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112)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113화(112/157)
신이 되고픈 남자 (6)
“푸으, 푸으—”
진한 화장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당의 얼굴은 죽은 사람처럼 창백해 보였다.
마치 화려하게 단장한 시신 같았다.
그런 얼굴과 마주 보고 있자니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히이익! 뭐, 뭡니까!”
가을이 발작하듯 기겁하여 소리쳤다.
효과가 있던 걸까. 코 골기를 멈추는 무당이었다.
껌벅, 껌뻑.
그와 동시에 부릅뜬 눈을 껌뻑이기도 한다.
그래도 여전히 사람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당은 개의치 않고 어깨를 들썩이며 히죽히죽 입꼬리를 올렸다.
“끄끄끄, 끅끄그크크. 왔구나. 왔어.”
“흐···”
가을의 어깨도 들썩여졌다. 비단 어깨뿐일까. 핸들을 잡고 있는 두 손도 바들바들 떨린다. 살면서 볼꼴 못 볼 꼴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상황은 또 처음이다. 솔직히 무섭다. 지릴 것만 같았다.
그때.
“뭘 그리 겁을 먹어. 무당년 처음 보는 것도 아닐 텐데. 히히히히. 하면 이제 일 하러 가야지?”
무당이 낄낄거리며 차 문을 열어젖혔다.
동시에 가을은 다시 한번 아득한 공포를 느끼게 되었다.
‘여자 목소리···?’
뒤늦게 무당의 목소리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출발 전엔 분명 남자의 목소리였는데 지금은 걸걸한 여자의 음성을 하고 있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접신인가 싶었다.
‘그럼 지금 귀신이랑 있다는 거잖아. 하아.’
어떻게 하지? 지금이라도 도망칠까?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지.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휘몰아쳤다.
그런 가을의 생각을 눈치챈 걸까.
“뭐 하고 있어. 안 내려? 왜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려고? 돈 안 벌 거야? 돈 좋아하잖아.”
먼저 내린 무당이 차창에 바짝 얼굴을 들이대며 가을을 불렀다.
‘돈, 돈, 돈···’
그 순간, 주문처럼 머리에 박히는 단어가 있었다.
빌어먹을 돈.
돈 생각을 하니 목을 옥죄는 공포도 사라지는 듯했다.
가을은 돈만 생각하기로 했다.
“짐 갖고 내릴게요.”
그가 이를 악물며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힘겹게 움직였다.
잠시 후. 차에서 내린 그의 손에는 트렁크에서 뺀 짐이 들려 있었다.
알바 공고문에 올려진 바, 목적지까지 운전 후 짐만 내려다주면 일은 끝나는 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것만 참으면 된다.
‘돈만 생각하자. 돈만 생각해. 무서운 건 잠깐이야. 돈이 없으면 씨발 그게 지옥이라고. 돈 때문에 가족도 잃어봤잖아. 또 그런 꼴 당할거야? 정신 차려.’
거듭 속으로 되뇌어보지만 쉽지 않다.
여전히 무섭다.
저벅, 저벅.
그래서일까. 발걸음도 무겁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게 버겁다.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야. 짐 때문에 그런 거야. 빌어먹을 짐이 무거워서 그런 거라고. 그러니까 쫄지마. 별일 없어.’
무거운 발걸음은 양손에 들린 짐 때문이다.
그 말을 주문 외우듯 중얼거렸다.
그렇게 생각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니.
실제로 트렁크에 실려있던 두 개의 가방의 무게는 꽤 무거웠다.
더불어 왼쪽 손에 들린 가방에선 계속해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유리병 같은 건가?’
반면, 오른쪽 손에 든 가방에선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더럽게 무겁네. 대체 뭘 넣었길래, 아니다. 그딴 거 알아서 뭐 한다고.’
그는 휘휘 고개를 저으며 앞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눈을 가늘게 떠 무당을 찾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산속.
무당은 폐가 앞에 자라난 아름드리나무 앞에 서 있었다.
“흐으응.”
휘영청 밝게 뜬 달이 콧노래를 부르는 무당과 나무를 내리비췄다.
그 모습이 공포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보였다.
무당도 무당인데 아름드리나무 역시 범상치 않아 보였다.
나무 위에는 오색 천이 얼기설기 설겨있는 금줄이 걸려 있었다.
그 화려한 금줄은 마치 상여를 장식하는 상여줄 같았다.
이내 무당의 곁에 도착한 가을은 손에 든 짐을 잠시 땅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허으, 으. 이거 어디에다 두면 되는데요?”
“저 안에 갖다 두고 가봐.”
