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29)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 29화(29/157)
오해
예선을 치르고 하루가 지났다.
며칠 이내로 연락을 준다고 하긴 했는데, 이렇게나 빨리 연락이 올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제보자 때문 아니겠나. 태구야 급할 게 없지만 제보자는 매분 매초를 피 말리는 심정으로 살고 있을 테니까.
그렇게 제작진의 연락을 받고 도착한 곳은 서울의 어느 주택가였다.
태구의 요청에 따라 제보자의 집에서 녹화를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제보자가 거주하고 있다는 빌라 앞,
제작진이 태구를 보며 인사를 건넨다.
“태구 님, 여기요. 여기에요.”
그중에 안면 있는 이도 있었다.
김영채 작가였다.
“작가님도 계시네요. 안녕하세요.”
“하하, 저 보니까 반갑죠? 아무래도 아는 얼굴이 있으면 조금 더 편하게 방송하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자원해서 나왔어요.”
“아, 예. 근데 다들 일찍 나오셨네요. 아니면 제가 늦은 건가요?”
태구가 손목에 찬 시계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러자 김영채 작가가 다급히 손을 휘저으며 이렇게 말한다.
“에이, 약속한 시각보다 십 분이나 이른걸요? 아! 저희는 카메라도 설치해야 하고, 이것저것 점검할 게 있어서 조금 더 서두른 것뿐이에요.”
“아하.”
“근데 뭐가 달라진 것 같은··· 아! 말투! 그러고 보니 그 선비 같은 말투 안 쓰시네요? 그건 인터넷 방송 전용인가 봐요?”
그럴리가 있겠나. 그저 시간이 지나면서 현대식 말투에 익숙해진 것 뿐이다. 지금도 편한 사람 앞에서는 곧잘 예전 말투가 튀어 나가곤 한다.
이를테면 흑룡의 앞이라던가. 같은 맥락에서 인터넷 방송도 그러했다. 하지만 여긴 다르다.
그렇지만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는 없기에 태구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항, 컨셉이셨구나. 아! 그리고 그날 예선, 정말 잘 봤어요. 저 진짜 깜짝 놀랐잖아요. 도대체 무슨 수로···”
“작가님, 준비 다 됐다고 합니다.”
그때, 함께 온 그녀의 동료가 촬영 준비가 끝났다는 신호를 보낸다.
“어어. 알았어. 아이구야. 제가 너무 쓸데없는 말을 많이 했죠?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 참을 수가 있어야죠. 아무튼 이제 제보자분 만나보게 되실 텐데요.”
“네.”
“저희는 그냥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심 될 것 같아요. 질문도 자유롭게 하시고, 솔루션도 태구 님이 생각하신 방향으로 진행하시면 됩니다. 저희는 그저 그 모습을 기록하기만 할 거예요. 이전에 약속한 대로 제작진의 개입은 결코 없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됐다. 태구의 옆으로 카메라맨 둘이 붙었다. 곧 그들이 들고 있는 카메라에 불이 켜졌다.
태구는 제보자가 살고 있는 집을 향했다. 김 작가와 카메라맨은 입을 닫고 조용히 그의 뒤를 따랐다.
띵똥—
초인종을 누르기가 무섭게 문이 열린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제보자.
“···들어오세요.”
그녀는 영상에서보다 더욱 수척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핏기 없는 얼굴, 길게 늘어진 다크서클, 공허한 눈빛은 그녀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그 모습에 태구가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허나, 섵부른 판단은 하지 않기로 했다.
“실례하겠습니다.”
“···청소를 못 해서 집안이 좀 어지러워요. 신발 신고 들어오세요. 저는 괜찮아요.”
집안 역시 그녀의 몰골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그렇지만 신발은 벗고 들어갔다.
거실 창 앞으로 퍼런색 이삿짐 박스가 널브러져 있고, 바닥에는 노란색 종이가 이리저리 찢겨있다. 잘게 조각나 있지만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부적이었다.
‘소금에, 나뭇가지에···’
대체 저런 물건은 왜 집안에 들였을까 싶은 것도 몇 있다.
