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3)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 3화(3/157)
태구의 난
이럴 순 없다.
다시 말하지만 이럴 순 없는 거다.
‘내가 왜···’
자신은 분명 신전에 있어야 했다.
실제로 조금 전까진 분명 그곳에 있었다.
성스러운 힘이 가득 찬 그곳에서.
태구는 삶의 발자취를 거슬러 보고 있었다.
이계에서 눈을 뜨던 날, 교단에 거둬지던 때, 성흔을 부여 받던 날, 심상의 신전에 첫 발을 내딛던 때, 이단 심문관으로 서임식을 치루고 멸악을 행하던 날, 은퇴 후 후임을 기르던 나날들까지.
죽기 직전이 아닌 죽고 나서 본다는 게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어쨌든 그건 분명 주마등이었다.
그리고 그 끝에 그분의 목소리를 들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그 옛날, 성흔이 내려지던 때 들었던 말과 같았다. 그날도 깊은 의식 속에서 이와 같은 말을 들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 눈앞이 환해졌다.
“대체 이게 다 무엇이냔 말이더냐.”
동시에 눈앞의 풍경이 빠르게 바뀌었다.
성력 한 줌 없는 공간. 기억 저편에 묻어둔 물건들이 저를 반기고 있다.
대형 모니터, 빛을 내는 조명판, 대리석이 아닌 흰 벽지, 가발과 같은 소품, 천장에 달린 형광등까지.
이는 분명 지구의 물건이다. 그걸 반증하듯 누군가 자신의 옛 이름을 부르짖고 있다.
“태구야.”
지구인으로 살았을 적 불리던 이름. 강태구.
“태구야, 강태구야! 넌 오늘 아주 뒈졌다고 복창해라. 엉?”
그런 이름을 입에 담았다는 건 그 역시 지구인이라는 거겠지.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마주했다.
“아쭈, 이제야 내 말이 좀 들리세요?”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강태구’를 죽음으로 내몬 인간이었으니.
“···정말 개상만이로군.”
다름아닌 개 같은 상남이 새끼였다.
말 그대로 인간 같지 않은 개같은 놈.
아니 개보다 못한 놈이지.
그런 놈 밑에서 한때 자발적 노예 생활을 했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개보다 못한 놈이었던가.
실소와 함께 새삼 묻어둔 기억이 솟아오른다.
“하? 와, 나 진짜 돌겠네. 뭐? 개상만이로군? 이 새끼가 진짜 오늘 뭘 잘못 처먹었나. 아님 카메라 켜져 있다고 지금 이렇게 뻗대는 거냐. 엉?”
“상남이 형! 60장 짜리 미션 걸렸다고! 카메라 앞으로 데려와서 교육 시켜!”
“···너 이 새끼 따라와.”
예전에도 걸핏하면 저렇게 손을 뻗대고 자신의 뒤통수를 후리곤 했었다. 방송을 알려준다는 명목하에.
그뿐인가. 카메라 앞에 세워두고 온갖 조롱과 멸시를 일삼았지. 그땐 저깟 놈이 대체 뭐라고 당하고 있었는지.
‘순진하다 못해 멍청하기 그지없었지.’
태구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스스로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면서 제 멱살을 잡아챈 상남의 팔뚝을 강하게 내리쳤다.
“어억? 이, 씨댕···”
실로 번개같은 속도였다. 그 결과 상남이 야심 차게 잡은 멱살은 저항 없이 풀어졌고.
“커헉.”
상남은 돼지 멱따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는 왜 눈앞이 흐릿해지는지 알 수 없었다.
“히익!”
반면, 이 모든 상황을 똑똑히 지켜본 이가 있다. 흑룡이었다.
“미, 미친. 형님들. 저 새끼가 상남이 형 목울대를 쳐서 기절시켰어요. 형. 상남이 형! 씹, 안 움직이는데?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왜 목은 급소라던데···”
예상치 못한 장면을 목격한 흑룡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그 떠들썩한 목소리가 태구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흐음.’
“뭐, 썅. 네가 보면 뭐 어쩔건데. 나도 상남이 형처럼 때려눕히려고? 어디 한번 그래 보던가. 나 해병대 흑룡부대 출신이야, 이 새끼야.”
“···”
“글고 이거 다 찍고 있거든? 상남이 형 깨면 너 이번에 아주 깽 값 제대로 물게 될 거다. 거기에 나까지 더하고 싶으면 함 드루와 보던가. 아니면 서로 합의하고 제대로 한판 뜨실?”
반평생을 신의 사도로 산 테오다. 예전처럼 권능을 사용할 순 없다지만 악한 기운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기운을 흑룡에게서 느꼈다.
태구의 몸이 저절로 반응했다.
