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31)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 31화(31/157)
고채원의 염원
남자의 차에 올라탄 채원은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막상 타고 나서 생각해보니 아차 싶었던 것이다.
“어, 여기 립스틱 떨어져 있는데···”
“그래? 거기 글로브 박스에 넣어둬.”
남자의 바뀐 어투도 채원의 불안을 가중했다.
게다가···
딸칵-
“어?”
열어 본 글로브박스에서 더없는 꺼림칙함을 느낀 채원이었다. 그 안에는 다양한 여성의 물건이 있었다. 반지, 팔찌, 짝 없는 귀걸이, 립스틱, 핸드폰···
‘!’
여자의 물건이기에, 본인 역시 여자이기에.
알 수 있었다.
다 주인이 다른 물건이다.
한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상황이 아니었다.
이상하다. 아주 많이 이상하다.
립스틱을 쥔 손끝이 떨려왔다.
‘고, 고채원 정신 차려.’
때마침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진동을 울린다. 안 봐도 뻔하다. 동생이 보낸 문자겠지.
동생, 아경을 생각하니 미친 듯이 뛰는 가슴이 조금은 진정되는 것도 같았다.
“엇. 넣어뒀어요. 아! 그리고 저는 저기에서 내려주세요. 이제 괜찮을 것 같아요. 태워다 주셔서 감사했구요. 아하하.”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지 않는가. 채원이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며 말했다.
“······”
“저기요?”
그런데 상황은 그녀의 생각보다 더욱 심각하게 흘러갔다. 친절한 동네 아저씨 같은 남자가 가면을 벗어던지는 순간이었다.
“푸, 푸흐흡. 대충 눈치 다 깠으면서. 야. 너 배우 해도 되겠다. 연기가 제법이야. 아, 이제 못 하려나?”
“내, 내려주세요. 여기서 그냥 내릴게요!”
남자의 급작스러운 태세 전환에 채원은 당황했다. 그녀가 빠르게 몸을 돌려 차량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딸칵. 그 순간 차 문이 잠겼고.
“어?”
퍼억.
다시금 몸을 돌려 남자를 바라봤을 땐, 채원의 시야는 까맣게 암전되었다.
‘안 돼···’
부르르——
[대체 언제 올 거야. 걱정돼서 잠을 못 자겠어.] [ㅡㅡ왜 전화 안 받아. 나 혼자 자기 무섭다고.] [빨리 와. 어디냐구우] [언니야!! 나도 내일 외박한다?]채원의 핸드폰은 남자, 유남호의 손에 있었다. 채원을 기절시킨 그가 계속되는 진동 소리에 문자를 확인한 것이다. 여자의 동생이 보낸 문자였다. 배경 화면 사진도 여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그걸 보는 순간 재미있는 생각이 번뜩였지만, 이내 고개를 젓는 유남호였다. 어쩐지 오늘은 피곤했으니까. 괜한 욕심은 부리지 말자고 생각했다.
“이거 운 좋은 줄 알아야 하는데. 쓰읍.”
유남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채원의 핸드폰을 글로브박스 안으로 집어 던졌다. 그러고는 곧장 그만의 아지트, 작업실로 향했다.
“으흠, 으흠흠.”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
코끝을 강타하는 퀴퀴한 냄새에 채원이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몸이 붕 뜬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기분이 아니라 실제 그런 상황이었다. 슬며시 감은 두 눈을 치켜 떠보니 움직이는 바닥이 보였다.
“으흐, 흐으음.”
그녀는 남자의 등에 업혀 있었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순간, 자신이 깨어났다는 것을 눈치챌 테니.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끌려갈 수도 없었다. 채원의 결심이 서는 순간이었다.
“으흐응, 으아아악! 씹—!”
위급한 상황에선 괴력이 나온다고 했던가. 채원은 죽을힘을 다해 남자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이윽고 그의 상체가 무너졌고, 채원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쿠당탕탕.
“으윽.”
무엇인지 알고 싶지도 않은 것에 몇 번이나 부딪혀 넘어졌지만, 끝내 채원은 출입문 앞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덜컹—!
“제발, 제발 좀!”
