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120)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121화(120/157)
쉿 (5)
다른 악령들처럼 당장 신전 하층부로 집어넣었어야 했다. 업에 대한 죗값을 치러야 하는 게 맞다. 잘못은 잘못이니까.
그런데···
“하아.”
이게 과연 이 악령의 잘못일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악령의 생애와 한을 엿본 태구는 안다.
작금의 상황은 악령의 책임이 아니다. 잘못은 악령이 했을지언정 책임을 져야 하는 이들은 따로 있다. 아이를 악령으로 만든 건 그들이니까. 더 큰 책임은 그들이 져야 마땅하다.
그게 이치다. 물론 악령에게도 일부의 책임이 있지만, 당장은 이렇게 보낼 수 없다. 그렇게 판단한 태구가 한숨을 쉬며 손을 뻗었다.
그러자 잘려 나간 머리통 위로 허연빛이 덧씌워졌고, 찢어진 살갗이 수복된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헤매던 아이에게 한 줄기 빛이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아···]신성력 덕분에 형체와 정신까지 찾게 된 악령은 두 눈을 껌뻑이며 태구를 바라보았다. 악령은 작은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옷 한 벌도 제대로 갖춰 입고 있지 않았다.
태구는 그런 아이의 발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손을 뻗었다.
“!”
그러자 아이가 자라처럼 목을 움츠러든다. 태구의 손길을 다르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제 생각이 오해라는 걸 깨닫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이를 증명하듯 아이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태구의 손은 아이의 머리가 아닌 맨발에 닿아있었다. 큼지막한 손이 정처 없이 헤매고 다녔을 그 맨발을 감싸주었다.
순간, 손끝으로 서늘한 한기가 느껴진다. 어쩌면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다. 태구는 입술을 씹으며 그 차디찬 언 발을 따스하게 녹여주었다.
“고됐겠어. 힘들었지?”
그 순간, 수도꼭지 튼 것처럼 눈물을 쏟아내는 아이.
[아, 아아아···]“그래도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끄덕끄덕.
악령 아니 아이는 여타 악령들과 달랐다. 사로잡힌 한을 벗어내자 자신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게 되었다. 아이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자신으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으, 으으. 잘못했어요.]아이가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말했다. 급기야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비비려고도 한다. 습관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태구가 그 손을 내리며 짐짓 무거운 말을 입에 담았다.
“그래. 잘못했지. 그래서는 안 됐어. 아무리 힘든 일을 겪었다 하더라도 그게 면죄부가 될 순 없거든. 누구든 잘못하면 그 책임을 져야 하는 거야.”
다시 말해 악령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단 이야기였다. 물론 그 책임을 온전히 져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무서운 말을 하면서도 손은 아이의 어깨를 휘감아 안는다. 벌은 벌이고 위로는 위로였으니까. 제 품에 들어오는 이 작은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갑갑해져 온다.
[정말 잘못했어요. 다 제 잘못이에요.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요 정말 처, 처음에는 집에 가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아무것도 안 보여서···]이렇듯 냅다 잘못했다고 하는 것도 괜히 마음이 아프다. 가엽다. 그렇게 아이는 연신 잘못했다 되뇌며 무어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어이, 이제 악령한테도 스윗해질 작정이야?
– 복차야. 이게 뭔 상황이냐.
– 도끼 안 꺼내고 뭐하니?
– 악령이 애기라더니 그래서 그러는거냐? 그럼 좀 실망인데.
– 그르게. 애들이 더 독한데.
그런 태구의 모습을 본 시청자들은 불만을 표했다. 그들이 하나같이 물리퇴마를 외쳤다. 그러면서 복차도 불러댔다.
“어라···”
한편, 복차 역시 눈썹을 치켜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도 시청자들과 같았다. 태구의 태도에서 의아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그가 알고 있는 태구는 애 어른 성별을 가리지 않았다. 악령 앞에선 그는 언제나 무자비했다. 그런 태구가 저런 모습을 보이다니.
대체 뭘 보셨길래 저러는 것일까? 짐짓 궁금했다. 그래서 시청자들을 대표해 입을 열었다.
“저, 선생님? 형님들이 무슨 일이냐고 여쭤보시는데요.”
태구가 손을 들어 올렸다. 아직 아이의 말이 채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아이의 말을 다 들어주고 싶었다.
