워내 유의미한 결과를 얻은 곳이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수원과 함께 유스 명문으로 굳건히 자리잡았다.
하지만 최근 3년에는 그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수도를 연고지로 둔 어마어마한 인재풀을 보유한 곳답지 않은 상황이다.
솔직히 말이 안 되지 않은가?
대한민국 국민 5분의 1이 서울에 살고 있는데 그 곳에서 국가대표는커녕 K리그에서 경쟁력 있는 선수가 기껏해야 한 명밖에 안 나왔다는 게?
“3년이라는 암흑기 끝에 드디어 우리 유스팀이 체면을 세울 인재가 나왔습니다.”
유스 디렉터의 말에 코치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태연한 사람은 정한율, 그리고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있는 U-15 감독 조봉수뿐이었다.
디렉터는 조봉수 감독을 바라보며 물었다.
“조봉수 감독님, 그 선수 영상 틀어주실 수 있으시죠?”
“허허, 그럼요. 한율아 영상 재생한 번 해봐라.”
“네, 감독님.”
조봉수의 지시에 U-12 코치인 정한율이 회의실 스마트 TV에 본인의 스마트폰을 연결해 이내 하나의 영상을 재생했다.
키가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분주하게 공을 쫓아 달리고 있었다.
“아카데미에서 괜찮은 애들이 있었나?”
“새로 들어왔다면 이제 겨우 초등학생 아냐?”
드림 오브 서울, 내부에서는 과거 이름대로 아카데미나 어린이 축구교실이라 불리는 곳의 영상이 재생되자 저마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쉿, 조용.”
그 소란스러움은 조봉수 감독의 말 한마디에 진정되었다.
지금이야 한직이라 볼 수 있는 U-15의 감독이지만, 조봉수 감독은 사실 K리그에서 수석코치로 이름을 날린 유명한 축구인이었다.
본인이 말년에 후학 양성에 힘쓴다며 내려오지 않았다면 그는 수석코치 그 이상이 되어 있을지도 모를 사람이었다.
그가 조용히 하라는데 조용하지 않을 코치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아니, 이 자리가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지금 성인팀 감독도 조봉수 감독이 가르치던 선수였으니 말 다했다.
“동영상에 집중들 합시다.”
조봉수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다시 영상을 향한다.
머지않아 조그만 아이들 사이에 유난히 도드라지는 아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아니, 독보적이었다.
“빠른데?”
“공을 달고 달리는데도 속도가 줄지 않네요.”
“드리블도 괜찮고.”
“볼터치가 예술… 와, 저거 뭐야? 애가 프리플랩을 저렇게 깔끔하게 한다고?”
굿판에 무당이 칼춤을 추듯, 필드 위에 한 아이가 신명나게 뛰어놀고 있었다.
아이의 가벼운 상체 무빙에 상대는 엉덩방아를 찧거나, 치욕적인 넛매그를 당하기 일쑤였고, 나중에 가서는 아이가 공을 잡으면 무서워서 다가가지도 못했다.
그렇게 10분여간의 영상이 끝나자 정한율이 말했다.
“여기까지가 경기 마지막 10분 동안 영상입니다.”
“저 경기에서 몇 골 넣었나?”
“혼자 6골을 넣었습니다.”
“허… 초등학생 경기 시간이 얼마더라? 50분이었지? 50분 동안 여섯 골?”
아무리 정식 유스팀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50분 동안 여섯 골은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저 아이 언제부터 축구 했대?”
U-18 감독의 물음에 정한율이 말했다.
“학부모님 말씀으로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말이 되나?”
다시 한번 술렁인다.
하지만 이내 모두가 수긍했다.
요즘 초등학교에서 부상 위험 때문에 체육 시간에 구기 종목을 안 하거나 기본만 가르치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것 치고는 너무 잘하는데.”
“아이 말로는 유럽 축구 경기를 빼지 않고 봐서 그걸 따라했다고 합니다. 유튜브에서 개인기 하는 것도 많이 봤다고 하고요.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경기하면서 패스하는 걸 한 번도 못 봤습니다.”
“그 나이 애들은 원래 개인기로 제치고 골을 넣고 싶어 하지, 패스는 눈에 안 들어오니까 뭐.”
