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130)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131화(130/157)
다신 없을 여름 휴가 (1)
악귀를 멸하고 거둔 희생자의 흔적.
태구는 그들과 약속한 대로 그것을 양지바른 곳에 잘 묻어주었다.
다만 아무 곳에서나 묻을 수는 없었기에 마을 이장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를 만나는 것도, 또 그의 도움을 받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렵지 않은 게 아니라 너무 쉬웠다.
그만큼 마을 이장은 태구 일행을 쌍수 들고 반겨주었다.
하룻밤 묵어가라며 방도 내주었고, 희생자들의 흔적을 묻을 땅도 내주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 일 터지고 마을 사람들 절반이 다 떠났어. 하루건너 하루꼴로 초상이 터지는데 버틸 재간이 있나. 무당들은 또 얼마나 많이 불러댔는지. 그놈 한 풀어준다고 제란 제는 다 지내고··· 하아, 오죽하면 동네 아이들이 넋걷이 노래를 부르고 다닐까. 아무튼 그래도 안 되더라고.”
계곡에 깃든 악령은 마을 이장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니까. 그렇다고 친한 사이란 뜻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악연이나 다름없다.
“결국 그 육시랄 놈이 우리 사촌 누나도 잡아갔지. 우리 불쌍한 작은 아재 그 일로 정신 놔 버리고, 쯔쯔. 참 무섭대. 그래서 우리 가족도 떠날까 했는데 어디 갈 곳이 있나? 집도 땅도 다 여기 있는데. 그래서 이곳에 눌어붙은 게 벌써 사십 년이여. 사십 년. 세월 참 많이 흘렀지.”
그 사이, 민박집으로 향하는 길목을 막아두기도 했고 물에 농약을 푸는 해괴한 짓도 해봤었다. 그만큼 막막했기에 할 수 있는 짓이었다.
“아무 소용 없었어. 막아둔 길목은 어느 날 들어온 외지인이 뚫질 않나···”
하나, 내뱉은 말마따나 아무 소용도 없었다. 결국 여자는 찾아볼 수 없게 된 마을이 되었다. 그런데 태구 일행이 찾아와 일을 해결해 주었으니 쌍수 들고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 손주 놈이 제보인가 뭔가 하자고 할 때 퍼뜩 하자고 할 걸 그랬어. 나이가 들면 느는 건 의심밖에 없어가지고··· 아무튼 정말 고마워, 아니 고마워요. 정말 고맙습니다. 그 못된 놈 잡아줘서, 또 우리 누나 구해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작은 아재, 이제 편하게 집에서 쉴 수 있겠네. 딸 찾는다고 하루 종일 돌아다니셨는데···”
나이 든 이장이 태구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 마음을 받았다.
“다 했으면 대충 정리해서 이제 내려가자.”
그러고는 일행들을 보며 말했다.
“어어, 잠깐만. 나 한 번만 더 절하고.”
그사이, 흑룡은 잘 차려진 제사상 앞에서 절을 올리고 있었다.
“형님들 아니 선생님들. 좋은 곳으로 가세요. 가시는 길에 우리 형님들이 사 온 음식도 배불리 드시고 가시고요. 왜 그런 말도 있잖아요. 먼 길 떠날 땐 배가 든든해야 한다고. 그래서 많이 차렸어요. 아무튼 비록 제가 원하는 휴가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선생님들 성불시킬 수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잠시 후, 흑룡이 마지막 절을 올리고 나서야 태구 일행은 산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그렇게 차를 타고 마을을 벗어나던 때.
“어?”
앞서 달리던 이장의 차가 돌연 멈추어 선다. 도로 옆, 갓길에서 위험하게 걷고 있는 한 남자 때문인 것 같았다. 이를 본 아경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흑룡 오빠. 저기 저분, 저희가 길 물어봤던 어르신 아니에요? 오빠가 아프신 것 같다고 한 분 있잖아요.”
“어, 어? 진짜 그러네? 그러고 보니···”
그때도 저렇듯 위험천만하게 도로 위를 걷고 있었다. 그리고 괴이한 노랫가락을 읊어댔다. 그 가락이 문득 흑룡의 뇌리를 스쳤다.
넋이야, 그 넋이야. 대체 어디로 갔나···
였든가.
어째서 그런 가락을 읊으며 동네를 돌아다녔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더불어 정신을 놓은 이유까지도.
이를 방증하듯 멈춰 세운 차에서 내린 이장이 그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건네는 게 보인다. 햇빛에 반짝이는 반지였다.
“저분이 이장님이 말한 작은 아재인가 보네.”
“작은 아재요?”
“응. 사촌 누나 아빠. 그 사촌 누나도 물에 빠져 잘못되었다고 했거든.”
“아, 그 반지 주인이···”
저 남자 딸이다.
달리는 차 창 너머로 반지를 받고 고개를 푹 숙인 남자가 보인다.
아무래도 눈물을 흘리는 성싶다.
몇 시간 전, 흑룡이 그리 부를 땐 별다른 반응 없이 괴이한 노랫가락만 읊조리던 남자는 그렇게 통곡했다.
