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24)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 24화(24/157)
아직은 살만한 세상
경찰서를 나왔을 때는 이미 해가 떠오른 아침이었다.
“아, 두부 먹어야 하는데! 제가 잽싸게 가서 사 올까요?”
함께 참고인 조사를 받은 호진은 곰살스럽게 능청을 떨어댔다.
“두부는 무슨. 영화에서 보면 막 국밥 같은 거 때리던데. 비제이 형님. 저희랑 같이 국밥 드시러 가실래요? 소머리국밥이라고 안동에서 진짜 유명한 국밥집 있거든요. 진짜 개맛있어요.”
그 옆에 선 성규도 가만있지 않았다.
그저 배가 고파서 한 말은 아니었다. 그들은 태구와의 헤어짐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되었다. 급히 가볼 곳도 있고 말이지.”
그러나 한가로이 식사할 때가 아니었다. 소머리국밥, 그거 아주 좋아하지만 참아야 했다.
오매불망 자신만 오길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니. 태구는 짐짓 아쉬운 표정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으, 밥 한 끼 같이 하고 싶었는데···.”
“나중에 서울에 놀러 오거든 연락하거라. 그때 내가 맛있는 밥 한 끼 사줄 테니.”
“정말요? 저희 진짜 가요?”
“그래.”
“나이스.”
“그럼 형님, 서울로 바로 가시게요? 터미널까지 태워다 드릴까요?”
“그렇진 않고. 혹, 아동용 의류 매장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
“애들 옷 파는 곳이요? 갑자기 그건··· 어! 설마 그 애들 옷 사려고요?”
끄덕끄덕.
태구의 고갯짓에 성규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성불 그거 다 끝난 거 아니었어요? 하기야, 아무것도 안 하시는 것 같긴 하던데···”
“맨몸으로 보낼 순 없지 않으냐.”
“맨몸··· 하아, 애들 옷 가게야 시내에 가면 있기야 있는데요. 으음.”
성규가 말끝을 흐리며 시간을 확인했다. 장사를 시작하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시간이 너무 일러서요. 아마 문 닫혀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가봐야지.”
“그러면 거기까지 저희가 태워다 드릴게요. 저희도 밥 먹으려면 그쪽으로 가야 해서요.”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았다. 좁은 동네라 그런지 경찰서에서 시내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사이, 은행에도 한 번 들린 태구였다.
“어라? 닫혀 있을 줄 알았는데 열렸네? 형님. 저기 저 매장 보이시죠? 저기예요. 저기가 안동에서 제일 큰 아동용 의류 매장이에요.”
성규가 차창 너머로 손가락질했다. 건너편으로 문 열린 매장이 보였다. 그리고 때마침 횡단보도 신호등에 초록 불이 들어왔다.
“그럼 나는 여기서 이만 내리마.”
“어어? 같이 가요! 주차 금방 해요!”
“번잡스럽게 애들 옷 사는 데 따라와서 뭘 하겠다고. 됐다. 가서 밥이나 먹거라. 아, 그리고 이거! 너희들 몫이다.”
태구는 성규의 손에 잽싸게 돈 봉투를 찔러주었다. 조금 전, 은행에서 인출한 돈이었다. 열린 돈 봉투 사이로 노란 잎이 펄럭거린다.
“이게 뭐···? 어! 형님, 형님!”
뒤늦게 돈 봉투를 확인한 성규가 당황한 얼굴로 태구를 불렀다. 그러나 이미 태구는 건널목을 건넌 때였다. 실로 번개 같은 속도였다.
“형님, 형님! 이거 아니잖아요!”
운전대를 잡은 호진이 성규를 바라보았다. 그는 창문을 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어쩐지 이해가 안 가는 행동이었다. 호진이 말했다.
“하여간 오바는. 주차하고 가서 드리면 되잖아. 그리고 뭘 또 그렇게 놀라는 척이냐. 사실 받아도 상관없는 돈 아냐? 그때 시청자 삼촌이 그랬잖아. 우리 일당이니까 편하게 쓰라고.”
“그것도 어느 정도여야지. 이걸 어떻게 받냐?”
성규가 고개를 저으며 호진의 눈앞에 돈 봉투를 들이밀었다.
“홀리···”
***
“어라? 안동? 어, 어어··· 미친!”
핸드폰을 내려다보던 임혜민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임혜민 ! 근무 시간에 핸드폰 보지 말라고 했지? 너 자꾸 그러면 월급 까는 수가 있어? 빨리 핸드폰 집어넣고 제대로 청소해!”
