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17)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 17화(17/157)
악령의 기억
“물은 없고, 이거라도 같이 먹을 테냐?”
태구가 백팩 깊숙한 곳에서 꺼낸 것은
“···안동명물찜닭?”
포장한 찜닭이었다.
시청자와 약속한 시각이 있어, 식당에서 먹지 못하고 이렇게 포장해 온 것이리라.
한성규는 불투명한 포장 용기에 붙은 찜닭 스티커와 태구를 번갈아보며 주춤 뒷걸음질 쳤다.
정신을 차린 지금에서야 태구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아무도 찾지 않는 폐병원에서 마주한 남자가 손도끼를 든 채, 찜닭을 먹자 권하고 있다.
‘물은 없고, 이거라도 같이 먹을 테냐?’
말투 역시 범상치 않다. 정말 이게 맞나? 정말 이럴 수가 있는 거야? 귀신의 장난인가?
“흐끅! 지, 진짜 사람 맞죠? 자, 장난치는 거 아니죠? 귀···신 아니죠?”
그렇게 묻는 한성규의 동공은 흡사 규모 8.0의 지진이라도 온 듯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영웅부재중 님이 달풍 100개 감사합니다.]– 찜닭? 와앀ㅋ 상상도 못 했다. 도라에몽 가방도 아니고ㅋ 왜 아주 후식까지 꺼내지? 그리고 빙의 게이야. 니 앞에 있는 인간, 사람 맞다. 달프리카 신입 태마사 BJ임. 지금 실방 중. 그러니까 걱정 ㄴㄴ 몇천 명이 지켜보고 있음.
그러나 이내 들려오는 달풍 전자녀 소리에 안심한 한성규였다. 허락 없는 촬영에도 불편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죄, 죄죄송해요. 진, 진짜 BJ 맞네요.”
“죄송은 무얼. 험한 일을 겪었으니 뭐든 의심하고 볼만하지.”
“흐읍.”
험한 일. 다시금 떠오른 악몽 같은 일에 한성규가 눈을 질끈 감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태구가 그 어깨를 두드렸다.
“이렇게 정신이 허할 때일수록 잘 챙겨 먹어야 하는 법이니라. 아무렴, 물보단 이게 훨씬 나을 테고. 자, 국물로 목 좀 축이거라.”
“···”
보통의 평범한 사람은 이런 상황에 찜닭을 먹지 않는다. 물론 권하지도 않겠지. 한성규가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다.
“으음? 싫으면 관두거라. 억지로 먹으라는 것은 아니니.”
태구는 어깨를 으쓱하며 찜닭 용기 뚜껑을 열어젖혔다.
“아차차.”
그러고는 바닥에 삼각대를 설치하고 그 위에 핸드폰을 올려두었다.
카메라 액정은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은 태구와 그 앞에 놓인 찜닭을 담고 있었다.
– 찜닭을 먹는다고? 여기서?
– 안동 찜닭 킹직히 맛있긴하지ㅋ
– 선생님.. 정녕 이게 맞나요?
– 폐병원 투어는 어쩌자고.
– 이 방송 진짜 혼란하다; 혼란해;;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도 있지 않더냐. 먹고 둘러봐도 늦지 않을 것이야. 더욱이 오늘 밤은 길 듯하고···”
– 밤이 길다고? 오늘 몇 시까지 방송할 거야?
– 어차피 택시도 없잖ㅋ 날밤까자.
– 그보다 조금 전 상황부터 설명해줘ㅠ
– ㅇㅇ. 도끼질한 거, 그거 귀신 퇴마한 거야?
– 연기처럼 흩어지던 거 귀신 맞지?
나무젓가락을 뜯는 태구의 얼굴 위로 흡족한 미소가 깃들었다. 한 채팅 걸러 보이던 ‘주작’이란 단어는 찾을 수 없었다.
“이제야 내 능력을 믿기 시작하는구나.”
– ㄴㄴㄴㄴ난 처음부터 믿고 있었다구.
– 저 뿌듯해 하는 표정 보소ㅋ
– 부적 수금할 생각에 신나겠지ㅋㅋㅋ
– 아 일단 상황 설명 좀요ㅠ
– 2222222 설명해조
“급하기는. 그렇지 않아도 먹으면서 설명해 주려고 했느니라. 흐음. 너희도 봤겠지만 저 남자에게 여덟이나 되는 악령이 붙어 있더구나. 그래서 내가 그놈들을 멸, 아니 성불시켰고.”
그중 일곱은 생전 이곳에 입원해 있던 환자였고, 또 하나는 천도 의식을 치르던 무당이라는 사실도 덧붙였다.