채원이 다급한 손으로 철문에 달린 자물쇠를 풀어 젖혔다. 빌어먹을 자물쇠는 왜 이리 많이 달아놓은 것인지··· 그렇게 허겁지겁 문을 더듬거리고 있는 찰나였다.
“하아, 진짜 이게 사람 꼭지 돌게 만드네.”
등 뒤로 서늘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채원이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남자는 그녀의 발끝까지 다가와 있었다.
“으, 으··· 나한테 왜 이래요. 아저씨, 이러지 마세요. 네?”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나한테 왜 이래애!”
유남호는 제 머리를 마구잡이로 헝클며 소리를 질렀다. 그 모습이 퍽 괴기하게 보였다.
“내가, 어? 너 하나로 만족하려고 했는데! 왜 사람 귀찮게 만드냐고! 왜 나를 빡치게 만들어어!”
“아저씨···”
“집에 혼자 있다는 네 동생 말이야. 내가 꼭 그거까지 데려와야 해?”
“!”
순간 백지장처럼 질려버린 채원의 안색. 반대로 그 모습을 본 유남호의 표정은 세상 밝아진다.
“어라? 그 표정! 마음에 드는데? 동생을 많이 아끼나 봐?”
“흐끅.”
“푸,푸하하. 이러면 말이 달라지지. 몹시 귀찮긴 한데 감수할 수 있을 것 같아.”
“무, 무슨 소리예요.”
“뭘 물어. 다 알면서.’
“···”
“네 동생. 내가 데리고 오겠다고. 그러게 입 닥치고 가만히 있었으면 좋았잖아. 아아, 아직도 쓰라리네.”
유남호가 인상을 찌푸리며 “으으.” 앓는 소리를 낸다. 그렇지만 입꼬리는 귀에 닿을 듯 찢어져 있다. 곧 그가 안주머니에 넣어둔 분홍색 지갑을 꺼내 든다.
“!”
그녀의 가방에서 빼낸 채원의 지갑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그녀의 신분증이 있었다. 이름과 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
“고채원이라. 이름 이쁘네. 집도 여기서 멀지도 않고. 아까 대충 문자 보니까 둘이 사는 것 같은데. 애미애비는 없어? 하기야, 그러니 위험한 이 새벽에 돌아다니는 거겠지. 정신머리 없이 말이야!”
놈의 키득거림에 채원은 망연자실 주저앉고 말았다. 그녀는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녀가 가장 아끼는 존재, ‘동생’이 그의 입에서 거론되었을 때부터 그랬다.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철문을 열어젖히고 나가는 유남호에게 손을 뻗을 생각도, 살려달라고 소리를 칠 생각도 말이다.
“아무튼 기다리고 있어. 마음 같아서는 너도 같이 데려가고 싶은데, 아무래도 좀 귀찮아질 것 같으니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아! 심심하면 내 작업실 구경이나 하고 있든가. 괜히 소리 지르면서 힘 빼지 말고. 어차피 이 근처엔 네 말 들어줄 사람 한 명도 없거든.”
그렇게 홀로 남게 된 공간.
“아, 안돼. 안돼.”
채원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 결과, 목이 찢어져라 소리도 질러보고 출구를 찾아 이리저리 헤집고 다녀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은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낙담하게 되었다.
머릿속으로 최악의 상황이 그려졌다.
‘내 동생···’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동생, 고아경.
목숨같이 아끼는 내 동생, 고아경.
남자는 아경을 데려오지 못할 것이다.
다행히 그녀의 신분증에 적힌 주소는 이전에 살던 집 주소였으니. 가봤자 비어있을 터.
‘하지만 남자가 돌아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몹시 화가 난 남자가 제게 무슨 짓을 저지르지 않을까. 자신은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혹여 제 입으로 동생이 있는 곳을 말하진 않을까. 채원은 두려웠다.
‘아경이···’
출구 없는 막다른 길에 몰린 채원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았다.
이 선택이 자신도 그리고 사랑하는 동생도 지킬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다.
“이런, 썅——!”
그에 돌아온 유남호는 극한의 분노를 쏟아냈고, 푸른색 물빛을 한 고채원은 그런 그를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날부터였다. 고채원이 유남호의 곁을 맴돌게 된 것은.
