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115)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116화(115/157)
신이 되고픈 남자 (9)
송가을이 잠에서 깨어났을 땐.
“으으.”
“잘 주무셨어요?”
“여기가 어디···”
“아! 사장님 집이에요. 그보다 배고프시죠? 아니 물부터 드려야 하나. 그거 아세요? 가을 님. 이틀 내리 주무셨어요.”
이틀이란 시간이 지나있었다.
“제가 이틀이나 잤다고요?”
“예.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사장님이 그냥 푹 자게 놔두면 된다고 하셔서 안 깨웠어요. 헤헤. 그래서 말인데 몸은 좀 괜찮으세요? 보기엔 괜찮으신 것 같긴 한데···”
이틀 전까지만 하더라도 송가을은 앙상하게 마른 가지와 다를 게 없었다. 잿빛 피부는 마치 죽은 시신을 떠올리게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체격이야 아직도 비쩍 마른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안색과 눈빛이 다르다. 생기가 실려 있었다.
실제로 송가을 본인도 달라진 몸 상태를 체감하고 있었다. 온몸이 개운하다 못해 힘이 넘친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아, 아뇨. 병원은 안 가봐도 돼요. 더할 나위 없이 좋아요. 그나저나 나머지 하나는 어떻게 됐어요?”
“나머지 하나? 아! 무당령이요? 잘 끝냈어요. 그러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어흐, 감사합니다.”
“엇? 저는 감사 받을 일이 없는걸요. 퇴마는 저희 사장님이 하셨고 또 제보는 흰둥이가 해왔으니까요.”
“아···”
흰둥이라는 말에 송가을은 하려던 말을 삼켰다. 그와 동시에 표정을 굳힌다. 문득 견딜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때, 외출에 나섰던 복차와 태구가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그랬지?”
“오, 목소리 들리는 거 보니까 진짜 일어난 모양인데요. 어떻게 아셨어요? 그런 것도 보이는 거예요?”
“아니. 저 녀석 보고 알았지. 기다리란 말도 안 듣고 쌩하니 달려가는 게 이상하잖아. 저렇게 웃는 것도 처음이고.”
현관 앞. 먼저 도착한 흰둥이가 헥헥 혀를 내밀며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다. 녀석은 잔뜩 흥분해 있었다. 제 주인이 깨어난 걸 안 게 분명했다.
“아니. 저 녀석은 어떻게 알았대요?”
“가족이잖아. 그러니까 알 수 있었겠지.”
그러기도 잠깐. 녀석이 문 닫힌 방안으로 잽싸게 들어간다. 송가을과 아경이 있는 방이었다. 문 너머로 왈왈 짖어대는 녀석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빨리 들어오라는 듯 말이다. 녀석의 바람대로 태구의 발걸음이 그곳을 향했다.
벌컥—
“잘 잤어요? 일어났으면 대충 옷 입고 바로 나가죠.”
문을 연 태구가 이제 막 일어난 송가을을 보며 말했다. 그와 함께 갈 곳이 있었다.
***
빌라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빌라촌.
좁은 골목 사이로 쓰레기를 잔뜩 실은 포터가 빠져나간다.
빵빵—
한두 대가 아니다.
모두 송가을 집에서 나온 쓰레기를 실은 차였다. 그런데도 아직 집안엔 못 치운 쓰레기가 그득하다.
그걸 치우기 위해 많은 사람이 그의 집을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어으, 냄새야.”
“사건이라도 일어났어? 고독사 뭐 그런 거야? 어이구, 저 쓰레기 좀 봐라.”
“참 요즘 세상 흉악하다니까. 아무튼 저 집 때문에 동네 집값 다 내려가겠네.”
“제일 불쌍한 건 집 주인이지. 듣기로는 세입자가 집을 저따위로 만들어 놓고 도망을 갔대. 범죄자라는 소리도 있고···”
그저 입만 떠들어대는 구경꾼도 몇 있었다. 그렇게 그들이 한데 모여 호기심을 드러내던 때였다.
“거 참!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크게도 씨불이네.”
포대를 끌고 나온 남자가 두 눈에 쌍심지를 켜며 소리쳤다.
“어우, 깜짝이야. 할아버지! 지금 우리한테 그런 거예요?”
그러자 모여 수군거리던 아주머니도 지지 않고 목소리를 높인다.
“아줌씨가 먼저 나를 입에 올렸잖아!”
“?”
“내가 저 집 주인이올시다. 어? 그쪽들이 말하는 불쌍한 집주인 말이여! 당신, 나 알아?”
“어머!”
“어머는 무슨. 그리고 당신, 우리 세입자 알어? 걔가 뭐? 범죄자?”
“···”
“말 못하는 거 보니까 모르네. 어? 걔 범죄자 아니여! 걔만큼 성실히 사는 애가 어디 있다고 멀쩡한 청년을 범죄자로 만드는 거야!”
“그러니까요. 가을이 그런 애 아닙니다. 그리고 사람 죽어서 온 게 아니라 사람 살리려고 온 거예요. 그러니까 괜히 이상한 소리 퍼트리지 마시고, 들어가 보세요. 거기 그러고 계시다가 다쳐요.”
