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4)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 4화(4/157)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냅다 달리는 상남의 얼굴엔 미소가 서려 있었다. 아무래도 경찰을 구세주라 여긴 모양이다. 그러나 이는 완벽한 오판이다. 태구는 당황하지 않았다.
‘역시 그분은 모든 걸 다 알고 계셔.’
신께서 오래된 기억을 모두 되살려주셨으니까.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다. 태구는 이때다 싶어 뛰어나가는 상남을 보며 말했다.
“경찰이라고? 때마침 잘되었구나. 그렇지 않아도 시민으로서 제보할 것이 있었는데 말이지.”
그러자 인터폰을 향해 냅다 달리던 상남이 급히 걸음을 멈춘다. 그럴 줄 알았지.
“너희 어머니 명의로 뽑은 검은색 스포츠카 말이다. 작업실 근처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을 테지? 하면 같이 가서 블랙박스 떼어보면 무면허 운전 증거 바로 나올 테고, 거기다 불법 도박 브로커 짓도 제보를 할 생각인데···”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협박이란 걸 알 수 있다. 어느 경찰이 영장도 없이 시민의 블랙박스를 보겠다고 하겠나.
허나 태구는 알았다. 개상남은 결코 생각이란 걸 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걸.
“너, 너—!”
이봐라. 역시 바로 반응한다.
상남은 몸을 틀어 태구를 향해 삿대질해댔다.
핏기 가신 창백한 얼굴. 지진 난 동공. 바들바들 떨리는 손가락. 그 모습이 마치···
“꼭 겁에 질린 개 같구나. 아무렴 그간 벌려 둔 일에 대한 책임을 지려니 눈앞이 막막할 테지, 그래도 어쩌겠느냐. 다 네 놈이 자초한 짓인걸.”
[딩동] [경찰입니다. 문 좀 열어주시죠.]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금 울리는 딩동 소리가 집안을 채운다.
“보아하니 움직일 생각이 없는 듯한데 내가 열어주마.”
상남은 흠칫했고 태구는 그를 지나쳐갔다. 그의 목적지는 누가 봐도 인터폰 쪽이었다.
“아, 안돼!”
뒤늦게 정신이 번쩍 든 상남이 황급히 태구의 앞을 막았다.
“열지 마! 열지 말라고!”
양팔을 쩍 벌리며 소리치는 꼴이 퍽 절박해 보였다. 실제로 상남은 절박했다.
찰나의 순간, 나락으로 떨어진 자신의 앞날을 보았기 때문이다.
힘들게 쌓아 올린 방송 인생이 한 방에 무너지고 있었다.
‘절대 안 돼—!’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태구는 거칠 게 없다는 듯 굴었다.
“안 열면? 저들이 그냥 돌아갈 성싶으냐? 내 장담컨대 저들은 그냥 돌아가지 않을 것이야.”
“그래서 기어코 열겠다고?”
“열어야지, 별수 있겠느냐.”
“씨발, 너 지금 협박하냐?”
태구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 태연한 태도는 결국 상남을 폭발하게 했다.
“웃어? 하, 네가 지금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혼자 죽을 거 같아? 무면허니, 뭐니 한 마디만 내뱉어봐. 나도 너 고소하려니까. 폭행으로 집어처넣을 거라고!”
“애초에 그러려고 냅다 달린 것이 아니냐? 뭘 지금 마음먹은 것처럼 구는 건지. 쯧쯧. 한데 상남아. 폭행당한 사람치고는 너무 멀쩡한 모양새가 아니더냐?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폭행당했다고 주장할 수 있을 터인데.”
태구가 상의를 들쳐 올렸다. 옷 안으로 감춰진 흉터가 드러났다. 일전에 상남이 던진 물건에 맞아 난 상처였다.
그 말인즉 무면허 운전, 불법 도박 브로커 죄명 두 개에 폭행 하나가 더 얹어졌다는 말이었다.
“잊고 있었는데 네 덕에 제보할 내용이 하나 더 생각났구나. 아, 그리고 상남아. 같이 죽자는 말은 잘못된 말이니라. 정확히는 나만 살고 너만 죽을게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태구의 태도에 상남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그가 태구의 팔목을 붙잡으며 무릎을 꿇었다.
“···태구야. 우리 그만하자. 어?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그간 너도 고생 많았잖아. 그거 다 날려버릴 거야? 내가 무너지면 너도 무너지는 거라고! 너 BJ 되는 게 꿈이잖냐. 나 없이 그게 가능할 거 같아?”
“그래. 한때 내 꿈이 BJ이긴 했지.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그럼 원하는 게 뭔데? 어? 내가 뭘 어떡해야 그 입 다물건대! 좆 같은 말투 쓰면서 사람 골리지 말고 바라는 게 있으면 그냥 까놓고 말을 해!”
“오호. 살고자 구걸하는 놈이 뭐 이리 당당하게 구는 거지?”
“···잘못했다고. 응? 내가 이렇게 무릎까지 꿇으면서 사과하잖아.”
상남이 한풀 꺾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렴 진즉 이렇게 나왔어야지.
