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101)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102화(101/157)
산과 망령들 (4)
신전은 태구의 공간이다.
그 안에서 머무는 망령들이 무얼 하고 있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굳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당장 약초꾼 아버지와 그의 아이들은 행복함을 느끼고 있었다.
허나, 거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태구는 제게 주어진 일을 마치고자 했다. 다만 당장은 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기에 동의를 구하고자 했다.
태구는 일행을 바라보았다.
“저도 딸자식이 있어 그런가? 마음이 참 안 좋네요. 이대로 갈 게 아니라 다 같이 묵념 한번 하고 가죠.”
그들은 카메라 감독의 권유 하에 남자와 아이들의 평온을 기리고 있었다.
“그러니까요. 정말 간절히 바라건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아이들 만나 좋은 곳으로 가셨으면 좋겠어요.”
“그, 조금 전에 아이들 버리고 간 거 아니냐고 했던 말 죄송해요. 이미 좋은 곳으로 가셔 듣진 못하시겠지만 그래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죄송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이 묵념을 마치고 눈을 떴을 때.
태구가 김 작가를 불렀다.
“김 작가님.”
“네?”
“따로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무슨··· 설마 근처에 또 뭐가 있어요?”
“있기야 있는데 그게 망령은 아니고요.”
저 아래 남자의 시신이 쓸쓸히 방치되어 있다. 절벽에서 기어오르고 떨어지고를 반복하던 그의 기억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모르면 몰랐지 안 이상 그냥 갈 수 없다. 태구는 방치된 그의 육신을 수습하고자 했다.
“시신 수습이 안 되었다고요? 그럼 실종 형태로 남아 계셨던 건가요?”
태구의 이야기를 들은 김영채 작가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렇게 물었다.
태구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어 그녀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곧장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당장 경찰서에 전화···아!”
허나, 핸드폰이 먹통이다.
그리고 이제 와 불현듯 드는 생각인데 시신을 확인하지 않은 상태로 신고하는 건 영 부적절해 보였다.
[심령솔루션 프로그램 제작진입니다. 혹시 저희 출연자 태구 님 아시나요? 그분이 말하길···]이렇듯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런 김 작가의 고민은 이어지는 태구의 대답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안 터질 거예요. 그리고 통화가 된다 한들 여기가 어디라고 설명하기도 퍽 어려울 것 같고···”
“그렇죠.”
“그래서 말인데, 카메라 한 대 주시면 제가 내려가서 그 위치랑 방치된 시신을 찍어올까 하는데요.”
그렇게 찍은 영상을 통해 신고할 작정이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선 일행들의 동의가 필요했다. 잠시 촬영을 멈추고 혼자 내려갈 생각이었으니까.
“아, 그럼 되겠네요. 자, 잠깐만요. 그런데 혼자 가시겠다구요?”
“저 혼자 내려갔다 오는 게 안전하다는 판단이 들어서요. 보다시피 길이 좀 위험하잖아요.”
물론 같이 갈 수도 있다. 하지만 내뱉은 말마따나 내려가는 길이 너무나 위험했다.
이는 기도문이나 신성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랬기에 혼자 내려가기로 결심한 태구였다.
“그건 태구 님도 마찬가지죠. 핸드폰도 안 터지는데 저길 어떻게 혼자 가신다는 말씀이세요. 가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김 어쩌시려구요.”
“제가 또 퇴마만큼 잘하는 게 등산이라.”
그 과정에서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긴 했으나 결과적으론 태구가 원하는 대로 되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저, 태구 님. 혹시 저희끼리 있는다고 악한 귀신이 접근하거나 지난번처럼 귀신에게 홀려 길을 잃게 된다거나 뭐 그런 일은 없겠죠?”
“그래서 다시 이렇게 축성 내려 드리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걱정 마시고 편히들 쉬고 계세요. 금방 다녀올게요.”
태구는 그리 말하며 하던 일을 계속했다. 다시금 일행들에게 축성을 내려준 것이다.
