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42)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 42화(42/157)
세상 모든 이를 구할 순 없겠지만.
실시간 시청자 수 15만.
그중에는 강원도민 시청자들도 여럿 있다.
그들이 ‘아라짱’이 쏘아 올린 달풍에 말을 보탰다.
– 맞다. 나도 그 문자 받았음.
– 백프로 김복순 할머니 맞음.
– 아라 새리. 눈썰미 지렸다?
– 그 문자 받은 지 꽤 되지 않음?
– 가족들 애탄다. 빠리빠리 인계 ㄱ
– 지금이라도 찾았으니 을매나 다행이냐.
– 나 신고하려고 하는데 거기 화재 난 펜션이라고 할까? 귀신산이라고 안 오는 건 아니겠지?
한 명이 아니고 여러 명이 하는 말이었다.
어그로가 아니라 확실한 정보라는 걸 의미했다. 흑룡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진심 실종 노인이라고? 와, 씨. 형님들이 먼저 신고 좀 넣어주라. 주소는···펜션 말고 늘푸른 캠핑장이라고 말해줘. 우리가 금방 할머니 모시고 내려갈게.”
구조견이 찾은 할머니도 구했겠다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 없었다.
더불어 방송 역시 끊어갈 타이밍이라고 판단한 흑룡이었다.
자칭 프로 비제이가 판단하건대 뽑을 장면은 다 뽑았다.
그가 슬쩍 태구를 바라봤다. 마침 태구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고 매니저 소개하려고 켠 방송인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 아무래도 오늘 방송은 여기서 끝내야 할 것 같은데.”
“오, 역시. 나도 같은 생각 하고 있었는데. 울 태구 이제 아주 프로 비제이가 다 됐네?”
“···”
“크흠. 아무튼 형님들. 지금 정신도 없고 할머니 챙겨야 해서 여기까지만 할게. 자세한 설명은 다음 방송에서 확인하라고. 아경아, 너도 인사해야지.”
“···그, 선생님들. 오늘 저 환영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다음에는 더 좋은 장비 가지고 와서 소개해 드릴게요. 그리고 저 이제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편히 봐주세요. 할머니도 저희가 잘 모셔서 안전하게 가족분께 인계할게요. 그럼 편안한 밤 되세요.”
아경이 또박또박한 말투로 인사를 전했다. 화면 너머로 씩씩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제 막 심령 솔루션 본방 시청을 마치고 온 시청자들은 그런 아경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 고 매니저, 앞으로 꽃길만 걷자.
– 고 매니저. 오늘 활약 좋았다.
– 응, 앞으로 너 emf 담당.
– ㅇㅇ! 후기 꼭 알ㄹㅕ줘.
– 오늘 방송 공포감동 다 했다.
– 미안한데 편안한 밤은 못 될듯ㅠ
– ㅇㅈ 나 잠 못 잘 것 같아ㅠ
– ㅠㅠㅠㅠㅠ님 마음 내 마음.
[강태구 님이 방송을 종료하셨습니다.]그렇게 방송은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이제 쓰러진 할머니를 모시고 내려가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아경이랑 할머니 모시고 먼저 내려가 있어. 나는 근처 좀 더 둘러보고 내려갈게.”
돌연 이곳에 홀로 남기를 택한 태구였다. 흑룡은 짐짓 당황해 되물었다.
“엉? 왜. 구조견이 또 짖어?”
“그런 건 아니고 이왕 온 거 깔끔히 다 정리하고 가면 좋잖아. 그래야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을 거 아니야.”
악령은 피해자를 낳고 피해자는 또 다른 악령이 된다.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했다. 그래야 노파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을 터.
“혼자서 괜찮겠어? 나랑 같이 갈까? 내가 느낀 건데··· 나 퇴마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단 말이야? 그 기도문 효과도 죽이고.”
그에 흑룡이 이렇듯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태구는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영안을 봉인해 달라 조를 땐 언제고 저 뿌듯해 하는 표정 좀 보라지.
확실히 이 녀석은 신관이 될 팔자다. 하기야, 그러니 그분의 은총을 받은 거겠지.
그러나 지금 당장은 제 곁에 설 수준이 못 됐다. 그가 말했다.
“혼자가 편해.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을 거고.”
“알았어. 그럼 우리 먼저 내려가 있을게.”
태구는 빈말하지 않는다. 흑룡은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빠르게 단념했다. 그러던 때였다.
“사장님. 이거 좀 봐주세요. 아무래도 할머니 물건 같은데 챙겨가도 되는 건가 싶어서요. 그, 흉가에서 함부로 물건 주워가지 말라는 말을 들어서···”
아경이 갈색 부직포 가방을 들고 와 물었다.
그 안에는 목장갑과 가시 박힌 풀때기 따위가 들어 있었다.
내용물이 썩지 않은 것으로 봐서, 또 할머니 근처에 놓여있는 것으로 봐서 노파의 것이 분명했다.