“···”
태구 일행은 그런 남자를 지나쳐 앞으로 나아갔다. 반지를 찾아주는 것만으로도 그 역할은 이미 다 했으니까.
그로부터 몇 시간 후.
꼬르륵.
하는 소리가 달리는 차 안에 울려 퍼졌다.
“···아까 제사상 차릴 때 올린 음식 그것 좀 챙겨올걸.”
범인은 흑룡이었다.
허나, 그만 배가 고픈 건 아녔다.
“나도 좀 출출하네. 뭐 좀 먹고 가자.”
태구도 입을 다셨다.
그에 아경이 빠르게 검색에 들어갔다.
“으음. 좀 돌아가야 하긴 하는데 근처에 있는 식당이 저 위에 있는 고깃집 뿐인데. 어떻게 거기라도 들릴까요?”
“콜.”
“소고기인가?”
“돼지고기요. 근데 고기만 파는 게 아니라 이것저것 다 파는데요? 후기도 나름 괜찮아요.”
그렇게 태구를 태운 차는 다시금 산자락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 얼마 안 가 동아가든이라는 식당 앞에 도착한 태구 일행이었다.
***
지금으로부터 한 시간 전.
너덧 명의 남자들이 동아가든의 문을 열어젖혔다.
“이모—!”
그 정겨운 호칭에 티비를 보고 있던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이내 아는 얼굴임을 확인한 그녀가 화사하게 미소를 지으며 들어선 남자를 맞이했다.
“아유, 이게 누구야. 우리 현이 아니야? 저기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교 들어갔다고 하더니!”
오래된 단골의 아들이었다. 수십년 맺은 인연이기에 단골의 아들이 곧 그녀의 아들이나 다름 없었다.
“아이 진짜 엄마가 말한 거죠? 좋은 대학 아니라니까.”
“아니기는! 서울에 있으면 좋은 대학이지. 키야, 그나저나 우리 현이. 이제 남자 티 좀 나네.”
“하핫.”
“웃는 거 보면 또 애고. 흐흐흐. 그래서 밥 먹으러 왔어? 옆에는 친구들? 처음 보는데.”
“아. 서울 친구들이에요. 이놈들이 시골 구경하고 싶다길래 데리고 왔죠. 근데 지금 식사 돼요?”
그리 묻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식당 불이 꺼져 있기 때문이다. 가끔 점심 장사가 잘되어 준비한 재료를 모두 소진하면 이렇듯 일찍 닫는 경우가 있었기에 남자는 그걸 염두에 두고 물었다.
“우리 아저씨가 지금 자리를 비워서 원래는 오는 손님들 다 돌려보내고 있었는데 우리 현이라면 말이 다르지. 앉아. 뭐 줄까? 말만 해. 이모가 만들어 줄 테니까. 근데 시간은 조금 걸릴 수 있다?”
“아유, 몇 시간도 기다리죠. 야야. 빨리 감사하다고 해.”
유현이 옆에 선 친구들을 쿡쿡 찌르며 말했다. 대학교에서 사귄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방학을 맞이하여 현이의 고향에 놀러 온 참이었다. 평생을 도시에서 살아온 그들은 시골 특유의 정취에 흠뻑 취한 상태였다.
오면서 본 과수원, 냄새나는 축사, 길가에 놓고 파는 무인 과일 가게 등. 그 어떤 것도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렇듯 허름한 가게 역시 새롭게 보였다.
“감사합니다—!”
“아유, 귀청 떨어진다. 현이 친구들이라 그런지 인사성도 밝네. 알았으니까 멀뚱히 서 있지 말고 얼른 앉아서 메뉴 골라요.”
그들이 눈을 반짝이며 빠르게 자리에 앉았다. 여주인이 건넨 메뉴판에는 온갖 것이 적혀 있었다.
“야야. 먹고 싶은 거 다 골라.
“여기 뭐가 맛있는데?”
“진심 다 맛있어.”
감자탕, 냉면, 삼계탕, 삼겹살, 고등어구이 등. 도무지 통일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오히려 좋았다.
“오키. 믿고 간다. 일단 난 삼계탕.”
“삼계탕 받고 뼈해장국.”
그리하여 메뉴판에 적힌 각가지 메뉴 전부를 주문한 학생들.
“이모. 죄송해요. 저희 이렇게 주세요.”
그러길 얼마나 지났을까.
어디 갔다던 식당 사장이 돌아왔다.
“뭐여. 문 닫고 있겠다더니 손님 받았어?”
그의 손에는 양념 따위가 묻은 허연색 통이 들려 있었다.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물 찌꺼기를 담은 통이었다.
“뒷집 언니 아들 현이가 왔는데 그럼 돌려보내?”
“현이?”
“거기 가지 말고 일단 주방으로 들어오셔! 음식부터 나가고 인사를 하든가 말든가 하란 말이야.”
그 채근에 사장이 걸음을 돌려 주방으로 향한다.
그런데 그 순간.
등을 돌리고 앉아 있던 현이 친구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으, 윽.”