축성을 받은 이상 이들에게 감히 빙의를 시도하거나 위해를 가하는 망령은 없을 터.
다만, 망령의 접근 자체를 막거나 그 시선을 차단해주는 효과는 없다.
‘설령 접근하는 망령이 있다 한들 그 모습을 볼 순 없을 테니 문제가 되진 않겠지.’
“알겠어요. 그럼 저희 태구 님만 믿고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래도 만약에 아주 만약에 너무 늦으신다 싶으면 내려가서 바로 신고할 거예요.”
그렇게 방비를 마친 태구는 카메라를 받아 들고 곧장 길을 나섰다.
“허, 진짜 빠르네요.”
“저러니 혼자 가겠다고 한 거였구나.”
태구는 순식간에 일행들 곁에서 멀어졌다. 그 놀라운 속도에 그들은 벙찐 표정을 지었다.
더불어 태구가 어째서 혼자 내려가겠다고 고집을 피운 것인지 납득할 수 있게 되었다.
일행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태구는 부지런히 아래로 또 아래로 내려갔다.
추후 출동할 경찰에게 알려줄 목적으로 나무에 표식 따위를 남겨두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태구는 남자의 육신이 잠들어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깊은 산중.
그곳에 남자의 유골 일부가 흩어져 있었다.
생전 그가 입고 있던 옷가지와 삭은 배낭 그리고 허리춤을 고정했던 로프도 보인다. 태구는 수풀 사이에 방치된 그의 유품과 유골을 카메라에 담았다.
경찰에게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가 들고 있는 카메라 안으로 흐드러지게 핀 붉은색 꽃망울이 찍혔다. 한두 송이가 아니었다.
***
같은 시각.
“후우, 시원하다.”
제보자가 긴장으로 굳은 어깨를 풀며 말했다.
그 맞은편에 서 있는 김영채 작가는 손목에 찬 시계를 바라보고 있었고, 카메라 감독은 제보자와 같이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작가님도 시계만 보지 마시고 스트레칭 좀 하세요. 태구 님 금방 오신다고 하셨잖아요.”
제보자는 그런 김영채 작가를 보며 스트레칭을 권했다.
“아뇨. 저는 괜찮아요.”
김영채 작가는 초조한 얼굴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던 때였다.
꼬르륵.
분위기에 맞지 않는 우렁찬 소리가 고요한 숲속에 울려 퍼졌다. 소리의 근원지는 김영채 작가의 뱃속이었다.
전염이라도 된 걸까.
꼬르르륵—
이번에는 손목을 털던 카메라 감독의 배에서도 같은 소리가 울린다.
“어?”
“하하하.”
머쓱해서일까. 일행들 사이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제보자도 피식 웃으며 내려놓은 가방을 열어젖혔다. 이윽고 그의 손에 작은 컵라면 하나가 들려졌다.
“그럼 스트레칭 말고 가볍게 간식이나 먹을까요? 컵라면도 챙겨왔는데.”
“크흠. 그럼 하나만 나눠 먹죠.”
김영채 작가는 머쓱한 듯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제안만큼은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
“각자 먹고 싶어도 어차피 한 개밖에 없어요. 나머지 하나는 주인이 따로 있거든요.”
제보자는 그렇게 말하며 컵라면 제조에 들어갔다. 청량한 숲 내음 사이로 익숙한 컵라면 냄새가 섞여 들어갔다.
군침이 절로 나는 향이었다. 당장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홀로 내려간 태구의 걱정도 들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어둠 속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시선 역시 느끼지 못했다.
잠시 후. 옹기종기 모여 앉은 세 사람은 컵라면 하나를 주고받으며 허기를 달랬다.
“으. 이제야 살 것 같다. 진짜 맛있네요.”
“산에서 먹으면 뭐든 맛있다잖아요. 신발을 씹어 먹어도 맛있을걸요?”
“네? 신발을 튀겨 먹어도 맛있다가 아닐까요?”
“작가님도 참, 그냥 좀 넘어가 주시지. 흐흐.”
