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33)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 33화(33/157)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그날 이후.
고아경은 시도 때도 없이 잠을 잤다.
잠에 들면 언니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로 벌써 사흘째였다.
“아경아.”
“언니!”
이젠 언니를 봐도 눈물보다 웃음이 먼저 나온다.
“이제야 좀 깨끗하네. 꼭 잔소리를 퍼부어야 말을 듣지?”
집안에 들어선 언니가 말했다. 짐짓 쓰레기장 같던 집은 깨끗하게 정리된 상태였다. 잠에서 깨어있을 때, 열심히 쓸고 닦은 결과이리라.
“정말 그때는 치울 정신이 없어서 그랬던 거야. 언니도 알잖아. 나 깔끔한 거.”
“퍽이나!”
“헤에. 근데 언니 그 옷···”
언니, 채원은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평소 바지를 즐겨 입던 언니의 스타일과는 퍽 다른 차림새였다. 채원은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역시 좀 이상한가?”
“아니! 예뻐! 진작 그렇게 입고 다니지! 정말 너무 예쁜데?”
“하기야, 이 언니가 말이야. 응? 뭘 입은들 안 이쁘겠냐?”
“칫. 근데 틀린 말은 아니라서 반박할 수가 없네.”
자매가 눈을 마주하며 키득거렸다.
“이 옷, 사도 님 그러니까 태구 님이 사준 거야.”
“으응? 옷을 사줘?”
“응. 나 이제 가려고, 아경아. 좋은 곳에 갈 거니까 좋은 옷 입고 가라고 사주신 거야.”
“잠, 잠깐만. 좋은 곳이라니.”
“이제 가야지. 이젠 갈 수 있을 것 같아.”
채원의 말에 아경이 두 눈을 끔뻑거렸다. 채원은 오늘이 마지막임을 말하고 있었다.
“어, 어···”
급작스러운 말은 아니었다. 처음 언니가 꿈에 나타났을 때 그러지 않았던가. 며칠만 머물다 가겠다고. 그렇지만 그게 오늘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조, 조금만 더 있으면 안 돼? 나 아직 할 말이 너무 많은데. 언니한테 들어야 할 말도 너무 많단 말이야. 그, 그래. 맞다! 되, 된장찌개. 그거 끓이는 방법도 알려준다고 했잖아.”
채원이 허둥대는 동생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바보. 어제 알려줬잖아. 다 적어놓기까지 했으면서.”
“그럼 그거 말고 다른 거! 나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아. 언니가 옆에서 알려줘야지. 응? 한 달 아니 일주일 아냐, 아냐. 사흘만 더. 응?”
간절한 음성에도 채원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이미 단단히 마음을 먹고 온 터였다.
“나 없이도 잘 할 거야. 나도 더 있으면 미련 생길 것 같아서 그래. 나 지금 아주 홀가분하고 좋거든? 아경아, 언니. 이 기분 그대로 간직한 채 가고 싶어.”
“······”
“아경아, 언니 눈 좀 봐. 언니 보고 똑바로 말해 줘. 잘 살겠다고. 어떻게든 잘 살아가 보겠다고 해줘. 그 말만 들으면 나 더 바라는 거 없이 뒤돌아보지 않고 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네가 나 좀 도와줘. 내가 편하게 떠날 수 있도록,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해주겠다고 말해줘.”
“으흐, 으흐흑.”
처음이었다.
이렇듯 언니가 도와달라고 하는 건···
언니는 언제나 저를 위해 살았다. 먼저 간 부모님을 대신해 엄마와 아빠의 역할을 다한 언니였다. 희생과 양보는 항상 언니의 몫이었다. 마지막까지 그럴 순 없었다.
언니가 도와달란다. 마음 편하게 갈 수 있게 저를 위해 살라고 한다. 그 말을 어찌 안 들을 수 있을까. 아경은 오열하며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안 조를게. 가고 싶거든 가. 언니가 바라는 대로 나 잘살아 볼 테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정말 씩씩하게 살 거야. 보란 듯이 살아볼 거야. 언니가 내 옆에 있다고 생각하고 부끄럽지 않게 그렇게 살게.”
