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46)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 46화(46/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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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었다.
그만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것과 눈을 마주하게 된 것은···
“!”
회색빛 얼굴에 갈라진 피부, 듬성듬성 나 있는 퍼석한 머리카락, 요사스럽게 번들거리는 일자 눈알.
그것의 행색은 실로 충격적이다 못해 소름이 끼쳤다.
온몸에 털이란 털은 쭈뼛 다 서는 것만 같았다.
‘흐으, 썅. 구렁이 귀신이라며!’
대관절 어떤 구렁이가 저렇게 생겼단 말인가.
그것은 짐승이 아니라 사람에 가까운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또 사람이라 볼 수도 없었다.
잿빛 얼굴 아래를 제외하곤 나머지는 구렁이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니.
허리춤에서 느껴지는 서늘하면서도 미끈한 감촉이 그러한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닫게 했다. 그건 분명 뱀의 비늘과 같은 촉감이었다.
눈알을 굴려 확인해볼 수도 있지만, 흑룡은 그러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럴 수 없었다.
당장 눈만 마주하는 걸로도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만 같았으니까.
‘에라이, 이 미친 새끼야. 체력이 뭐라고 시력이 뭐라고! 닫아준다고 할 때 냉큼 닫아야 했는데, 흐으.’
그렇기에 그저 때늦은 후회만 거듭할 뿐이었다. 다른 생각과 행동은 할 수 없었다.
기도문을 외우는 것도, 태구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러한 와중에 돌연 그것이 목을 길게 빼어 흑룡의 코앞에서 머리를 멈춘다.
그러고는 푸르딩딩한 입술을 쩌억 벌리며···
[스사사사— 너, 인간, 어린 남자야.]이렇듯 말을 하는데.
[샤아아—— 내가, 보이지? 내가 보이는구나? 나를 보고 있어?]벌어진 입안에서 두 갈래로 갈라진 검은 혀가 보인다. 날카롭게 튀어나온 이빨도 보인다. 검은색 진액이 쩌억, 쩌억 갈라지고 있었다.
그것은 연신 혀를 날름거리며 괴이한 음성을 토해냈다.
남자의 음성도 여자의 음성이라고도 할 수 없는 기괴한 목소리였다.
[키, 키키키키. 나를 보고 있네. 맞네. 나를 보고 있어. 감히 네까짓 게 내 계획을 망치려 들었단 말이지?]제가요? 설마요? 아니요?
사람 잘못 보셨어요.
흑룡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한 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아무것도 못 본 척, 입을 다물라는 태구의 당부가 뒤늦게 어렴풋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만 거기에 더 물을 끼얹을 순 없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으으···’
그것의 갈라진 혀가 제 볼을 스친다. 그와 동시에 흑룡은 축축한 물비린내와 고약한 악취를 맡았다.
“우욱.”
단언컨대 살면서 처음 맡아 보는 악취였다.
마치 생선 아니 그것도 부족하다. 푹 삭힌 젓갈이 썩으면 이러한 냄새를 풍길까 싶었다.
그만큼 지독한 냄새였다. 흑룡은 정말이지 기절할 것만 같았다. 그보다 더 정확히는 기절하고 싶었다. 허나, 빌어먹게도 정신이 말똥말똥하다.
그것이 연신 머리를 흔들어댈 때마다, 검은 혀를 날름 일 때마다 악취는 더욱 짙어진다.
샤아아아——
[인간아, 남자야. 어린 아이야. 방해 마. 방해하면 죽일 거야. 너도 그 인간처럼 산 채로 잡아 먹을 거야. 죽일 거야, 죽일 거야. 그러니 당장 꺼져···]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구토를 유발하던 악취가 이제 와 제법 맡을만하게 느껴진 것이다.
게다가 저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꽁꽁 얼어붙은 몸과 마음도 녹아내리는 것만 같다.
아니, 녹아내리다 못해 뜨거워진다. 어쩐지 가슴이 답답해졌다.
‘시원한 바람 좀 쐬면 나을 것도 같고··· 시원한 물속에 몸을 담그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단 말이지.’
그 순간, 흑룡의 눈빛이 변했다. 그러한 변화는 방안에 설치한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기고 있었다.
– 저거 눈깔 왜 저러냐.