그 모습을 본 누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허나, 임혜민은 그 말을 귓등으로 흘려버렸다. 더 나아가 핸드폰을 든 채 카운터를 향해 내달린다.
“엄마, 엄마. 대박! 대박이라고!”
카운터에는 엄마, 오영실이 있었다. 모녀는 안동 시내에서 아동용 의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 네 엄마가 어딨어? 내가 가게에서 엄마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지!”
“아유, 알았어! 사장님. 됐지? 그보다 대박이야. 대박이라고!”
“얘가 뭘 잘 못 먹었나. 아침부터 왜 이렇게 수선을 떨어.”
“엄마. 형제 정신병원 알지? 왜 그 있잖아. 예전에 막 사람 죽어 나간···”
짝!
등짝 스매싱을 부르는 말이었다.
“아악! 왜 때려!”
“내가 그 병원 이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말라고 해서 안 했어! 어? 귀신 붙는다고 몇 번을 말해!”
딸의 물음에 오영실이 사색이 되어 외쳤다. 그때, 그녀의 눈앞으로 불쑥 핸드폰 화면이 드밀어진다. 영상 하나가 재생되고 있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일단 이것 좀 봐. 오늘 새벽에 누가 그 병원에 들어갔거든? 근데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글쎄···”
누군가 태구의 방송본을 편집해 올린 것이다. 편집본이기에 엑기스 장면만 담겨있었다. 오영실은 금세 영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영상이 끝나갈 때쯤.
오영실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중년 여성의 눈이 토끼처럼 새빨개져 있었다.
“어쩜 인간이 돼서 저런 짓을 해. 어유, 저 애들 불쌍해서 어쩌니. 어유, 아유!”
오영실이 가슴을 치는 그때였다.
“장사합니까?”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님이었다. 그러나 매장 오픈까진 한 시간쯤 남은 상태. 게다가 청소도 아직 못 끝냈다. 그녀가 눈가를 닦으며 고개를 들었다.
“아유, 죄송해요. 잠깐 청소하느라 문을 열어놓은 거고 매장 오픈···으응?”
“허업!”
그런데 이게 웬걸, 낯익은 남자가 매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녀가 핸드폰을 한번, 남자를 한번 번갈아 보았다. 옆에 선 딸도 마찬가지였다.
“태, 태예? 아니 태구 비제이 님! 비제이 님 맞죠?”
얼마나 흥분했는지 목소리가 갈라진다. 혜미가 총총걸음으로 태구 앞으로 달려왔다.
“와, 대박. 대박! 저 팬이에요. 오늘 영상도 다 봤어요. 경찰서 가는 장면으로 끝나던데. 조사는 다 끝났어요? 그, 그 나쁜 놈은 어떻게 됐어요? 혹시 비제이 님 고소하거나 그런 거 아니에요? 보니까 다 연기던데···”
“정말이네. 정말 그 귀신 보는 젊은 남자 맞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을까. 모녀가 짐짓 오바스럽게 태구를 맞이했다. 그런 환대에 태구는 머쓱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면서 다시 물었다.
“조사 잘 받았고 다 잘 해결됐어요. 그보다 영업시간이 아니라고요?”
낯선 사람을 많이 마주한 덕분일까. 이제는 퍽 내뱉는 말투가 자연스럽다.
“아아아뇨? 문 열어 놨으면 영업 중인 거죠, 뭐! 하하. 그러지 말고 한 번 둘러보세요. 아니다, 제가 잘 나가는 상품 추천해 드릴게요. 아이 성별이랑 나이대 좀 알려주시겠어요?”
혜민은 어쩐지 연예인을 보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게다가 방금 전까지 그가 나오던 영상을 보고 있었으니··· 그래서였을까. 꽤 많이 들뜬 모습을 보이는 혜민이었다.
“흐음. 좀 여러 명인데··· 나이는 대략 네 살에서 일곱 살 정도인 것 같고요.”
“아- 조카분이 많으시구나. 우선 여아 옷은 이쪽에 있고요 남아 옷은 저쪽이에요. 그리고 다섯 살 정도 되는 애들은 여기, 이쪽에서 보시고요.”
혜민은 생글생글 웃으며 신상품을 보여주었다.
“다 마음에 드는데요.”
아이들이 입는 옷이라 그런가, 밝은 색상의 옷이 많았다. 퍽 태구의 마음에 들었다. 빨리 아이들에게 입혀주고 싶었다.
“우리 가게 물건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진짜 다 예쁘다니까요. 사실 그 나이에 뭘 걸쳐도 안 이쁘긴 하겠냐마는···”
“좋네요. 여기 있는 거 다 주세요.”
