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39)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 39화(39/157)
펜션의 기억
“앞장설 테니까 잘 따라와.”
그리 말하지 않아도 흑룡과 아경은 이미 태구의 뒤에 바짝 따라붙은 상태였다.
끼이이익—
태구는 두 껌딱지를 단 채 검게 그을린 현관문을 넘었다.
망가진 창문 너머로 은은한 달빛 한 줌 들어올 법도 한데.
“어으, 뭐 보이는 게 하나도 없냐. 고 매니저야. 나 카메라 때문에 손이 불편해서 그런데 네가 이쪽으로 와서 손전등 좀 비춰주라. 우리 형님들. 눈에 뵈는 게 없겠다.”
내부는 어둡기 그지없었다. 벽바닥 할 거 없이 사방이 그을려 있었다.
“네! 랜턴 밝기 올릴게요. 흐으, 근데 탄내가 너무 심한데요? 화재 난 지 꽤 된 곳 아닌가···”
게다가 한층 더 짙어진 탄내가 코끝을 스친다.
그래서였을까. 어쩐지 열기마저 느껴지는 듯하다.
아경은 코를 씰룩이며 랜턴의 밝기를 올렸다. 발밑까지 드리운 어둠이 랜턴의 빛에 밀려났다.
언뜻 드러난 내부는 여느 펜션과 별반 다를 거 없는 구조였다.
층고가 높고 넓게 빠진 공간, 현관과 길게 이어지는 거실과 주방이 보인다. 그 옆으로 방으로 추정되는 문 두 개도 보인다. 화장실 혹은 침실과 같은 공간이겠지.
거실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2층과 연결되는 나무 계단이 자리해있다. 대충 봐도 제법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독채였다.
흑룡은 그렇게 드러난 펜션 내부를 꼼꼼히 카메라에 담았다. 두려워도 카메라를 켠 이상 본분은 지켜야 하니까. 실로 프로다운 행동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한 것이 화면에 잡혔다.
“와, 이제 좀 분간이 되네. 어억? 근데 저거 뭐냐.”
미처 치우지 못한 테이블 아래로 버려진 과일 껍질과 빵 봉투 따위가 보였다. 그 옆으로 천일염 봉지와 흩뿌려진 소금도 보였다.
문제는 버려진 과일이었다. 한눈에 봐도 비교적 최근에 버려진 것이 틀림없었다. 썩어 문드러지지 않은 것이 그 증거였다.
이를 알아챈 아경도 놀랍다는 어투로 대꾸했다.
“어? 그러게요. 우리 말고도 누가 들어온 적 있나 봐요.”
“그니까 어떤 정신 나간 인간이 여길 제 발로 들어온 거야.”
“노숙자 아닐까요? 그, 예전에 언니 찾겠다고 폐가 같은 곳에도 혼자 가본 적 있었거든요. 그때도 몇 번 봤었어요. 그 안에서 살고 있는 분들이요.”
“뭐? 폐가를 혼자서? 너는 여자가 무섭지도··· 아, 아니다.”
“그땐 무서울 게 없었거든요.”
“···크흠, 그래. 아무튼 이럴 게 아니라 짐 챙긴 거부터 풀자. 아무래도 맨손으로 있기가 좀 그렇네. 태구도 챙겨주고.”
“아아, 네!”
“태구야, 잠시만.”
흑룡이 몇 발짝 앞에 있는 태구를 불렀다. 이때까지만 해도 흑룡과 아경은 태구의 등 뒤에 바짝 붙어 있었다.
– ㅠㅠㅠㅠ 어쩐지 겁이 없다 했다.
– 이래서 경력직은 무시할 수 없다니까.
– 인간이면 고 매니저 보면서 드립 치지 말자.
– 그나저나 과연 진짜 노숙자일까?
– 아무래도 여친한테 까인 놈일 듯.
– ㅋㅋㅋㅋㅋ 아. 안동 게이?