“괜찮아. 챙겨 가.”
태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경을 안심시켰다.
그렇게 짐을 챙긴 아경과 흑룡은 곧장 산에서 내려갔다.
둘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태구가 함께 걷는 길이 아님에도 두려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들이 구한 할머니의 온기 덕분일지도···
한편, 태구는 홀로 펜션에 남았다.
아, 정확히 혼자는 아녔다.
[컹컹, 컹컹컹 !]해피 녀석도 함께였다. 태구는 제 발치를 지키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제는 편히 쉬어도 된다니까 그러네. 거기 좋지 않아? 거기서 자고 싶은 만큼 자고, 먹고 싶은 만큼 먹고 사람들한테 예쁨받고 그러고 있음 얼마나 좋아. 응?”
조금 전, 태구는 녀석을 데리고 심상의 신전에 들렀다.
성스러운 기운이 충만한 공간. 태구는 녀석이 누구보다 그곳을 좋아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녀석은 연신 태구의 뒤만 졸졸 따랐다.
신전의 거주민, 김수인이 저와 같이 있자 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던 녀석.
그에 괜스레 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녀석과 함께 현세로 돌아온 태구였다.
가끔은 이렇듯 현세와 신전을 오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다른 망령도 아니고 그분의 기운을 품은 녀석이 바라는 것일지니.
녀석은 배려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였다.
[끼잉, 낑잉잉···]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녀석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신전 이야기에 귀를 축 늘어뜨리는 녀석. 태구는 설핏 미소를 지었다.
“네가 싫으면 말아. 나도 억지로 보낼 생각은 없으니까.”
[컹컹 !]“대신 위험한 행동 말고, 다치지도 말고.”
[컹!]알겠다는 듯 꼬리를 살랑이며 태구의 다리에 머리를 부비적거리는 해피. 그 촉감이 퍽 괜찮았다.
허나,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그에겐 할 일이 있었다.
“하면, 이제 볼일 좀 볼까나.”
태구가 걸음을 떼는 순간이었다.
돌연 녀석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는가 싶더니 “컹!” 하고 짖고는 앞장서 걷는 게 아니겠나.
그리고는 다시금 잽싸게 태구의 곁으로 뛰어온다. 이러한 행동을 두 차례나 반복했다.
태구는 녀석의 뜻을 알 것도 같았다.
“그럼 어디 한번 찾아보던가.”
예상대로였다. 녀석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쏜살같이 앞으로 뛰어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들려오는 녀석의 우렁찬 울음소리. 망령을 찾았다는 신호였다.
태구는 그렇게 녀석과 호흡을 맞추며 펜션 주변을 정리해 나갔다.
신경 쓸 사람도 장비도 없었기에 속전속결로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금 산에서 내려왔을 땐···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이 있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이제 막 도착한 모양이다.
“키야, 타이밍 기가 막히네.”
“사장님! 여기요!”
흑룡과 아경도 태구를 발견했는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
얼굴과 눈이 벌겋게 상기된 중년 부부가 헐레벌떡 파출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엄마, 엄마—!”
“어머니. 우리 어머니는?”
한쪽은 슬리퍼 또 다른 한쪽은 운동화, 러닝셔츠에 대충 걸친 점퍼. 둘의 차림새만 봐도 다급하고도 절박한 심정이 느껴졌다.
비단 차림새뿐일까. 엄마를 부르짖는 말투에 물기가 서려 있었다. 그에 파출소장이 손을 휘저으며 흥분한 둘을 맞이했다.
“수철아. 연이야. 어머니 저기 계시니까 진정 좀 해. 니들이 이러면 어머니 놀라시잖냐. 엉? 목소리 좀 죽여라.”
옆집 숟가락 개수까지 알 법한 좁은 동네였다. 파출소장은 중년 부부를 잘 알고 있었다.
태구 일행이 데려온 김복순의 아들과 며느리이자, 제 동창들이었으니.
다행히 둘은 금세 진정을 되찾았다.
어머니가 놀라실 거란 말에 가까스로 흥분을 내리누른 것이다.
어머니가 시야 안에 계신다는 것도 한몫했다.
“···흐으, 어떻게 된 거야? 어디서 찾았어?”
노파의 아들, 수철이 물었다. 파출소장은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상황을 설명했다.
“어머니 곁에 계신 분들 보이지? 저분들이 찾아주셨어. 우리 막내가 하는 말이 유명한 퇴마사라고 하대?”
“···퇴마사?”
“무당말이야. 무당. 아무튼 어머니가 그 숲에 계셨다더라. 그 잘린 당나무 있는 숲. 저분들이 거기서 발견해서 신고했고.”
“거, 거기가 어디라고. 엄마가 거길 어떻게 갔다는 거야.”
“하아, 이거···”
소장이 수철에게 갈색 천 가방을 건넸다. 아경이 챙겨온 노파의 가방이었다. 건네받은 가방 안에는 두릅이 있었다.
