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123)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124화(123/157)
여름 휴가 (2)
“저, 어르신?”
가까이 다가가 마주 본 그의 동공은 회색빛이었다.
‘백내장인가?’
그도 아니면 본래 시력에 문제가 있는 걸까.
인제 보니 초점도 맞지 않아 보인다.
다시 눈을 마주해 보려 했지만 이미 고개를 숙이고 발끝을 보고 있는 어르신이었다.
흑룡은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했다.
‘여기가 시골이라 다행이지···’
차량이 혼잡한 도시였으면 큰일이 나고도 남았다.
어쨌든 중요한 건 이게 아녔다.
흑룡이 빠르게 어르신의 앞길을 막아서며 목소리를 높였다.
“저, 어르신—!”
이 정도면 못 들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던 그때.
“어, 어?”
흑룡이 당황해 “어어? 소리를 냈다. 동시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다.
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
뒤늦게 이상함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쿵덕덕쿵더더러러럭쿵쿵삘리리리—”
고개를 숙이고 있어 잘 몰랐는데 남자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이상하다. 장구나 피리 같은 악기로 연주해야 할 장단을 입으로 부르고 있었다.
그래. 거기까진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이어지는 말을 들으니 이제야 확실해진다.
“불쌍하고 가련하네. 어디야 어디 있는 거냐 넋이야 어디 있냐 누가 너의 넋을 건져주랴 이리 나오거라 넋이다넋이야이넋이네넋이냐”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 아무래도 정신이 아픈 사람 같다.
그러니 이렇듯 가까이 다가와 말을 붙여도 시선을 주지 않고, 또 저런 괴이한 노랫가락을 부르는 거겠지.
이를 증명하듯 어르신은 제 앞을 막아선 흑룡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그를 지나쳐 걸어갔다.
흑룡은 그런 어르신을 향해 손을 뻗어볼까 했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잡는다 한들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 같았으니까.
“에잇.”
결국 차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길 물어봤어요? 네비 믿고 가도 된대요? 우회전하면 저쪽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바깥 상황을 모르는 아경은 돌아온 흑룡을 보며 물었다.
“아니. 못 물어봤어.”
“에?”
“···그, 좀 아프신 것 같아. 대화가 안 되더라고.”
“그럼 어떡해요? 그냥 네비 따라서 가려고요?”
“아니. 괜히 저쪽으로 잘못 들어갔다간 못 나올 것 같아. 확인하고 가야지.”
네비는 차 한 대가 겨우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길목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 길로 진입하면 중간에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다. 그것도 그런데 만일 나오는 차량과 마주한다면? 그때부터 골치 아파진다.
“그래서 말인데 아경아 잠깐만. 나 전화 한 통만.”
예약해둔 민박집 사장에게 전화를 걸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받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대로 손 빨고 기다릴 흑룡이 아니다.
이번엔 계곡을 알려준 형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이쪽은 받는다.
“어, 형. 나 흑룡이. 아니 나 지금 형이 말한 동네에 왔는데 여기가 맞는 건가 싶어서. 내가 지금 형한테 사진 한 장 보냈거든? 네비는 저쪽으로 가라고 안내하는데 어쩐지 좀 찜찜해서 말이야. 형한테 장소 알려줬다는 그 동생한테 좀 물어봐 주라.”
흑룡이 찍어둔 사진을 보내며 그의 답변을 기다렸다.
“어어, 물어봐. 나 전화 안 끊고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그래? 그럼 형 믿고 간다. 어어, 진짜 사람 하나도 없어. 오면서 딱 한 명 마주하긴 했는데··· 아, 됐다. 아무튼 도착하면 사진 찍어 보내줄게. 형도 다음 주에 올 거라면서. 내가 장담하는데 형도 분명 길 헤맬걸? 그땐 내가 알려줄게. 어어. 수고.”
전화를 끊은 흑룡이 다시 핸들을 잡았다.
그러고는 고민 없이 네비의 안내를 따라 차를 몰았다. 조수석에 앉은 아경은 오고 있을 태구와 복차를 위해 동영상을 찍었다.
드문드문 보이는 시골집, 푸르른 여름의 나무, 밭 한 가운데 자리한 무덤, 밀짚모자 따위를 쓰고 밭일하는 시골 주민. 멀뚱히 서서 아경과 흑룡이 탄 차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어르신···
다양한 풍경이 아경의 핸드폰에 담겼다.
“월월, 월월월—!”
사납게 짖어대는 개의 울음소리도 녹음된다. 아경은 그렇게 찍은 영상을 태구에게 전송했다.
그리고 얼마나 더 갔을까.
“오, 저기 민박집 보인다!”
“맞네. 저기네.”