무당이 고개를 까닥거렸다. 그곳에 폐가가 있었다. 어두워 자세히 보이진 않았으나 얼핏 바닥을 나뒹구는 불상 비스름한 게 보인다. 아무래도 버려진 점집 같다.
‘대충 던져 놓으면 모르겠지.’
가을은 다시 한번 이를 악물며 바닥에 놓은 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무당을 지나쳐 가려는 순간.
가을의 몸은 그대로 얼어붙은 듯 차갑게 굳어졌다.
이상한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한 명이 아니었다.
[나 좀 내려줘요. 잘못했어요. 집으로 돌려보내 주세요.] [썩을년아. 시끄러우니까 그 입 좀 닥쳐. 언제까지 징징 거릴 거야.] [거기 누구 있어요? 나 좀 도와줘요. 아무것도 안 보여요. 안 보인다고!] [추워 , 추워. 추워···] [다 죽여버릴 거야. 나처럼 갈기갈기 찢어발겨 똑같이 만들어 줄거야. 히히히히] [밥 좀 주세요. 배가 너무 고파요.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밥만 주세요.] [응애애애애애——]남자, 여자, 젊은 사람, 노인, 아이의 목소리가 겹쳐 들려온다.
무당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가 아녔다.
소리의 근원은 옆과 뒤가 아닌 위에서 들려오고 있었으니까.
‘!’
머리는 보지 말라는데 어느새 가을의 시선은 나무를 향해 닿아 있다.
그리고 결국 봐버리고 말았다.
“으, 으아아아아악!”
처음 마주한 건 흔들리는 발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퍼렇게 질린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얼굴이 보였다.
한둘이 아니다.
누군가는 온몸이 까맣게 타 있었고, 또 누군가는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곯아있었으며, 또 어떤 이의 눈과 입은 실로 꿰맨 듯 꿰매어져 있었다. 그런 이들이 나무에 목이 매달린 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으, 으으으.”
가을은 그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비싼 알바비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도망가야겠다는 본능만 남았다. 그런데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당장 일어나 뛰어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렇게 앉은 상태로 뒷걸음질 치는데 설상가상으로 손바닥에서 이상한 감촉을 느낀 가을이었다. 진흙을 만진 것처럼 질퍽한 느낌이었다. 이건 또 뭔가 싶어 고개를 돌려 바닥을 바라봤다.
오른손에 들려있던 짐 아래로 흥건한 물이 나와 있었다. 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비릿한 혈향이 느껴지는 것도 같았으니까. 형용할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때.
“쯔쯔. 머릿수가 많으니 영 골치가 아프단 말이야. 아가리들 안 닥쳐?”
다가온 무당이 나무를 보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놀랍게도 귓가를 속삭이는 목소리가 더는 들려오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나무 위, 과실처럼 매달려 있던 시신들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헛것을 본 건 아닌 성싶다. 그 자리엔 여러 개의 호리병이 매달려 있었으니까.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자신도 저기에 걸릴지 모르겠다는 이상한 생각 말이다.
“···모, 못해. 나 못 하겠어요.”
그와 동시에 풀린 다리에 힘이 들어왔다. 그렇게 가을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다. 다가오는 무당을 밀친 그가 줄행랑을 친 것이다.
“허어, 허억.”
“에잉. 그리가면 저 짐은 누가 옮기고. 아웅야아야자기바으이루잡아죽여범먹어버려···”
탁—
얼핏 방언을 지껄이는 무당의 목소리와 병 깨지는 소리 따위가 들렸다. 그럼에도 가을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달리고 또 달릴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휘이이이이이잉.
발목 부근에서 싸늘한 오한이 스쳤다.
사사사삭—-
마치 누군가 제 발목을 잡아챈 것만 같았다.
“잡았다.”
“어억.”
그와 동시에 형용할 수 없는 악취가 코끝을 스친다. 그 냄새가 어찌나 독한지 까무룩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 그렇게 앞으로 고꾸라지는 가을의 눈에 그것들이 보였다.
***
“발아래로 버글거리는 구더기가 보였어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될 소리거든요.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두컴컴한 산길이었는데 그 작은 구더기가 왜 그렇게 선명하게 보였는지···”
“그때 일 겁니다. 악령이 그쪽의 몸을 잠식한 게.”
태구의 말에 가을이 핏기 어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아요. 그때부터 기억이 없거든요. 집에 어떻게 돌아왔는지 또 집안 꼴이 왜 이렇게 됐는지도요. 얼핏 방울 소리가 들렸던 것도 같은데···”
– 기억은 없는데 방울 소리는 들렸다고?