그러던 때였다. 여자가 집안에 들어선 태구를 보며 꾸벅 허리를 숙였다.
“먼저 여기까지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드려요. 제 사연 뽑아주신 것도요. 제작진분들께 이야기 들었어요. 저 도와주기 위해서 프로그램에 참여하셨다고···”
“그보다 집안부터 좀 둘러볼 수 있을까요?”
태구는 손을 휘휘 저으며 바로 본론을 드러냈다. 고맙다는 말 듣자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었으니. 저 말은 일이 다 끝나고 들어도 충분했다. 더불어 당장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아아— 네.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후우, 우선 저쪽이 언니 방이구요.”
집을 둘러보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작 방 두 개 있는 투룸이었으니. 길게 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를 발견한 태구였다.
“흐음.”
“어, 어떤가요? 뭔가 좀 보이세요? 저희 언니. 제 옆에 있는 것 맞나요?”
태구의 불편한 기색을 눈치챈 것일까. 제보자가 불안한 눈빛을 하며 물어온다.
태구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뜻밖에도 이곳엔 언니의 영혼은 없었다.
“···그, 그럴 리가 없는데. 흐으, 언니가 없다고요? 정말 제 옆에 없어요? 저 진짜 거짓말하는 거 아니거든요. 제가 분명히 언니 봤거든요.”
제보자도 당황했고 제작진도 당황했다.
“거짓말 아닌 거 알아요. 당신 곁에 희미하지만 영혼의 기운이 묻어있는 게 보이거든요. 그런데 이 집엔 없어요.”
제 곁엔 있지만, 집안엔 없다.
태구의 말에 그녀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진다.
“아, 아닌데. 어제도 분명 꿈에 나왔는데··· 서, 설마. 아, 아. 나 때문이에요. 어떡해요. 내가 언니를 쫓아버려서 그래서 없나 봐요. 어쩌죠? 지금 밖에 너무 추운데. 나 때문에 집에도 못 들어오고···”
그러다 곧 실 끊어진 인형처럼 픽 바닥으로 고꾸라진다. 그녀가 온몸을 부르르 떨며 울음을 터트렸다. 뭔가 짚이는 게 있는 듯한 분위기였다.
“진정하고 일단 좀 앉아봐요. 물어볼 말이 있으니까.”
태구는 그렇게 말하며 여자의 어깨 위로 손을 올렸다. 이어서 따스한 기운이 손끝을 타고 여자의 몸으로 흘러간다.
***
“언니분이 실종된 그날부터 이야기해봅시다. 언니가 사라진 그날부터 지금까지 무슨 일을 겪은 거예요? 언니의 영혼을 봤다고 했잖아요. 어디서 본 거예요?”
태구의 물음에 고아경은 숨을 고르게 쉬며 묻어둔 기억을 더듬었다. 조금 전보다 상태가 많이 좋아진 그녀였다.
“흐으, 그러니까 6개월 전이었어요.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해요. 초저녁쯤에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아르바이트 대타 자리가 났는데 늦을 것 같다고, 먼저 자라는 연락이었어요.”
태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그 전화에 제가 막 날뛰었던 기억이 나요. 펑크 난 알바 자리가 여기서 꽤 먼 곳이거든요. 오는 시간만 두 시간 가까이 될 텐데··· 늦은 밤, 집에 오다 무슨 일이라도 나면 어떡해요. 얼마나 무서운 세상인데. 그래서 말렸어요.”
“두 시간? 거기가 어딘데요.”
“경기도 시흥이라고, 저희 자매가 예전에 살던 동네예요. 또, 그때가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이틀밖에 안 됐을 때라서 괜히 혼자 자기도 무서웠고요.”
집안이 왜 이리 너저분한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 언니가 실종돼버렸는데 한가로이 짐 정리할 수 있겠는가.
그 짐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질 텐데.
“아무튼 그냥 느낌이 이상했어요. 그래서 당장 오라고 막 화를 냈는데 끊어버리더라고요. 하아, 그때 어떻게든 말렸어야 했는데···”
“그날이 언니가 사라진 날이에요?”
