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30)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 30화(30/157)
푸른색 영혼
달리는 차 안.
“으음, 으흐응.”
유남호가 허스키한 보이스로 낮은 허밍을 흥얼거린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따라부르고 있었다.
드보르작의 ‘유모레스크’
밝고 경쾌한 바이올린 선율 사이로 애잔함이 느껴지는 곡. 그가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곡이다.
애정하는 곡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이제 지나칠 장소 때문일까.
메마른 그의 입가에 서서히 미소가 깃든다.
이윽고 핸들을 쥔 유남호가 차량 속도를 낮춘다. 그러면서 닫힌 창문을 여는데···
새하얀 현수막이 차창 너머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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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찾습니다.]이름 : 오혜윤 (여,19세)
실종 : 2020년 12월 1일
특징 : 158cm, 쌍꺼풀, 마른 체형
특이 : 지적장애 2급
착의 : 상의 분홍색 캐릭터 셔츠, 검은색 바지, 흰 운동화 착용, 리본 반지.
사람을 애타게 찾습니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게 도와주세요.
연락처 : 010 – XXX – X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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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아이를 찾는 현수막. 그리고 저 현수막에 붙은 아이가 바로 자신의 첫 사냥감 되시겠다.
실종된 지 아니 흙으로 돌아간 지 벌써 삼 년이나 지났는데도 현수막은 새것처럼 빳빳하다.
다 헤져 바래져 갈 때쯤이면 아이의 가족이 새로운 현수막을 달아놓으니까.
즉,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는 거겠지. 참으로 재밌지 않은가.
“크, 크하하하푸하.”
유남호는 곧 숨이 넘어갈 것처럼 웃어 재꼈다.
타탁. 핸들을 치기도 한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난 듯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첫 사냥에 나서 얻은 전리품, 반지였다.
작은 리본이 달랑거리는 금색 반지.
이 길을 지날 생각으로 미리 준비해뒀다.
“하아.”
그는 현수막을 한 번, 손끝에 걸린 반지를 한 번씩 번갈아 보았다.
그러고 있자니 휘발된 기억이 다시금 되살아난다.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도 느껴진다. 이보다 더 황홀할 순 없을 것 같다.
“흐으.”
반지를 쥔 손을 코끝에 가져다 대어본다.
어쩐지 비릿한 혈향이 나는 것도 같다.
따사로운 햇살, 듣기 좋은 노래, 가슴 떨리는 추억. 참으로 좋다. 황홀감에 괜스레 눈이 감긴다.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을 오롯이 즐기고 싶다.
허나, 때와 장소가 맞지 않았다.
그가 피식 웃으며 감은 두 눈을 떠올렸다.
그 순간.
유남호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익—!
쿠당탕탕.
급정거에 뒷좌석에 올려 둔 짐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뚜껑이 닫혀 있길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락스 냄새로 진동할 터.
“에이, 씨”
유남호는 미간을 찌푸리며 넘어진 수어개의 락스통을 좌석 위로 올렸다. 그러고는 다시금 앞을 보았다. 그의 차 앞으로 여자아이가 보였다.
하마터면 칠 뻔했다. 쌍년, 누구 인생 조지려고. 슬쩍 신호를 보니 분명 제 신호가 맞았다. 그가 눈을 부릅뜨고 여자를 바라보았다.
“저 미친년이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여자는 빨간불이 켜진 횡단보도에서 무언가를 줍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낡은 유모차를 끌고 있는 노인이 보인다. 그 순간, 여자가 멈춰 선 유남호의 차를 보며 크게 소리친다.
“으, 으앗. 놀라셨죠. 죄송해요. 제가 진짜 금방 정리할게요.”
그 말에 유남호가 열린 창문 사이로 빼꼼 머리를 내밀었다. 그리고 뒤를 한번 바라보는데, 오가는 차량이 없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차에서 내렸다. 그런 다음 범퍼 가까이 굴러든 사과 하나를 들고 여자에게 다가간다. 조금 전, 차 안에서 짓던 야차 같은 표정은 온데간데없다.
유남호는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잘 어울리는 미소였다.
“아무렴, 혼자 보단 둘이 치우는 게 더 빠를 것 같아서요. 마침 차도 없고요.”
그러한 미소에 여자 역시 방긋 웃어 보인다.
“아아— 감사합니다.”
“학생분, 할머니예요?”
여자가 손을 휘젓는다.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길 가던 중에 할머니께서 당황하고 계시길래 뭔가 싶어서 와봤죠. 보니까 짐도 다 떨어뜨리시고, 신호등도 빨간 불로 바뀌어 있어서요.”
“아아. 난 또 친할머니인 줄 알았네. 학생이 참 착하네.”
“에이, 아니에요. 누구라도 다 도왔을 텐데요. 뭘. 아저씨도 이렇게 차에서 내려서 도와주고 계시잖아요.”