가고자 했던 목적지에 도착한 흑룡이었다. 낡고 허름한 아니 좋게 말하면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소담한 민박집. 흑룡은 그앞으로 차를 주차했다.
“사장님.”
그리고 사장을 불렀다.
전날, 민박집 사장에게 오늘 도착한다고 미리 알린 흑룡이었다. 그때, 사장은 그렇게 말했었다.
예약금 같은 건 없고 그냥 오면 된다고. 방 한 칸 빼두겠다고. 기다리고 있겠다고.
“···”
그런데 웬걸? 조용하다.
“사장님? 흐음. 잠시 자리 비우셨나 본데요.”
차에서 내린 아경도 목소리를 높여보지만 들리는 대답은 없다. 그렇게 몇 분을 기다리고 있자니 숨이 턱하고 막혀 왔다. 찌는 듯한 더위 때문이었다.
“어으.”
“이렇게 기다리고 있지만 말고 그냥 계곡에 내려가서 짐부터 풀까요? 차라리 그게 나을 것 같은데.”
참다못한 아경이 민박집 바로 앞에 자리한 계곡을 보며 말했다. 보기만 해도 더위가 가시는 듯하다.
“그래. 가만히 있어도 쪄 죽겠는데 차라리 물에 몸 담그고, 텐트 치고 있는 게 낫지.”
흑룡은 냉큼 그러자고 했다. 사실 그도 같은 말을 하려고 하던 참이었으니까. 그렇게 둘은 집에서 챙겨온 짐을 바리바리 꺼내 계곡으로 내려왔다.
“와, 씨. 대박.”
계곡물에 발을 담구고 있자니 발등이 얼어붙는 것만 같다. 그만큼 계곡물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이런 곳에 몸을 담그기 위해 네 시간이 넘는 거리를 운전해 왔다.
“너무 좋다 ! 진짜 우리밖에 없잖아요.”
게다가 지인의 말대로 계곡엔 사람 하나 없었다.
유명한 계곡은 물 반 사람 반이라던데 여긴 흑룡과 아경이 전부였다.
좋았다. 이제 곧 도착할 태구를 귀찮게 할 사람들이 없었으니까.
모처럼 마음 편히 놀 수 있을 거란 생각에 흑룡과 아경은 들떠 빠르게 짐을 풀었다.
얕은 물가에 수박과 맥주를 담그고, 튜브에 바람을 넣고, 대충 캠핑 의자를 펴놓고, 마지막으론 텐트 설치만 남았다.
기왕 설치할 거 좋은 자리에 설치해야 했다.
이를 위해 아경이 계곡 주변을 거닐었다.
‘오—!’
그러다 여기다 싶은 장소를 발견했다.
바닥도 평평하고 그 옆으로 커다란 나무도 있는 것이 딱이다. 게다가 맞은편엔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저기서 다이빙하는 것도 괜찮아 보였다.
“흑룡 오빠, 저기요. 저쪽에다가 치면 될 것 같아요!”
아경은 신이나 흑룡에게 달려왔다. 그러고는 자신이 봐둔 장소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 시원하니 좋겠네. 어어? 무겁다. 놔둬. 내가 들고 갈게.”
흑룡도 눈을 반짝였다. 그는 텐트 짐을 들려는 아경을 만류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어우, 무겁네. 아경아. 미안하지만 같이 좀 들자.”
“보통은 몇 발짝 정도 걸어보고 도와 달라고 하지 않나요?”
“미련한 인간들은 그렇지. 하지만 난 현명해서 말이야. 그리고 도화지도 맞들면 낫잖아?”
“···”
“대신 텐트 설치는 내가 다 할게. 너는 폴대만 내 옆에 가져다주면 돼. 오키?”
“콜.”
그렇게 흑룡과 아경은 커다란 나무가 있는 그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는 곧장 텐트를 치려고 하는데···
“어어? 잠깐만. 저거 뭐냐. 그, 금 아니야?”
저 앞에 놓인 무언가가 흑룡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흑룡이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어? 진짜요? 어? 저기도, 저기도 있어요!”
헛것을 본 게 아녔다. 그와 동시에 아경도 두 눈을 휘둥그레 떴으니까. 검은 동공 안으로 황금빛 무언가가 번쩍이고 있었다. 내뱉은 말마따나 한두 개가 아니다. 물속에 황금이 있었다.
가만히 두고 볼 흑룡이 아니다. 그가 손에 든 폴대를 내팽개친 채 금덩이가 있는 물가로 발을 드밀었다. 금덩이는 물속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가 황급히 물 안으로 손을 넣었다. 손끝으로 묵직함이 전해져온다.
‘이게 얼마야.’