“아! 네, 여기 있는···에?”
혜민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되물었다.
“여, 여기 있는 거 다요?”
“저기, 저기, 저기에 걸려있는 거까지요.”
태구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반대편에 진열된 옷까지 몽땅 달라고 말하는 그였다. 거의 매장을 통으로 털어간다고 봐도 무방했다.
“너무 많이 사시는 거 아니에요? 어··· 물론 저희야 좋긴 한데. 조카가 그렇게 많으신가.”
“예, 뭐.”
조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설명하기엔 또 상황이 복잡하다. 시간도 없었다. 태구는 반 박자 늦게 그렇다 대답했다.
“잠시만요. 엄마! 아니 사장님! 저 포장 좀 도와주세요. 이분이 여기 있는 옷 다 구매하시겠데요.”
당황한 혜민이 엄마를 호출했다. 그 말에 오영실 여사가 설마 하는 표정을 지으며 헐레벌떡 다가왔다.
“여기 있는 걸 다 산다고?”
“네. 조카가 많나 봐요.”
그 순간, 아줌마의 촉이 발동했다. 오영실이 태구를 보며 물었다.
“···조카가 아니라 그 아이들한테 입히려는 거죠? 태워주려고요? 내가 보니까 그런 것 같은데.”
이미 확신하고 있는 어투였다. 태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유, 어유. 진짜 젊은 총각이 어쩜 이렇게 마음 씀씀이가 넓을까. 이게 다 얼만 줄 알고···”
“돈은 신경 쓰지 마시고 다 포장해주세요.”
순간 오영실의 눈가로 빠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태구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한 것도 있지만 다시금 그 영상이 떠오른 것이다.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자식 키우는 엄마 입장이라 더 마음이 쓰이는 걸지도 모르겠다.
결심을 내리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작지만 마음을 보태고 싶었다. 그녀가 태구를 이끌고 계산대로 이동했다.
“알았어요. 일단 양이 많아서 포장하는 데 시간이 걸리니까 계산부터 합시다.”
“네.”
이윽고 계산대 앞에 선 태구가 카드를 내밀었다. 카드를 건네받은 오영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손을 보탰다. 영수증과 카드를 받은 태구가 고개를 갸웃했다.
“계산에 착오가 있는 것 같은데요.”
못 해도 족히 오백은 거뜬히 넘을 줄 알았는데, 백만 원 정도가 끊겼다. 태구는 계산이 잘못되었다고 여겼다. 그래서 다시금 카드를 내밀었다.
“넣어둬요. 마음 같아서는 내가 다 내고 싶은데 현실이 참 녹록지 않아서···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보탰어요. 나도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그 영상 보니까 마음이 찢어지더라고요. 먼 길 떠나는데 옷이라도 제대로 입혀서 보내고 싶고···”
오영실은 그리 말하며 태구가 내미는 손을 살포시 밀어냈다. 생각지도 못한 온정이었다. 태구는 가만히 오영실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엔 많은 감정이 담겨있었다.
안쓰러움, 연민, 자식을 향한 사랑, 미안함, 죄책감. 이런 마음을 거절할 필요 무어 있을까. 본래 사람은 나누며 살아야 한다.
“그럼, 사양하지 않고 잘 전달해주겠습니다.”
“그래요. 내가 그 영상을 보니까 안 믿을 수가 없겠더라고. 꼭 그 애들한테 전해주고 어른들이 미안했다고도 전해줘요.”
정작 사과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애먼 사람이 이렇게 가슴을 치고 있다.
태구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편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그래도 아직은 살만한 세상인 것 같아서.
그리고 이는 괜한 생각이 아니었다.
“형님, 형님—!”
매장 안으로 들어오는 성규와 호진이 그걸 방증했다.
“굳이 올 필요 없다니까.”
“이것만 전하고 가려고 했어요. 형님, 여기요 받아주세요.”
둘은 그렇게 말하며 들고 온 쇼핑백을 건넸다.
“이게 무엇인데.”
“저희도 애들한테 뭣 좀 주고 싶어서요. 별건 아니고요. 그냥 이것저것 손 가는 대로 사봤어요. 그사이에 형님 가실까 봐 마음이 급해서 제대로 고르지도 못했다니까요.”
“그래도 살 건 다 샀어요! 가는 길 심심하지 말라고 색종이도 사고, 또 여자애들은 인형 좋아하잖아요. 인형도 사고 과자랑 과일도 좀 샀고···”
태구는 그런 둘을 보며 생각했다. 정말이지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 맞는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