“맞아요. 범죄자라뇨! 가을 님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뒤따라 나온 남자와 여자도 가세한다. 그들은 가을이 일하던 가게의 사장과 직원들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웃주민, 문돼도 있다.
“······”
그의 외형 때문일까. 그저 쳐다만 보는데도 구경꾼들은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러고는 하나둘 눈치를 보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은 이제 막 도착한 가을도 목격할 수 있었다.
“···사장님? 집주인 할아버지?”
그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저들이 왜 저기에 있는 거지. 집주인 할아버지야 그렇다고 치고···
“송가을 씨 돕고 싶다고 오신 분들이에요. 방송 보고 온 분들도 계시고, 아는 사이라고 오신 분들도 계시고요.”
도움을 받았으면 적어도 감사의 인사는 해야지. 그러려고 데리고 나온 것이다.
그런 태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을 걷어붙이고 나온 사람들의 시선이 송가을에게 닿는다.
“어? 송가을!”
“흰둥이 주인이다—!”
“이제 일어났어요? 몸은 괜찮아요?”
사람들이 몰리는 건 한순간이었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송가을은 짐짓 당황해 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어, 어.”
그럴 만도 했다. 모르는 사람들은 둘째 치고 얼굴을 아는 사람들도 이렇듯 반갑게 인사를 나눌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집주인, 사장, 일터에서 일하는 직원들 모두 마찬가지다. 그저 안면만 익혔지 개인적인 대화는 해본 적 없는 사이다.
“다들 여긴 어떻게···”
“어떻게 오긴 방송 보고 왔지. 너 정말 큰일 겪었더라. 고생 많았어. 그런 줄도 모르고 난 네가 무단으로 그만둔 줄 알았잖냐.”
“이야기 다 들었어. 집은 걱정하지 말고. 저쪽 양반이 인테리어 비용까지 싹 지불했으니까. 곧 계약 끝나지? 연장하고 싶음 말하고. 나는 그쪽이 더 살았으면 참 좋겠는데.”
그런 그들이 살갑게 다가와 가을을 걱정하고 위로해 주고 있다.
큰일 겪었으니 앞으로는 더 잘 살 거라는 둥, 일 자리 없으면 자신의 가게에 와 기술을 배우는 게 어떻겠냐는 둥, 집은 걱정 하지 말라는 둥···
이런 관심과 호의를 받아보는 건 살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린 시절, 보육원에 산다는 이유로 왕따당했고 커서는 자립해야 한다는 이유로 닥치는 대로 일만 했다.
친하게 지내자며 가까이 다가온 사람도 있었지만 이내 금방 떠나갔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했으니까.
당시 송가을은 시간도 돈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로인해 혼자를 자처하던 때, 흰둥이를 만났다.
다친 다리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차 밑에 기어들어 가던 대형견. 사람들이 버리고 간 음식물 쓰레기를 주워 먹던 강아지. 언젠가부턴 삶을 포기한 눈으로 누워 잠만 자던 개···
홀로 힘겹게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꼭 저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녀석을 품었는데···
“아? 희, 흰둥이 물건!”
순간 송가을이 아차 싶은 얼굴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뒤늦게 집안에 둔 흰둥이가 떠오른 탓이었다.
“혹시 안에서 초록색 상자 못 보셨어요? 강아지 용품이랑 같이 뒀는데. 사, 사진도 있는데!”
그는 횡설수설하며 뭐에 홀린 사람처럼 빌라 안으로 들어서려고 했다.
그때.
“흰둥이 물건? 그거 여기 있는 모양인데요?”
태구가 가을을 불렀다. 그러면서 포터에 실린 포대 자루를 끌어 내렸다. 당연하게도 내용물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태구는 그 자루 안에 가을이 찾는 물건이 있다고 했다. 가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거 맞죠?”
이윽고 포대 자루를 연 태구가 물건 하나를 꺼내 들었다. 놀랍게도 가을이 찾는 물건이 맞았다.
“맞아요. 우리 흰둥이에요.”
그의 손에 들린 건 흰둥이 유골이 보관된 초록색 상자였다. 저 안에 유골로 만든 메모리얼 스톤이 있다. 더불어 흰둥이가 가지고 놀았던 싸구려 장난감과 미처 주지 못한 싸구려 간식도 있다.
잠시 후. 태구 앞에 선 가을이 눈시울을 붉히며 포대 자루를 건네받았다.
“병신같이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이제야 떠올랐어요. 허으, 흐으. 진짜 저는 쓰레기예요. 주인도 가족도 아니에요. 전 그냥···”
‘끼잉, 낑.’
그리고 그런 송가을 앞에는 흰둥이가 있었다. 이제 와 말하는 거지만 포대 자루를 찾을 수 있었던 건 흰둥이 덕분이었다. 그 앞에서 계속 짖어대고 있었으니까.
