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34)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 34화(34/157)
취직
검은색 상복을 입은 고아경이 조문 온 문상객을 맞이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연히 와야죠.”
‘심령 솔루션’ 제작팀이었다.
문상객이라고 해봐야 그들이 전부였다.
그럴 만도 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고아경이 아니던가.
직장 동료는커녕 가까운 친지도 없다.
몇 안 되는 친구는 은둔 생활을 하며 연락이 다 끊긴 상태. 그녀의 언니, 채원 역시 일터와 집만 오간 터라 지인이 몇 없다.
그로 인해 장례식장은 휑한 모습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심령 솔루션’ 제작진 일동은 어쩐지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태구 님은 아직인가요?”
“네. 출발하셨다고 문자가 오긴 왔어요. 아마 곧 오실 거예요.”
“으음. 그럼 아경 씨한테 먼저 물어봐야겠네요. 솔루션 이후 촬영 계획이 잡혔는데···”
그때였다.
휑한 장례식장, 그 안으로 묘한 차림새를 한 남자 둘이 들어온다. 정확히 말하자면 차마 무엇이라 정의할 수 없는 생명체까지 총 셋이다.
“여기 맞아?”
입을 뗀 남자는 검은 도포에 검은 갓을 쓴, 그야말로 시대를 역행하는 차림새를 하고 있었고.
“99년 2월 25일 자시생, 고채원 망자 빈소 맞아요.”
다른 한 명은 검은 정장을 입고 있지만 괴이한 것을 곁에 달고 있었다.
[크르르, 크르르, 컹컹]그 괴이한 것의 정체는 한 몸통에 머리가 셋 달린 짐승이었다.
정장 입은 남자가 고채원의 생년일시를 말하며 그것의 목줄을 풀어주었다.
그러자 괴이한 모양새를 한 짐승은 기다렸다는 듯이 고아경을 향해 달려든다.
“괜찮으시겠어요?”
“네. 저는 괜찮아요. 프로그램 덕분에 언니도 찾을 수 있었는걸요. 그러니 뭐든 말씀하세요. 시간은 제가 맞출게요. 딱히 하고 있는 일도 없어서요.”
그런데도 고아경의 표정엔 변화가 없다. 제작진 역시 별반 다를 바 없는 반응이다.
그들은 머리 셋 달린 짐승을 보지 못한 것이다. 짐승뿐일까. 장례식장에 들어선 남자 둘도 보지 못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들은 평범한 인간이 볼 수 없는 존재였으니. 죽어 망자가 되었다면 모를까···
그랬다. 그들은 염라대왕의 명을 받아 죽은 이의 넋을 수거하는 차사였다. 그중에서도 탈주한 영혼을 수거하는 ‘특수 망자 수거팀’ 소속 차사다.
[크크, 크으응, 커엉, 컹]머리 셋 달린 짐승 역시 지옥 출신이다.
짐승은 코를 벌름거리며 고아경의 주변을 빙그르르 돌았다. 수거 대상, ‘고채원’의 영혼이 그녀의 곁에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리라.
그러나 짐승은 그녀에게서 별다른 기척을 읽어내지 못했다. 텅 빈 장례식장 안을 한 바퀴 쓱 돌아보았지만, 결과는 같다. 짐승은 다시금 남자의 곁으로 다가왔다.
[끼잉, 컹컹컹···]“아무래도 여기도 없는 모양인데요.”
그에 정장 입은 남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짐승에게 동그란 환을 준다. 지옥에 갇힌 망자들의 기운을 뽑아 만들어 낸, 일종의 간식이었다. 성과는 없지만 보상은 확실히 해야 했다.
짐승은 그 자리에 앉아 아그작 환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도포를 입은 남자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짐짓 어두운 얼굴로 대화를 이어 나간다.
“이번에도 허탕인가 보네. 쯧, 망자들이 도망가는 곳이야 빤한데···”
“그러니까 말이에요. 이상하지 않아요? 혹시 말인데, 사라진 차사들과 관련 있는 거 아닐까요?”
“너도 영 그쪽이 찜찜하냐?”
차사, 그러니까 저승사자는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존재다. 그렇게 오가다 보면 간혹 이승에 미련을 가지는 차사가 생기기 마련이다.
미련만 가지면 다행이게, 결코 해선 안 될 짓까지 해버리는 놈들이 있다. 이를테면 직분을 버리고 이승으로 런하는 것들을 말한다.