“그래, 착하다. 내 동생.”
“대신 언니야.”
“으응?”
“언니도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라.”
“···”
“만약에 진짜 만약에 말이야. 다음 생이 있으면, 그래서 내 곁에 다시 올 수 있으면.”
“으응.”
“그땐 내 언니 말고 내 딸로 와 주라. 그럼 내가 정말 잘해줄게. 여린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할 거고, 나이에 맞게 예쁜 옷 입혀줄 거야. 하고 싶은 건 뭐든 원 없이 다 시켜줄게. 어른인 척 굴게 하지도 않을 거야. 그러니까 내 딸로 태어나. 알았지?”
고아경은 눈물범벅을 한 채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채원 역시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는 두 사람이었다.
“···그렇게 할게. 이번 생은 내가 열심히 너 돌봐줬으니까, 다음 생은 네가 나 돌봐 줘. 그렇게 해줘. 우리 그렇게 하자.”
아경의 앞에 선 채원은 크게 팔을 벌렸다. 아경은 그런 언니의 품에 안겨 어깨를 들썩였다. 토닥토닥. 그렇게 둘은 한참을 껴안고 있었다. 오늘이 지나면 다신 볼 수 없을 테니까.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채원이 말했다.
“아경아, 언니 이제 그만 가볼게.”
“으응. 내가 너무 오래 붙잡아 뒀지? 흐으, 으!”
아경은 제 볼을 탁탁 때리며 정신을 다잡으려 애썼다. 마지막 가는 길, 웃으면서 보내주고 싶었다.
“언니, 잘 가. 나 안 울 거야. 그냥 저 멀리 언니가 여행 갔다고 생각할게. 언니가 안 오면 언젠간 내가 가지, 뭐. 그렇게 또 만나자, 우리.”
“응. 그래. 그러자. 좋다!”
“헤에.”
“그분이 많이 도와주실 거야. 힘든 일 있으면 그분한테 말하면 돼. 그분 믿고 의지하면서 씩씩하게 잘 살아, 내 동생.”
언니가 말하는 이가 누군지 알고 있다. 아경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해.”
“나두, 나두 사랑해 언니.”
둘은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채원을 제외한 다른 피해자와 가족들도 저마다의 방법으로 작별을 고하고 있었다. 길고 긴 밤이었다.
***
이럴 수는 없다. 이래서는 안 되는 거다.
“왜애! 씨발, 왜 아직도 여기냐고. 흐으, 왜왜왜!”
죽음.
그것은 영원한 안식을 뜻하는 말이 아니던가.
소멸이 안 된다면 환생, 뭐 그런 것도 괜찮다.
이 빌어먹을 곳에서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그럴 작정으로 목숨을 끊었다.
죽으면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왜, 어째서!
여전히 살육의 현장에 서 있는 걸까.
“제발, 제발 그만해. 흐으아아악!”
유남호는 절망했다.
저를 향해 걸어오는 석상을 보며 파들파들 몸을 떨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었다.
머리가 터지고, 관절이 꺾이고, 사지가 절단되고··· 그렇게 죽겠지.
그리고 또 되살아나겠지.
처형의 방식은 각양각색이지만 끝은 같다.
죽음 후 부활. 매번 같은 패턴이다.
그러나 적응하기엔 너무 큰 고통이었다.
“으아아아아악!”
도망갈 수도 없다. 도망쳐 봤자 결과는 같으니.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흐으, 으그.”
그러는 사이, 석상이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모르면 몰랐지, 알고 있어 더 절망스럽다.
유남호의 이가 딱딱딱딱 떨려왔다.
마치 제 신세가 막다른 길에 몰린 쥐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상대는 감히 물 수도 없는 존재.
‘그것들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막상 제 일이 되어보니 역지사지가 된다.
그러는 사이.
쐐애애액——!
석상이 검을 곧추세운다.
이번에는 어디가 썰려 죽을까.
“끄아아아악—!”