– 저 오늘 처음 보는데 안동 게이가 누구?
– 있음. 나사 빠진 착한 놈들 있어.
아경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챙겨온 가방을 열었다. 그사이 흑룡은 채팅창 분위기를 점검했고, 태구는 눈앞에 보이는 전방을 훑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끼이익, 덜컹—!
돌연 심장을 덜컥하게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뒤, 출입문이 닫히는 소리였다.
“으, 으아악!”
“흐읍!
바람결에 닫히는 소리가 아녔다. 소리가 커도 너무 컸다. 놀란 흑룡과 아경은 기겁하여 뒤를 돌아보았다.
“4, 4단계까지 올랐어요!”
동시에 아경의 왼손에 들린 emf 측정기가 주황빛을 발했고, 오른손에 들린 램프의 빛이 거뭇한 출입문에 닿았다.
– 와; 문 닫는 거 뭐냐. 지렸다.
– 들어오는 건 쉬워도 나갈 땐 맘대로 못 나간다 이거지.
– ㅡㅡ그보다 저거 뭐냐. 저기 밑에 보라고.
– 내가 제대로 본 부분? 손톱자국?
– ㅁㅊ. 진짜 손톱자국 같은데
– 아까 흑룡이 한 말이 맞았네. 피해자들 문 안 열린다고 막 소리 질렀다매;
– 진심 소오름 돋는다.
순간 눈썰미 좋은 시청자 하나가 날카롭게 문 아랫부분을 지적했다.
그의 말마따나 닫힌 안쪽 문 아랫부분, 빗금처럼 길게 파진 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놀랍게도 그 부분만 그을린 흔적이 없었다. 덕분에 아로새겨진 흔적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건 누가 봐도 사람의 손톱자국이었다.
[겨냥이집사 님 달풍성 200개 감사합니다.]– 4단계 떴다고? ㅁㅊ. 그럼 저기 문앞에 귀신이 서 있단 말이잖아. 그래서 그때도 사람들 못 피한 건가? 귀신이 문을 막고 있어서? 그러니까 손톱자국이 나있는거지ㅠㅠㅠ. 아오, 무서운데 궁금해ㅠㅠㅠ 태구야. 뭐 보여? 보이면 귀신들한테 말 좀 걸어 봐. 아니다. 그런 놈들이랑 말 섞어 봤자지. 바로 참교육 갈겨버려.
이를 설명해 줄 수 있는 태구뿐이었다. 그에 시청자가 태구를 불렀다. 흑룡과 아경도 혼비백산하여 고개를 돌렸다. 이 순간, 가장 의지가 되는 존재. 태구를 찾기 위함이었다.
“어어?”
그런데 분명 조금 전까지 저들의 코앞에 서 있던 태구가 어느새 거실 중앙까지 가 있는 게 아니겠나.
“사장···님?”
태구는 삐딱하게 고개를 꺾은 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emf 측정기를 요동치게 만든 존재를 보고 있었다.
녀석은 문 앞에 있지 않았다.
온몸이 새까맣게 타들어 간 그것은 2층으로 향하는 원형 계단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기괴하게 긴 팔을 쉴새없이 흔들고 있는데 검은 피부 사이로 진물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놈은 태구 일행을 보며 좋아하고 있었다.
[손님, 단체 손님이 오셨네.]비단 놈 뿐일까. 그 옆으로 검은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 망령들이 득실거린다.
그 머릿수가 꽤 많다. 창틀에 붙어있던 것들이 죄다 이쪽으로 옮겨 앉은 모양새였다. 동시다발적으로 내뿜는 귀기 역시 범상치 않았다. 그런 이유로 제법 거리가 있음에도 emf 측정기에 불이 들어온 것일 터.