그런 놈들이 숨는 곳이야 빤하다. 영력을 지닌 인간, 그러니까 무속인의 신당에 숨어들거나 혹은 명부에 기재되지 않은 망자의 몸을 탈취하거나···
어쨌든 놈들의 말로는 정해져 있다. 차사 체포팀에 의해 체포되어 팔팔 끓는 화탕에 던져지겠지.
231년 차 경력직 차사, 김을복은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탈주하는 차사는 언제나 존재했고 오래되지 않아 잡혔으니까.
그런데 매우 이례적인 일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몇 달 사이, 사라진 차사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덕분에 그는 죽어나고 있었다. 차사의 부재로 현장에서 도망치는 영혼이 천지였으니.
좌우지간 이상한 일이었다. 231년 차사 활동을 하며 이렇듯 많은 차사가 탈주한 적은 없었다. 더군다나 이렇듯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망자의 경우도 없었다.
그에 차사 체포팀을 넘어 상부 전원에 비상이 걸린 상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잖아요. 게다가 듣기론 안산 중앙동 담당 차사는 이승이라면 지긋지긋해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차사가 탈주했다고 하니···”
“탈주가 아닐 수도 있단 말이겠지.”
“탈주가 아니면 소멸이란 말이에요?”
“글쎄. 근데 그것도 염두에 둬야지 않겠어?”
“말도 안 돼! 저승도 아닌 이승인데요? 감히 우리에게 해를 끼칠만한 존재가 있다고요?”
“지금은 사라졌지만, 한때 존재하기도 했었지. 그런 존재가.”
“···에이, 무섭게 왜 그래요. 선배님. 위에서 뭐 들은 거 없어요?”
“들었으면 내가 이렇게 뺑이치고 있겠냐.”
그 말도 맞지. 정장 입은 차사가 고개를 끄덕이던 찰나였다. 두 사람의 손목에서 번쩍 빛이 밝혀졌다. 빛의 근원은 시계였다.
“어라? 긴급 소집 떴는데요?”
세월이 발전함에 따라 신형 장비를 갖추게 된 차사들이었다. 시계 액정 위로 지옥에서 온 메시지가 떠오른다. 차사 전원 집합 명령이었다.
“이것들은 꼭 현장 내려오면 호출하더라.”
“어쩌죠? 아직 고채원 영혼 흔적도 찾지도 못했는데···”
“까라면 까야지. 철수해.”
***
“흑룡아.”
조수석에 앉은 태구의 말에 흑룡은 전방을 주시하며 되물었다.
“으응?”
“네 매니저 말이다. 몇 년 차라고 했었지?”
“우리 뚱이? 한 삼 년 정도 된 것 같은데.”
“그럼 월급은 얼마나 주느냐?”
“최저에 맞춰 주고 있지.”
“3년인데 최저 임금이라···”
태구가 눈을 흘기며 흑룡을 바라보았다. 흑룡은 다급히 손사래 쳤다.
“에이, 달에 나가는 월급만 최저고 일 년에 한 번씩 크게 보너스 챙겨 줘. 또, 출퇴근 편하라고 작업실 근처에 숙소도 잡아줬고. 이만하면 그래도 이 바닥에서 최상위 대우란 말이야.”
“숙소 지원··· 그건 필요 없을 것 같던데.”
“응?”
“아니다.”
“근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 아! 설마 매니저 구하려고?”
태구는 고개를 끄덕였고, 흑룡은 반색했다.
“잘 생각했어! 안 그래도 이제 번거로운 일 많아질 텐데, 손발 되어줄 사람 있으면 좋지. 내가 좀 알아볼까? 네가 매니저 구한다고 하면 벌 떼같이 지원할 텐데.”
“아니. 그럴 필요 없다. 이미 생각해 둔 사람이 있으니.”
“생각해 둔 사람이 있다고? 이름이 뭔데? 아, 내가 모르는 사람이려나. 그래도 이 바닥 경력직이면 내가 줄줄 꿰고 있긴 한데.”
“너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지금 가고 있잖느냐.”
태구를 태운 차는 낙원 장례식장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피해자의 여동생이 있다. 흑룡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으응? 뭐, 뭐야. 설마 그 동생?”
“그래.”
“어, 어··· 아니. 도와주려는 마음은 알겠는데 그래도 심사숙고해야 하지 않을까?”
