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152)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153화(152/157)
대박 집 (8)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긴 밤 쥐 죽은 듯이 땅에 매여 있던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땅 위로 기어 나온다. 이윽고 그것들은 사람의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날아드는 기운도 있다. 그 기운 역시 사람의 형체를 갖추고 있었다.
[히히히히]당장 태구에게 기억을 읽히고 있는 영가도 그중 하나였다. 정신병원 입원복을 입고 있는 영가가 히죽거리며 골목을 지나는 이의 등허리에 달라붙는다.
이 땅의 주인이자 그들이 두려워하는 존재, 도깨비가 허락한 일이었다. 그것은 수많은 영가를 불러들여 제 땅을 지나는 인간들에게 붙여 주었다.
괜히 하는 짓이 아니었다. 나름의 목적이 있었다. 영가의 기억 속에 들어온 태구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병원복을 입은 영가의 동공에 도깨비가 담긴다.
도깨비는 귀신 소굴이 되어버린 2층 건물의 옥상에 걸터앉아 있었다. 조금 전, 제 눈으로 본 모습과는 퍽 다른 모습이 보였다.
[흐흥, 흐흥, 허허허]외발이 아닌 두 다리를 지니고 있었고 풍채도 바위만 하다. 더불어 한눈에 보기에도 몹시 기분이 좋아 보인다. 옥상 난간에 걸터앉은 도깨비는 싱글벙글 웃으며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야, 냄새 죽인다. 이거 뭐냐?”
그러자 건물이 자리한 골목 안으로 고소한 국수 냄새가 퍼진다. 먹음직스러운 향기는 오가는 사람들의 식욕을 돋웠다. 사람들은 코를 벌름이며 향기의 근원을 찾아 헤맸다.
“저기, 저 국숫집 같은데. 야야. 먹고 가자.”
“지금? 그러다가 지각···아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먹고 택시 타고 출근하지, 뭐.”
그렇게 국숫집을 발견한 이들은 출근도 잊고 홀린 듯 가게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말 그대로 그들은 홀린 게 맞았다. 국숫집 안으로 들어가는 이들의 어깨, 등, 팔목, 발목에는 도깨비가 붙여준 영가가 있었다.
그것들이 산자의 몸에 붙어 저곳으로 들어가자 속삭인 것이다. 허나, 영가들이 할 수 있는 건 딱 그뿐이었다. 산자의 몸을 타고, 산자가 만든 음식을 먹고, 생기가 가득한 공간에서 춤을 추고 노는 것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도깨비가 허락한 공간과 시간이 맞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이를 어기고 겁 없이 구는 영가도 더러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끔찍한 최후를 맞이해야 했다.
[키아아아아아악!]당장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옥상 난간에 걸터앉은 도깨비의 눈에 순간 푸른 불길이 피어올랐다.
[히히히히신줄을타고난아이네내가보이려나히히히내가보이면참으로즐겁겠다울며불며비는꼴은어떠려···끼아아아악!]이윽고 옥상에서 뛰어내린 도깨비가 한 아이의 등에 붙은 망령의 머리채를 휘어잡는다. 그리하여 도깨비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붙들린 영가는 순식간에 사라지고야 만다.
입을 크게 벌린 도깨비가 방금 잡은 영가의 머리통을 뽑아 씹어 먹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뽑힌 영가의 목에서 귀혈이 솟구쳤다.
괴이할 만치 크게 벌린 도깨비의 입가로 검고 찐득한 귀혈이 줄줄 흘러내렸다.
빠그작, 빠그작.
이어서 뼈와 살이 씹히는 소리가 골목을 울려 퍼졌다. 실로 소름 끼치는 광경이었다.
“국물이 예술인데?”
“내일부턴 김밥 말고 여기서 아침 때우고 가야겠다.”
“사장님. 잘 먹고 갑니다.”
그러나 산자의 눈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참혹한 광경은 오로지 죽은 자의 눈에만 보였다. 도깨비는 저를 보고 있는 영가들을 둘러보며 보란 듯 악귀를 잡아 뜯어 먹었다. 나대지 말라는 경고였다.
[히이이익!]그리고 이는 퍽 잘 먹혀들었다. 남은 영가들은 도깨비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 사실 이렇듯 그의 땅에 들어와 차사의 눈을 피하고, 산자의 생기를 느끼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한 일이었다.
그로 인해 영가들은 도깨비의 뜻에 따라 열심히 귀기를 발산했다.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돌려 국숫집으로 향하게 했다.
입원복을 입은 영가라고 다를 건 없었다.
하루, 이틀, 사흘, 일주일, 한 달···
셀 수 없이 많은 나날이 지났다.
도깨비가 허락하지 않은 시간에는 땅에 묶여 있었고, 해가 뜨면 골목을 어슬렁거리며 사람들의 몸에 올라탔다. 그렇게 그것은 제 마음대로 설치고 싶은 본능을 다스리며 국숫집을 오갔다.
그러는 과정에서 퍽 쓸모 있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그날도 어느 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날이었다.