– 뭐가 어케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네.
– 혼란하다 혼란해.
[무속전도사 님. 달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방울 소리면 무당이 내는 소리 아님? 쓰레기 수집가가 낸 소린가?
“무당이 낸 소리 맞아. 저 몸에 한 놈만 실렸던 게 아니거든. 너희들이 쓰레기 수집가라고 부르는 그 여자 악령 하나랑 무당 악령 하나 이렇게 둘이 실려 있었어. 그중 하나는 그분의 곁으로 보내드렸고, 나머지 하나는 기운만 묻혀 온 거라···”
“나머지 하나요? 다 끝난 게 아니었어요?”
“다 끝난 거나 다름없어요. 남은 하나도 곧 잡으러 갈 테니까.”
그건 다 끝난 게 아니잖아!
“···네?”
그렇지 않아도 핏기 없던 안색이 하얗다 못해 투명하게 질려간다. 그때, 송가을은 깨달았다.
‘나 살고 싶구나.’
이렇게 살 바에는 그냥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 보니 그런 게 아니었다. 그런 거라면 이런 말을 할 리가 없다.
“사, 살려주세요. 저 좀 살려주세요.”
송가을은 벌벌 떨며 그렇게 말했다.
– 흰둥이 주인 식겁하잖아ㅡㅡ
– 그냥 끝났다고 뻥 쳐주지.
– 저런 일을 겪었는데 걱정하지 말란다고 걱정이 안 되겠누?
– 한 놈 놓친 거였어?
– ㄴㄴ 태구가 말하길 귀신의 본체를 때려잡아야 확실히 잡을 수 있다고 했었음. 아주 예전에. 지금도 비슷한 경우 같은데? 기운만 묻혀 온 거라고 하니까.
태구는 그런 가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살라고 했잖아요. 아무 걱정 마요. 그쪽이 두려워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말인데···”
“네, 네.”
“그 무당과 함께 올랐던 산 말이에요. 대충 거기가 어디쯤인지 알려줄 수 있어요? 직접 운전했다고 했잖아요.”
“기, 기억하고 있어요. 산에서 쓰러지기 전까지는 다 생생하게 기억해요. 어디 국도를 지났고 어떤 마을을 지났는지도요. 당장 알려드릴게요.”
[악령컬렉터 님. 달풍선 100개 감사합니다.]-그래. 가보자곡ㄱㄱㄱㄱㄱㄱㄱㄱ
***
대충 입으로만 알려줘도 된다고 했는데 송가을은 굳이 태구 일행을 따라나섰다. 무섭고 두려웠으나 가만히 있을 순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건 제 일이니까. 살려고 마음먹은 이상 태구에게만 의지할 순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렇게 핸들을 잡게 된 송가을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억 속, 그 산길이 보였다.
“맞아요. 여기 빈 마을! 이 산으로 들어갔어요.”
가을의 말을 증명하듯 저 앞으로 차량 바퀴 자국이 보인다. 가을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과거에 지나간 길을 다시 지나갔다.
산속은 고요했다.
태구 일행을 태운 차량의 바퀴 소리만 들려왔다.
지이잉—
그때, 조수석에 탄 태구가 차창을 내렸다.
음산하게 불어온 산바람이 태구의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렸다.
그와 동시에 태구가 쯔쯔 혀를 찼다.
바람결에 실려 온 절규가 들렸기 때문이다. 송가을이 들었다던 망령들의 울부짖음이었다.
“이 산 맞네요. 귀기하며 또 지금 들리는 비명까지···”
복차도 들은 성싶다. 뒷자리에 앉은 복차가 차창을 비추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5분 남짓 더 갔을까.
이윽고 가을이 말한 아름드리나무와 버려진 폐가 하나가 나타났다.
송가을의 말마따나 나무 위에는 수많은 호리병이 걸려 있었다.
다시금 그날이 떠오르기라도 한 걸까.
끼익.
“후우, 후우.”
차를 세운 송가을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태구가 그런 그를 보며 말했다.
“내릴 거 없어요. 여기까지 따라와 준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하니까.”
“그, 그럼 저 혼자 있어요?”
끄덕끄덕
“그냥 같이 갈게요. 혼자 있는 게 더 무섭단···”
송가을은 말을 채 끝맺지 못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새하얀 광채였다. 그의 고개가 푹 꺾였다.
“걱정 없이 푹 자고 있어요. 나머지는 우리한테 맡기고요.”
송가을을 재운 태구는 망설임 없이 차에서 내렸다. 복차도 잠시 꺼둔 방송을 켜며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두 번째 퇴마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