[왔다, 왔다. 우리랑 놀자. 우리랑 놀아.] [키키킥. 어떻게 놀아줄까. 이번에도 대롱대롱 매달까.] [여자는 내꺼야. 내가 가진다. 키키킥.] [빈손으로 왔잖아. 죽이자, 죽여.]개중에는 붉은색을 띤 녀석도 있었다. 태구 일행을 손님이라 부르는 놈도 그중 하나였다. 놈은 산자의 생기를 탐하며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신이시여, 오늘도 올려보내겠습니다.’
보아하니 한 두 번 산 자를 공격한 게 아녔다. 아니나 다를까.
그 순간, 위아래로 크게 입을 찢은 놈이 계단을 박차며 태구를 향해 몸을 던졌다. 짐승보다 빠른 속도였다. 생기를 탐하는 망령의 악취가 진동했다.
“어어, 태구야. 너 언제 거기로···”
“가만히 거기 그대로 있어.”
“어?”
놈은 게걸스러운 눈빛을 번득이며 태구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려 했다. 물론 어림도 없었다. 태구는 제게 다가오는 일행들을 만류하며 손을 뻗었다.
[키이이익 !]성력이 개방되는 순간이었다. 태구의 주먹이 검은 머리통을 우악스럽게 후려갈겼다. 성스러운 힘과 마주한 놈의 영체는 단박에 부스러졌다.
푸스스스—
검은색 잿가루가 흩날렸다.
“어억?”
흑룡와 아경이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어쩐지 심상치않은 기운을 느낀 것이리라. 시청자들도 다를 바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태구의 원맨쇼를 감상했다.
– 지금 귀신이랑 몸의 대화 나누고 있는 거?
– 허공에 떠다니는 검은색 가루 뭐냐?
– 아마도 귀신?
– ;;;; ㅈㄴ 이상한데 이상하게 가슴이 웅장해져.
– ㅋㅋㅋㅋㅋㅋㅋㅋ신개념 퇴마쇼.
– 개같이 처맞넼ㅋㅋㅋㅋㅋㅋ
– 과연 처맞고 있는 거 맞아?
– 태구야. 인터뷰는 안 되는 거야?
제 동료가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았음에도 망령들은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며 이미 태구를 향해 달려오던 터라 다시금 몸을 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만큼 퇴마는 찰나의 순간 진행되었다.
[키이악 !] [꺄아아아악!]어디에서 왔는지, 펜션에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는지 굳이 물어볼 필요 없었다. 몸의 대화로 충분히 알아낼 수 있었다.
녀석들은 이곳에서 오래 머물며 많은 것을 보고 들었다. 일신이 제한된 폐병원 망령들과는 달랐다.
아무튼 그런 놈들이 도망칠 곳은 없었다. 귀문은 태구의 뒤에 있었으니. 태구는 일행의 앞을 막아서며 달려드는 놈들의 영체를 찢어발겼다.
놈들 중 신전에 갈만한 영은 없었다. 지하층이라면 모를까. 녀석들은 하나같이 업을 갖고 있었다.
“히이익——”
곧이어 녀석들이 내지르는 귀곡성이 어렴풋이 펜션을 울렸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일단 1층은 대충 정리했으니까 겁먹을 필요 없어. 아, 그리고 흑룡. 네가 봤다는 그 검은 시체들 그것들이 뭔지도 확인했어.”
대략 눈에 보이는 것들을 정리한 태구가 손을 털며 말했다. 허공을 휘젓던 그의 손마디로 거뭇한 재가 묻어 있었다.
“···어어, 진짜 emf 측정기도 다시 1단계 수치로 내려왔어요.”
아경은 그리 말하며 서둘러 태구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한발 늦게 무언가를 건네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들어오기 전에 미리 드릴 걸 그랬어요. 죄송해요, 사장님. 여기요.”
캠핑용 도끼였다.
– 도끼업! 도끼업! 도끼업!
죄송할 게 뭐가 있다고. 그러나 이렇듯 챙겨주는데 안 받는 것도 예의가 아녔다. 태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도끼를 받아 챙겼다.
그와 동시에 조금 전, 훑어본 악령의 기억을 곱씹었다. 처음 제게 달려들던 녀석은 생전 펜션 주인이었다.