– 지금 눈깔이 문제냐? 혀 좀 봐;
– 우웩ㄷㄷㄷ 오늘로 남캠 딱지 떼야긋다.
– 더럽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어쩐지 느끼고 있는 표정 같음.
– ㅅㅂ 구렁이한테 느끼긴 뭘 느껴.
– 룡아. 위험하면 당근을 흔들어 봐.
– ㅋㅋㅋ당근을 주고 말하던가. 태구ㄱㄱ
– 여기서 퇴마했다가 애나벨 못 보면?
– ㅇㅈ 흑룡은 잠시 저대로 냅두자.
– 참된 희생을 기리겠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흑룡은 본능에 충실했다.
“으, 으··· 물, 무울로 가자. 물에 가야 해.”
집을 나서 시원한 강물에 몸을 담그고 싶었다. 가야 할 곳이 어딘지 알고 있었다. 그렇게 몸을 틀어 걸음을 옮기려는 때.
“어어? 비제이 님. 갑자기 왜 그래요. 정신 차려요. 사장님이 말한 거 잊었어요? 어디 가려고요.”
비교적 흑룡과 가까이 붙어 있던 아경이 손을 뻗어 그의 걸음을 제지했다. 반쯤 튼 흑룡의 몸이 다시금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헤레레레레···”
아경은 흑룡의 모습을 정면에서 볼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자유분방하게 움직이는 혀를 보게 되었다.
“꺄아악—!”
아경은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고도 놀란 마음이 쉬이 가라앉질 않는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이윽고 그녀의 손에 들린 emf 측정기가 흑룡의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퍼걱—!
묵직한 타격음이 방안을 울렸고, 흑룡이 잠시 휘청였다.
– 그 비제이에 그 매니저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아앀ㅋㅋ심각하게 보다가 터짐.
– 근데 솔직히 때릴만 했음ㅋ
– 저거 완전 미친 새끼 아니야.
– 급발진ㄴ 빙의돼서 그런 거잖음.
– 그래도 저건 아니지.
– ㅇㅇ. 저거 빙의 아닐지도 몰라.
– ㅇㅈ. 한 대 더 갈겨버려.
“어, 어. 비제이 님. 저도 모르게 그만. 죄송해요. 괜찮으세요? 진짜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허, 헉. 피!”
언뜻 피를 본 것도 같다. 아경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흑룡을 부축하려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피가 아녔다.
Emf 측정기에서 흘러나오는 빛이었다. 5단계를 가리키는 분홍색··· 이걸 다행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
이제 와 측정기 수치를 확인한 아경은 깜짝 놀라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 흑룡이 머리를 붙잡으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비, 비제이님!”
– 퇴마 물리 치료된 건가?
– 어쩐지 눈빛이 돌아오는 것도 같음.
– 혀 들ㅇㅓ간 거 보니까 치유 성공인 듯?
– 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게 무슨 상황.
– 걍 귀신이 사라져서 그런 거 아님?
– ㄴㄴㄴ 손녀 방 아직도 반응 1도 없음.
– 나도 손녀방 주시 중.
아경의 손맛 때문이 아녔다. 순간, 머릿속을 강타하는 낯익은 목소리가 흑룡을 주저앉게 만들었다.
***
‘내가 너무 과하게 평가했나 보군. 하기야, 이게 정상이긴 하지.’
전날, 흑룡은 펜션 주변을 잠식한 귀기를 보고 또 느끼고 그 안에서 제힘으로 빠져나오기까지 했다.
그런 화려한 전적이 있기에 이번에도 그러지 않을까 싶어 두고 본 것인데, 아직은 무리인 성싶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일찍 손을 쓸 걸 그랬나?’
그랬다면 적어도 저런 추한 꼴을 보이지 않았을 터인데.
태구는 반쯤 홀린 흑룡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당장은 아경이 덕분에 주춤 걸음을 멈추긴 했으나, 저대로 둔다면 어떻게든 집 밖을 벗어나고 말 것이다.
비단 그뿐일까. 남들의 눈을 해치는 행동을 반복해서 하겠지. 그러면서 그것의 의지에 따라 밤새도록 산과 들 강을 헤매고 다닐 터.
그래선 곤란했다.
