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106)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107화(106/157)
산과 망령들 (9)
여자가 그렇게 된 후, 둘은 살림을 합쳤다. 그리고 한 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사랑 때문이 아니다. 끔찍한 비밀이 새어 나갈까 두려워 붙어있는 것뿐이다.
물론 처음엔 아니었다. 허나 시간이 갈수록 사랑 보다는 감시가 목적이 되었다. 적어도 남자는 그랬다.
이를 방증하듯 짜증 가득 묻은 목소리가 들린다.
“이번 달 생활비 입금했어.”
사랑을 속삭이던 그 목소리가 아니었다. 눈길 역시 그러했다.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의 눈빛은 건조했다.
“장난해? 겨우 이게 다라고?”
여자도 지지 않았다.
“겨우? 우리 둘이 사는데 이백이면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돈이야.”
보아하니 돈 문제로 고성이 오가는 듯 보인다.
“충분하다 넘치는 돈? 하,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좀 하지 마. 이걸로 어떻게 살림하라고!”
“살림? 손톱 바르는 것도 살림이냐? 어? 그것만 안 해도 충분하겠다.”
“이것도 살림의 일환이야. 이게 나 혼자 좋자고 하는 거야? 어? 오빠한테 잘 보이려고 그러는 거잖아. 옛날에는 관리하는 여자가 좋다면서 그러더니···”
“그놈의 예전, 예전!”
남자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소리치며 여자의 말허리를 끊어먹었다. 이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그의 태도에 여자가 이를 악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제 소리까지 지르시겠다? 내가 진짜 이 꼴 보려고 이혼하고 오빠한테 온 줄 알아?”
“···그만해라.”
“그만 안 하면? 왜, 나도 언니처럼 밀어 죽이려고?”
그러면서 묻어둔 과거 일을 들먹이기까지 한다. 여자는 거리낌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하는 말도 아니었으니.
“그 사람이랑 너랑 같아?”
“다를 게 뭐가 있는데?”
“알잖아. 그러니까 재수없게 죽은 사람 이야기 좀 하지 마.”
이렇듯 여자가 과거 일을 들먹일 때면 남자는 한발 물러나는 모양새를 띠곤 했다.
이번에도 그런 것처럼 보였다. 수그러든 목소리가 증거였다.
여자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러니까 왜 날 화나게 만들어! 왜 꼭 이런 말까지 하게 만드냐고!”
“알았어, 미안해. 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어.”
“그게 다야? 생활비는?”
“더 뽑아 올게.”
“진즉 그러면 얼마나 좋아? 진짜 오빠—! 우리 푼돈으로 서로 인상 찌푸리고 그러지 말자. 오빠 네 집 판 돈 아직 많이 남아 있잖아.”
“···그래, 알았어. 머리 아프니까 돈 이야기는 그만하자.”
“피차일반이에요. 나도 오빠랑 예전처럼 알콩달콩해지고 싶다고.”
“···그럼 오랜만에 같이 산이나 타러 갈래? 가서 옛날처럼 데이트도 하고. 응?”
하지만 그녀는 몰랐다. 남자가 그 순간 어떤 마음을 먹었는지를.
그로부터 얼마 후.
남자와 여자는 산행에 떠났다. 전 부인을 암매장한 그 산은 아니었다.
산세가 높고 험준하기로 유명한 어느 산.
“어때. 잘 나와?”
여자의 물음에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손엔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어, 진짜 이쁘다. 근데 조금만 더 뒤로 갔으면 좋겠는데.”
“그래?”
둘은 정상 등반 인증 사진을 남기고 있었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남자는 한껏 흥분한 목소리로 여자를 치켜세웠다.
“동호회 회원들 보여주면 난리 나겠는데? 아, 근데 조금만 더 뒤로 가자.”
“이렇게? 더, 더 가도 돼? 이러다가 떨어지겠어. 그걸 노리는 건 아니지?”
여자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연신 포즈를 잡았다. 간만에 사랑스러운 눈길을 받고 있자니 기분이 좋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다.
“또 쓸데없는 소리 한다. 다 찍었으니까 와서 봐.”
하지만 괜한 걱정을 한 모양이다. 여자가 신이 나 남자에게로 뛰어갔다. 찍힌 사진을 보자 더욱 기분이 좋아진다.
“어우, 너무 예쁘다!”
“내가 뭐라고 했어. 앞에서 찍으면 이렇게 안 나온다니까?”
“그러게. 이 사진 회원들한테 자랑해야겠다! 으, 그나저나 모처럼 기분 너무 좋다. 오빠랑 이렇게 산도 타고 사진도 건지고···”
헤실거리며 웃는 여자를 보며 남자는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나도 그래. 앞으로는 자주 나오자고. 아, 그리고 우리 사진도 남겨야지?”