***
세상에 사연 없는 죽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이번 사연은 유독 마음이 쓰였다.
죽어서도, 제 영력을 태워서라도 동생을 지키고자 하는 그녀의 염원이 태구의 마음을 쓰리게 했다. 이렇듯 선한 영혼만 보면 약해지는 태구였다. 그가 어렵사리 입을 떼었다.
“그런 놈 곁에 붙어있기 여간 힘든 게 아니었을 텐데.”
[흐, 흐윽. 흐으윽.]그 따스한 음성에 고채원이 눈물을 글썽이며 태구를 바라보았다. 허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이제 안 그래도 돼요. 내가 그렇게 해줄게요. 좋은 곳에 가서···”
좋은 곳으로 보내준다는 태구의 말에 고채원은 기겁하며 외쳤다.
[안돼요 ! 나 아무 데도 안 가요. 내 동생, 내가 지켜야 해요. 그러니 내 말 좀 전해줘요. 다신 여기 오지 말라고요. 제발 나 좀 그만 찾으라고 그렇게 말해줘요.]“···”
[내가 이렇게 부탁할게요. 내 기억 다 봤다고 했으니 알잖아요. 그놈이 얼마나 무섭고 잔혹한 놈인지. 그런 놈이 우리 아경이 얼굴도 이름도 다 알고 있어요. 가끔 우리가 살던 그 집을 찾아가요. 아직도 나를, 아니 우리 아경이를 포기 안 한 게 분명해요. 그런데 내가 어딜 가요. 나 못 가요. 그놈이 죽을 때까지 그 옆을 지키고 있을 거예요. 우리 아경이한테 허튼짓 못 하게···]채원은 남자가 자신을 성불시킬까 두려웠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그거 내가 하겠다구요. 고채원 씨가 그렇게 지키고 싶어 하는 동생, 고아경 씨가 무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줄게요.”
그뿐인가. 그 빌어먹을 자식도 제대로 벌할 생각이다. 그런 놈을 벌하는 것이 태구에게 주어진 사명이니.
[무슨 수로요? 신고라도 하게요? 그래봤자 몇 년 아니 길면 몇십 년 정도겠죠. 그럼, 이후는요? 우리 아경이···아, 아! 아니면 그 사람 죽여줄 수 있어요? 그렇게만 해준다면 내가 뭐든 할게요. 지옥에 가라고 하면 그렇게 할게요. 대신 그놈 죽는 것만 보고 그리고 그놈과 함께 갈게요]“정작 지옥에 가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본인이 지옥에 간다고 해요. 그럴 필요 없어요. 고채원 씨가 들고 있는 짐, 그거 그냥 나한테 맡기기만 하면 돼요. 놈을 죽여 달라고 했죠? 못 할 것도 없지만 그건 너무 쉽잖아요.”
[!]“내가 어떻게 그놈을 처리하는지 직접 봐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만들 테니까.”
[흐으, 흐으. 정말 그래줄 수 있어요?]끄덕끄덕.
“그러니까 이제 나한테 알려줘요. 고채원 씨, 지금 어디에 있어요? 동생 좀 봐요. 언니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지. 이제 집으로 돌아갑시다.”
고채원은 고개를 돌려 동생, 아경을 바라보았다. 못 본 사이에 얼굴이 많이 상한 동생이었다.
아경은 태구의 소매를 붙잡으며 “우, 우리 언니랑 이야기하는 거예요? 언니 지금 어딨대요? 지옥? 놈? 무슨 말이에요. 나, 나도 좀 알려줘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고채원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저만큼 지옥을 살았을 동생의 심정이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아니다. 이제 보니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동생은 평생 자신을 찾아 다닐 것이다.
그런 지옥에 살게 될 순 없다. 그래서 말했다.
그런데, 그 순간 중요한 것이 떠올라 버렸다.
[···우린 다 같이 있어요. 용찰사 뒷산 나무··· 아! 잠깐만요! 살아있는 사람이 있어요. 놈의 작업실에 여자가 있어요. 오늘 작업한다고 했는데··· 아, 아! 그 사람 살려야 해요. 살릴 수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