그와 동시에 돌연 헛구역질을 하려고 했다. 지독한 가축의 똥내가 코끝을 스쳤기 때문이다.
“와, 너 이 새끼 뭐냐. 내 여친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구역질해?”
이를 본 현이가 그를 타박하며 눈을 흘겼다.
“그게 아니라 너희 역한 냄새······”
용식은 미간을 구긴 채 그 이유를 입에 담으려 했으나 이내 웅얼거리고 만다.
“역한 냄새는 지랄. 깨볶는 고소한 냄새겠지.”
“···”
“할 말 없으니까 입 닫는 거 보게나. 아무튼 그래서 예진이가···”
그때까지 현이를 비롯한 아이들은 용식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반짝이던 용식의 눈빛이 죽은 동태 눈깔처럼 탁해진 것도, 과하게 코를 벌름거리는 것도, 또 그의 귓가로 알 수 없는 기괴한 언어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들어오는 것까지 말이다.
그저 그들이 보기엔 용식은 가만히 현이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자자, 오래 기다렸지요? 시장하겠네.”
조리를 마친 식당 이모님과 그의 남편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릇을 들고 서빙에 나섰다.
“뼈해장국은 어디 놓을까.”
“여기요.”
“이모님 저는 삼계탕입니다!”
다섯 명이 앉은 테이블 위로 각자 시킨 음식이 놓였다.
“그럼 이쪽이 냉면이겠네.”
“···”
이윽고 코를 벌름거리는 용식의 앞으로 은색 그릇이 놓였다. 이열치열로 더위를 이겨내겠다며 국밥 종류를 시킨 친구들과 달리 냉면을 시킨 용식이었다.
그는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제 앞에 놓인 냉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다들 맛있게 먹고 부족한 반찬 있으면 말해요. 다시 채워줄 테니까.”
서빙을 끝낸 사장 내외가 등을 돌렸고.
와장창—!
요란한 소리가 식당 내부를 채웠다.
“김용식. 야이 미친 새끼야!”
“깜짝이야!”
거친 욕설과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였다.
사장 내외가 뒤를 돌아보니 한 아이가 테이블 위로 고개를 처박고 있는 게 보였다. 같이 온 학생들 역시 그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어안이 벙벙한 눈빛을 띠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용식이라 불린 아이가 비비지도 않은 비빔 냉면 사리를 맨손으로 잡아 제 입에 처넣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으, 으어···”
누가 봐도 정상적인 사람이 할 법한 행동이 아녔다. 장난인가? 그렇기엔 도가 지나치다. 어쨌거나 그걸 본 현이는 정신 차리라는 듯 용식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그만하라는 신호였다.
“야, 야. 용식아아?”
그런데도 용식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제 일에 집중했다. 입안 가득 냉면을 욱여넣은 용식이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시 한번 손을 뻗는다. 하얀색 용기에 담아져있는 김치를 향해서.
이윽고 벌건 김치를 손에 쥔 용식이 또 한번 입안으로 김치를 욱여넣는다. 이미 입안은 비빔냉면으로 가득차 있음에도 말이다.
“어머. 학생, 왜 이래. 학생?”
“이거 왜 이래? 야, 그만해. 재미없어.”
“우, 으으어.”
그 기이하고 역한 용식의 행동에 아이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소리를 질러도, 어깨를 쳐도 똑같으니 다른 방법을 써야 했다.
“야! 그만 먹으라니까 ! 왜 그래!”
이윽고 현이가 다시 손을 뻗었다. 이번에는 어깨를 치는 것이 아닌 음식이 잡는 그 손을 붙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흐끅.”
용식이 실로 살벌한 눈빛을 한 채 현이를 째려보는 게 아니겠다.
으적, 으적.
입안 가득 들어있는 내용물을 씹으면서 말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등허리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나왔다. 그리고 불길한 상상이 들었다.
저 손을 붙잡으면, 먹는 것을 방해하면 무슨 짓을 저지를 것만 같다. 그로 인해 현이는 저도 모르게 뻗은 손을 거두고 말았다.
한편,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본 사장 내외는 퍼뜩 주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소, 소금!”
어쩐지 소금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사이, 용식은 냉면 한 그릇을 다 해치우고 그 옆에 놓인 뼈해장국에까지 손을 뻗었다.
뼈 사이에 있는 살코기를 발라 먹는 재미로 먹는 뼈해장국.
“!”
용식은 그런 뼈를 서슴없이 씹어댔다. 이번에도 수저 따윈 사용하지 않았다.
허연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는데도 말이다. 뜨거운 내용물은 집은 그의 손이 벌겋게 익어갔다.
손만 문제가 되는 건 아녔다.
빠각, 빠가닥, 빠각.
날카로운 뼛조각이 그의 입안을 찔러 피가 새어 나왔다. 그런데도 눈 하나 끔뻑하지 않고 그저 먹기만을 하는 용식. 그리고 그런 그를 말리지 못하는 아이들. 그런 상황 속에서 누군가 동아 가든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사장님, 지금 식사 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