“어어, 온다 이거지? 그래. 어디 한번 와봐··· 헉.”
흑룡이 손을 까닥이며 태구를 맞이했다.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하게 몸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이상한 일이었다.
흑룡은 저도 모르게 태세를 전환했다.
“혀, 형님들. 일단 빨리 신고 좀요. 저 새끼 눈깔이 완전히 돌았어. 씹. 장난이 아니라 진짜 무슨 일 저지를 것 같아. 주작 같은 거 아니라고!”
그가 뒷걸음질치며 필사적으로 신고를 외쳤다. 감히 반격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무서운 기세로 달려드는 태구의 모습에 완전히 압도당한 것이다.
“히끅.”
그런 흑룡의 머리통을 움켜쥐는 것은 태구에게 식은 죽 먹기 수준이었다. 태구가 외쳤다.
[교단의 권위와 그분의 이름으로 명한다!]수 백 년을 내리 이어온 교단의 신성 주문.
성력을 다루지 못해도 괜찮다.
주문 자체에 성스러운이 힘이 깃들어 있으니.
“흐, 흐끅. 끄아아악!”
곧 환한 빛이 방안을 휘감았고, 흑룡은 감정이라도 된 듯 부르르 몸을 떨어댔다. 그의 몸에 붙은 망령의 기운이 성력에 반응했다.
“놔, 놔, 끄, 끄아아악!”
흑룡은 절규에 가까운 비명을 내질렀다.
“놔, 놔! 손 떼란 말이야. 이 벌레 같은 놈아!”
그런데 그 순간.
도저히 흑룡의 목소리라고 할 수 없는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방안을 채웠다. 누구도 꾸며낸 목소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만일 그랬다면 흑룡은 인터넷 bj가 아닌 탑배우 혹은 이름난 성우가 되었을 테니까.
채팅창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다시 한번 말한다. 당장 이 몸에서 떨어져!”
태구 역시 다른 의미로 놀랐다.
습관대로 신성 주문을 읊긴 했지만 이게 통할 줄이야.
그도 그럴 것이 여긴 엘데르가 아닌 지구이질 않나.
‘이곳에서도 그분의 힘이 통하다니.’
뜻밖이긴 하지만 그뿐. 태구는 제 할 일을 계속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끄으윽, 끄윽. 흐읍.”
눈을 뒤집어까고, 관절을 기형적으로 꺾어가며 바락바락 욕설을 내지르던 흑룡이 몸을 축 늘어뜨렸다.
비로소 정신을 잃은 것이다. 이는 그의 생기를 탐하던 망자의 사념이 퇴치됐다는 걸 의미한다.
‘물론 완벽한 퇴치는 아니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처치는 다 한 거나 다름없었다. 더 나아가 쓰러진 남자를 위해 기운을 복 돋는 기도를 해줄 수도 있지만, 태구는 그러지 않았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지.’
개상남이랑 어울리는 놈이 뭐가 예쁘다고. 그보다는 상황을 파악하는 시간을 갖고자 했다.
늦었지만 대체 자신이 왜 여기 와 있는 건지, 지금 자신의 모습은 어떠한지와 같은 것들 말이다.
‘분명 강태구라고 불렀어. 일단 거울부터 좀···’
그때였다.
지워진 성흔이 다시금 발현하며.
[망령의 사념을 처치했습니다.] [신성력을 획득합니다.(+1)] [신관의 조건을 달성합니다.] [신의 사도로 각성합니다.] [신성력을 획득합니다.(+100)] [고유 권능을 부여합니다.]눈앞으로 익숙한 창이 떠올랐다.
***
[’BJ찐상남’ 님이 방송을 종료합니다.]– ???
– 이거 뭐냐. 찐이냐? 주작 아냐?
– 자낳게 상남이가 60장 아니 도합 110장 짜리 날리는 주작을 펼친다고? 머리에 총 맞았냐?
– 총은 아니고 다른 걸 맞긴 했지.
– ㄷㄷㄷㄷ 일단 신고부터 하자
– 상남이 스튜디오 주소 아는 사람. 신고ㄱㄱ
– 풍찢남 형님이 했대
– 아 존내 궁금하다. 택시 타고 갈까?
– 응. 그러고 내일 시체로 발견되쥬?
– 그래서 상남이 새끼 뒈짐?
– ㅇㅇ.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비비빅.
– 무슨 일이야. 설명 좀. 나 지금 들어 옴.
– 상남이 매니저가 난 일으킴ㅋ 살인의 난.
– 아까 태예가 룡이한테 뭐라고 하는 지 들은 사람.
– 외계어로 샬라 거리던데? 삥샹빠라삥낑꽁?
– 그건 나도 들었고 뭐, 죽은 자 어쩌고 했잖아.