[히히히히히저기로가자저기로가]산자의 목에 올라탄 영가가 국숫집 안으로 들어설 때였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아이 하나가 보였다.
생기가 가득한 살아있는 아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의 뒤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걸 보아 아이는 제 발로, 제 의지로 국숫집을 찾은 듯 보였다. 그런 아이들이 쭈뼛쭈뼛하며 카운터로 향했고, 이내 국숫집 사장 아내가 아이들 곁으로 다가온다.
“다 먹었으면 아줌마 부르지, 왜 그러고 서 있어.”
“···바쁘신 것 같아서요.”
“아무리 바빠도 손님들이 부르면 와야지. 그나저나 양은 괜찮았어? 모자라진 않았고?”
살가운 여주인의 물음에 얼어있던 아이들이 긴장을 풀며 대답했다.
“아, 아뇨. 많아요. 그래서 조금 남겼어요. 죄송해요. 다 먹고 싶었는데 배가 너무 불러서요.”
“억지로 먹을 필요 없어. 괜히 탈 날라.”
“그래도 아깝잖아요.”
“아까우면 포장해 가면 되지?”
“···엇. 그래도 돼요?”
아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되고말고. 포장해 가면 아줌마는 너무 좋지. 음식 버릴 일도 줄어드는걸? 잠깐만 기다려 봐.”
여주인은 그리 말하며 아이들이 앉아 있던 테이블로 향했다. 아이들이 남긴 건 고작해야 김밥 두 개였다. 함께 시킨 멸치국수의 면은 다 건져 먹은 듯 보였고 허여멀건 국물만이 남아 있다.
이 정도면 포장 용기가 아까울 양이었다. 그러나 여주인은 개의치 않았다. 그녀가 김밥 담긴 접시를 들고 주방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 손에 들린 비닐봉지가 제법 묵직해 보인다.
“자, 집에 가서 배고플 때 꺼내 먹어. 상할 수 있으니, 냉장고에 꼭 넣어두고. 알았지?”
“어? 그런데 이거 저희 것 맞아요? 저희는···”
아니나 다를까, 슬쩍 봉지 안을 본 아이가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아줌마가 만두 몇 개 넣었어. 만두 싫어하는 거 아니지?”
“어, 어···”
“아줌마 남편, 그러니까 사장님이 신메뉴를 개발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만두거든. 먹어 보고 그 맛이 어떤지 좀 알려달라고 챙겨주는 거야. 다음에 와서 말해줄 수 있지?”
“···네.”
“고마워어.”
“그런데요.”
“응?”
“저희 결제 급식 카드로 나눠서 해야 하는데··· 괜찮으세요?”
“당연히 괜찮지. 난 또 뭐라고. 카드 이리 줘.”
여주인의 말에 아이의 얼굴이 밝아진다. 저게 뭐라고 내심 걱정하고 있었나 보다. 사장의 눈에도 아이의 걱정이 보인 모양이다. 여사장은 그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듯한 반응을 보이며 아이가 내민 카드를 건네받았다. 그러고는 계산을 도와주는데···
“그런데요, 아주머니. 아니, 사장님.”
아이가 초롱초롱한 눈빛을 띠며 여사장을 부른다.
“응?”
“······실은 저 준수랑 친구거든요. 준수가 말해줬는데 여기 가게에 도깨비가 산다고 하던데 진짜예요?”
놀랍게도 아이는 도깨비에 관해 물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여주인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니겠나.
“아아— 이제 보니 준수 친구였구나? 준수가 말해줬어? 여기 도깨비 산다고?”
“정말이에요?”
“그럼, 정말이지. 지금도 이 안에서 우리가 하는 이야기 듣고 있을걸? 아마 바로 옆에 있을지도 몰라.”
실제로 그 말이 맞았다. 여주인의 말마따나 도깨비는 그들의 곁에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실로 무시무시한 몰골을 하고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 전, 악령 하나를 씹어 먹고 오지 않았던가.
“헉!”
“하하, 왜 무서워?”
“아뇨. 하나도 안 무서워요. 우리 할머니가 그랬거든요. 도깨비는 착하다고.”
아이가 말한 착한 도깨비는 입가에 귀혈을 덕지덕지 묻힌 채 광포한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 웃음소리에 식당 안에 있는 영가들이 몸을 떨었다. 그런 도깨비를 보지 못한 아이와 여주인은 화기애애한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으흥. 할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셨어?”
“네. 할머니가 저만할 때 산속에서 길을 잃은 적 있었는데 그때 도깨비가 길을 알려줬대요.”
“어머나. 할머님께서 실제로 도깨비를 보셨대?”
끄덕끄덕.
“파란색 불덩이가 할머니 눈앞에서 막 번쩍번쩍했대요. 할머니가 그러시는데 그게 바로 도깨비불이라고 했어요. 아무튼 저는 도깨비 안 무서워요. 우리 할머니 구해주셔서 고맙기만 한 걸요. 그래서 말인데··· 저도 준수처럼 도깨비한테 밥 주고 싶은데, 그래도 돼요?”