유남호는 버릇처럼 비명을 내질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느껴지는 고통이 없었다.
그가 눈을 떠 석상을 바라보았다.
미동 없이 멈춰 선 석상.
제게 내려꽂히던 검 역시 공중에 멈춰있다.
“어, 어어?”
전과 다른 현상에 유남호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그때. 투명한 벽 너머로 들어서는 남자가 보였다.
“재밌는 선택을 했더라?”
태구였다.
그의 등장에 석상의 방에 갇힌 세 인간이 무릎을 질질 끌고 기어 온다.
그러나 유남호를 제외한 둘은 걸음을 멈춰야 했다. 태구의 의지를 전해 받은 석상이 그들에게 향했기 때문이다.
“제발, 제발—”
“잘못했어요. 살려주끄아아아악!”
유남호는 처절한 비명을 들으며 태구 앞에서 납작 몸을 엎드렸다.
“잘못했어요. 잘못했다구요. 나 좀 풀어줘요. 죽음으로 참회했잖아요. 흐으억.”
당장 그가 할 수 있는 건 태구의 자비를 바라는 일밖에 없었다.
“잘못을 해? 아니. 아주 잘했어. 칭찬하러 온 거야. 네 놈 선택 존중한다고, 모처럼 올바른 선택 했다고 말이야.”
그에 태구는 더없이 환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
“죽으면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겠지. 그래서 그런 거잖아. 크크.”
실제로 태구는 아주 기분이 좋았다. 처음부터 놈의 영혼 전체를 끌고 와 신벌을 내리고 싶었으나, 현실의 법 앞에서 타협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스스로 제 목숨을 끊을 줄이야. 아주 나이스다. 덕분에 놈의 영혼 전체를 신전에 잡아 가둘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 놈이 느낄 고통이 가증된다는 말.
“그런데 어쩌나. 넌 여전히 앞으로도 절대 여길 벗어날 수 없는데.”
“자, 잘못···”
“잘못했다고? 아냐, 아냐. 그런 말 할 거 없어. 네 참회의 눈물이나 되도 않는 반성의 말 따위는 듣고 싶지 않으니까.”
“그럼 나더러 뭐 어쩌라고, 뭐 어쩌라고아아악!”
“왜, 억울해? 너도 그랬잖아. 살려달라는 그들의 간절한 애원을 외면했잖아. 아니지, 조롱했지.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잖아. 그러게 왜 약자로 살아. 강자가 약자를 죽이는 건 당연하잖아라고.”
그래. 그랬었다. 그땐, 자신이 강자였으니까. 강자가 약자를 죽이는 게 뭐가 어때서. 그땐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당해보니 알겠다.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어요. 으으으.”
“인제 와서 뭘, 앞으로도 쭈욱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 강자가 약자를 죽이는 게 뭐. 다만, 애석하게도 여기선 네가 약자네?”
태구가 거칠게 놈의 머리채를 잡아 올렸다. 두려움에 점철된 놈의 눈빛이 보였다. 이전, 독기 가득한 놈의 눈빛이 아녔다. 태구가 그 눈을 마주하며 생글 눈꼬리를 접었다.
“아,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육신을 포기한 거 아주 잘했어. 감옥에 갇혀있다 한들 살아있다면 고통과 더불어 작은 즐거움 정도는 누릴 수 있었겠지. 그렇지만, 이젠 아냐. 여기서 네게 용납된 감정은 딱 하나밖에 없을 거야.”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아도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유남호는 처절하게 외쳤다. 쾅쾅 바닥에 제 머리를 찍어대기도 했다.
“으, 으아아아아아! 왜, 왜 나한테만 이렇게 가혹한 건데! 잘못했다고 했잖아! 반성한다고 하잖아. 목숨으로 참회했잖아! 나보다 더 악랄한 인간들도 많잖아아악!”
“그래. 많지, 썩은 사과 같은 것들이 지천으로 널려있어. 그 썩은 과일 하나 때문에 상자 안에 있는 온전한 과일도 썩게 만들어버리는 것들. 그것들 내가 다 잡아 올 거야. 나중에 오면, 잘 맞이해주면 되겠네.”