“응응. 방금 이 배경 좋은데, 이렇게 찍을까?”
“역시 잘 통한다니까.”
여자의 경계심은 완전히 허물어져 있었다. 그렇게 남자와 여자가 다시금 절벽 끄트머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내 뒤로 붙어. 그래야 머리가 작게 나오지.”
“이렇게?”
“어어. 거기서 조금만 더 뒤로 가자.”
“이만큼?”
“더···”
“잠깐만, 밀지마 봐아까꺄야야야약—!”
날카로운 비명이 산속을 울렸다.
“여, 여보—!”
뒤늦게 뒤돌아선 남자가 절규 가득한 목소리로 여자를 불러보지만, 여자는 그곳에 없었다. 까마득하게 보이는 저 깊은 바닥 아래로 추락한 것이다.
‘다 네년이 자초한 일이야.’
그렇게 여자는 평생을 약속한 남자의 손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걸핏하면 본인도 언니처럼 떠밀어 죽일 거냐고 물어보던 여자, 실제로 그 말대로 하직한 것이다.
그렇게 여자의 장례를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은 때.
“!”
남자의 핸드폰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렸다. 놀랍게도 발신자는 내연녀였다. 그게 시작이었다.
***
악취 나는 기억에서 빠져나온 태구가 고개를 들었다.
“하하하하하, 끄흐하하하.”
그 앞에는 배를 잡고 웃는 여자 망령이 있었다. 태구는 여자 망령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직접 봐요. 저들이 어떻게 살다 갔는지. 어떤 지옥에서 살고 있었는지를.”
악취 나는 기억의 주인들의 마지막을 보여주고자 했다.
잠시 후.
“으, 으하하하하···꺽꺽.”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숨넘어갈 듯 웃어대던 여자가 돌연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눈물 안에는 별별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하나로는 정의할 수 없었다.
자신을 이리 만든 이들에 대한 분노와 통쾌함, 허무함, 허탈감, 본인을 향한 연민 등···
막상 마주한 그들의 처참한 말로가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 것이리라.
“···”
그럴 만도 했다. 타인에 의해 깊게 새겨진 상처가 어떻게 단박에 치유될 수 있겠는가.
태구는 서글피 우는 여자 망령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서툰 위로는 전하지 않았다. 그건 다른 이의 몫이었다. 이를테면 그녀와 같은 경험을 공유한 망령, 김수인이 신전 안에 있지 않은가.
태구는 통곡하는 망령을 신전 안으로 들여보냈다.
“어서 와요. 정말 잘 왔어요.”
이야기를 전달받은 김수인이 마중 나와 있었다. 김수인은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눈길로 그녀를 끌어안았다.
“혼자 얼마나 힘드셨어요. 그 마음 저도 알아요.”
“끄, 끄으윽. 몰라. 아무도 몰라. 지금 내가 어떤 마음인지···”
“아뇨.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전 알아요. 저도 언니랑 똑같은 경험을 했거든요. 전 여동생이었어요. 피를 나눈 여동생이요.”
“?”
즐거움은 나누면 배가 되고, 아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한다. 김수인은 눈물범벅이 된 여자를 끌어안으려 제 이야기를 했다.
“장담하건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져요. 이렇게 돼서 좋은 게 있다면 딱 하나, 시간이 많다는 거예요. 또 이곳에선 뭐든 할 수 있거든요.”
“끄, 끄흐흐.”
“눈물 참을 필요도 없어요. 울고 싶으면 실컷 울어요. 그러고 맛있는 밥도 먹고, 늘어지게 낮잠도 자고 우리끼리 수다도 떨자고요.”
그러던 때.
“맞아요! 울고 싶을 때는 실컷 울어야 한다고 아저씨가 그랬어요. 아, 저는 이곳에서 아빠 기다리고 있는 예은이라고 해요. 저는 종교 단체에 끌려갔다가···”
뒤늦게 와 눈치를 보고 있던 예은도 입을 보탠다.
“어쩜···”
“근데 이젠 괜찮아요!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아주머니도 곧 괜찮아질 거예요. 헤헤.”
비단 예은 뿐일까. 산에서 떨어져 죽은 약초꾼과 어린 쌍둥이 그리고 먼저 온 다른 망령들도 자랑하듯 제 사연을 늘어놓았다.
물론 자랑은 아니다. 그저 여자의 아픔을 보듬어 주기 위해서 제 사연을 꺼낸 것이리라.
확실히 효과는 있었다.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흘리던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저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망령이 보인다.