그러길 얼마나 지났을까.
“···그래. 이제 가자.”
태구의 품에 안겨 있던 아이가 연기처럼 흩어졌다. 그 말인즉슨 시청자들의 물음에 답을 할 때가 되었다는 의미였다. 태구가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망령들은 저마다 한을 가지고 있어. 그 원한이 깊으면 깊을수록 악령이 될 확률이 높아지지. 제 원한을 풀기 위해서 하지 말아야 할 짓도 서슴없이 하게 되거든.”
시청자들을 대신해 복차가 물었다.
“그래 저 악령은 어떤 원한을 품고 있었는데요? 어떤 원한을 갖고 있었길래 준이의 목을 뽑는다고 하고, 그 많은 아이의 목숨을 앗아간 거래요? 또 그런 악한 짓을 했는데 어째서···”
“어째서 소멸시키지 않았느냐고? 가여워서 그랬어. 희생당한 아이들 역시 가엽지만 이 아이도 가여워서 그래서 그랬어.”
“에?”
악령이 가엽다니. 예상치 못한 태구의 말에 채팅창이 시끄러워졌다. 그런데도 태구는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이제 겨우 9살 먹은 아이였어. 유혁찬, 그게 악령의 생전 이름이야. 보육원에서 자라난 아이에게 어느 날 부모가 생겨. 참 좋아하더라.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대. 그런데···”
– ······ 불길하다.
– 제발 아니라고 해.
– 아;;;
“그들이 아이를 저렇게 만들었어. 숨이 꼴깍꼴깍 넘어가는데 무서운 눈빛으로 제 머리통을 잘라냈대. 그게 아이가 본 마지막이었지.”
그로 인해 머리가 없는 모습을 하고 있던 망령이었다. 그리고 머리의 부재는 집착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고 정신을 차려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래. 하기야, 그런 꼴을 하고 있는데 뭘 볼 수 있었겠어. 더불어 처음엔 지박령 형태로 발이 묶여 있었어. 그러던 때.”
그 자리에 고라니 한 마리가 비척비척 걸어왔다고 했다. 달리는 차에 처박힌 고라니는 뱃가죽이 뚫린 상태로 아이가 묻혀있는 산기슭까지 힘겹게 걸어온 것이다.
“육신에서 반쯤 삐져나온 동물 령을 그 아이가 잡아챈 거야. 정확히는 동물 령을 흡수한 거지. 그 순간, 앞이 보이더래. 그때부턴 묶인 땅에서 벗어나려고 온갖 힘을 다 써댔지.”
“집으로 돌아가 저를 그렇게 만든 이들에게 복수를 하려고요?”
“아니. 그것도 부모라고, 가족이라고 그냥 그 집에 다시 가고 싶었대. 가서 동생을 때린 게 아니라 말하고 싶었대. 물론 그뿐만은 아니지. 아이가 가장 원한 건 따로 있었어. 악령이 품은 원한은···”
“뭐였는데요?”
“사랑. 그 옛날처럼 사랑받고 싶었대. 아이가 바라는 건 그거 하나였어.”
그러던 어느 날.
아이의 흔적이 묻어져 있는 차가운 땅속에 누군가 손을 집어넣었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어? 이게 뭐지? 공룡 뼈다!]그때부터였다. 땅에 묶인 악령에게 자유가 찾아온 것은.
“그러다 어느 아이의 손을 붙들 수 있게 되었지. 그리고 그 집에 가게 되었어. 부러웠대. 그래서 그랬대. 아이의 환심을 사려고 자신이 잡아챈 고라니를 보여주기도 했고, 같이 살자고 속살거리기도 했지. 당시엔 사랑받고자 하는 원한에 사로잡혀서 다른 건 보이지도 않았을 거야.”
태구가 한숨을 훅 쉬며 다시금 말을 이었다.
“물론 잘못했지. 백번 잘못했어. 근데 그게 저 아이만의 잘못인가? 난 아니라고 보거든. 그래서 안아줬어.”
그렇게 태구는 악령이 가진 사연을 덤덤하게 풀어놓았다. 사실 이렇듯 자세하게 이야기할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렇듯 말을 꺼낸 이유는 하나였다. 다신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 ······속이 존나 갑갑하다.