‘아무렴, 첫술에 배부를 순 없는 법이니까. 경험은 최고의 실전이라고 몇 차례 겪다 보면 스스로 터득하게 될 터. 일단 수준은 제대로 알았고···’
더불어 녀석의 수준을 확인한 이상 제대로 굴려줘야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태구는 그런 생각을 하며 흑룡을 향해 제 의지를 전달했다.
[정신 안 차려?]‘어, 어?’
이렇듯 살아있는 사람에겐 처음 써보는 스킬이었다. 물론 대륙에선 종종 썼다. 이곳, 지구에서 처음 쓴다는 말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곳 사람들에게 생소한 스킬은 숨기는 게 맞다.
그런데도 태구는 스킬을 쓰는 데 개의치 않았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흑룡이니까.
그분의 축복을 이어받은 이상 흑룡은 이제 한 식구나 다름없다. 그에겐 흑룡을 도울 의무가 가르칠 의무가 그분의 뜻을 알릴 의무가 있다.
[일러준 기도문은 어디다 팔아먹고 그러고 있어? 다시 말하지만 넌 아무것도 못 본거야. 들은 것도 없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란 말이야.]‘태, 태구 너야? 내 생각도 읽을 수 있는 거야? 너 맞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뭐야.’
다행히 흑룡은 번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태구의 의지를 전달받는 그 순간, 그를 홀린 요사스러운 기운이 흩어졌다.
혀를 쭉 내밀고 몸을 배배 꼬던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었다.
[돈, 달풍. 여자.]‘진짜 마, 맞구나.’
[그러니까 정신 차리고 내 말 똑똑히 들어. 내가 앞에 말했지? 동물의 원한은 그 대상을 확실히 한다고. 그러니까 못 본 척, 못 들은 척하면 아무 문제 없어. 제풀에 지쳐 볼일을 보러 떠날 거야. 저것의 목적은 우리가 아니라 이 집, 혈육이니까]그 대신 표정이 가관이긴 했다. 동물령의 빙의, 제 의지와 상관없는 행동,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 연거푸 겪는 기괴한 경험이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넋 나간 표정을 지을 만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 지나지 않았다. 과연 흑룡은 눈치가 빨랐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겠어?]그가 빠르게 태세를 전환하는 순간이었다.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으니까. 그러기 위해선 태구의 뜻에 따라야 한다.
흑룡은 기대에 부응하듯 카메라를 보며 짐짓 오바스러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와, 하하하. 형님들 내 연기 지리지? 그, 근데 아경아. 너 너무 세게 때리더라. 이 얼굴이 얼마짜린 줄 알고. 엉?”
샤아아——
지금도 제 옆에서 검은색 혀를 날름거리는 그것이 보이지만 확실히 조금 전보다는 견딜 만했다. 마음속으로 되뇌고 되뇌는 기도문 덕분이리라.
– 아. 그러니까 다 주작이었다?
– 괜찮아. 흑룡아. 추했지만 이해할게.
– 물리 퇴마로 정신 차린 거잖아.
– ㅇㅈ 혀놀림은 연기일 수가 없음.
– 난 빙의 아니다에 한표.
– 샹; 그럼 맨정신에 고 매니저한테 그런 거라고?
“···그게 연기였다구요?”
“왜그래. 고 매니저. 미리 협의된 거잖아. 태구가 했던 말 잊었어?”
흑룡은 계속해서 연기를 이어 나갔다. 그것이 허리를 감싸도,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며 방안을 휘저어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태연히 아경과 말을 주고받았다.
“그러게. 아주 잘하던데? 지금도 잘하고 있고.”
태구도 가세했다. 그제야 아경도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하.하. 그랬지! 맞아요. 시청자들 깜짝 놀라며 주려고 했잖아요.”
– 얘네 지금 뭐 하냐?
– 이게 연기 아님?
– ㅋㅋㅋㅋㅋㅋ셋다 그냥 로봇이네.
– 괜.찮.아.요?
– 그러니까 왜 이 짓거리를 하는 건데.
– 몰라. ㅈㄴ필사적으로 함.
– 흑룡이 식은땀 흘리는 거 봐라.
– 귀신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거 아님?
그렇게 발 연기를 펼친 세 사람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동안 의심의 눈초리로 세 사람을 지켜보던 그것이 마침내 안방을 빠져나갔다.
아경과 달리 영안이 트인 흑룡은 그것이 빠져나간 모습을 보고서야 철푸덕 주저앉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