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5)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 5화(5/157)
기적
지구대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코드 제로라길래 큰일 났구나 싶었는데. 어쩐지 좀 허무하네요.”
운전대를 잡은 시보 민철의 말에 박 경위가 조소를 흘렸다.
“내가 말했잖냐. 별일 없을 거라고. 저 집에 출동하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그래도 설마 혹시 했죠.”
“척하면 척이지. 그보다 민철아.”
“네?”
박 경위는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조금 전에 겪은 묘한 경험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다 궁금해졌다. 과연 자신만 묘한 느낌을 느낀 것일까?
“조금 전에 우리 붙잡고 악수하자고 한 남자 있잖냐. 너 그 남자랑 악수했을 때 뭐 이상한 거 못 느껴···”
그런데 그 순간 무전이 울렸다.
– 은평 아파트 화재 신고 접수. 인근 순찰차는 지원하라.
“순 스물셋, 순 스물셋. 은평 아파트 화재 신고 접수 종발.”
아무래도 궁금증을 푸는 건 잠시 미뤄둬야 할 성싶었다. 박 경위는 곧장 무전을 쳤고, 민철은 황급히 핸들을 꺾었다.
순찰차는 총알처럼 달려 현장에 도착했다.
“도대체 구급차는 언제 오는 거야? 콜록, 콜록.”
“야밤에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래. 어유, 아파트값 다 내려가겠어!”
“어? 경찰이다. 경찰 왔어요!”
도착한 현장은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했다.
대피한 주민들과 불구경 나온 주민들로 발 디딜 틈 없었고, 화재 현장으로 보이는 은평 아파트 102동에선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저희가 제일 먼저 도착한 모양인데요?”
“소방 들어오는 데 힘깨나 들 거야. 오면서 봤잖아. 불법주정차 깔린 거. 아무튼 이럴 시간 없고 빨리 움직이자. 시간이 시간인지라 불 난 줄 모르고 잠든 사람 분명히 있을 거야. 서둘러.”
“네!”
화재 현장 대응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베테랑 박 경위는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늦기 전에 현장 안으로 진입하기로.
그렇게 쏟아져나오는 사람들을 거슬러 1층 입구를 향해 발을 내딛는데.
“허억, 허억. 경찰관님. 저희 아빠 좀 도와주세요. 아, 아빠가 쓰러졌는데 숨을 안 쉬어요. 흐엉엉.”
한 아이가 박 경위의 손목을 붙잡고 늘어진다.
“민철아, 안에는 나 혼자 들어갈 테니까 저쪽은 네가 가 봐.”
그에 박 경위가 민철을 보며 지시했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도움이 필요한 건 매한가지. 그렇다면 위험한 현장엔 자신이 들어가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아뇨, 아뇨. 저분 말고요. 경찰관님이 같이 가주세요. 네? 흐엉, 빨리요. 우리 아빠 이러다가 큰일 나요.”
그런데 아이가 고개를 저으며 박 경위를 고집했다. 본능에 따른 행동이었다. 연배로 보나 말투로 보나 박 경위 쪽이 훨씬 경험 많은 경찰로 보였으니.
민철이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경위님. 아무래도 안쪽은 제가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은데요?”
“···흐음.”
“걱정하지 마세요. 저 달리기도 빠르고 목소리도 크잖아요. 한 분도 빼놓지 않고 제가 다 데리고 나오겠습니다.”
아이가 재촉했다.
“빨리요, 빨리!”
그 순간 박 경위가 결단을 내렸다.
“···위험한 현장인 거 알지? 매 순간 긴장하고 주의해 가면서 수색해. 네가 확인하는 건 딱 3층까지야. 알겠어? 무리하게 수색하지 말란 말이야. 내 말 알아듣지?”
“네! 안전하게 또 빠르게 수색하겠습니다.”
그렇게 박 경위와 민철이 찢어졌다. 박 경위는 아이의 아빠에게, 민철은 검은 연기가 치솟는 현장 안으로.
아이의 아빠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쓰러진 남자 옆에는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눈물 바람을 한 채 남자를 흔들고 있었다.
“혁이아빠, 혁이아빠!”
“제가 보겠습니다. 의식 잃은 지는 얼마나 됐습니까?”
이제 막 도착한 박 경위가 그의 상태를 확인했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심정지 상태 같다.
“그, 그러니까 십 분 좀 안 된 것 같아요. 흐윽.”
“···10분이요?”