저보다 더한 경험을 한 망령들, 못다 핀 어린 망령들, 저처럼 가까운 이에게 배신당한 망령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공허한 마음이 채워지는 것만 같았다.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것만 같았는데, 자신만 아프고 원통한 일을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음을 깨달은 것이다. 앞서 말했듯 아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다들 그런 일을 겪고 어떻게 그렇게 웃을 수 있는 거예요.”
눈물을 멈춘 여자가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시간이 약이라잖아요. 거기다 우릴 이렇게 만든 족속들은 다 태구 님께서 친히 벌을 내려주셨거든요. 그러니까 슬퍼할 이유가 없어요.”
“맞아요. 아주머니도 곧 우리처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을 거예요.”
이야기뿐이겠나. 어느 순간 그 얼굴에 미소도 깃들어 있겠지.
“아줌마, 왜 울어?”
“몰라. 가족이 없어서 그런가.”
“그럼 우리 엄마 하면 되겠···”
철없는 어린아이의 말에 이렇듯 헛웃음을 짓게 되는 지금처럼 말이다.
“아이구, 우리 애가 쓸데없는 말을 했네요. 죄송합니다.”
“푸흡.”
그때, 처음으로 여자의 입가에 미소가 깃들었다. 그렇게 같은 망령들 사이에서 마음의 상흔을 치유하게 된 여인이었다.
***
한편, 그 시각.
“태구 님, 태구님!”
거실에서 대기 중인 김영채 작가가 일행을 대표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 소리를 들은 태구가 방을 나섰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이거 피 냄새 맞죠?”
불안을 감지한 그들이 태구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태구는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안에 남자의 시신이 있어요.”
“에?”
“망령의 남편이요. 일단 신고부터 해요.”
“대, 대체 이게 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남자와 그 내연녀의 상판을 보기 위해 달려온 것인데 죽어있다니. 대체 왜? 어안이 벙벙했다.
“저 남자, 전 부인만 죽인 게 아니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내연녀도 산에서 밀어 죽였어요.”
그들의 의문에 태구가 답을 줬다.
“내연녀를 살해해요? 그 남자가요? 이거 완전 상습범이네. 아니, 내연녀는 그렇다 치고 남자는 왜 죽은 건데요? 설마 죄책감은 아닐 테고···”
그럴 리가 있겠는가.
“죽은 내연녀가 악귀가 되어 남자를 찾아왔어요.”
“미친.”
“그럼 집안에 붙여진 저 부적도···”
맞다. 효험 없는 부적은 본 부인이 무서워 단 게 아니라 내연녀가 무서워 단 것이다.
“맞아요.”
태구는 그렇게 말하며 김영채 작가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에는 종이 다발이 들려 있었다. 죽은 남자 근처에 널브러져 있던 그 종이였다. 그걸 챙겨 나온 것이리라.
“보면 알 거예요.”
[먼저 간 그녀가 그리워 같이 가렵니다. 죽어서도 같은 무덤에 묻히자고 약속했습니다.]김영채 작가가 빠르게 종이에 적힌 내용을 훑었다. 처음엔 남자가 직접 작성한 유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누군가가 저를 발견한다면 그녀의 곁에 묻힐 수 있도록 해주시고, 제 남은 재산은 그녀의 어머니에게 그ㅏㅁㄴ그만그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유서 중반 부분부터 낙서처럼 빗금이 그어져 있다. 마치 잘못 써 지우려는 것처럼 말이다. 더불어 맥락에 맞지 않는 내용도 적혀져 있다. 주기도문이었다.
“갑자기 주기도문을 쓴다고?”
“왜 이런 거래요?”
“이거 유서 맞아요?”
일행들이 눈을 가늘게 뜨며 수군거렸다. 태구가 말했다.
“악령으로 찾아온 내연녀가 남자의 손을 붙잡고 제멋대로 써 내려간 유서예요.”
“여기 주기도문은요?”
“그 역시 악령이 쓴 거예요. 공포에 벌벌 떠는 남자가 기계처럼 내뱉은 그 말을 듣고 그대로 적은 거예요.”
“허···”
직접 보지 않았으나 그 상황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일행들의 팔에 소름이 돋는 순간이었다. 그들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종이의 하단부로 시선을 내렸다.
[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나랑같이있어야지그러자고했잖아. 제발.]남자의 죽음을 바라는 망령의 염원이 그대로 느껴지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제발 그 한마디를 겨우 쓰고 죽은 거예요. 물론 남자의 의지는 아니었을거에요. 스스로 제 팔목을 긋긴 했으나 그 칼을 쥐고 있던 건 망령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상황을 전달받은 일행들. 그들은 태구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업보인 거지.’
다만,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