“그 말도 맞네. 딱히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맞아요. 서로 돕고 살면 좋잖아요. 다 같이 사는 세상인데. 헤헤.”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그 옆에 선 노인이 머뭇머뭇 입을 연다.
“이 늙은이 때문에 두 사람이 고생이네. 정말 미안하고 고마우이.”
“에이, 그런 말 마세요.”
“맞아요. 어르신. 대충 주변 정리 끝나면 제가 횡단보도 건널목까지 부축해드릴게요.”
다른 이가 보았다면 미소 지을 훈훈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유남호의 차량 조수석에 앉은 여자의 눈엔 다르게 보였다.
고채원은 싸늘하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유남호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저 짐승 같은 인간의 면모를 알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아, 안돼!]그녀의 상념은 이어지지 못했다.
느껴서는 안 될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
유남호를 바라보는 고채원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수석에 앉아있던 고채원이 그 모습을 감추었다.
***
“저기예요. 그날 밤, 언니가 알바했던 고깃집이요.”
고아경은 태구와 함께 경기도 시흥을 찾았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오는 동네였다.
좀처럼 용기를 낼 수 없었는데.
태구가 내민 손을 잡는 순간 다시금 언니를 볼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샘솟았다.
더욱이 그가 말하지 않았던가.
언니는 자신을 해치려는 게 아니라고.
그렇다면 더더욱 가야 했다.
언니가 대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알아야 했다. 진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고깃집 사장님이 말하길, 새벽 세 시쯤 나섰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저기 있는 편의점에 들러서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보냈고요. 편의점 CCTV는 제가 직접 확인했어요.”
그녀는 수백 번도 더 왔던 장소를 되짚어가며 자신이 조사하여 알아낸 사실을 설명했다. 태구는 가만히 그 말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첫 차가 운행할 때쯤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향했을 거예요. 그쪽엔 따로 설치된 CCTV가 없어서 보진 못했지만, 아무튼 분명해요. 분명 버스 정류장에 있다가 혹은 그쪽으로 향하다가 무슨 일을 겪은 거예요. 그리고 그곳에서 언니의 영혼도 봤구요.”
편의점과 버스 정거장까지의 거리는 꽤 되었다. 게다가 주택가가 아닌 공장 단지 부근에 위치해 있었다. 새벽길, 여자가 아니 남자라도 혼자 걷기엔 제법 무서울 분위기였다.
“언니를 가장 많이 본 장소가 여기예요?”
“그렇지는 않아요. 다 비슷해요. 집 근처에서도 봤고, 공장 단지에서도 봤고, 그냥 길 가다가도 봤으니까요.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근처에 절이 있는데 그곳에서 가장 많이 본 것 같아요.”
“절?”
끄덕끄덕.
“언니 찾으러 올 때마다 그곳에 들러 기도를 올렸거든요. 신이 있다면 좀 도와달라고요. 우리 언니 좀 찾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빌러 간 거죠. 그쪽으로 가볼까요? 여기 정류장엔 없는 거죠?”
고아경은 그리 물으며 주변을 휙휙 돌아보았다. 보이지 않으니 알 수가 없었다.
그때, 태구가 말했다.
“그럴 필욘 없을 것 같아요. 곧 올 거예요.”
“언니가요? 지금 여기로 오고 있다고요?”
“네.”
태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고아경 곁에 묻은 영혼의 흔적이 강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언니의 영혼이 동생이 이곳에 왔음을 눈치챈 것이다.
“어, 어···”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했던가.
곧이어 그녀의 언니가, 고채원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빛 색상을 한 영혼이었다.
[아아아아악! 안돼——!]누군가를 간절히 지키고 싶을 때.
수호하고자 하는 염원만 남았을 때.
발하는 색상이었다.
[오지마, 오면 안돼. 가! 가라고!]고채원은 얼마 안 남은 제 영력을 태워 가며 동생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솨아아아——
그러자 길가에 심어진 가로수가 후드드 잎을 떨어뜨린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날씨임에도 말이다.
“어, 어어?”
쉽사리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카메라맨이 잽싸게 카메라를 돌린다.
고아경의 동공 역시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직감했다. 언니가 왔구나, 곧 그 무서운 모습으로 제 목을 조르러 오겠구나.
하지만 이번엔 피하지 않을 거다. 그녀가 용기 내 소리쳤다.
“언니. 나야. 아경이. 나 다 알고 있어. 나 여기 오는 거 싫어한다면서! 지금 내 옆에 계신 분 보이지? 이분이 알려주셨어. 언니. 우리 이야기하자. 응? 이분이 언니 말 들어줄 수 있어. 그러니까 제발 나 쫓아내지 마. 응?”