보통 심정지 환자의 골든 타임은 4분 남짓. 4분이 넘어가는 순간 생존율은 급격히 떨어진다. 깨어난다 한들 뇌 손상으로 인한 후유증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10분이나 지났다니. 거기다 호흡도 느껴지지 않는다. 사실상 사망이 아닐까.
“집에서 나올 때는 분명 괜찮았거든요. 흐윽, 그런데 밖에 나오자마자 쓰러져서··· 서, 설마 아니겠죠? 우리만 두고 간 거 아니겠죠?”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엄마! 병원 가면 다 괜찮아져! 그렇죠? 경찰차 타고 병원 가면 되잖아요. 네?”
허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사망 판정을 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박 경위는 의사가 아니다.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이지.
“병원 갈 시간 없어요. 잠시만요.”
박 경위는 바로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 당신을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잖습니까. 일어나 보세요, 선생님!
‘으응?’
그때였다. 박 경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흉부를 압박하는 제 손에서 허연 섬광이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 빛은 남자의 가슴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당혹스러운 광경에 박 경위는 눈을 끔뻑였다. 그러면서도 손은 여전히 제 할 일을 계속하고 있다.
“어, 어? 아빠?”
아이도 그 빛을 본 걸까. 돌연 비명을 지른다. 그러나 아이가 본 것은 빛 같은 게 아니었다.
“내가 봤어요! 방금 아빠 목젖이 꿈틀했어요!”
“으응? 여보! 내 말 들려? 정신 차려! 우리 두고 갈 생각 하지 마, 응?”
박 경위는 몹시 혼란스러웠다.
‘나만 보이는 건가?’
여전히 그의 눈엔 하얀빛이 선명히 보인다. 남자의 가슴팍에 스며든 빛은 이제 그의 온몸으로 퍼져가고 있었다.
양팔로, 양다리로, 그리고 마지막엔 얼굴에까지.
“으, 으윽.”
그리고 그 순간.
쓰러진 남자가 신음을 흘리며 눈을 뜬다.
‘···!’
그의 흉부를 압박하고 있던 박 경위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생각했다. 이 빛이 남자를 살렸구나.
정말이지 귀신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다. 멍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마냥 정신을 놓고 있진 않았다. 박 경위가 서둘러 목소리를 냈다.
“서, 선생님. 정신이 드십니까?”
“허으, 네. 우리 애들이랑 와이프는 괜찮습니까?”
남자에게 겉으로 보이는 후유증은 없었다.
그렇게 기적이 일어났다.
한편, 아파트 안으로 들어간 민철도 신비로운 경험을 겪고 있었다.
“으아앙. 엄마, 엄마.”
박 경위와 같은 흰 빛을 본 것이다. 그 빛은 그에게 갈 곳을 알려주고 있었다. 더불어 환영 하나를 보여주었다.
‘501호···’
싱크대 안쪽에 숨어 울고 있는 아이···
그걸 본 민철은 의심 없이 그 빛을 따랐다.
유독 가스에 취해 환영을 보는 걸지도 모른다지만 만일 그게 아니라면 어쩌나? 아이가 위험하다.
‘3층 이상은 가지 마.’
사수의 조언은 어느새 까맣게 잊혔다.
민철은 화재의 발원점인 5층에 도착했다.
확실히 저층과 다른 분위기였다.
뿌연 연기가 가득했고, 시뻘건 불씨가 눈앞에서 넘실거렸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돌연 시뻘건 불길이 홍해처럼 갈라지는 게 아니겠나.
거기다 매캐한 연기가 사방에 가득 찼음에도 호흡은 편안했고, 방호복을 입지 않았음에도 열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다른 게 아니다. 이런 게 기적이다.
‘어린아이를 구하라는 신의 뜻입니까? 하느님.’
기독교인 민철은 그런 생각을 했다.
이세계의 신, 헤스티아가 행하는 기적인 줄도 모른 채. 그렇게 민철이 501호 문을 열었다.
“으앙—”
환영 그대로 아이는 싱크대 안쪽에서 몸을 웅크린 채 울고 있었다.
“아가야, 괜찮아. 경찰 아저씨가 왔잖아.”
“어, 엄마. 엄마. 으앙. 우리 엄마 어딨어요? 자고 일어났는데 없어. 준영이만 두고··· 콜록.”
“이름이 준영이야? 준영아. 아저씨가 엄마한테 데려다줄게. 아저씨 목 꽉 잡아. 숨쉬기 힘들어?”
“끄, 끄윽. 경찰 아저씨랑 안아주니까 갑자기 괜찮아졌어요.”
“그래.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가자.”
아이를 품에 안은 민철은 곧장 집에서 빠져나왔다. 하얀빛이 밖을 가리키고 있었다. 구해야 할 이는 아이가 전부라는 의미일 터.