태구가 상남과 시선을 마주했다.
“썩 마음에 드는 자세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전보다는 확실히 낫구나. 이제야 대화할 마음이 생겼어. 하지만 일단 경찰부터 보내야겠지?”
“그래! 대화 좋지! 겨, 경찰은 내가 보낼게. 넌 그냥 여기서 푹 쉬고 있어.”
“그래. 어디 한번 네가 깔끔히 정리해보거라.”
상남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저 개새, 내가 가만두나 봐라.”라며 생각했다.
***
“살인이요? 그게 뭔 개소리래요. 누가 제가 죽었대요? 보세요. 저 완전 멀쩡히 살아있잖아요.”
경찰과 마주한 상남은 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이냐는 듯 굴었다.
“그러게요. 아주 멀쩡해 보이시네요.”
그에 경찰은 놀랍지도 않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출동한 BJ 집은 이 동네 경찰관들 사이에서 퍽 유명한 곳이었으니.
“에이, 뭘 또 그렇게 정색까지. 아무튼 연출로 싸운 걸 시청자가 오해하고 무지성으로 전화를 넣은 모양인 것 같네요. 쓰읍. 그럼 확인했으니까 이만 들어가 봐도 되죠?”
“잠시만요.”
경찰관이 문을 닫고 들어가려는 상남을 붙잡았다.
“왜, 왜요?”
딱딱한 경찰관의 목소리에 상남은 불현듯 집안에 쓰러져있는 흑룡을 떠올렸다. 괜스레 마른침이 꼴깍 넘어간다.
“벌써 이번 달만 네 번째 출동인 거 아시죠? 지난주에는 마약하고 있다는 신고 전화, 또 그 지난주에는 자해 소동 또··· 아무튼 자꾸 이러시면 정말 곤란합니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현장에 못 나가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단 말입니다.”
다행히 경찰은 추궁 아닌 주의 섞인 말을 내뱉고 있었다. 상남은 안심했다.
그러면서도 바로 제 등 뒤에 서 있는 태구가 연신 신경 쓰였다. 갑자기 마음을 바꿔 허튼 말을 할까 봐서였다. 그는 빨리 이 상황을 정리하고 싶었다.
“난 또 뭐라고. 알았어요. 들어가서 시청자들한테 제대로 말해둘게요. 절대 네버 무슨 일이 있어도 신고하지 말라고요. 됐죠? 그럼, 저 방송 해야 하니까 이만 들어갑니다?”
“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예예.”
건성건성 내뱉는 대답에 경찰관이 마뜩잖은 표정을 지으며 등을 돌렸다. 그때였다.
“어어?”
“잠시만요.”
“야!”
태구가 상남을 밀쳐내며 문밖으로 나왔다. 상남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불길한 예감에 다급히 소리쳤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
경찰이 다시금 몸을 돌린 것이다. 결국 태구와 경찰관이 마주 서고야 말았다.
“부르셨습니까?”
“야, 야! 태구야. 바쁘신 분들 왜 부르고 그러냐. 그냥 들어가 보세요.”
어쩐지 초조해 보이는 상남의 모습에 경찰관이 고개를 갸웃하며 태구를 바라봤다. 태구가 말했다.
“그간 헛걸음하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불렀느니라.”
“불렀느니라? 지금 장난합니까?”
“아니, 얘가 지금 술에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에요. 경찰관님. 죄송합니다. 그냥 가시던 길 가세요.”
종잡을 수 없는 태구의 행동에 상남은 기절할 것만 같았다. 물론 태구가 알 바는 아니었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말을 계속했다.
“크흠. 이렇게 말하는 것이 입에 배서. 어쨌든 죄송하고 또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경찰은 이것들이 쌍으로 장난질하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남자의 표정이 꽤 진지해 보였다. 진심인가?
“감사요? 진심입니까?”
경찰관이 되물었다.
“사명감 없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봉사하는 일 말입니다.”
“그걸 잘 아시는 분들이···”
“그러니 죄송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지요. 유쾌하지 못한 만남이라지만 이것도 인연인데 악수 한 번 할 수 있겠습니까?”
뭐 반가운 만남이라고 악수하겠나 싶지만서도 이상하게 남자가 내민 손을 잡고 싶은 경찰이었다.
아니, 잡아야만 할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결국 경찰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동시에 남자가 무어라 읊조렸고 순간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 손을 타고 전해졌다.
“으음?”
“이쪽 경찰관님도요.”
“허흠?”
과연 한 명만 느낀 감각은 아니었다. 차례대로 태구와 손을 맞잡은 경찰관은 짜기라도 한 듯 “어, 음?” 소리를 내뱉었다.
“하면 남은 시간도 고생하시고 항상 신의 축복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할 일을 끝낸 태구는 태연하게 경찰관 둘을 배웅했다.
경찰관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다시 등을 돌렸다.
그들은 당장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차릴 수 없었다.
***
성흔을 입으면서 얻은 신성력의 반을 태웠다. 무려 50 신성력이다. 앞서 만난 경찰에게 축복을 걸어준 것이다.
‘일회성 축복이지만 일하는 데 있어 도움은 될 터.’