[가, 제발 가, 좀 가라고 !]“언니. 무슨 일이야? 누가 언니한테 나쁜 짓했어? 그런 거라면 내가, 내가 다 찾아낼 거야. 그러니까 나 믿고 이분한테 다 말해줘.”
애달픈 아경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고채원의 절규는 계속된다. 오히려 그 기세가 더욱 강해지기까지 했다. 이어서 그녀가 무서운 기세로 동생을 향해 달려들었다.
결국 태구가 나서려는 때였다.
[아, 안돼. 안돼···]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는 물빛 영혼. 그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역력하다.
[가, 가, 제발 좀 가.]그녀는 안절부절못하고 앞과 뒤를 번갈아보았다. 초조의 근원은 뒤에서 접근하고 있는 하얀색 차였다. 태구가 눈치 빠르게 길가에 서 있던 아경의 손을 잡아당겼다.
“어엇.”
그리고 제 등 뒤로 그녀를 감추는데.
때마침 하얀색 차가 태구의 곁을 스쳐 지나간다.
“···”
열린 문틈 사이로 운전자가 보였다. 그 역시 태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태구의 곁에선 카메라를 신경 쓰는 듯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잽싸게 열린 창문을 올렸다.
그렇게 하얀색 차량이 떠나고···
물빛 영혼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태구가 잔뜩 고단해 보이는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못 봤으니 걱정 마요.”
[···!]“저 남자한테서 지키려고 한 거죠? 동생 말이에요.”
물빛 영혼, 고채원이 입을 막으며 되물었다.
“당신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도요. 그러니 대체 무슨 일을 겪어 그러는 것인지, 내가 좀 봅시다.”
태구가 그녀의 어깨 위로 손을 올렸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손을 휘젓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카메라에도 그렇게 담기고 있었다.
***
고채원이 실종된 그날.
“채원이 니가 고생이다. 우리야 급하게 사람 쓸 수 있어 좋았다지만 괜히 마음이 그렇네. 이제 집도 먼데 말이야.”
“버스 타고 전철 타면 금방인데요, 뭘. 다음에도 자리 나면 불러주세요.”
“볼수록 진짜 대단해. 응? 그 돈 모아서 다 어디에 쓰려고.”
“쓸데가 얼마나 많은데요! 당장 아경이 대학교 등록금만 해도···”
“지 등록금은 지가 알아서 하겠지! 언제까지 동생 뒷바라지하고 살려고. 넌 지치지도 않아?”
“헤헤헤. 그러게요. 언제까지 해야 하려나.”
돼지조아 사장은 너스레를 떠는 채원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면서 주머니에 꼬깃 넣어둔 만 원짜리 몇 장을 더 꺼내 봉투에 담았다.
“첫 차 기다린다고 미련 떨지 말고 택시 타고 가.”
“어? 정말 주시는 거예요? 그럼 사양 않고 받겠습니다! 덕분에 오늘 편하게 집 가겠네. 헤헤.”
채원은 냉큼 그 돈을 받아 챙겼다.
그러나 내뱉은 말은 지키지 않았다.
이 새벽에 택시가 웬 말이냐. 그 돈이면 쟁반짜장에 탕수육까지 시켜 먹을 수 있는데.
그녀는 근처 편의점에서 시간을 때우다 첫차가 뜨는 시간쯤 길을 나섰다.
“쫄지마, 고채원!”
을씨년스러운 새벽길 분위기에 짐짓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무슨 일이야 있겠냐 싶은 마음으로 굳세게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도착한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자니.
“으음.”
눈 부신 빛이 그녀의 눈을 때렸다. 그녀의 앞으로 라이트를 켠 하얀색 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아유, 학생. 이 시간에 버스 기다려요? 아직 첫 차 뜨려면 한참 멀었어요.”
“아하하. 괜찮아요.”
“그러지 말고 어디까지 가는데요? 가까운 곳이면 내가 데려다줄게. 아니면 그 지구대 앞에 있는 정거장 그쪽에서 기다려요. 내가 괜히 이러는 게 아니라 저쪽에서 소란 피우는 취객을 봐서 그래요. 혹시나 이쪽으로 올까 봐서. 응?”
채원이 불안한 듯 뒤를 바라보았다. 그에 하얀색 차주가 다시 한번 권했다.
“그러다 진짜 큰일 나요. 학생. 나도 웬만해선 이런 말 안 하는데··· 내가 이번에 딸을 낳아보니까 어린 학생들이 다 우리 딸처럼 보이네.”
차 안, 룸미러 아래로 반짝이는 줄 목걸이가 보였다. 목걸이 안에는 토실토실한 아기 사진이 끼워져 있었다. 때마침 어두운 골목길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어유, 오나 보네. 빨리 타요. 학생.”
“어, 어어··· 그럼 잠시만 실례할게요.”
그렇게 채원은 뭐에 홀린 듯 하얀색 차를 타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