“영상 보고 따라했는데 저 정도면 천재네. 천재야.”
천재.
그래, 아이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6학년이 저 정도 플레이를 보여준다면 천재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천재를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일.
유스 디렉터는 조봉수 감독을 바라보며 물었다.
“조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제 6학년이라 했는데, 오성 중학교로 입학을 추진해 봐야 할까요?”
“어휴, 당연한 말씀을.”
조봉수의 말에 디렉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멈춰 버린 영상에서 시큰둥한 얼굴로 공을 잡고 있는 곱상한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손을 모았다.
“기대되네요, 저 아이가 유스에서 차근차근 잘 성장해서 서울에 입단하는 날이요.”
상상만 해도 흥분됐다.
* * *
오성 중학교 입학과 서울 UTD 유스팀 입단이 확정된 상황에서 아버지는 크게 좋아하면서도 좌절했다.
“우리 아들이 난지도 선수라니… 우리 아들이 패륜이라니…….”
…누가 보면 내가 패륜아인 줄 알겠네.
“애 앞에서 그게 할 소리야!”
보다 못한 엄마가 아버지의 등짝을 때렸다.
평소라면 자식들 웃기려고 과하게 엄살을 떨어야 할 아버지였지만, 축 처진 상태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국의 푸른 피가 흐르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붉고 검은 피의 아들은 충격이 큰 모양이다.
“아버지, 그러게 왜 수원에 정착하시지 서울에 정착하셔서…….”
“나는 수원 살고 싶었다.”
진심인 모양이다.
아니, 태어난 것부터가 서울이신 분이 어떻게 수원 팬이 된 건지 이해가 되질 않네.
“엄마, 오빠, 대신 중학교 안 가?”
대신중은 우리 동네 중학교다.
축구를 안 했으면 내가 갔을 중학교.
“응, 축구 때문에 오성 중학교란 곳에 가게 됐네?”
“그럼 우리 이사가?”
가을이의 동공이 마구 흔들린다.
7살 가을이의 인생에 이사라는 계획은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대신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을 졸업해 대신초에 입학하고 대신중, 대신고로 이어지는 학창시절을 계획하고 있을 거다.
아마 대신대가 있으면 대신대 들어갔겠지만, 대신대는 없고, 본인은 서울 사니까 서울대 가겠지, 하고 쉽게 생각할 나이다.
그만큼 이사는 저 나이 아이에게 큰 걱정거리긴 하지.
친구들하고 다 헤어져야 하니까.
나는 가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아니야, 가을아. 오빠는 오성중 들어가면 기숙사 생활을 할 거야. 이사 안 가.”
“기숙사? 오빠 혼자 나가 사는 거야?”
“엉아? 나가? 나도 가!”
막내 겨울이와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여름이가 손을 번쩍 들며 말한다.
순간 엄마 얼굴에 장난기가 스쳐지나간다.
엄마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여름아, 엉아는 이제 다 커서 나가 살 거야. 중학생 되면 여름이랑 같이 안 살아. 떠날 거야.”
“엉아 떠나? 왜? 여름이랑 같이 안 이써? 엉아 지짜야?”
“형한테 물어보나 마나야. 형 진짜 떠난다니까?”
“거진말! 어마 미어! 으아아아앙!”
여름이가 울음을 터뜨리자 엄마가 배를 잡고 웃었다.
“엄마, 여름이 좀 그만 놀려요. 애 울보 되겠네.”
“여르미 울보 아냐!”
내 말에 버럭 소리친 여름이가 억지로 눈물을 삼킨다.
“그래, 우리 여름이는 상남자지.”
“상남자? 그게 머야?”
“그냥 남자보다 더 대단한 남자.”
“그래! 여르미는 상남자야!”
상남자 특. 울보임.
“그럼 아빠도 상남자야?”
내가 아버지를 말없이 바라보자 엄마가 대신 말했다.
“아빠는 하남자지.”
“아빠는 하남자!!”
하남자 특. 자식을 라이벌 구단에 입단시키고 좌절함.
“아빠는 하남자!”
“아바 하나자!”