– ㅁㅊ; 내 말이 맞았네.
– 무당 귀신이 조종하고 있던 거?
– 그럼 그 희뿌연 거 그거 귀신 맞단 소리네?
– 태구 없었음 저 사람 삼도천 건넜겠다ㄷㄷ
– 그렇다치고 저 남자한테 왜 그랬대?
– 이유 같은 게 있겠냐? 그냥 지들 재밌자고 사람 괴롭히는거지ㅋ 원래 귀신들은 다 그럼. 이유 같은 거 없어.
태구가 고개를 저었다.
“그저 재미를 위해 그런 게 아니다. 망자의 기억, 아니 말을 들어보니 나름의 이유가 있더구나.”
– 에? 그런 말을 했다고요? 아닌데;;
– 그냥 죽이는 것 같던데요..선생님..
– ㅅㅂ텔레파시 몰라? 그걸로 대화했나 보지.
– 그래ㅋㅋㅋㅋ이제 좀 믿어주자.
– 그래서 이유가 뭔데?
보는 거나 듣는 거나 매한가지 아니겠나. 태구가 말을 이었다.
“살아있을 적 그러니까 이 병원에 감금되어 있을 때 말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병원을 찾는 무당이 있었다.
무당은 원장과 격없이 지내며 원장실을 들락날락했고, 이러한 모습은 입원한 환자들 눈에 자주 목격되었다.
중요한 사실은, 무당이 병원을 찾는 날엔 으레 환자들의 퇴원 절차가 진행된다는 거였다.
그로 인해 환자들은 무당에게 잘 보이길 원했고, 무당이 오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가끔 병원 내에서 무당이 굿을 할 때면 다 같이 달려가 구경하기도 했었다.
어쨌든 이러한 생전의 기억이 죽어서도 이어진 것이다.
산자를 제물로 한 저들만의 의식이 끝나면, 병원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여긴 게지.
– ㅠㅠㅠㅠ 진짜면 너무 불쌍하잖아.
– 죽어서도 병원에 갇혀있다는 말이네.
– 불쌍하긴. 그냥 눈물만 조금 나는구만;;
– 그런 불쌍한 귀신을 도끼로 찍어버린 갓태구ㅋㅋㅋㅋㅋㅋㅋㅋ
태구의 말을 들은 시청자들은 대체로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망령을 가엾게 여겼다.
‘사정없는 망령은 없는 법이지.’
그런 망령을 도끼질로 멸한 태구는 그저 씁쓸하게 웃을 뿐이었다. 사정은 안타깝다만 어쨌든 그것들은 사람을 해한 존재. 악령에게 자비는 없다.
그러던 그때였다.
[벙개의 신 님이 달풍 100개. 감사합니다.]– 와;; 그러니까 죽은 무당도 원장이랑 한 패 였다는거네? 멀쩡한 사람 가두고 지들 입맛에 맞는 사람들 퇴원 시키고 그거 아주 잘 뒤졌네!!
폐병원 장소를 추천한 ‘벙개의 신’이 분노에 휩싸인 달풍을 쏘아 올렸다. 하지만, 분노의 대상이 잘못되었다.
“그 무당이 그 무당이 아니니라.”
태구가 이를 정정해주었다. 천도 의식 중 죽은 무당은 원장과 격없이 지내던 그 무당이 아니라고. 망령의 기억을 통해 본 무당은 키가 작았다. 기운도 달랐다.
– 에? 뭐요? 그 무당이 무당이 아니야?
– 잠만. 아 복잡해ㅡㅡ
– 그럼 그 원장 편 무당은 누군데?
– 아씨;; 뭐가 어케 된 거야.
– 죽은 무당은 하나인데?
“그래서 내가 말하지 않았더냐. 오늘 밤은 길 것 같다고. 도대체 이 빌어먹을 정신 병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낼 생각이니라.”
***
태구가 시청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 사이.
“안돼, 안돼, 안돼···”
한성규가 허옇게 질린 얼굴을 한 채 태구의 곁으로 다가왔다. 짓고 있는 표정이 꼭 뭐 마려운 강아지 같다.
그는 태구 앞에 놓인 카메라를 등지고 이렇게 속삭였다.
“저기요. BJ 님?”
“그사이 마음이 바뀌었느냐? 괜찮다. 아직 많이 남았으니 눈치 보지 말고 먹거라. 맛이 아주 좋아.”
“아, 아뇨. 찜닭 먹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요.”
“?”
“바, 방송 계속하실 거예요?”
“그래야지?”
“아, 아뇨! 아뇨! 그러지 말고 방송 끄고 저랑 같이 여기서 나가는 게 어때요? 방송 종료로 손실 본 금액은 제가 다 사례할게요. 네? 그러니까 제발 저 좀 데리고 여기서 나가주세요. 당장요. 우리 같이 나가요.”