이는 이단 심문관으로 대륙을 누빌 때 남아있던 버릇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신관이 그것도 성자가 내려주는 축복은 매우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 때로는 비싼 값을 치러도 내려주지 않는 게 성자의 축복이었다.
허나 예외는 있었다.
‘마수와 싸우는 경비대나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경찰이나 매한가지겠지.’
태구는 세상을 이롭게 하는 자들에 한해서는 아낌없이 축복을 나눠주었다. 이번에도 같은 경우였다. 경찰관은 축복받을 자격이 있는 자다. 물론 개중엔 마인과 다름없는 존재도 있지만 적어도 저 둘은 아니다.
그렇기에 신성력의 절반을 썼어도 아깝지 않았다. 신을 따르는 신관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에. 그러라고 신께서 이곳으로 보내주신 게 아니겠나.
‘더불어 후회만 가득했던 삶을 다시 살아보라 기회를 주신 게지.’
그러려면 무엇보다 꼭 필요한 것이 있었다.
“내게 그리 물었지. 뭘 어떡해야 입을 다물 것이냐고. 간단하다. 돈 내놓거라.”
다름 아닌 돈이었다.
집으로 들어온 태구는 당당하게 돈을 요구했다.
쓰러진 흑룡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던 상남은 잘못 들었다는 듯 고개를 바짝 쳐들며 되물었다.
“뭐? 뭘 내놔?”
문 앞을 지키는 경찰이 없어서일까. 어쩐지 짜증이 묻은 어투였다.
“못 들었느냐. 돈 내놓으라고 말했는데.”
태구가 다시금 또박또박 말했다.
“와, 나 골 때리네. 씹. 그러니까 내 돈 뜯어낼 작정으로 이 짓 벌인 거네? 어?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고 했는데. 진짜 갈 곳 없는 놈 재워주고 먹여주고 했더니 이렇게 뒤통수를 까?”
“혓바닥이 길구나. 다시 경찰한테 전화하랴? 방금 막 나섰으니 멀리 가지도 않았을 터인데.”
“아오, 진짜 내가 저걸 확··· 야, 야—!”
핸드폰을 들고 112를 누르고 있자니 상남이 다급히 소리를 친다.
“누, 누가 안 준데? 어? 얼마 주면 되는데.”
“어디 보자··· 삼천 정도면 되겠구나.”
태구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삼천을 불렀다.
‘다른 이의 재물을 탐하지 말라.’는 교리가 있지만 그는 떳떳했다.
“사, 삼천? 삼백이 아니라 삼천?”
“아니다. 내가 계산을 잘못했느니. 사천만 원 보내거라.”
“미쳤어? 내가 당장 그렇게 큰돈이 어딨어!”
“어째서 없다고 하느냐? 네가 모아준다며 내 월급을 가져가지 않았더냐.”
“뭔 개소리야. 네 연봉 천만 원인 거 잊었어? 네가 내 밑에서 일한 지가 이 년이고 이 년 해 봤자 이천! 거기다가 먹여주고 재워주고 방송일 가르쳐주고, 어? 그런 거 다 따지면 너 나한테 받을 돈 오백도 안돼.”
“내가 진정 노동청까지 가야겠느냐?”
“하아, 진짜···이천오백. 그 이상은 안 돼.”
“내가 사정이 급해서 자비를 베풀었더니 안 되겠구나. 시간은 걸려도 돌아가는 수밖에. 하기야, 법에 힘을 빌리면 사천 보다 더 많이 받을 수 있으니 손해 볼 것은 없겠고···”
애초에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었다.
“으으으으 ! 알았다고. 씨발, 네가 말한 삼천! 당장 주면 될 거 아냐!”
상남이 제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소리쳤다.
“사천이라고 했을텐데.”
“솔직히 사천은 오바잖아. 그냥 처음 말했던 대로 삼천으로 가자. 서로 봐온 정이 있는데···”
“역시 대화보단 법이···”
“준다. 줘!”
다시 말하지만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다. 상남은 자숙 방송을 찍는 자신을 상상하며 이를 빠득 갈았다. 괜히 푼돈 아끼다가 큰돈 잃을라. 상남이 말했다.
“당장 보낼게. 그 전에···”
그러면서 머리가 아예 없는 건 아닌지 발설 금지 각서를 요구했다. 태구는 흔쾌히 써주겠다 대꾸했다.
어차피 놈이 저지른 추악한 일들은 곧 세상에 까발려진다. 굳이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된다.
잠시 후.
“보냈으니까 확인해봐.”
까맣던 핸드폰 액정에 불이 들어왔다. 은행 어플에서 메시지를 보내온 탓이다.
“확인했느니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사천 들어왔네.”
“그럼 볼일 다 봤으면 당장 내 스튜디오에서 꺼져.”
“말본새를 보아하니 볼일이 더 생길 것도 같은데”
“···그래. 내가 흥분했어. 인정해. 미안. 됐지? 이제 진짜 갈 길 가자. 어?”
“나 역시 바라는 바다.”
그렇게 초기 자본을 마련한 태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