여름이와 겨울이가 열심히 하남자를 외치는 가운데 아버지는 하남자답게 실의에 빠진 모습 그대로 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하지만 나의 서울 유스팀 입단은 바뀌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가을이의 생일인 10월이 지나고 겨울이의 생일인 12월이 지나 새해가 밟았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없는 이름 봄이 찾아왔다.
“나 어때?”
생활복이 있어서 입학식과 졸업식을 제외하면 입을 일이 없는 교복을 갖춰 입고 동생들 앞에 서자 동생들이 일제히 엄지를 내밀었다.
“괜찮은데?”
“엉아 체고!”
“오바, 예뻐!”
겨울아, 오빠한테 예쁘다니.
멋있다고 해주면 안 되냐?
어쨌든 선망 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동생들에게 씨익 웃어주는 사이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와, 우리 장남, 교복 입으니까 예쁜데?”
“예쁘다뇨…….”
“엄마 닮은 걸 어떻게 해. 아빠 닮아서 나오지 그랬어.”
엄마 닮아서 곱상한 건 싫지만, 아빠 닮은 건 더 좀… 그렇네.
“이제 갈까?”
동생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고 나서 오성 중학교로 향한다.
“당분간 외할아버지 집에서 지내다가 기숙사 생활할 건데 괜찮겠어?”
“네.”
엄마는 집에서 떨어져 지낼 나를 걱정하는 것 같다만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지난 삶에서는 6살 때부터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가‘족’같이 지냈어야 했다.
그때 생각하면 축구팀 기숙사 생활이야 뭐 어렵지 않지.
축구하는 애들이야 축구 선수가 되고 싶은 생각에 뒤를 생각하지만, 고아원 친구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친구들은 내일이 없고 뒤를 생각하지 않거든.
내 무릎이 괜히 박살 난 게 아니다 이 말이야.
“도착은 했는데… 엄마가 같이 들어갈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오성 중학교에 도착했다.
엄마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보며 물었지만,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이 먹고 창피하게 엄마랑 같이 다니고 싶지 않았다.
“엄마, 입학하는데 부모님 데려오는 애들이 어디 있어요?”
“저기 많은데?”
“저래서 요즘 애들이 자기 앞가림을 못하는 거예요.”
“어이구, 그래, 얼른 들어가 애늙은이야. 엄마는 외할아버지 댁에 가 있을게.”
“네, 이따 봐요, 엄마.”
엄마를 보내고 학교로 들어가 배정된 반에서 입학식을 했다.
이미 한 번 해봤던 것들이라 사실 학교생활은 관심이 없었다.
잼민이나 중딩 급식이나 나한테는 어린애들인 건 똑같다.
같이 논다고 재밌을 리가 없지.
내가 집중해야 할 건 어디까지나 축구였다.
여기 서울 유나이티드는 축구를 하기 위한 발판이었다.
내가 굳이 서울 유나이티드 입단을 반대하지 않고 선선히 들어온 이유는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유소년 훈련이 체계적인 몇 없는 곳이 여기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두각을 드러내 국가적으로 주목받고 유럽으로 진출한다.
이게 대략적인 내 미래 플랜이었다.
“여기가 그 첫걸음인가.”
따로 마련된 서울 U-15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2층, 3층은 집이 먼 아이들을 위한 기숙사였고, 1층은 탈의실과 식당이 마련된 곳이다.
일종의 유스팀 클럽하우스라고 볼 수 있지.
고아원이나 내가 지난 삶에서 보냈던 중학교를 생각하면 시설이 아주 선녀다.
이 정도면 진짜 호텔이나 다름없는 곳이지.
그렇게 만족스러워 하는데.
“뭐야, 신입생이야?”
“어?”
“어는 반말이고 새끼야. 선배를 봤으면 인사부터 해야 할 거 아냐, 이 새끼야.”
저게 과연 중학생인가 싶을 정도로 험상궂게 생긴 놈이 나에게 다가온다.
뭐지?
촌구석 중학교도 아니고, 천하의 서울 유나이티드 유스팀에도 갈굼 같은 게 있는 거야?
“인사 안 해, 이 새끼야?”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웃음이 난다.
왜?
하는 짓이 같잖아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