이렇듯 작게 말하면 시청자들은 모를 거라 생각했다. 물론 잘못된 생각이었다. 흑룡의 고가 방송 장비를 우습게 보아선 아니 됐다.
– 뭐래뭐래뭐래뭐래뭐래
– 선 씨게 넘네ㅡㅡ
– 아..저기요.. 지랄하지 마십쇼.
– 가긴 어딜가!! 못가!!!
– 물에 빠진 놈 구해놨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네?
마이크를 타고 넘어온 한성규의 은밀한 딜에 채팅창이 술렁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달풍 릴레이가 쏟아졌다.
[호빵 님이 달풍 5,000 개. 감사합니다.]– 오호. 사례를 하겠다? 태구 일당이 얼만 줄 알고?
[괜찮은데 님이 달풍 7,000 개. 감사합니다.]– 그러게? 일단 50 받고 70 얹는다. 우리 빙의 게이, 얼마나 사례할 수 있는지 한번 볼까나? ㄱㄱㄱㄱㄱ
[거북황 님이 달풍 30,000 개. 감사합니다.]– 동참합니다. 300 투척ㅋ 쫄리면 뒈지시든가~~
.
.
.
30초 남짓한 사이에 태구의 일당은 천을 찍었다. 그러고도 계속 달풍이 터졌다. 한성규는 당황했고 또 좌절했다.
“아니, 아니. 그러지 마시고···”
그저 이 빌어먹을 폐병원에서 당장 빠져나가고 싶은 것 뿐인데!
그때였다. 태구가 한성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빛을 마주한 성규는 한 줄기 희망을 보는 듯했다.
“너희들이 보내 준 금액은 잘 먹고 잘 입고 그분을 뜻을 잇는데 쓰겠다. 다들 고맙다. 아! 그리고 걱정 말거라. 방송은 계속 이어 나갈 것이니.”
“아?”
– 빙의 게이 당황한 얼굴 보소ㅋ
– 좋아좋아좋아좋아.
– 가자고! 가자고! 가자고!
– 나 오늘 밤 샌다ㅋ
– 근데 쟤는 어캄? 우리야 좋긴 한데 좀 불쌍하긴 하다ㅠ
“B, BJ 님···”
“걱정 말거라. 남은 거 마저 먹고 요 앞 철문까지 데려다주마. 어차피 여기에 머무는 망령들은 그 문을 넘을 수 없으니, 마음 편히 갖고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가면 될 터.”
“차요? 지금 차라고 하셨어요?”
“그래. 그 허연 차 말이다. 네가 주차해 놓은 차 아니더냐?”
“어, 어어. 그게 왜··· 그럴 리가 없는데.”
한성규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얀색 승용차는 그의 차가 아니다. 그렇다고 모르는 차도 아니다.
“그거 제 차 아니에요. 제 친구 차예요.”
“으흠?”
“···근데 왜 그게 거깄지. 아, 진짜 미치겠네.”
“혼자 온 게 아니더냐?”
“제가 미친놈도 아니고 누가 이런 곳에 혼자 오겠어요. 흐으.”
– ㅋㅋㅋㅋㅋㅋㅋ거 말이 심하시네.
– 그러게. 혼자 온 태구가 뭐가 되냐.
– 저쉐리 싹수가 노랗다니까ㅋ 딜 칠때부터 알아봤지
“아무튼 이게 다 그 새끼 때문이에요. 그 새끼가 꼬셔서 어쩔 수 없이 오게 된 건데··· 제가 그렇게 되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토꼈어요. 근데 왜, 그 차가 왜···”
– 갓직히 나 같아도 런함.
– 아니;; 그래서 걔는 지금 어딨냐고.
– 여기 차 없이 못 나가잖아 ㅎㄷㄷ
– 어딨긴. 아직 여기 병원 안에 있겠지.
– ···살아있겠지?
태구는 아쉬운 한숨을 내쉬며 포장 용기 뚜껑을 닫았다. 시청자의 말마따나 남자의 친구는 아직 병원 안에 있을 터.
일반인이 쉽사리 빠져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사달이 일어나기 전에 찾아야 했다. 밥 한 끼를 맘 편히 못 먹는구나!
“쯧, 둘이 왔음 둘이 왔다 진즉 말을 했어야지.”
“아, 아뇨. 걔는 도망갔다니까요. 차는, 차는··· 그래! 손이 떨려서 그래서 그냥 걸어서 도망친 걸 거예요. 그럴 거예요.”
“아니, 네 친구 아직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