든든함에서 오는 편안함일까, 그도 아니면 태구가 걸어주고 간 축성 때문일까.
어두컴컴한 산속에 저들끼리만 있음에도 겁을 먹지 않은 이들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남은 컵라면 국물을 홀짝이며 태구를 기다렸다.
그러던 그때였다.
“후우···어?”
국물을 홀짝이는 김영채 작가의 귓가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찰칵,
핸드폰 카메라 셔터 소리였다.
“방금 그 소리 들었어요?”
“핸드폰 소리 맞죠? 태구님 오셨나.”
그녀가 고개를 들기 무섭게 제보자와 카메라 감독이 입을 연다. 두 사람도 같은 소리를 들은 성싶다.
그들은 태구가 사라졌던 방향을 향해 고개를 꺾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들은 태구가 온 줄로만 알았다.
“태구 님?”
“······”
하지만 보이는 거라곤 깜깜한 어둠뿐이었고, 돌아오는 답도 없었다. 태구가 아니라면 주변에 다른 사람이 있는 건가?
“거기 누구 있어요?”
김영채 작가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크게 외쳤다. 그 물음에 답이라고 하려는 걸까. 돌연 수풀을 헤치는 소리가 들렸다.
김영채 작가를 비롯한 이들의 고개가 다시금 꺾였다. 소리의 근원지는 뒤쪽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위쪽이었다.
수풀을 헤치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들의 뒤에 자리한 나무에서 들린 소리였다.
파사사사, 파사삭—
고목 위에 돋아난 나뭇잎이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때라는 것이다. 나무 사이에 새가 앉아 있는 것도 아녔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꿀꺽.
일행들은 자연히 다른 존재를 떠올렸다. 귀신이다. 이는 분명 귀신의 소행이 분명하다.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으나 그들은 같은 생각을 했다. 이어서 그들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제보자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몸을 들썩이기까지 했다. 대개 사람들은 두려운 상황에 맞닥뜨리면 저도 모르게 도망을 치려 한다.
지금도 그 비슷한 상황이었다.
“어, 어···”
그런 제보자의 상태를 눈치챈 카메라 감독이 잽싸게 그의 팔목을 움켜잡았다.
“태구 님이 괜찮다고 했잖아요. 호기심에 구경하러 온 귀신은 있어도 감히 해코지는 못 할 거라는 그 말 기억 안 나요?”
“아, 아···”
“그러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움직이지 마요. 괜히 혼자 도망갔다가 또 길 잃으면 어쩌려고요.”
그는 괴이한 분위기에 동요되지 않았다. 이보다 더한 상황도 겪어보지 않았던가. 그러한 경험이 빛을 발했다. 그가 덤덤한 목소리 톤을 유지하며 제보자를 다독였다.
그 덕에 제보자도 빠르게 안정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이어서 그들은 서로의 몸에 몸을 붙인 채 주변을 경계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나뭇잎은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었다.
파스스스——
한 그루에서만 움직임을 보이는 게 아니다. 마치 누군가 나무와 나무 사이를 타고 다니는 것만 같다.
그들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흔들리는 나무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고요한 정적이 찾아왔다.
어떤 나무에서도 이전과 같은 움직임은 없었다.
“후웁.”
그러나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돌연 서늘한 한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옅은 피비린내도 난다.
나무에서 내려온 그것이 자신들 곁으로 다가온 게 분명했다. 이를 방증하듯 어렴풋이 여인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아이고, 아니네.]그런데 그 목소리가 정겹다.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도 아니었고, 악에 바친 목소리도 아니다. 오가다 들을 수 있는 여느 평범한 중년 여성의 목소리였다.
더불어 아니라고 내뱉는 그 말투 안에 어쩐지 미안한 기색이 묻어있다. 그 목소리를 들은 이들은 순간 당황했다. 그러길 잠시.
“어어? 아, 아줌마? 지금 여기 계신 분 아주머니 맞죠? 저 모르시겠어요?”
돌연 앞으로 나서 외치는 제보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