자신의 유골을 보고 짖은 게 아녔다. 흰둥이는 포대 안에 담긴 싸구려 간식을 바라고 있었다.
‘간식 같은 건 안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녔네.’
그걸 본 태구는 문득 몇 시간 전 일이 떠올랐다.
몇 시간 전, 신전 안.
김수인이 닭가슴살 육포를 만들어줬음에도 시큰둥하게 반응하던 흰둥이.
그런데 그런 녀석이 지금은 침을 질질 흘리고 있다. 싸구려 간식을 보면서 말이다.
그 사이, 송가을은 묻지도 않는 이야기를 입에 담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못 해줬어요. 당장 수술시켜야 했는데 그 돈이 없어서 그렇게 보냈어요. 남들은 비싼 사료다 뭐다 사주는데 그런 것도 못 사줬어요. 마트에서 파는 삼천 원짜리 개껌, 이딴 것만 사줬어요. 흐으으···”
자책하고 있는 것이리라.
“혹여나 흰둥이 때문에 집에서 쫓겨날까 봐 짖지도 못하게 했어요. 산책도 아무도 모르게 밤에만 나가고, 일한다고 함께 있어 주지도 못했어요. 그러다 결국 혼자 떠나게 했어요.”
말하다보니 못 해 준 것만 떠오른다.
“그뿐인 줄 아세요? 다달이 갚아야 하는 카드 값 보면서 한번은 후회도 했어요. 그때, 그 병원비만 안 긁었어도 일 하나는 더 줄일 수 있었겠다 하는 후회요. 그것도 모르고 흰둥이는···끅, 끅.”
송가을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때아닌 오열에 순간 주변은 정적에 휩싸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송가을은 어깨를 들썩이며 거듭 저를 쓰레기라고 되뇌었다.
괴로운 듯 제 머리를 툭툭 치기도 했다.
그러던 그때였다.
할짝, 할짝.
볼에서 보드라운 감촉을 느낀 송가을이었다.
“!”
그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이 감촉은 이전에도 느껴본 적 있는 감촉이다.
“저, 저번에 분명 흰둥이 좋은 곳으로 갔다고 하셨잖아요. 그죠? 지금 여기 없는 거 맞죠?”
결국 송가을이 태구를 보며 다시금 흰둥이에 대해 물었다.
“있다고 하면 또 죽겠다고 하려고요?”
“아뇨, 아뇨! 저 안 그래요. 그러니까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여기 지금 제 곁에 있어요? 아니. 있는 거 맞죠? 그죠? 그래서 흰둥이 짐도 단번에 찾아낸 거죠?”
끄덕끄덕.
“맞아요. 그 앞에 있어요. 그리고 그렇게 전해달라네요.”
“?”
“당신이랑 함께 한 시간이 살면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요. 일 나간 당신을 기다리는 그 시간 마저 행복했대요. 송가을 씨가 제게 돌아올 걸 알았으니까 그런 거예요.”
“흐으, 으···”
“싸구려 사료와 간식을 준 게 마음에 걸려요? 근데 그것도 좋았대요. 거짓말이 아니에요. 흰둥이 짐 어떻게 찾아냈냐고 물었죠? 흰둥이가 간식 냄새를 맡고 짖어대서 알게 된 거예요.”
“···”
“또 뭐요? 혼자 가게 해서 미안했다고요? 그것도 미안해 하지 말래요. 자기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 당신이 나갈 때까지 참고 또 참았대요. 당신이 없을 때 가고 싶어서요.”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송가을 때문이다. 송가을이 슬퍼할까봐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태구는 흰둥이의 기억을 통해 본 사실을 담담히 전해주었다.
“그런 말이 있다죠? 반려동물은 가슴으로 낳아 지갑으로 키운다고. 근데요. 난 아니라고 봐요. 가슴으로 낳아서 사랑으로 키우는 게 맞는 거죠. 그런데 송가을 씨, 사랑으로 키웠잖아요. 그러니까 당신 쓰레기 아니에요. 자책하지 말아요.”
“흐, 흐으으으···”
“또 앞으론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괜한 생각 하지도 말고요. 송가을 씨가 기억해야 할 건 딱 하나에요. 앞으로 당신이 어떻게 살든, 또 어디에 있든 항상 그 옆엔 누군가가 함께 있을 거라는 걸요. 그 어떤 조건 없이 당신의 행복만을 바라는 존재가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당신은 그것만 생각하고 힘내서 살아요.”
그 누군가가 흰둥이라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송가을도 알 수 있었고, 주변에 모인 사람들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눈물을 훔치며 송가을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래. 살 사람은 살아야지!”
“최고의 응원이네.”
“지켜보고 있다고 하니 더 씩씩하게 살아야겠네!”
“힘내세요.”
“저는 부럽기만 한 걸요. 우리 강아지는 무지개다리 건너편에서 기다리고 있으려나···”
연신 “쓰레기”라 되뇌던 송가을은 기계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했다.
염치 없는 부탁이지만 앞으로도 제 곁을 지켜달라고. 흰둥이 너가 제 곁에 있으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이다.
“컹, 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