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48)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 48화(48/157)
업 (6)
신성한 기운은 사특한 망령의 영체를 태워버렸다. 성도끼에 찍힌 그것의 목덜미에서 잿빛 연기가 새어 나왔다.
“좋은 말로 할 때 먹은 거 다 뱉어내라.”
[샤아아아——!!]망령은 끔찍한 절규를 내질렀다. 그것은 태구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고통에 휩싸여 몸부림쳤다.
[갸아아아!]상처 입은 망령이지만 아직 현세에 영향을 끼칠만한 기운을 갖고 있었다. 방안에 자리한 물건이 귀기에 반응했다.
콰콰캉! 쾅콰콰쾅!
이를 가만히 두고 볼 태구가 아니었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래, 그럼 내가 직접 꺼내지 뭐.”
성스러운 기운이 다시금 도끼날을 휘감았다.
[···!]찰나의 순간, 그것이 내지르던 비명을 멈추고 태구를 바라보았다.
마주한 일자 눈알이 요사스러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태구는 단박에 그것의 속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샤아, 샤아아···]저를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실제로 망령은 태구가 두려웠다. 그것은 태구가 신성력을 드러내는 순간부터 깨달았다.
눈앞의 인간은 감히 자신이 상대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더불어 직접 꺼낸다는 그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장담컨대 남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제 배를 가르고 그것들을 직접 빼낼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은 어찌 되겠나?
시리디시린 한을 풀지 못하고 바스러지겠지. 그래선 안 된다. 사라지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두려운 것은 한을 풀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았다.
[구, 구웨웨엑 !]구렁이 망령은 태구의 눈치를 보며 황급히 몸 안의 것을 게워 내기 시작했다.
“진즉 그럴 것이지.”
지난 날, 통째로 삼킨 영혼의 잔재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이미 시간이 꽤 지난 터라 영혼의 형태는 온전하지 못했다.
마치 검은 기름을 뒤집어쓴 덩어리처럼 보였다.
“으으.”
“흡.”
동시에 젓갈의 썩은 내가 방안을 뒤덮었다. 이번에는 아경도 맡을 수 있었다. 흑룡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미간을 구기며 촬영을 이어 나갔다.
“후우, 방금 뱉었어. 뭐랄까. 꼭 슬라임 같이 생겼어. 색깔은 꺼메. 대충 다 토해 낸 것 같은데? 지금 태구가 그 앞으로 간다. 성불하려는 모양이야.”
덕분에 방송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보고 듣는 상황을 실감 나게 전달했다. 이 순간, 흑룡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뿐이었다.
한편, 태구는 녀석이 뱉어낸 영혼의 잔재를 보고 있었다. 예상대로 회생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그들의 기운은 이미 녀석이 다 흡수한 상태였다. 외형을 바꾸고 사람이 쓰는 언어를 사용할 수 있었던 건 저들의 기운 덕분이었다.
다시 말해 그것이 뱉어낸 것은 껍데기에 불과했다.
불행의 시발점이 된 할아버지는 그렇다 쳐도 업을 이어받은 그 아들과 손자는 무슨 죄인가.
실로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쯧.”
태구는 와락 인상을 구기며 손가락을 튕겼다.
성력에서 비롯된 후광이 세 구의 검은 형체를 덮었다.
다른 사도가 봤더라면 괜한 짓이라 타박할만한 행동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빈껍데기에 신성력을 쏟아붓고 있는 형국이니.
허나, 이렇게 해야 안타까운 마음이 풀릴 것만 같았다. 저만 편하자고 하는 행동은 아녔다. 망자에 대한 예의기도 했다.
‘다음 생은 조금 더 편안하기를.’
태구는 그런 마음으로 세 구의 검은 형체를 정화했다. 그것들은 곧이어 밝은 빛무리가 되어 흩어졌다. 주변을 덮은 악취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러던 때였다.
샤아아—— 샤악
[저것이, 내 죄 없는 아이를 죽였어. 저것이 나를 죽였단 말입니다. 나는 내 새끼와 그저 따사로운 햇살을, 내리쬐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남자 인간이 웃으며 내 아이들의 몸통을 갈랐습니다. 나는, 왜, 그러면 안 됩니까.]구렁이 망령이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자신의 차례가 왔음을 직감한 것이다.
