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104)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105화(104/157)
산과 망령들 (7)
“나 가게 해줘요. 집으로 가야겠어요. 나 이렇게 만들고 행복에 겨워 살고 있는 그것들을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어요. 그러고 따라갈게요. 지옥이든 어디든 내 두 발로 얌전히 걸어갈게요. 네?”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태구를 바라보는 여자 망령. 태구는 그런 망령과 시선을 마주한 채 고개를 저었다.
“지옥이 어떤 곳인 줄 알고 제 발로 간다는 겁니까. 본인이 아니라 그것들을 지옥으로 보낼 생각을 해야지.”
“···?”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줄게요. 딱 당신이 겪은 지옥만큼 그들에게도 지옥을 보여줄게요. 당신은 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요. 그냥 보기만 해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망령은 태구의 말에서 진심을 느꼈다. 더불어 그들에게 지옥을 보여주겠다는 말에 멈춘 심장이 다시 뛰는 것만 같았다.
“아, 아아아—”
이는 그녀가 진정 바라던 것이었으니까.
망령은 저를 이렇게 만든 연놈들이 딱 자신만큼 불행하길 바랐다. 용서 같은 건 생각한 적 없다.
애당초 산을 뒤져가며 그들을 찾은 이유가 뭔데?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어서였다. 세상에 혼자 떨어진 그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그래야 이 갑갑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어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걸 태구가 해주겠단다.
망령은 눈물을 글썽이며 그의 손을 붙잡았다. 부탁한다는 의미였다. 태구는 그 손을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간 산길 헤치고 다닌다고 고생 많았어요. 이젠 편하게 쉽시다. 아, 그러기 전에 딱 한군데만 더 같이 가고요.”
“어디요?”
“본인 시신 수습해야죠.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죠?”
이전에는 몰랐으나 기억이 돌아온 지금은 알고 있다. 처음 눈을 뜬 곳, 그곳에 자신이 있다. 망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간 끌 거 없이 바로 가죠.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이걸 말 안 했네.”
“?”
“당신을 찾아온 사람이 있어요.”
“저를요?”
태구가 고개를 까닥였다. 그곳에 이제 막 도착한 일행이 있었다. 정확히는 카메라 감독과 제보자가 태구를 보고 있다. 일행인 김영채 작가는 없었다.
“저기 지금 우리 보고 있는 남자요. 기억 안 나요?”
“···어.”
“길 잃고 헤매는 걸 그쪽이 도와줬다고 하던데요.”
그간 산에 머물며 도와준 사람이 한둘이어야지. 망령은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
그때,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제보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금 여기에 그 아주머니 계신 거 맞죠? 저 기억 한대요? 저 보면서 아들 생각난다고도 그랬는데···”
“!”
그 말에 망령이 부릅 눈을 떴다. 이제야 기억 난 것이다. 어릴 적, 사고를 당한 아이가 장성하면 딱 그 나이가 되었겠구나 싶어 했던 조난자. 바로 그였다.
“지금 내 앞에 계시고, 제보자분도 기억난다고 하시네요.”
이를 눈치챈 태구가 대답했다.
“직접 보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아무것도 안 보이네요. 이거 태구 님이 걸어주신 축성 때문인 거죠?”
끄덕끄덕.
“하고 싶은 말 있거든 그냥 나한테 말해요. 내가 전해줄 테니까. 아, 그리고 작가님은 어디 갔어요? 당장 이동해야 하는데.”
“작가님은 기절하신 남자분 곁에 계세요.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인 거예요? 설마 그 아주머니 보고 놀라서 그렇게 소리를 질렀던 거예요? 알고 보면 그렇게 무서운 사람 아니 귀신 아닌데···”
제보자의 시선이 바닥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여자에게로 향한다. 귀신에게 쫓기고 있던 여자였다.
그런 시선에 태구가 상황을 설명했다. 그가 직접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읊어준 것이다.
생전, 남편의 불륜을 잡기 위해 산에 들어왔고.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른 채 남편과 내연녀 찾기를 계속하던 망령.
그러다 마주한 불륜 커플을 남편이라고 착각하여 해코지하려고 했던 일까지.
태구의 설명을 들은 제보자와 카메라 감독은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서 그때 우리보고 아니라고 한 거였구나. 그리고 저쪽은···”
진짜 불륜 커플이구나. 제보자는 바들바들 떨고 있는 여자를 곁눈질했다. 그 눈빛에 혐오가 깃들어 있었다. 카메라 감독도 슬그머니 몸을 돌려 여자를 찍었다.