같은 시각, 아파트 밖.
“이, 이게 다 무슨 일이에요···”
“아유, 안 보여서 못 나온 줄 알았는데 마트 다녀왔나 보네! 정말 다행이야 새댁! 진짜 큰일 날 뻔했어. 야밤에 불이 나서···”
“아악! 주, 준영이. 아아— 우리 준영이가 집에 있어요! 준영이 구하러 가야 해요.”
“으응? 준영이? 어머, 어머 어떡해! 일단 새댁 진정해. 있어 봐!”
“놔요, 놔!”
밖은 아비규환이었다.
“위험합니다. 침착하시고 몇 호인지 저한테 말씀해주세요. 아드님은 제가 데리고 나올게요.”
당장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아이 엄마와 그녀를 말리는 박 경위.
“오, 오백 일호요. 경찰관님. 우리 아들 좀 구해주세요.”
그리고 그런 박 경위를 말리는 주민들과 이제 막 도착한 소방대원들까지.
“에구머니. 거기가 어디로 들어가. 경찰관님 그러다 큰일 나요! 먼저 들어간 경찰도 안 나온 것 같구먼!”
“소방관 왔네!”
그런 아비규환 속에서 아이를 안은 민철이 화마를 뚫고 나왔다. 민철이 박 경위를 보고 소리쳤다.
“박 경위님!”
“엄마, 엄마—!”
사람들의 시선이 민철에게 향했다. 그리고 그 안에 폭 안겨있는 아이에게로.
둘은 부상 하나 없이 무사 생환했다. 그렇게 두 번째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
같은 시각.
상남의 집에서 나온 태구는 편의점에 있었다.
“2,000원입니다.”
귀한 후, 처음 스스로 정한 목적지다.
꿈에서나 그리던 음식을 먹기 위해서였다.
“카아, 이 맛이로구나!”
그것은 다름 아닌 콜라였다.
톡 쏘는 탄산이 목울대를 넘어가는데, 과장을 조금 보태서 온몸이 저릿해졌다.
“과연 행복은 멀리 있지 않구나.”
그러나 이런 행복도 다 돈이 있어야 누릴 수 있는 법.
돈이 없었다면 콜라를 살 수 없었을 테고, 이런 맛도 느낄 수 없었을 테지.
‘흐흐흐.’
새삼 두둑해진 지갑 사정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태구는 헤실헤실 웃으며 생각했다.
‘하면 또 다른 행복을 누리러 가볼까나.’
두 번째 목적지가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
사흘이 지났다.
태구는 그간 바쁘다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임시 거처를 구하고, 산해 진미를 즐겼으며, 엉망진창인 용모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했다.
‘신께서 바라는 대로 세상을 이롭게 만들어야 할 지언데.’
문제는 이곳이 지구라는 점이다.
이세계에서 태구는 무소불위와 같은 권력을 갖고 있었다.
신벌을 행하는데 어떠한 방해물도 없었다.
그러나 한국인 강태구는 법 아래 존재하는 일개 국민일 뿐이다.
다시 말해 이전과 같이···
‘악을 행하는 배교자를 찾아 대가리를 깨부순다면?’
살인죄가 될 것이고.
‘사람에게 기생하는 망령을 찾아 멸한다면?’
특수폭행죄가 될 터.
그렇다면 최선은 도움이 필요한 자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오게 만드는 것인데···
“역시 답은 점집 창업인가.”
이것이 사흘을 내리 생각해서 나온 결론이었다.
물론 마음에 드는 답은 아니다.
허나 이것저것 따지기엔 마땅히 떠오르는 대책이 없다. 더욱이 그런 대책을 세울 머리도 없다. 몸을 쓰는 것에만 자신있는 태구였다.
‘기발한 묘책은 엘가가 참 잘 내었는데···’
상념은 결국 그리움으로 이어졌다.
태구는 실없이 웃으며 차가운 물로 복잡한 마음을 씻어냈다.
그러고 욕실을 빠져나왔는데.
부르르—
[띠링]부르르—
[띠링]테이블 위에 올려둔 휴대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려대고 있었다.
태구는 고개를 갸웃하며 휴대폰을 보았다. 딱히 연락 올 사람이 없었다. 설마 개상남인가?
[부재중 8통]부재중 이력에 이어서 남겨진 문자를 확인한 태구는 헛웃음을 삼키며 되뇌었다.
“얼라리요?”
개상남이 아니었다.
점집 오픈도 안 했건만 첫 손님이 생겨버렸다.