이대로 있다가는 꼼짝없이 소멸할 판이었다. 그것은 제 사연을 풀어놓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듣지 않아도 될 말이었다. 일격에 죽여 상황을 정리해도 될 일이었다. 그러나 태구는 번거로운 길을 택했다. 그가 망령의 절규에 대답해주었다.
“왜 안 보이겠냐. 생때같은 자식을 한날한시에 잃어버렸는데. 그 한이 오죽할까. 그렇지만 너와 네 자식을 죽인 이만 데려갔어야지. 어째서 그 죄 없는 목숨까지 줄줄이 거둬간 거지?”
[그것도, 나와, 같은 고통을, 느껴야지요. 그래야, 공평, 합니다. 그러니 제발 하나 남은 목숨을, 거둬갈 수 있게···]“이미 충분히 느꼈을 거야. 후회를 거듭하고 피눈물을 흘렸겠지. 그러니 제 목숨마저 버려가며 너를 찾아왔을 테고. 그러니까 이쯤에서 그만둬.”
[나, 나는 내 아이들 전부를 잃었, 습니다···]“그래. 네가 끔찍이 여기는 그 새끼들. 그 새끼들을 잃었다는 마음에 이렇듯 악업을 쌓고 있는 거잖아.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끔찍이 여기는 네 새끼는 지금 네 곁에 없네? 살아생전 챙기지 못했으면 죽어서라도 챙겼어야지. 한에 사로잡혀 제 새끼들은 잊은 모양이지?”
[—!]맞다. 그저 한에 사로잡혀 있었다. 저와 아이들을 죽인 집안의 씨를 말릴 생각만 했다. 다른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내 아이들은···
“어디 있겠어? 별다른 일이 없다면 그 자리에서 어미를 기다리고 있겠지.”
[아, 아아악! 안 됩니다. 안 돼, 안 돼! 내 아이들은, 안 돼!]순간 구렁이 혼령이 머리를 바짝 쳐들고 위협적인 기세를 흘렸다. 태구의 말을 협박으로 들은 것이다. 모성이 두려움을 이겨내는 순간이었다.
“안되긴 뭐가 안돼. 네 새끼들, 내가 거둬줄게. 비록 어미와 함께 할 수는 없겠지만 산기슭을 떠도는 것보단 나을 거야.”
그러나 이어지는 태구의 말에 넋 나간 표정을 짓는 구렁이 혼령이었다.
[···거, 거둬? 내, 아이를, 거둬준다고요? 해치지, 않고?]“그것들이 무슨 죄가 있어서 해치겠어? 어르신의 손녀도 마찬가지야. 그 아이는 아무 죄가 없어. 네 새끼와 똑같은 처지지.”
복수의 대상으로만 보았다. 저를 죽인 인간의 혈육은 죽여 마땅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상은 아녔다.
게다가 망령은 어미였다. 무릇 부모는 죽어서나 살아서나 자식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더욱이 그것에겐 다른 선택권은 없었다.
다시 말해 태구의 제안은 다신 없을 자비였다. 다신 없을 기회에 구렁이 망령은 번뜩 정신을 차렸다. 그러면서 뒤늦은 후회를 했다.
‘내 새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아이들을 먼저 챙겼어야 했는데. 내가 떠나면 내 새끼들은 어쩌나. 누가 지켜주나.’
그렇지만 후회는 아무 쓸모가 없었다. 앞으로가 중요했다. 망령이 빠르게 태세를 전환했다.
[···부탁 합니다. 내, 내 새끼들을 거둬 주세요. 불쌍한 아이들, 거둬 줘요. 내가 저지른 죗값, 내가 받겠습니다. 당신의 손에 제 마지막을 맡기겠습니다. 그 전에···]태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만히 망령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것이 또 한 번 무언가를 게워 내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뱉어낸 것과 다른 모양새였다.
[갸아아아 !]짙은 회색빛을 한 동그란 구체. 그것은 제 영체를 불살라 만든 영단이었다.
녀석은 마지막 힘을 짜내어 제 기를 담아냈다. 순간, 망령의 몸통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거, 이거 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을 거둬주시는 답례, 보답 입니다.]망령은 영단을 건네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태구는 거절하지 않았다. 더는 주고받을 말도 없었다. 그것도 준비가 끝난 듯 보였다. 망령이 겸허히 눈을 감았다.
콰득.
태구는 서슴없이 그분의 심판을 대행했다. 신성력을 흡수한 도끼날이 그것의 몸통을 갈랐다. 그렇게 구렁이는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 사이, 흑룡과 아경은 태구를 대신해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후우, 끝났다. 퇴마 성공했어. 형님들. 태구가 도끼로 보, 보내버렸어.”