“찍지마요!”
순간 여자가 카메라를 흘겨보며 소리를 질렀다.
“히익!”
그러나 이내 그녀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시 고개를 숙였다. 실로 섬뜩한 눈빛과 마주했기 때문이다. 망령은 무미건조한 얼굴로 여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람 바보 만드는 거 아주 쉽지? 재밌지? 근데 너 그러다 언젠간 죽을 거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잘 알거든. 내가 딱 그랬으니까. 정말 죽여버리고 싶었거든. 죽은 지금도 말이야.”
태구를 대할 때와는 퍽 다른 기세였다. 망령은 눈앞에 있는 여자가 남편의 내연녀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허나, 망령의 눈엔 똑같은 족속처럼 보였다.
그런 망령의 살벌한 기세에 여자는 질겁한 얼굴을 하며 태구를 바라보았다.
“으, 으···”
당장 저것 좀 어떻게 해보라는 속마음은 내뱉지 못하고 눈동자를 굴리며 신음만 흘린다. 시퍼렇게 뜬 눈으로 저를 지켜보는 존재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 뜻은 분명하게 전달되었다. 태구는 그녀의 눈빛에 이렇게 화답했다.
“틀린 말 아닌 거 알죠? 이렇게 마주한 것도 인연이라 말해주는데 다른 사람 불행 위에 자기 행복을 얹지 마요. 당장은 즐거울지 몰라도 언젠간 본인이 쌓은 그 업보를 치르게 될 날이 분명히 있을 테니까.”
여자가 바라던 대답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한들 따질 수는 없었다. 그녀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뒤늦게 수치심을 느낀 것이리라.
“뭐 그것도 본인의 몫이겠지만··· 아무튼 똑바로 살아요.”
그 말을 끝으로 태구는 등을 돌렸다.
“어? 어? 가시는 거예요? 저는요? 저는 어쩌라고요. 가지 마요. 허헝. 저 두고 가지 마요. 똑바로 살 테니까 제발 같이 내려가 줘요.”
청천벽력 같은 그 말에 여자가 고개를 치켜들며 애원했지만 아무도 그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
태구는 일행들을 데리고 김영채 작가에게 갔다. 정상에 설치된 데크, 그곳에 이제 막 정신을 차린 남자와 김영채 작가가 있었다.
“흐, 흐아아아악!”
남자는 태구의 뒤에 서 있는 망령을 보며 다시금 기절하려 했다. 남자에게 신성력을 흘려줄 수도 있었지만 태구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여자에게 했던 말 그대로 남자에게 전달했다.
제발 같이 있어 달라. 무섭게 쳐다보는 망령을 어떻게 해달라, 혹시 방송에 제 얼굴도 나가는 거냐···
남자 역시 여자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서로의 안위에 대해서는 일절 묻지 않는 그들이었다. 둘은 철저히 자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무슨 사랑이라고···
그렇게 태구는 남자를 내버려 둔 채 걸음을 옮겼다. 망령이 태구 일행을 안내했다. 자신이 처음 눈을 떴던 그때, 그 자리로.
“이쪽으로 내려가야 해요.”
걷는 사이, 태구는 그들의 말을 전달해 주는 연락망 역할을 했다.
“또 뭐라셔요? 제가 챙겨온 것도 말씀드렸어요?”
제보자가 물었고 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했더니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뭐라고요?”
“어쩜 나를 생각해서 이런 걸까지 다 챙겨온 거야? 아이고, 착하기도 하지.”
“하하! 그 말투는 여전하시네. 그럼 이렇게 전달해 주세요. 다른 것도 필요하시면 말만 하시라고요. 제가 다 사 온다고요. 아··· 아니다, 이제 좋은 곳으로 올라가시면 다시 만날 수 없으려나.”
“···”
“그냥 저 말은 취소할게요. 그··· 이름! 이름 좀 여쭤봐 주세요. 인제 보니 이름도 못 여쭤본 것 같아요.”
“연생은 69년생, 이름은 지윤미라고 하시네요.”
“진짜 우리 엄마랑 연배가 비슷하시네. 제 이름은···”
어찌나 말이 많은지 순간 축성을 풀어버릴까 싶은 태구였다. 그렇게 서로의 말을 전달해 주던 태구가 돌연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에 있다네요.”
앞장선 망령이 걸음을 멈췄기 때문이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하하 호호 웃고 떠들던 그녀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손가락을 들어 바닥을 가리키고 있었다.
망령의 형체를 볼 수 없는 이들은 고개를 갸웃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기요? 어디요?”