아이는 그리 말하며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그걸 본 여주인이 “당연하지.”라는 말을 하며 카운터 안쪽에서 나무 사발 하나를 꺼내 든다. 그 안에는 사탕, 초콜릿과 같은 불량 식품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먼저 다녀간 아이들이 두고 간 것들이었다. 그 위로 모나카 하나를 올라간다. 아이가 올린 것이었다. 그렇게 나무 사발 안으로 모나카를 넣은 아이가 재빨리 두손을 모은 채 무어라 중얼거린다.
마치 기도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아이의 모습에 여주인이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런 그들 곁에 선 도깨비 역시 크게 웃음을 터트리고 있다. 그것이 내뿜는 귀기 역시 강해진다. 그러한 귀기는 누군가의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걸 보고 있자니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그렇게 실마리를 잡은 태구가 돌연 두리번거리며 가게 안을 훑어보았다. 역시나 예상이 맞는 듯하다. 그의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수수깡 따위로 만든 방망이, 엉성하게 접은 종이학, 뿔 달린 도깨비 그림 등··· 얼핏 봐도 어린아이의 손길이 묻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모여 있는 카운터는 마치 도깨비를 위해 마련한 제단처럼 보였다.
***
태구가 병원복을 입는 영가의 기억을 훑는 사이.
“으, 으. 내 눈···”
철제 선반 넘어, 벽에 기댄 남자가 신음을 흘리며 털썩 주저앉는다. 그의 눈가로 붉은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태구씨도끼들어봐유 님. 달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유사 마네킹 씨. 괜찮아유?
– 이제야 눈이 아픈 게 느껴지나 보네.
– 저 사람 우카냐ㅠ 보는 내가 다 아프다.
– 일단 저 사람 좀 빼야 할 것 같은데.
– 그러게 왜 여길 기어 들어 오 ㅏㅋ
– 지 발로 온 게 아닐수도 있잖아.
– ㅇㅋ 일단 꺼내서 이야기 좀 들어 보자.
그러다 달풍 소리를 들었는지 흠칫 놀라 몸을 떠는 남자였다.
“뭐, 뭐야. 흐으으. 이거 다 뭐야.”
비단 몸만 떨까. 목소리도 떨린다. 더불어 내뱉는 말을 들어보니 기억을 못하는 듯 보인다. 자신이 대체 왜 이런 곳에 있는지, 또 자신이 어떤 꼴을 하고 있는지도···
“일단 거기서 좀 나와보세요.”
한편, 쓰러지는 선반을 다시 세운 복차가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귀기가 가득 담긴 복차의 말에 남자는 잠자코 그 말을 따랐다.
“저, 저 왜 이래요? 저 좀 도와주세요.”
그가 더듬더듬 벽을 짚어가며 철제 선반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 ···························
– 돌겠다
– 연기 하는 거 아냐?ㅎㄷㄷㄷ
– 안 본 눈 삽니다 ㅠㅠ
– 솔직히 이거 좀 가려주자.
– ㅇㅈ. 흑역사 생성 짤이네
– 저러니 발에 피가 나지ㅠ
– 한쪽 다리 좀 심한 거 아니냐?
– 병원부터 보내자.
그리하여 온전한 모습을 비춘 남자, 그는 붉은색 하이힐을 꺾어 신고 있었고, 허벅지를 겨우 가리는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건장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였다.
하물며 입고 있는 옷 사이즈가 작아 자크를 다 열어둔 상태다. 그런 복장에 진한 화장까지 하고 있으니, 누가 봐도 정상인이라 볼 수 없다. 그로 인해 해괴하다 못해 기괴한 느낌을 받은 시청자들이었다.
그러나 복차는 대수롭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가 남자를 보며 상황을 설명했다.
“쯔쯔. 정신 나간 영가 하나가 그쪽 몸에 올라탔었어요. 다행히 지금은 그 몸에서 내려갔고요. 우리 선생님께서 떼어내 주셨거든요. 아무튼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요. 하필 또 말도 안 통하는 영가라서···”
[태구씨도끼들어봐유 님. 달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말이 안 통하는 영가면 동물령?
“아, 그러고 보니 설명을 안 드렸구나. 알다시피 저거 잡는다고 정신이 없었잖아요. 인제야 말하지만 동물령은 아니고 이 사람 뒤로 병원복을 입은 여자 영가 하나가 붙어 있었어요. 지금은 우리 선생님 손에 잡혀 있고요.”
[태구씨도끼들어봐유 님. 달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태구 손에? 퇴마 중인가? 아무튼 병원복 입고 있으면 생전 아팠던 사람인가?
“예. 그런데 몸이 아니라 머리가 많이 아팠던 모양이에요. 그 병원명이 정신병원이라고 적혀 있었거든요.”
“허어억—!”
그 말을 들은 남자는 헉하니 숨을 들이마셨다. 과호흡이 온 것 같았다.
“어어? 지금은 괜찮다니까요. 편히 숨 쉬어요. 그러다가 황천길 갈라—!”
때마침 영가의 기억을 다 훑어본 태구가 남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