“Emf 측정기도 0단계로 돌아왔어요.”
상황을 정리한 태구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봐서 알겠지만 이제 다 끝났어. 보여줄 건 다 보여줬으니까 방송 종료해도 돼.”
흑룡이 빠르게 채팅창을 훑었다. 그리고는 태구를 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어, 어. 그래야지. 종료하기 전에 따로 할 말은 없어? 형님들이 찾는데···”
“이런 일이 다신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켠 방송이야. 오늘 방송을 보고 다들 깨닫는 바가 많았으면 좋겠네.”
하고 싶은 말도 바라는 것도 오직 그뿐이었다. 다행히 태구의 뜻은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먹혀든 바였다.
– 우리 동네 길냥이 학대범 꼭 봤으면.
– 2222222222222
– 동물 학대 멈춰.
– 물론 나는 안 했음.
– 오늘 방송도 ㅈㄴ 충격적이었다.
– 믿고 보는 방송임.
– 그래서 다음 방송은?
– 무서운데 볼 수밖에 없음. 열일하자.
– 아; 방송 말고 실제로도 함 보고 싶다.
그렇게 오늘 방송도 퇴마도 말끔히 끝낸 태구였다.
***
다음 날, 아침.
유 씨와 손녀가 집으로 돌아왔다.
“오란다고 해서 왔는데 어떻게 되었나요? 그 못된 것은···”
전날 밤, 태구는 해피와 함께 산기슭을 올랐다.
망령의 새끼들을 거두기 위해서였다.
새끼를 찾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것들은 어미가 떠난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덕분에 태구는 어렵지 않게 녀석들을 거둘 수 있었다.
“떠났어요. 이제 손녀분도 괜찮을 겁니다.”
“아이고, 아이고.”
태구의 말을 들은 유 씨는 순간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할머니—!”
손녀 태희가 서둘러 할머니를 부축했다.
유 씨는 그 손을 뿌리치며 태구의 손을 붙잡았다.
“천지신명님,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어서 흑룡과 아경의 손도 붙잡았다.
“으음. 어르신. 저희는 따로 한 게 없어요.”
“맞아요. 사장님이 다 하셨어요.”
“나한텐 우리 손녀 목숨 구해준 다 같은 은인입니다. 태희야. 뭐 하니, 너 살려 준 분들한테 인사드려야지.”
“네. 그러려고 했어요.”
손녀, 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봤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목에 핏대를 세우지도 않았고, 할머니를 향해 날 선 말을 내뱉지도 않았다.
비단 태도만 달라진 것이 아녔다.
놀랍게도 아이를 괴롭히던 얼룩덜룩했던 피부의 상처가 옅어져 있었다.
그걸 본 흑룡과 아경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역시 그 피부는 구렁이의 저주 때문이었구나 싶었다.
“구해주셔서 도와주셔서 감사드려요. 그리고, 저 새벽에 그 방송 봤어요. 그···”
그사이, 아이는 태구를 보고 있었다.
묻고 싶은 게 있는 듯한 눈치였다.
“저희 아버지랑 오빠 그리고 할아버지 말이에요. 좋은 곳으로 가신 거죠?”
“그래. 그러니 먼저 간 가족들 걱정은 하지 말고 즐겁게 그리고 씩씩하게 살아.”
태구는 그녀가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을 해주었다. 때로는 선의의 거짓말도 필요한 때가 있었다. 지금이 그때였다. 아니나 다를까.
“네, 네. 그럴게요. 정말 할머니 속 썩이지 않고 씩씩하게 잘 살게요. 저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우리 가족들도요···”
아이는 눈물을 꾹 참으며 거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삶의 의지가 엿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태구의 입가에도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
****
그로부터 얼마 후.
볼일을 마친 태구 일행은 서둘러 길을 나섰다.
1박 2일을 계획하고 온 여행인데 어쩌다 보니 2박 3일을 지새웠다. 그것도 퇴마 방송을 진행하면서 말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피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마을에 자리한 소방서에 들르기까지 했다. 그곳에서도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로 인해 오전에 출발했으나 자정에 가까워서야 서울에 도착한 태구 일행이었다.
“이, 이게 다 뭐냐.”
“다 사장님 보러 온 것 같은데요.”
그렇게 도착한 집 앞에는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