“···죄다 땅인데. 수풀에 가려져 있나?”
그도 그럴 것이 주변에 보이는 거라곤 나무와 흙뿐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순간.
“!”
일행들이 눈을 부릅뜨며 서로를 마주 본다. 익숙한 소리가 그들의 귓가를 스쳤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핸드폰 벨 소리였다.
“여, 여기서 들리는 거 맞죠?”
어렴풋이 들리는 그 소리에 제보자가 쏜살같이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뛰어갔다. 풀 한포기 나지 않은 땅이다. 그 아래에서 들리고 있다.
“거기서 멈춰요. 그 앞에 서 계시니까요.”
“아···”
태구는 그리 말하며 허리춤에 넣어둔 도끼를 꺼내 들었다. 당장 마땅한 장비가 이것밖에 없었다.
그런 다음 여자가 가리키고 있는 바닥에 도끼를 박아 넣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핸드폰 벨 소리는 계속 울린다. 괴이한 현상에 일행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기도 잠시.
“저, 저도 도울게요.”
주춤 뒷걸음질 치던 제보자가 이를 악물며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엔 방금 바닥에서 주운 돌이 들려 있었다.
“이 안에 아주머니 시신이 있다는 거죠?”
맞다면 곧 그 시신을 마주하게 되겠지. 평범한 사람이라면 학을 떼며 두려워해야 맞다.
“조금만 기다려요. 제가 꺼내드릴게요. 아주머니 같은 착한 사람이 이렇게 있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실제로 제보자의 손과 이빨을 덜덜 떨리고 있었다.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그럼에도 그는 손을 보탰다.
“이제 편안하게 쉬셔야죠. 언제까지 이 산에 있을 수 없잖아요. 저랑 같이 산에서 내려가요. 지난번엔 함께 가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꼭 같이 내려가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러려고 태구 님 부른 거예요.”
사람이라면 마땅히 받은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니.
그리고 이러한 장면은 카메라 감독이 들고 있는 카메라에 고스란히 찍히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산속에 고요한 정적이 찾아왔다. 핸드폰 벨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손끝을 스치는 미묘한 이질감.
“오, 옷이다.”
망령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암매장된 망령의 유골과 당시 그녀가 입고 있던 옷이 보였다. 더불어 흙범벅이 된 핸드폰도 그 모습을 드러낸다. 망령의 한이 가득 묻어있는 물건. 태구가 그것을 향해 손을 뻗었다.
***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목소리는 들린다.
“허어, 허억. 여기쯤 떨어진 것 같은데.”
망령의 남편 목소리였다.
“오빠, 오빠. 여기야! 여기 발, 발!”
내연녀도 함께 있는 듯하다.
“어으···”
“어떻게 된 거야? 나 무서워서 눈을 못 뜨겠어. 죽었어? 진짜 죽은 거 맞아?”
“그런 것 같다. 하아.”
“그러게 왜 사람을 밀어! 이제 어떡할 거야.”
“···”
“아니다, 우리끼리 말씨름할 때가 아니야. 빨리 핸드폰부터 찾자. 언니가 우리 찍었잖아! 그거 찾고 경찰에 신고하자. 사진 찍다가 굴러떨어져서 사고당했다고 하자.”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넘어갈 것 같아?”
몇 분간 실랑이를 이어가는 두 사람.
오가는 대화 끝에 둘은 결론을 내렸다.
아무도 모르게 그냥 묻어버리자고.
우리 둘만 입을 다물면 아무도 모를 거라며.
그래도 혹시 모르니 여자의 손에 들린 핸드폰은 뺏고 묻어야 했다.
“뭐해, 빨리 해.”
“핸드폰이 안 빠져.”
허나, 절대 줄 수 없다는 듯 핸드폰을 꽉 쥔 여자의 손.
돌로 찍고, 힘을 줘 손가락을 펴보려고 해도 별다른 성과가 없다.
“아잇, 진짜 그냥 묻자. 이러다가 해 뜨면 더 곤란해져.”
결국 그들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초조함을 느낀 것이리라. 그렇게 여자는 핸드폰과 함께 묻히게 되었다.
***
망령의 시신을 확인한 태구 일행은 곧장 하산을 택했다.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서였다.
방송 중에 발견한 유골만 두 구였다.
산새들도 잠든 새벽녘.
산은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태구는 출동한 경찰에게 수거한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그러면서 망령의 인적 사항을 알려주었다. 경찰은 당황해하면서도 태구의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조사를 마친 태구 일행은 계속해서 촬영을 이어 나갔다. 그들은 어느 가정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