– 아아. 그거 대충 사탄 들렸다는 말인 것 같았음.
– 사탄? 아씨, 다들 뭐래. 아 오늘 방송 볼 걸ㅠㅠ
***
성흔(聖痕)
문자 그대로 성스러운 힘이 깃든 흉터를 말한다.
‘마왕을 멸하면서 사라진 성흔이건만.’
그런 성흔이 다시금 태구의 손목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서 온몸을 관통하는 황홀감이 느껴진다.
‘그래. 이런 느낌이었지.’
모처럼만에 느껴보는 충만한 성력이다.
이런 힘을 느낀 게 대체 얼마 만이던가.
‘아마 못해도 십 년은 되었지?’
십 년 전, 마왕을 멸함과 동시에 힘의 원천이 되는 성흔이 사라졌다.
그로인해 주어진 권능을 다룰 수 없게 되었고 태구는 일반인과 다름없는 육체로 돌아가게 되었다.
허나, 그는 낙심하지 않았다. 마의 근원을 제거한 이상 ‘권능’은 없어도 되는 능력이었으니.
세상은 평화를 되찾았고 그 역시 안락한 나날을 보장받았기에 정말 괜찮다 그리 자위했다.
그렇지만 실상 마음 한쪽은 항상 공허했다.
‘괜히 신에게 버림받은 기분이랄까.’
그간 너무 많은 피를 묻혀 그분이 나를 멀리하시는구나 싶은 마음에 울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돌아돌아 이렇듯 다시 성흔이 내려진 걸 보면, 아무래도 헛된 생각이었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다시금 새겨진 성흔은 신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알려주는 확실한 징표였으니.
태구는 환히 웃으며 새겨진 성흔에 신성력을 밀어 넣었다. 망령의 사념을 퇴치하고 얻은 한 줌의 성력이었다.
곧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고유 권능을 발동합니다.] [’심상의 신전’을 개방합니다.]‘전과 같네.’
성흔이 새겨진 위치가 이전과 같기에 권능 또한 같을까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였다.
그렇게 심상의 신전에 발을 디딘 태구는 담담히 주변을 살폈다. 익숙한 공간이었다.
‘신전의 중앙부다.’
순백색 12기둥이 천장을 받치고 정중앙에는 그분께 공물을 바치는 제단이 자리해 있다.
시선을 우측으로 돌리면 신전의 상층부로 향하는 게이트가 보이고 좌측에는 신전의 지하와 연결된 게이트가 보인다.
주변이 조용한 걸로 봐선 아무래도 이곳엔 저 혼자인 성싶다.
‘마중 나온 권속도, 또 악령들이 내지르는 비명도 들리지 않는 걸 보면 다 사라진 모양이지.’
그러고 보니 신전은 그 옛날 처음 발을 디뎠을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완벽한 무의 공간.
그가 쌓아올린 성물의 탑도 없고, 또 언젠가 기둥에 새겨넣은 조각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계시인가.’
그분의 의도가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영면을 취해야 할 자신을 왜 여기로 보냈으며, 또 이와 같은 능력을 다시금 주셨는지.
‘감히 추측하지 말자.’
태구는 제단 앞으로 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이 답을 주셨다.
[만일 내게 천 번 아니 만 번의 삶이 있다면 그 삶 역시 여신, 헤스티아 님을 위해 바치겠나이다.]자신이 내뱉은 마지막 유언을 다시금 보여 주었고, 아주 오래된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려주셨다.
답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분은 테오 경이 아닌 ‘강태구’의 몸을 통해 멸악을 행하길 바라신다. 자신을 말미암아 이곳 지구가 이로워지길 바라신다.
그가 알기로 지구엔 흑마법사나 네크로맨서 같은 것들은 없다. 그러나 조금 전 그가 느낀 망령 같은 것들은 많을 터.
‘마땅히 그러겠나이다.’
태구는 그것들을 멸하겠다 대답했다.
그러면서 당장 자신이 무얼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일단 벌여두고 온 일을 처리해야 했고 더불어 이 땅에 정착하기 위해 꼭 필요한 그것을 구하고자 했다.
‘개상남에게 받으면 되겠군.’
결론을 낸 태구가 신전을 나섰다.
그렇게 현실로 돌아온 태구의 귓가에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띵동, 띵동, 띵띵띵동.
이는 누군가의 방문을 알리는 인터폰 알림 소리였다.
[경찰입니다. 신고받고 왔습니다.]그리고 이 소리는 태구만 들은 게 아닌 듯싶다.
“경찰, 경찰!! 씹. 넌 이제 끝났어.”
바닥에 엎어져 있던 상남이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일어나 인터폰을 향해 내달리는 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