흑룡은 태구의 결정에 우려 섞인 눈빛을 보냈다. 능력 있는 매니저를 얻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작금의 태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인물이 아닌가. 인터넷 방송계를 넘어 지상파까지 진출한 그는 전과 비교할 수 없는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비단 대중의 관심뿐일까. 사기업에서 개별 후원을 주겠다며 따로 연락이 올 정도였다. ‘심령 솔루션’ 방영 전인 지금도 이럴지 언대···
‘1화가 방영되는 다음 주는?’
모르긴 몰라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될 터. 그러려면 곁에서 제대로 지원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제 막 성인이 된, 경력이 전무한 아이를 매니저로 고용하겠다니. 흑룡의 걱정도 괜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태구는 굴하지 않고 고아경에게 취직을 제안했다.
“어때요? 할 생각 있어요?”
장례식장에서 할 말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못할 말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 갑작스러운 태구의 제안에 아경은 당황하지 않았다.
얼핏 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 분 믿고 의지하면서 씩씩하게 잘 살아. 힘든 일 있으면 나라고 생각하고 그분께 털어놓으면 돼. 믿을 수 있는 분이셔.]아경은 고민하지 않았다. 언니와 약속하지 않았던가. 씩씩하게 살아가 보겠다고.
“네. 저 할래요. 뭐든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할게요. 정말 뼈가 부서져라 죽을힘을 다해서 할 거예요. 그리고 돈 같은 건 필요 없어요.”
아경의 각오에 태구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뼈가 부서져라 죽을힘을 다할 필요는 없고요. 메일 확인이랑 자료 정리 뭐 그 정도만 도와주면 돼요. 돈도 받고요. 아니면 안 쓸 겁니다. 그리고 말은 좀 편하게 했으면 하는데.”
“아, 물론이죠! 저는 그럼··· 사장님이라고 부를까요? 아니면 비제이님?”
“편한 대로 불러요.”
같은 공간에 있던 ‘심령 솔루션’ 제작진도 그런 태구의 제안을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제 일처럼 그녀의 취직을 축하했다.
“어머, 그럼 우리 자주 보겠네요?”
“아경 씨, 너무 잘 됐다!”
“그럼 솔루션 이후 편은 일하는 모습을 담는 건 어때요?”
누가 봐도 잘된 일이 아닌가. 조용한 장례식장 안으로 활기가 들어차는 듯싶었다.
한편, 흑룡은 잠시 밖으로 나온 상태였다.
휑한 장례식이 어쩐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가? 아니면 태구랑 같이 지내다 버릇하니까 이런 건가, 괜히 신경 쓰인단 말이야. 쓰읍. 앞으로 자주 볼 사이기도 하니까···’
흑룡은 그런 생각을 하며 분주히 문자와 전화를 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주문한 근조화환이 장례식장 입구를 채웠고.
“형님!”
“어, 빨리 왔네.”
그와 같이 일을 하는 매니저와 편집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진즉 말씀하시지. 알았으면 같이 올 걸 그랬어요. 저도 그 기사 보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데요. 흐유. 그··· 피해자 동생분 맞죠?”
“태구 매니저야. 가서 인사 해.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거니까.”
“···허, 대박. 진짜요? 태구 형님. 대단하시네.”
“그러게나 말이다.”
“형님도 대단하고요. 은근 스윗하단 말이야.”
“뭐래.”
그렇게 재빨리 달려온 팀원들과 다시금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가는 흑룡. 그의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것도 같았다.
***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많은 이들이 기다려 마지않던 ‘심령솔루션’ 첫 방송 날이 다가왔다.
그리고 방송이 시작되는 시간.
태구는 집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초인종 소리와 섭외 전화를 피해 나온 것이라.
마침 자리를 비울 좋을 명목도 생겼다.
새로이 구한 직원, 매니저 고아경의 환영회를 열어야지 않겠나.
“흐아, 공기 좋다! 어때, 괜찮지?”
“나쁘지 않네.”
“우와, 저 캠핑은 처음 해봐요. 그런데 조금 외지긴 하네요?”
태구는 갑갑한 도시를 떠나 한적한 자연에서 하루를 보내고 싶었고, 현대판 시종 흑룡은 기가 막히게 좋은 장소를 찾아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강원도의 어느 캠핑장이었다.
평일이라 그런가, 그도 아니면 외진 곳에 자리한 캠핑장이라 그런가.
캠핑장 안으로 어쩐지 적막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