문득 값비싼 명품을 장착한 제 모습이 뇌리를 스친다. 거기다 세금 문제는 어떻게 하지, 아니 그보다 이거 방송 각인데?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러나 물속에 잠겨있던 금덩이가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낸 순간.
“에이, 뭐야.”
흑룡은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손에 들린 것은 금덩이가 아녔으니까.
“진짜 금···이 아니라 그릇이네요? 이거 제사 그릇으로 쓰는 거 맞죠?”
얼핏 보면 금덩이처럼 보였던 그것은 그릇이었다. 물 안에 잠긴 놋쇠 그릇이 햇살에 닿아 금처럼 보인 것이다. 나머지 것들도 마찬가지겠지. 굳이 주워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엉. 아씨, 하여간 어떤 인간들이 이런 걸 여기다 버려놓고 간 거야.”
“얼마 전에 크게 장마 왔었잖아요. 그때 떠내려온 거 아닐까요? 캠핑객들이 가지고 다닐만한 그릇이 아닌 것 같은데.”
“몰라. 그러거나 말거나. 씨, 괜히 좋아했네.”
“그러게요. 우리 그냥 텐트나 쳐요. 황금은 무슨.”
흑룡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에서 나와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그래야지.”
아경과 힘을 합하니 텐트를 설치하는 것도 금방이었다. 다만 그 과정이 수월하진 않았다. 둘 다 캠핑을 자주 다니는 사람도 아니었고, 텐트를 쳐본 경험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입고 있던 옷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손에 찬 팔찌 역시 거슬려 빼놓을 수밖에 없었다. 비싼 명품 팔찌에 생채기가 날까 봐서였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됐다.
“와후, 우리 진짜 고생했다. 복차랑 태구가 알아야 하는데.”
“고기는 사장님이랑 복차 오빠보고 구우라고 하죠!”
“아무렴. 그래야지. 흐으.”
흑룡은 그리 말하며 캠핑 의자에 몸을 뉘였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 모습을 본 아경이 입을 열었다.
“덥죠? 잠시만요. 제가 물에 넣어 놓은 맥주 좀 가져올게요!”
문득 물속에 넣어둔 맥주가 떠오른 것이다.
“아, 맞다. 맥주 넣어놨었지. 콜! 나 두 캔 꺼내주라.”
흑룡은 침을 꼴깍 삼키며 콜을 외쳤다. 그러고는 두 눈을 감고 물살을 헤치며 불어오는 바람을 느꼈다.
바리바리 싸 온 짐을 풀 땐 힘들어 죽을 것만 같았는데 다 정리해 놓고 보니 이렇게 후련할 수가 없다. 마음이 편했다. 이제 남은 건 노는 거밖에 없다.
라고 생각한 그때였다
“꺄아, 우흐, 푸—”
다급한 비명이 흑룡의 귓가를 때렸다. 놀란 흑룡이 잠시 감은 두 눈을 부릅떴다.
“꺄, 오빠, 푸, 살려···”
맥주를 가지러 간다던 아경이 계곡 중심부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물에 빠진 건가?’
‘대체 저긴 언제 들어간 거야?’
‘아까 들어가 봤을 때 허리춤까지 오는 깊이였는데. 쥐라도 난 건가?’
같은 생각은 떠올릴 수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기도 전에 몸부터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아경아—!”
“오, 빠. 푸으··· 살려., 살려···”
흑룡은 헐레벌떡 물살을 헤치며 아경을 향해 뛰어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꼴깍꼴깍 숨넘어가는 아경의 비명이 귓가를 때린다. 더불어 점점 가라앉는 모습까지도···
“안돼, 안돼, 안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거기다 마치 꿈속에서 달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몸이 무겁다. 한 걸음 내딛기가 벅차다.
“오빠, 빨리 와. 나 죽어, 이러다가 나 뒤지겠다고.”
“어어. 기다려. 금방 갈게. 아경아, 오빠 손 잡아.”
허나, 포기할 순 없었다. 흑룡은 필사적으로 아경과 거리를 좁혀갔다. 그리고 있는 힘껏 손을 뻗으려는 순간.
퍽!
“어억.”
흑룡이 단말마 같은 비명을 터트리며 무릎을 꺾었다. 뒤통수에서 느껴진 고통 때문이었다.
“나, 살려··· 오빠, 오빠···”
당장 코앞에서 아경이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는데 이렇게 정신을 놓으면 안 되는데···
하지만 이내 정신을 잃고 마는 흑룡이었다.
“저빌어먹을년이.”
얼핏 쓰러지는 흑룡의 귓가로 그런 말이 들린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으으—”
흑룡이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그리고 그 앞에는 걱정스레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아경이 있었다.
“오빠!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