****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던 어느 날.
늘푸른 캠핑장 사장이 배불뚝이 지인과 함께 산을 오르고 있었다.
“캠핑장 잘 되더니 아주 돈독이 제대로 올랐네. 무슨 펜션까지 하겠다고 그래.”
“우리 캠핑장 뒤로 땅이 싸게 나왔는데 참을 수가 있어야지. 거의 주운 거나 다름없다니까.”
“하여간 장 사장, 통 큰 거 알아줘야 해. 그래서 공사는 잘 돼 가고 있고? 얼추 다 지어가지?”
캠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 중턱, 그곳에는 펜션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거야 뭐 금방 올리지. 그보다 다른 게 속을 썩여서 문제야.”
“일이 술술 풀리면 그것도 영 별로야. 그래서 장 사장 속 끓게 하는 게 뭔데?”
“아휴, 아주 골 때리는 게 있다니까. 가서 보면 알 거야.”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공사 현장. 현장은 그가 부른 인부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장사장은 배불뚝이 지인을 데리고 거진 다 완성된 펜션 건물의 뒤편으로 걸어갔다.
“···오셨습니까?”
그곳에 아름드리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나무 앞에 곤란한 기색을 띠고 있는 남자가 보인다. 현장 작업반장이었다.
“아니, 내가 베어버리라고 말했잖아. 아직도 이대로면 뭐 어쩌자는 거야?”
장 사장은 나무와 작업반장을 번갈아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그런데도 작업반장은 쉬이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사장님. 이 나무가 예사 나무가 아니에요. 잘못 베어냈다가는 큰일 납니다. 동티난다고요. 지난주에 작업하러 올라간 인부도 크게 다쳐서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데··· 저희 이거 못 합니다.”
“이 사람 말을 웃기게 하네. 돈을 받았으면 돈값을 해야지—!”
“견적 낼 땐 그런 말 없으셨다 아닙니까.”
“아니, 일을 하다 보면 어? 뭐가 더 생길 수도 있고 빠질 수도 있는 거지!”
“아무튼 저희는 못 하니까 그런 줄 아세요. 정 베어내고 싶거든 사장님이 직접 하시던가요.”
감정이 상하는 건 한순간이었다. 장 사장과 작업 반장은 얼굴을 붉히며 서로를 향해 험한 말을 쏟아냈다. 그에, 옆에서 구경하던 배불뚝이 지인이 피식 웃으면서 둘 사이를 중재했다.
“아이참, 왜 이래. 엉? 나는 또 뭐가 장 사장의 속을 끓이게 하나 했더니 고작 나무였어? 저깟 거 베어내는 게 뭐가 어렵다고. 내가 도와줄게. 장 사장. 나랑 같이해. 둘이면 금방 잘라내겠구먼.”
“···으응?”
“뭘 그리 놀란 눈으로 봐. 내가 도와준다니까. 내가 또 신실한 종교인 아니여. 나는 미신 같은 거 믿지도 않아. 동티는 무슨. 대신 일당은 톡톡히 쳐줘야 하는 거 알지?”
잠시 고민하던 장 사장은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꽤 오랜 시간을 잡아먹긴 했으나 결국 둘은 펜션의 경관을 해치는 그 나무를 베어낼 수 있었다.
“어으,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네. 고생했어.”
“고생은 무얼. 나 일당 받을 거라니까?”
“알았어. 누가 안 챙겨 준대? 내가 아주 오늘 제대로 대접할게. 그보다 잠시만.”
장 사장이 작업반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거들먹거리는 눈빛을 한 채 베어낸 나무는 깡그리 태워버리라 말했다.
“설마 그것도 못 하겠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진짜 그러면 곤란해.”
“······알겠습니다.”
작업반장은 영 마뜩잖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차마 이것까진 거절할 수 없었으니. 그리고 그날부터 펜션에는 기묘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