놈에게 해줄 말은 그게 전부였다. 넌 죽어서도 여길 벗어날 수 없다고.
“가지마, 가지마아악! 가지마요. 흐어엉. 잘못했다고, 제발, 제발요.”
태구는 제 바짓가랑이에 손을 뻗는 놈을 뒤로한 채 하층부를 벗어났다. 멈춘 석상이 다시금 몸을 움직인다. 피와 살점이 낭자한 살육의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끄아아아악!”
***
무미건조한 태구의 표정에 작은 미소가 깃들었다.
“사도님, 사도님——!”
저를 향해 달려오는 아이들이 보였다.
지난 날, 안동 폐병원에서 구한 아이들이었다.
그간 아이들은 신전에 머물며 빠져나간 영력을 채웠다.
먹고 싶은 건 양껏 먹었고, 받지 못한 어른의 사랑도 듬뿍 받았다.
김수인의 공로가 컸다.
덕분에 아이들은 티 없이 맑은 웃음을 띠고 있었다.
이렇듯 태구에게 달려와 포옥 안기기까지 한다.
전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래. 밥은 먹었고?”
“네! 엄청 많이 먹었어요. 수인 이모가 김밥 싸줬어요.”
“꼭 엄마가 만들어 준 김밥 같았어요. 히히.”
신전 안으로 조잘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가득 채워진다.
공허한 태구의 마음에 한 줄기 빛이 스며드는 것만 같았다.
“으아아앗!”
“더 높이요!”
“저, 저도요. 저도요. 사도님!”
태구는 제 팔에 매달린 아이들을 덥석 들어 올렸다.
그러고 있자니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여자들이 보인다.
고채원을 비롯한 유남호의 피해자들이었다. 아이들을 안은 태구가 그녀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준비는 다 했어요?”
“네. 보고 싶은 사람도 다 봤고, 하고픈 말도 모두 다 전했어요. 감사드려요.”
그녀들을 대표해 고채원이 말했다. 그러면서 슬쩍 아경을 입에 담는다.
“사도 님. 제 동생···”
“약속했잖아요. 걱정마요. 내가 잘 돌볼게요.”
“감사합니다.”
“대신 나도 좀 부탁할게요. 그렇지 않아도 애들끼리 보내는 게 영 마음에 걸렸는데.”
채원은 동생을 부탁했고, 태구는 아이들을 부탁했다.
“사도님도 걱정하지 마세요.”
그랬다.
오늘 아이들은 그녀들과 함께 떠난다.
그분의 품으로.
“얘들아. 이리 와. 언니랑 누나랑 같이 가자.”
“네—!”
아이들은 주저하지 않았다. 마치 소풍이라도 가는 것처럼 잔뜩 들뜬 모양새였다. 덕분에 태구의 마음도 한결 가벼웠다. 사실 나쁠 것도 없는 일이다. 분명 좋은 일이다.
‘그저 정이 든 거지···’
태구는 아이들을 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그들과 함께 상층부의 꼭대기 층으로 향했다. 그곳에 문이 있었다. 열린 문 너머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태구는 알고 있었다. 저 끝에, 그분이 계심을. 그분이 저들에게 평온한 안식을 줄 것임을.
“무서워할 거 없어요. 편안하게 가요.”
태구의 말에 채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들을 불렀다.
“애들아, 인사드려야지.”
“히히. 사도님 저희 갈게요. 다음에 또 봐요!”
“사도님은 같이 안 가요?”
“바보야, 사도 님은 우리 친구들 구해야지!”
“아앗. 그럼 쪼금만 있다가 와요!”
“감사합니다.”
조막만 한 손을 흔드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꾸벅하고 허리를 숙여 보이는 아이도 있다. 그런 아이들의 인사를 끝으로 여인들도 고마움을 전한다. 태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들을 배웅했다. 곧 문 너머, 환한 빛으로 걸어가는 그들이었다.
“그래. 잘 가.”
이 순간, 태구는 저들의 영혼이 편안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