끄덕끄덕
“아무리 기다려도 안 왔어요. 핸드폰은 꺼져 있구요. 질린다는 문자 한 통 보내놓고··· 근데 그거 우리 언니가 보낸 거 아니에요. 언니는 나한테 그런 말 안 해요. 언니가 어떤 사람인데, 언니는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에요. 엄마나 다름없다고요.”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을 질려할까. 세상에 그런 부모는 없다.
그녀는 언니에게 무슨 일이 있음을 직감했고 곧장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경찰은 언니의 실종을 ‘단순 가출’로 분류했다.
고아경은 끝없는 절망감을 느꼈다. 그렇다고 멍하니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내 언니니까. 그때부터였다. 그녀가 직접 언니를 찾아 나선 것은.
“언니의 영혼은 어디서 마주하게 된 거예요?”
“언니가 알바했던 가게 근처에서요.”
아경은 하루가 멀다하고 그곳을 찾았다. 그녀가 알고 있는 언니의 마지막 행적지였으니. 그곳에 가면 언니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하염없이 가게 근처를 헤집고 있는데···
“언니를 봤어요. 언니가 내 이름을 부르면서 손을 젓고 있었어요. 정말이지 드디어 찾았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울며불며 언니에게 뛰어가는데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흐음.”
“제가 차도로 뛰어들고 있었던 거예요. 귀신에 홀린다는 게 이런 건가 싶었어요.”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같은 경험을 했다. 갑자기 건물 위에서 화분이 떨어지기도 했고, 달려오는 자전거에 부딪히기도 했다.
“언니를 볼 때마다 안 좋은 일이 벌어졌어요. 그렇지만 그건 참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불쑥 떠오르는 섬뜩한 장면에 아경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태구가 이렇게 물었다.
“언니의 모습이 점점 달라지던가요?”
“!”
아경이 번뜩 감은 눈을 떴다. 치켜뜬 눈동자 안으로 놀라운 감정이 일렁이고 있었다.
“마, 맞아요. 정말 너무 무서웠어요.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채 저를 쳐다보는데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만 같았어요. 또, 어떤 날은 기괴하게 관절을 꺾으며 달려와 제 목을 조이는데, 흐윽.”
“······”
“아무리 잊어보려 애써도 그 모습이 지워지지 않아요. 눈을 감아도 떠올라요.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어요. 흐으, 그래서 살려고 내가 살려고 무속인을 찾아갔어요.”
그녀는 작은 주먹으로 제 가슴을 쿵쿵 때리며 눈물을 흘렸다. 아경은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태구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갔다.
“으음.”
제보자는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애초에 언니의 영혼은 이 집 안에 머물고 있지 않았다. 부적 따위로 쫓을 필요도 쫓을 수도 없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그곳에 찾아간 적 있어요?”
“아뇨. 너무 무서워서 갈 수가 없었어요. 가야 하는데, 언니를 찾아야 하는데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서···”
“동생을 잘 아는 언니네.”
“네?”
“언니가 그쪽, 그러니까 제보자분이 그곳에 가는 걸 바라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 모습으로 나타난 거예요. 오지 말라고. 경고 하기 위해서. 언니를 볼 때마다 위험한 일이 생겼다고 했죠? 그것도 같은 이유예요.”
“어, 어. 하지만···”
“위험했다고 하지만 크게 다친 적 있어요?”
···없었다.
고아경이 벙찐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대, 대체 왜.”
쉽사리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이유로 그곳에 오지 않길 바란 걸까.
“그것까진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직접 가서 확인해 봐야겠죠.”
“거길요?”
“그러려고 사연 신청한 거 아니에요? 무섭고 두렵지만 다시 찾아 나서려던 거 아니었어요?”
맞다. 정말 너무 무서운데 그런 언니의 모습이라도 다시금 보고 싶어서. 그래서 제보했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내가 찾아줄게요. 그러니 나랑 같이 갑시다.”
그렇게 고아경은 태구가 내민 손을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