– 이거 완전 썩은 사과네. ㅅㅂ
– 썩은 사과?
– 상자가 썩어서 그 안에 담긴 사과가 썩게 된 거야. 그리고 그렇게 썩은 사과 하나가 다른 사과들을 다 썩게 만든 거고.
– 야야; 어려운 말 하지 마라.
– 그러니까 그렇게 만든 부모 잘못이다 이거임.
이를 들은 시청자들은 공분했다. 그들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벌써 실시간 검색어 위로 유혁찬이라는 검색어가 상단을 차지한다. 바라던 바였다. 태구는 진심으로 오늘 방송이 흥하기를 바랐다.
“일전에 내가 말한 적 있지? 모든 일에는 업보가 따른다고. 거듭 말하지만 죄짓지 마. 짐승이고 어린애이고 할 거 없이 함부로 대하지 마. 또 어딘가에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서로, 어? 돌아보고 그러고 살아야 하지 않겠어? 지금도 그래. 그 부모가 아니었다면 그도 아니면 주변에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 괜찮은 어른 한 명만 있었더라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분노를 꾹꾹 눌러 담은 태구의 목소리에 채팅방엔 일순 정적이 찾아들었다. 태구는 가만히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단 한 명이라도 자기 말을 듣고 깨닫는 이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그러던 그때.
[고매니저 님. 달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사장님. 준이 어머니한테 연락 왔어요. 준이 의식 회복했대요.제보자에게서 연락받은 아경이 달풍을 쏘아 올렸다.
“···다행이네. 이젠 괜찮을 거라고 전해드려. 그리고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하자.”
그러한 달풍이 방송의 종료를 알렸다. 더는 들려줄 것도 보여줄 것도 없었으니까.
***
잠시 후.
태구는 곧장 신전으로 향했다.
신전의 하층부, 아무것도 없는 무의 공간에 혁찬이 있었다.
그곳에 들어간 아이는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그런 아이의 귓가로 누군가의 울부짖음이 들린다. 악령이 앗아간 어느 아이의 부모 되는 이의 울음소리였다.
단순히 그 소리만 들리는 게 아니다. 그들의 심정도 느껴진다. 그들은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이것이 아이에게 주어진 벌이었다. 자신이 무얼 망가뜨렸는지 알게 해주는 것.
그로 인해 아이는 숨을 헐떡거리며 거듭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담았다.
태구가 그 옆으로 조용히 걸어갔다. 그리고 가만히 그 옆에 앉아 아이의 어깨를 감싸 쥐었다. 그 순간, 태구 역시 누군가의 슬픔을 오롯이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태구는 이를 악물며 참아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태구가 아이의 손을 잡고 하층부를 빠져나왔다. 고작 이 정도로 끝날 벌이 아니었다. 아이에겐 아직 치뤄야 할 업이 많았다.
“그 안에 계속 둘 수가 없어서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데리고 왔습니다. 어떻게 방법이 없겠습니까?”
그래서 태구는 아이와 함께 저승을 찾았다. 그리고 아이의 사연과 아이가 저지른 악행을 저승의 대왕 앞에서 털어놓았다. 그리고 빌었다. 아이를 구제해 줄 수 없겠냐고. 다행히도 방도가 있었다.
“일전에 네가 놓고 간 선업이 있지 않으냐. 그것을 나눠주어 죗값을 덜어내는 방법이 있지. 허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터. 얘야, 너는 네가 앗아간 가족들의 마지막을 배웅해야 할 것이야. 그리고 그들에게 네 잘못을 고하고 용서를 받아야 해. 그리고 다시 태어나거라. 그리하여 받은 생은 온전한 사랑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내가 약속하마.”
저승의 차사가 되란 말이었다. 아이는 망설임없이 그러겠다고 말했다.
태구는 그런 아이에게 살길을 내어준 저승의 왕을 향해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아이는 그런 태구를 향해 감사를 전했다.
“···이런 기분이구나. 이런 거였어. 저 정말 기뻐요. 기뻐하면 안 되는데 그래도 기뻐요. 저를 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아주 조금만, 딱 지금만 이렇게 기뻐할게요. 그리고 다시 반성할게요. 정말이에요.”
태구는 방싯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는 아이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려두었다. 그러고는 간절히 빌었다. 다음 생에선 그저 웃음만 가득한 가정에서 태어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