수철과 그의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봄나물이었다. 소장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어머니가 그 숲에 가신 이유를···
“이맘때쯤이면 엄마들 두릅 따러 가셨잖냐. 우리들 먹이겠다고. 또 너희 부부는 그거 좀 좋아했냐. 아마 그 기억에 나가신 모양이야.”
그 말에 중년 부부는 무너지고야 말았다. 저 자신마저 잊은 어머니가 아니던가.
그런데 아들과 며느리가 좋아하는 봄나물은 또 귀신같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둘의 억장을 무너지게 만들었다.
“끄, 끄으윽.”
“흐읍. 이게 뭐라고. 이런 게 뭐라고 나가셔서는···”
부부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오열했다. 울음소리가 너무 컸던 것일까. 여태껏 곤히 잠들어 계시던 노파가 감은 눈을 떠올렸다.
“어, 어. 저기요. 할머니 일어나셨는데···”
노파의 곁에서 제 어깨를 내어주고 있던 아경이 이를 알렸다. 그 말을 들은 수철과 아내가 황급히 눈물을 닦았다.
치매를 앓고 계신 어머니가 놀랄까 봐서였다. 낯선 환경, 시끄러운 주변 환경, 흥분한 감정 등. 치매 환자가 대응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흐으. 엄마. 저 수철이예요. 엄마 아들 박수철이요. 잠은 잘 주무셨어요? 배는 고프시지 않구요? 저랑 같이 집으로 가요. 엄마가 좋아하는 곶감 드릴게요. 네?”
수철은 어린아이 달래는 듯한 말투로 자신을 소개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보통은 “우리 아들 아니잖아!”라며 저를 부정했던 어머니가···
“······”
아무 말 없이 저와 아내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눈빛에 애정이 서려 있었다. 그 옛날에도 저렇듯 저와 아내를 보시곤 하셨다.
“···엄마?”
“날도 추운데 옷은 왜 그 모양이야. 감기도 잘 걸리는 녀석들이.”
그러고는 매일 몸 챙기라고 잔소리하셨다. 지금처럼 말이다. 수철의 눈가로 다시금 눈물이 차올랐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 엄마? 나 알겠어?”
“금쪽같은 내 아들이랑 며느리잖어. 엄마가 몰라볼까 봐서? 어미 정신 또렷해. 다 기억나. 그간··· 어미 때문에 고생 많았지?”
“흐, 흐으욱!”
어머니는 분명 제정신으로 보였다. 이렇듯 정신을 차린 게 얼마 만이던가. 감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둘은 눈물범벅을 한 채 어머니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두릅을 꺾다 잠시 정신을 차렸을 때.
김복순은 망각했던 제 처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잘못된 결심을 했다.
더는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었으니.
그러던 때.
“분명 그 녀석이었어. 그것이 또 나를 살린 거야.”
오래전, 제 목숨을 구해 준 녀석의 소리를 들었다.
녀석은 낭떠러지로 향하는 제 앞길을 막고, 추위에 바들바들 떠는 제 몸을 녹여주었다. 얼핏 그 형체를 본 것도 같았다. 딸랑이는 방울 소리도 들었다.
그리고 그런 녀석이 데려온 사람이 있었다. 김복순 여사는 태구와 흑룡을 쳐다보며 물었다.
“총각.”
“···예?”
흑룡의 대답에 김복순 여사가 고개를 돌렸다. 이 목소리가 아녔다. 이어서 그녀의 동공에 태구가 담겼다.
“네. 어르신.”
그녀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태구의 손을 맞잡았다.
“그래, 이 목소리야. 분명 이 목소리였어. 총각이 그랬잖아. 살라고, 정신 차리라고. 흐으, 그렇지? 녀석이 자네를 데려온 거지?”
맞다. 그녀의 육신에 기운을 불어 주며 그런 말을 했었다.
가슴에 품은 근심은 자신이 거둬 줄 터이니 스스로를 포기하지 말라고. 정신 차리라고.
세상 모든 이를 구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저와 인연이 닿은 이들은 차마 외면할 수 없었으니까.
태구는 그렇게 소리치며 손을 내밀었다. 망령들에게 제 몸을 내어주고 육신 구석에 웅크려있던 여자에게···
그 말을, 제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태구는 별 말없이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그거면 충분했다.
“고마워, 내 정말 고마워.”
“다 해피 덕분이죠.”
“흐읍. 그래, 그 녀석이 이 몹쓸 병도 가져가 준 게지. 그렇지?”
“···”
태구의 모르쇠에 노인도 더는 묻지 않았다.
대신 그 손을 꽉 붙잡고 대접할 기회를 달라고 말하는 노인이었다. 몇 차례 거절했으나 어찌나 간곡히 애원하던지···
결국 태구 일행은 김복순 여사가 살고 있는 마을로 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